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89화 시몬이 학생회장으로서 네프티스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제인은 그를 부총장실로 데리고 갔다.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간. 시몬이 차분히 소파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제인이 입을 열었다. “학생회장도 예상하다시피, 네프티스 님은 1학기 말부터 아주 길고 어려운 작전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자리를 비운 지는 오래됐군요.” 그 말을 들은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어떤 작전을 수행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1급 기밀이니 다른 곳에는 발설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결사의 계획을 저지하는 일입니다. 이번에 결사는 다른 세계와 대륙을 이으려 시도했죠. 물론 네프티스 님이 나서셨으니 그 계획이 성공할 일은 없겠지만요.” 시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 정보를 얻어낸 건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제인이 안경을 쓰며 말을 이었다. “네프티스 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학생회장과의 면담 일정을 조율하겠습니다. 그 전에 달리 궁금한 게 있다면, 부총장인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하도록 하죠.” 시몬은 사양하지 않고 질문을 시작했다. 우선 가장 알고 싶은 ‘로레인’에 대해서였다. “로레인 학생의 행동은 저희로서도 다소 당혹스럽습니다.” 제인이 한숨을 쉬며 허브티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네프티스 님의 계획에 함께 동행하여 후계자 수업을 받는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녀간의 개인적인 문제라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제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자신이 들었던 대화를 그대로 전했다. -그냥 저 하나 희생하면 되는 거잖아요!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에요! -안 된다고 했지? 그건 절대 안 돼!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네프티스가 로레인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미루었고, 이에 로레인이 불만을 품었던 것 같았다. “그 희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암흑연합 총수 자리의 책임과 무게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정말로 본인의 목숨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로레인 학생이 고집이 강하긴 해도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 돌아올 겁니다.” 제인도 그 이상의 이야기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시몬은 아쉬움을 삼키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제1군단장 헤일에 대해, 키젠에서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듣고 싶습니다.” 이번인 제인이 비교적 거침없이 대답했다. 제1군단장 헤일은 당대 최강의 군단장이며, 과거 ‘배신의 군단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알려져 있다. 바로 그때 그의 소중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 이후 헤일은 이상해졌고, 스스로를 ‘황제’와 동일시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본명인 ‘헤일’이라고 불리는 것마저도 혐오하고 있다. 현재 그의 영지에서는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으며, 시체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되살리고 있다. 키젠의 정보부에서는 헤일이 소중한 사람을 되살리려고 온갖 금지된 흑마법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초대 황제의 의식을 깨웠고, 그 의식을 자신에게 덧입혔다고 예상하고 있다. “즉, 지금 그에게는 헤일과 황제, 두 인격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제인이 소파 받침대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헤일이 잠식당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제가 보기에는 시간문제인 것 같군요.” * * * 제인은 시몬이 일으킨 군단전을 개인적으로는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DMAT와 단체합숙 이후에 검을 뽑을 것을 권했다. 시몬도 이에 동의했다. 그렇게 제인과의 면담을 마치고 소환학과 기숙사에 들어왔다.