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00화 중간고사 이후에 시작되는 대형 수행평가. 어떻게 보면 필기뿐인 중간고사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시험이었다. 교수들이 듀라한 특강을 열었던 만큼, 학생들도 듀라한과 관련된 수행평가가 100% 있다고 예상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올 게 왔다.' 대부분 그런 생각이었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아론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그의 입이 떨어졌다. "이번 대형 수행평가의 내용은, '단일 언데드 운용'이다." 단일 언데드 운용. 이어지는 아론의 설명에 따르면, 학생들은 시험장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언데드'만 사용할 수 있다. 그 언데드 하나만으로 시험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해결해야 했다. "물론." 아론은 덤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해당 시험에서 어떤 언데드를 쓸지는 자유다." 그 말에 강의실이 냄비 물 끓어오르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세라즈가 즉각 손을 치켜들었다. "아세라즈 미켈입니다! 언데드의 티어나 종류도 상관없나요?" "그래." 아론이 고개를 까닥였다. "10티어 본 드래곤이든, 1티어 스켈레톤이든, 오로지 단 하나의 언데드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조건이다. 그 외에 구체적인 룰은 시험 당일에 공지하겠다." 시몬의 10조는 즉각 머리를 맞대었다. "다, 당연히 듀라한 수행평가일 줄 알았는데." 토토가 중얼거렸다. "사실상 듀라한 수행평가나 다름없어." 시몬이 말했다. 옆의 로레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의 말이 맞아. '단 하나의 언데드만 사용할 수 있다'. 그게 유일한 조건이라면, 학생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대부분 듀라한일 테니까." 물론 예외가 있다면 '세이렌 키메라'를 사용하는 피츠제럴드나, '묘지기 언데드'를 주력으로 쓰는 첸드라 글리비체와 같은 학생들. 이미 자신만의 확고한 특화 언데드를 보유하고 있는 학생들은, 시험에 어떤 언데드를 내보낼지 고민하느라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근데 말야!" 언제나 그랬듯, 에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동안 소환학과 교수님들이 빤-히 특강에 합숙까지 하면서 계속 듀라한을 강조해 오셨잖아?" "그랬지." 토토가 맞장구를 쳤고, 에슈는 손을 비비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상식적으로, 당연히 듀라한을 쓰는 게 유리한 시험으로 나오지 않을까? 어떻게든 듀라한을 만들어서 써먹어야만 하는 시험인 거지!" 시몬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의외로 예리한데. 에슈." "훗! 이 정도는 기본...... 잠깐! 의외는 뭔데!" 아론은 '구체적인 룰'은 시험 당일에 공지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뉘앙스가 있다. 만약 일주일 내내 듀라한 특강을 해놓고, 다음 수행평가를 듀라한과 상관없는 시험으로 낼 거였다면 미리 룰을 공지했거나 최소한 힌트 정도는 줬을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구울 수행평가'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 교수들은 구울을 공부시킨 뒤, 구울을 평가했다. 이번에도 듀라한 특강 뒤에 듀라한 수행평가가 나오는 게 타당하고 정상적인 수순이다. 이런 건 변수를 따져가며 고민할 여지도 없다. 시몬이 과감하게 깃펜을 들어 올렸다. "에슈의 추측이 맞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듀라한의 능력을 고려해서 시험의 내용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 -10~30분, 단기 결전에 특화. -대량의 마나 흡수 및 칠흑 전환. -강력한 힘과 속도. -탁월한 내구도. -무기술과 오러 사용 가능. 여기까지 써내려간 시몬이 깃펜을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다른 건 조금 애매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뭔데?" "분명히 시간제한이 있는 시험일 거야." 그 말은 들은 조원들이 '오~' 하고 작게 탄성을 흘렸다. "맞네. 듀라한의 짧은 운용시간을 고려한 거지?" "한정된 정보로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크으! 역시 수석!" 로레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에슈는 호들갑을 떨었다. 시몬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모두가 함께 도달한 결론이지." 아무튼. '피츠제럴드는 제법 골치 아플 것 같네.' 차라리 듀라한이라고 한정 지으면 모르겠지만, 어떤 언데드든 1기만 사용 가능하다는 조건. 듀라한을 쓰지 않을 만큼 특화 언데드에 자신이 있다면 그것 또한 인정이란 뜻이다. 실제로 11조 쪽을 보니, 피츠제럴드가 안경테에 손을 올린 자세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엄청나게 고민 중인 것 같았다. "그럼, 시험에 관해선 발표했고." 아론이 교과서를 펼쳤다. "다시금 듀라한 특강을 시작하겠다." "네!" 일반과목 수업 이후에 찾아온 주말. 다소 느슨해질 수 있는 타이밍에, 아론은 능숙하게 '시험'이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물론 시험에 다른 언데드를 쓴다고 해도, 완성한 듀라한은 수행평가와는 별개로 채점의 대상이니 이 점 유의하도록."