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84화 세 명의 군단장. 시몬과 헥토르, 메리다가 앞으로 나섰다. <카오스 스피어> 쿠르르르릉! 수많은 혼돈의 창을 하늘로 흩뿌린 시몬이 손에 쥔 파멸의 대검을 천천히 내려뜨리자, 자줏빛으로 물든 하늘이 이에 응답하듯 혼돈의 힘을 내려 대검에 깃들게 했다. 꾸드드드드득! 헥토르도 변신을 시작했다. 시룡 파츠를 몸 곳곳에 붙인 상태에서 ‘드래곤 폼’으로 변화하자, 육중한 형상으로 커지며 다섯 머리를 지닌 용으로 변했다. <헥토르 오리지널 – 오두룡 폼> 처억. 시몬이 무릎을 굽혔고. 펄럭! 헥토르가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그들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 줌의 벼락과 바람을 남긴 채, 두 남자는 순식간에 석고상 형태의 레큘라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잡았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내려쳤고, 헥토르 또한 다섯 개의 머리를 앞세우며 향해 돌진했다. 쩡! 그러나 시몬의 몸이 어떤 전조도 없이 석고상으로 변했으며, 헥토르 또한 거대한 분수대로 변했다. 두 사람의 돌진이 허무하게 무력화되며, 사물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성급해, 너희 둘 다.” <스피릿 베일> 보다 못한 메리다가 두 팔을 뻗었다.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이불자락이 길게 날아가 그 석고상과 분수대를 붙잡은 채 끌어내렸다. 쿠웅! 쿵!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면에 떨어진 석고상과 분수대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석고상이 먼저 시몬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허억! 헉!” 시몬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목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빌어처먹을!” 헥토르도 뒤이어 저주를 해주하고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개를 들어 레큘라를 노려보았다. “……저주를 사출하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저주를 뒤집어쓰는 건가.” 마치 저주와 동화된 것만 같은 힘. 석고상이 된 레큘라는 자신의 반경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강제 변신시키고 있었다. 닿기는커녕 범접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메리다가 부스스 머리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저거, 이길 수나 있으려나.” “이길 수 있어.” 시몬이 바닥을 짚고 힘주어 몸을 일으켰다. “저렇게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게하임이라면 분명히 약점은 있을 거야. 아마 오랜 시간 유지하기 힘들겠지.” 쿠웅-! 거구의 레큘라가 일행들을 향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저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벌써 시몬의 다리가 석고처럼 변해갔고, 헥토르의 팔은 분수대의 일부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 메리다는 스피릿 이불을 펼쳐 시몬과 헥토르를 감싸 올렸다. 그러곤 자신 또한 이불 위에 올라타고는 레큘라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동상으로 변해가던 시몬과 헥토르의 몸이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게하임에 지속 시간이 있다면, 이대로 도망 다니면 돼.” 메리다가 선택한 전략은 레큘라의 게하임 지속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시몬과 헥토르도 저주가 걸리고 있는 군단 병력을 저주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으로 우회시켰다. 일단은 메리다의 지침에 따랐지만, 시몬은 이 전략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가 이렇게 나오면 아마 레큘라는…….” 쿵! 레큘라가 방향을 틀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드레스덴 왕궁의 ‘본궁’이었다. ‘역시나.’ 본궁에는 아직 충분한 전력이 모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대로 레큘라를 보내면 저주 저항이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어떻게 버틸지 몰라도, 수많은 일반인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싸워야 한다.” 헥토르가 호승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끌기? 그딴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기껏 모였는데 1군단 에이션트 언데드 하나를 상대로 시간이나 낭비하고 있으면 대륙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자연스레 협공을 제안하는 헥토르의 말에 시몬은 놀라면서도 이내 씩 웃었다. “나도 헥토르의 말에 동감이야. 