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도착했기에 기숙사 수속을 밟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수속을 마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는데, 기숙사에는 난리가 나 있었다. “시험 기간이다!” “노트 있는 거 다 꺼내 와!” 우당탕탕탕탕! 다들 느긋하게 수다나 떨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생들은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책과 노트를 낀 채 허둥지둥 로비층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바로 다음 주가 DMAT야! 이럴 때가 아니라고!” “깃펜 잉크 가져온 사람!” “어디부터 외워야 해?” 첫날부터 기숙사 로비, 자습실, 연구실 할 것 없이 모두 공간이 학생들로 꽉 차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들 시험 기간 모드로 돌입한 모습이었다. 태연히 휴식을 취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시몬도 시험공부를 하러 자신의 방인 트리하우스에 올라가 교재를 펼쳤다. 그러나 브린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중이 흐트러졌다. 머릿속에 복잡해서 오늘은 제대로 공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만 하고, 오늘은 알라제를 보러 가자.’ * * * 시몬은 코랄 리치 제작의 진행 단계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결심을 마친 그는 주위에 누가 없는지 살핀 뒤, 훌쩍 트리하우스 밖으로 뛰어내렸다. 뒤이어 금지된 숲을 지나 무사히 피어의 유적에 도착. 유적의 길고 긴 계단을 따라 한참을 지하 깊숙이 내려간 뒤에야 알라제의 연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텁. 도착하자마자 시몬의 발에 무언가 걸렸다. 커다란 뼈였다. 이번 코랄 리치 제작의 실패작으로 보였는데, 무척이나 난해한 외형이었다. 시몬이 발에 걸리는 수북한 뼈를 헤치고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데. 후욱. 구국. 후욱.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손에 든 랜턴을 비추었다. “알라제. 거기 있어?” 빛이 닿은 곳에 새하얀 고블린의 등이 보였다. 그 고블린은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열중하고 있었다. “알라제?” 알라제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저 외형일 뿐이지만, 시몬의 얼굴을 빼닮은 고블린의 형상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실험 재개 중. 군단장의 도움 필요.] “어, 어어.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시몬은 알라제가 만들고 있는 것을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두근두근 박동하는 심장처럼 보이는 이것은 틀림없는 ‘라이프 베슬’이었다. 손 위에서 생명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묘한 맥동이 퍼져 나갔다. [마무리 작업 개시.] 키이이잉! 알라제의 몸에서 여러 팔들이 튀어나오더니 라이프베슬에 작업을 시작했다. 흑마법을 부여하고, 날카로운 바늘을 연이어 주사했다. 조치가 이어질수록 라이프 베슬이 점점 더 강한 힘으로 박동하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진지하고 예민한 알라제였지만, 그와 사념으로 연결된 시몬은 알라제의 짙은 피로감 가운데 유독 반짝이는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무리 작업 완료.] “다음은 이렇게 머리 위로 올리면 되지?” 시몬이 손에 든 라이프베슬을 들어 올리자. 덜컹! 새장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열리더니, 시몬의 손에 든 라이프 베슬을 수납하고 입구를 단단히 봉쇄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라이프베슬이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박동하며 칠흑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새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슴뼈였고, 그것에 팔다리와 두개골이 달려 있었다. 망자의 심장이 시체에 피 대신 칠흑을 불어넣었다. 쿠구구구구구! 지하 연구실이 들썩이며 돌 파편들이 곳곳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거 괜찮은 거 맞아?” [가동 성공적으로 진행 중.] 이내 거칠게 주위가 한 차례 진동하더니. -케에에에에에에에에에! 비명과 함께, 무언가가 시몬의 앞으로 훅-! 다가왔다. 시몬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3대 언데드라 불리는 리치. 다행히 양팔과 다리가 사슬에 구속된 상태였다. 라이프베슬로 인해 새로운 힘을 얻은 망자가 생자인 시몬을 인식하고 본능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제작 직후 언데드가 보이는 흔한 공격성 과민 상태.] 알라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군단장이라면 잠재울 수 있음.] “당연하지.” 시몬이 한 차례 눈을 감았다 뜨며 절대명령을 내렸다. [멈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랄 리치의 상태가 안정적으로 변하며 몸부림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거칠던 박동도 차츰 안정되어갔다. 시몬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지금 바로 18,554,513번째 시험 시작.] 알라제의 명령과 동시에 코랄 리치가 옆에 놓인 거대한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코랄 섬광 발사.] 시몬은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라이프 베슬 아래에서 시작된 푸른 에너지와 붉은 에너지가 코랄 리치의 몸을 타고 뻗어 나가, 마침내 지팡이 끝에 모였다. 화아아아아악! 지팡이 앞으로 보라색 섬광이 강렬하게 방출되며 어둠을 환하게 밝혔다. 그 강렬한 빛에 주변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체 몇 번을 발포한 건지, 동굴 벽이 이미 붕괴되어 넓은 광장처럼 변해 있었다. “콜록 콜록!” 쏟아진 연기와 분진에 시몬이 입가를 가리며 기침했다. 최근 하수인들이 로크섬에 ‘지진’이 잦아지고 있다며 걱정했는데, 이게 그 이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성공한 거야?” 연기가 걷히고, 저 멀리 동굴 벽 끝에 ‘과녁’으로 보이는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코랄 광선은 그보다 한참을 떨어져 있는 지점에 구멍을 뚫고 지나갔다. [18,554,513번째 시험 실패.] 알라제가 말했다. [시전 속도 저하, 반동 제어 미숙, 화력 집중 불안정, 결과적으로 명중률 현저히 떨어짐. 실전 투입 불가.] “완성은 거의 다 해놓고 발포 정확성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구나.” 시몬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라제가 돌아섰다. [18,554,514번째 시험 실시.] “잠깐만. 알라제.” 시몬이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인 채 미소 지었다. “코랄 광선의 명중률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면 내게도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어.” 시몬은 즉석에서 반동을 제어하고 시전속도를 높일 수 있는 마법 수식을 짜서 보여주었다. 그러나 노트를 들여다보는 알라제는 역시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수식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럼 이건 어때?” 시몬은 순간 방금 공부했던 ‘브린어’를 떠올리고는 그것으로 수식을 다시 작성한 뒤, 알라제에게는 기본적인 개념부터 빠르게 설명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부분적 이해 가능.] 알라제는 브린어의 단어를 몇 가지 시몬에게 물어보더니 그것을 조합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도식을 짜냈다. ‘이래서 브린어를 배워야 하는구나.’ 대륙어가 인간을 위한 언어라면, 브린어야말로 흑마법에 특화된 언어였고 알라제와도 완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다. 시몬과 알라제는 정신없이 수식을 짜기 시작했다. DMAT 시험공부를 위해 노트에 빼곡히 써서 외우는 것보다, 역시 실전에서 서로 브린어로 소통하니 훨씬 효과적이었다. 리치 제작과 시험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었으니 시몬은 신이 나서 쭉쭉 수식을 써나갔다. 알라제는 모든 의견을 종합하여 코랄 리치를 재조정한 뒤, 다시 한번 코랄 섬광을 발사하도록 명령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오오!” 아까는 과녁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코랄 섬광이 맞았으나, 이번에는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좋은데?” [하지만 시전속도는 오히려 느려짐.] 알라제가 기쁜 내색을 감추며 덧붙였다. [실전에서 반격당할 가능성 증가. 또한 움직이는 상대에게 명중하기 어렵다는 문제점 존재.] “그러면 속박 계열 흑마법을 리치의 주력기로 설정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차단한 뒤 강력한 코랄 섬광으로 하나하나 제거하는 방식으로 가자.” [리치에 대한 데이터 부족. 현재 데이터상 코랄 섬광 발사에 특화된 리치는 다수의 흑마법 사용 불능.] 그 말에 시몬은 아공간을 열었다. “데이터가 부족한 게 문제란 거지?” [?] 그리고 이어지는 광경에 알라제가 펄쩍 뛰었다. 1군단 측과 뮤르가 이끌던 리치의 망가진 잔해들이 후두둑 아공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1군단과의 결전 후 시몬이 직접 수거해 온 것들이었다. [데이터! 그것도 최상급 데이터 확인!] “아직 최고의 선물은 일러.” 마지막으로 쿵 하고 중앙에 커다란 뭔가가 중앙에 떨어졌다. 시몬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제1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레큘라의 시체야. 리치 제작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몬은 말을 멈췄다. 흥분한 알라제가 대폭주하고 있었다. “여기서 게하임은 쓰지 마!” 그날 저녁. 모든 키젠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지진에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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