이번엔 원거리 공격으로 가보자.” 시몬과 헥토르가 메리다의 이불에서 뛰어내렸다. 시몬은 각력으로 지면을 질주했고, 헥토르는 악룡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쳤다. 빠르게 레큘라의 좌우로 이동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준비했다. ‘일격에 거구를 분쇄할 수 있을 만큼!’ 시몬이 왼발을 앞으로 크게 디디곤, 허리와 팔에 힘을 전달하며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강한 힘으로!’ 후콰아아아아아아아악!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시몬의 참격이 날아갔으나, 석고상으로 변한 레큘라에게 닿기 직전, 참격마저도 돌처럼 바스라졌다. <드래곤 브레스> 헥토르가 연사 형태로 발사한 수십 발의 브레스 또한 중간에 돌더미로 변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저 멀리 헥토르가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하지만 이 공격으로 시몬은 뭔가 감을 잡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메리다를 향해 외쳤다. “메리다! 네 힘으로 잠깐이라도 레큘라를 멈춰줘! 잠깐이면 돼!” 그 한마디에 메리다는 지체 없이 두 팔을 세웠다. “잠깐이라면 방법이 있어.” 스스스스스스스! 그녀의 4군단 병력, 장난감과 인형 군단들이 일제히 축 늘어지더니 그 안에 깃들어 있던 무수한 망령과 위습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석고상이 된 레큘라를 향해 다가갔다. 형체가 없는 망령에게는 강제 변신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 망령들이 철썩 철썩 레큘라의 몸에 들러붙기 시작하고, 메리다가 다음 흑마법을 발동한다. <스피릿 봄버> 콰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어엉! 일명 망령 버전의 ‘시체폭발’. 그러나 이 거대한 폭발로도 레큘라는 꿈쩍도 하지 않고 저벅 저벅 왕궁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역시 망령 상태에서 물리화하지 않은 스피릿 폭발만으로는 위력이 약했다. 촤아아아아! 그러나 이는 눈속임. 어느새 ‘혼령화’ 상태로 직접 넘어온 메리다가 레큘라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녀가 혼령화를 해제하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석고상이 된 레큘라에게 저주를 걸었다. 메리다의 근원이자, 진가이자, 그녀를 상징하는 기술. <판타서스 오리지널 – 슬립(Sleep)> 레큘라에게 저주를 걸었지만, 메리다의 몸 또한 기둥처럼 변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처억! 레큘라의 움직임이 멈췄다. * * * [………….] 레큘라는 어둠 속에서 기억을 되감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황제 따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봤자 조금 뛰어난 인간 아닌가. 오만한 에이션트 언데드인 그는 모든 것에 시큰둥했다. 그런데 죽음의 힘을 손에 넣은 황제를 막상 마주하자,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나의 진정한 주군이시여. 레큘라가 과거의 자신이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 애송이 군단장들과 싸우고 있었을 터. 설마 언데드인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 순간, 석고상 상태였던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확실히 정신을 잃은 채 꿈을 꾸고 말았다. 그 결과로.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자신의 눈앞에 산더미만 한 7군단 언데드의 파도가 도달해 있었다. 수천의 검푸른 눈동자들이 광기에 젖어 이글거렸다. <터치 오브 피그말리온> 잠시 멈추었던 레큘라의 저주가 재개되었다. 앞쪽에 있던 언데드들부터 순식간에 동상, 기둥, 건물, 조각상으로 변해 후두둑 떨어졌다. 검푸른 파도의 앞부분부터 빠르게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광경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언데드에게 잠이라는 개념을 부여하는 저주라.’ 간담을 서늘하게 한 건 인정하지만 딱 그 정도뿐,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그렇게 결론지은 레큘라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 마지막까지 이빨을 숨긴 채 언데드의 파도 속에 파묻혀 있던 푸른 머리 소년이 뛰쳐나왔다. “하아아아아!” 레큘라의 저주는 너무 빠르게 발현되어 마치 광역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타겟마다 순차적으로 발동하는 구조다. 그러니 동시에 많은 적을 인식시키면 발동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시몬은 그것을 간파하고 언데드 파도의 틈에 섞여 들어온 것이다. 어느 때보다 가깝게 레큘라에게 도달한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목을 향해 휘둘렀고. 터엉! 이번에도 그의 몸이 고민하는 자세의 석고상으로 변하며 허무하게 떨어졌다. ‘고작 그 정도 생각으로 불속에 뛰어들다니, 어리석군.’ 레큘라는 다시 그에게 신경을 거두고, 저 멀리 상공에서 강력한 브레스를 준비하는 헥토르를 경계했다. 바로 이때. 빠직, 빠드득. 석고상으로 변한 시몬의 몸에 금이 가고 있었다. * * * -손쓸 수 없이 강력한 저주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는 질문이군요. 저주학 개별 과외 시간. 시몬의 물음을 들은 바힐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런 강력한 저주를 가르쳐 달라는 질문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 또한 당신이 저주에 흥미를 느끼는 요소이니 좋습니다. 바힐은 시몬의 탐구심에 흡족해하며 칠판에 놓인 분필을 들었다. -저주학에서, 한 대상에게 여러 종류의 저주를 섞어 쓰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시몬은 즉각 답했다. -서로 다른 저주끼리 만났을 때 상충되거나,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조합이 맞는 저주를 걸거나, 동일한 저주를 연속으로 사용해 스택을 쌓죠. -역시 훌륭한 답변입니다! 그럼 이렇게 해보죠! 바힐이 분필을 휙 돌려 칠판에 글자를 썼다. <위크니스> <다운 스트렝스> -같은 완력 약화계열 저주가 있을 때, 위크니스를 미리 자신에게 적용시킨 상태에게 다운 스트렝스를 맞으면 어떻게 되죠? 시몬은 즉시 바힐에게서 분필을 받아 들고 공식을 증명했다. -후속 저주의 효과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이미 저주로 완력이 줄어든 대상이니까요. -바로 그겁니다! 임시방편이라 저는 별로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지만, 정 감당하기 힘든 저주를 만난다면……. 바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가하는 저주와 흡사한 저주를 자신의 몸에 미리 걸어놓으십시오. 바힐의 혜안에 시몬이 손뼉을 쳤다. -바, 발상의 전환이네요! 저주를 상대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저주를 거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때로는 무모한 방법이, 의외의 효과를 내기도 하는 법이죠. 이를 ‘예방 저주 이론’이라고 하는데, 사실 실전에서는 쓰기 어려울 겁니다. 상대가 사용하는 저주와 자신이 사용할 저주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테크닉이거든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하는 바힐의 미소를 떠올리는 걸 마지막으로, 시몬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레큘라에게 돌진하기 전, 순간적으로 그때의 가르침을 떠올린 시몬은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시몬 리메이크 - 페럴라이즈> 우선 자신에게 걸려 있던 레큘라의 저주를 분석하고, 이에 맞춰 석화 저주 ‘페럴라이즈’를 자신의 몸에 먼저 걸어두었다. 레큘라의 강제 변신 저주는 강력하지만, 역사가 너무 오래된 저주여서 수식이 낡고 간단했다. 그렇게 석화가 걸려 있는 시몬에게, 변신 저주는 이미 변신된 상태라고 인식하여 보통보다 적은 효과를 부여했다. 그리고 먼저 걸어둔 페럴라이즈의 지속시간이 끝나는 즉시. 촤아아아아! 석고상이 된 시몬의 몸에 금이 가며 저주에서 풀려났다. 시몬이 움직이는 모습에 레큘라가 경악하며 뒤늦게 반응했지만, 시몬의 팔은 한층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저주가 걸리기까지 1초 미만!’ 시몬이 이를 악물었다. ‘충분해!’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파멸의 대검이 거대한 백색 궤적을 그리고, 거대한 석고상의 머리가 목에서 말끔한 단면을 보이며 떨어져 나온다. 일순 주위를 팽팽하게 장악하던 저주의 효과가 잠시 걷히는 것을 시몬은 피부로 느꼈다. “지금이야! 헥토르!” <군단기 – 일악(一惡)>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헥토르가 마침내 준비하던 브레스를 토해냈다. 거대한 불길이 거대한 석고상을 덮친 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냈다. 그 틈에 시몬은 한쪽 팔을 쭉 뻗었다. “가자, 프린스.” 게하임 기술은 그쪽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주를 잠시 쓸 수 없게 된 레큘라의 몸이 헥토르의 브레스에 떠밀려 시몬이 지정한 위치에 도달했고. [이제 히든카드의 차례!] 터억. 그곳에 기다리고 있는 건 왕관을 쓴 좀비, 미리 시몬이 소환해 둔 프린스였다. [레큘라를 내 손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 이거지?] 잘려 나간 머리를 쥔 레큘라의 몸체가 급히 물러나려고 했지만 브레스의 화력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고, 프린스는 손쉽게 뒤에서 다가왔다. ‘마무리.’ 이내 시몬이 눈을 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체폭발> ――――――――――! 왕국의 핵심. 대도시 랭거스틴의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 수없이 회자될 거대한 검푸른 버섯구름이 별궁에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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