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피츠제럴드가 움찔하더니, 깃펜을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준비해라. 지금부터 실습실로 이동하겠다." * * * 학생들은 실습실로 장소를 옮겼다. 듀라한의 3대 재료라고 불리는 '오거로드-아바돈-가디언'. 그중에서 대부분의 학생은 '아바돈'의 시체를 꺼내고 있었다. 아바돈은 전신이 비늘로 뒤덮인 파충류를 연상케 하는, 이족보행에 무기를 다루는 늪의 괴수다. 얼핏 보면 '리저드맨'과 흡사해 보이지만, 흔해 빠진 리저드맨과는 그 격이 다르다. 늪의 왕이라고도 불리며 상당히 강력하다. "넌 어디 브랜드야?" "프랑 브랜드! 바닐라로 사고 싶었는데 예산이...... 헤헤!" 학생들은 다들 아공간에서 '아바돈' 풀세트를 꺼내는 중이었다. 썩지 않도록 진공 포장된 시체는 다양한 보존 마법진으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끄흐흑." 에슈가 우는 시늉을 하며 아공간에서 아바돈 세트를 꺼내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저가형인 '케락' 브랜드였다. 포장을 뜯으니 비늘이 엉망으로 손상된 아바돈의 시체가 대충 노끈 같은 것으로 묶여 있었다. "내 6개월치 알바비가......." "나도 후원받은 돈 다 써버렸어." 그 옆의 토토도 울상을 지으며 '케락' 브랜드의 아바돈을 꺼냈다.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그동안의 언데드와는 차원이 다른 비용지출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나도 꺼내볼까.' 시몬도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금색 테두리와 블랙 컬러의 조합으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형의 커다란 관이었다. 관의 중간에는 '바닐라'라고 멋들어진 황금 글씨체가 박혀 있었다. "오!" "끝판왕 바닐라 브랜드네!" 이런저런 임무수행으로 자금에 여유가 있던 시몬은, 로체스트에 내려가서 통 크게 바닐라 브랜드의 아바돈 세트를 구매했다. 곳곳에서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열어봐, 빨리!" "알았어." 시몬이 관뚜껑 위에 그려진 '보안 마법진'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마법진이 시몬의 칠흑을 감지하고는 보안을 해제시켰다. 관 안에서 취이익! 하고 증기가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스스로 열렸다. "와아!" 관 안에는 새까만 꽃이 가득 들어 있었고, 그 안에 듀라한의 재료인 아바돈의 모습이 보였다. 몸에 혈관이 도드라져 있었고 근육도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크다! 내 아바돈보다 머리 두 개는 큰 것 같은데?" 당연하지만 아바돈은 크고 무거울수록 비싸다. 에슈는 관 안에 들어 있는 검은 꽃을 들었다. "부패를 막아주는 마수꽃. 이거 한 송이만 몇백 실버 하지 않아?" "진짜 비싸겠다." 하지만 아직 풀세트가 아니다. 시몬이 뒤이어 꺼낸 것은 새까만 갑옷들. 듀라한은 폭발적인 양의 칠흑을 운용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입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무겁고 견고한 장비들을 마음껏 착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리고 전신으로 마나를 빨아들이는 듀라한의 특성상, 마나흡입까지 고려해 갑옷을 맞춤제작 해야 했다. '진짜 크긴 크구나.' 시몬이 커다란 투구를 들어 올렸다. 칠흑을 쓰지 않으면 들기도 어려울 정도의 무게. 이 무거운 걸 이미 죽은 시체가 입는다고 생각하니, 네크로맨서의 흑마법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여기 광나는 것 봐." "디자인 매끈한 게 잘 빠졌네." 지켜보던 학생들이 한마디씩 했다. 시몬은 그들의 말에 대답해 주면서도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아바돈으로 만든 듀라한도 분명 강하겠지만.......' 최상급 재료인 '가디언'으로 만든 듀라한을 이길 수는 없다. 마침 그 가디언을 보유한 헥토르와 아세라즈도 아바돈의 시체를 꺼내고 있다. 아마도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용도일 것이다. 첫 제작에 귀한 재료를 썼다가 손상이라도 입으면 치명적이니까. 틀림없이 수행평가 때는 가디언으로 듀라한을 완성해 올 것이다. '초조해하지 말자.' 시몬이 고개를 되돌렸다. '내가 준비한 재료들로 듀라한을 완성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내가 이겨. 지금은 차근차근 제작법을 익히는 데 집중하자.' "주목." 마침 아론이 실습실에 들어왔다. 학생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그를 응시했다. "혹시 실습 재료를 준비해 오지 못한 학생 있나?" 저 뒤에서, 두 명의 학생이 고개를 푹 수그린 채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는 다른 학생들의 표정이 싸-해졌다. 수업 재료를 구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키젠에서는 누가 챙겨주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든 직접 나가서 몬스터를 잡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료를 확보해 오는 게 수업에 대한 예의였다. 하지만 아론은 화를 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업자에게 말해서 오래되어 재고 처리된 아바돈 시체 두 구를 구해놨다. 그거라도 가져가도록." "가, 감사합니다!" "물론 상태는 보장하지 못한다. 시험 때까지는 제대로 된 아바돈을 구해서 쓰도록." "네!" 조교들이 파리 웽웽 날리는 아바돈 시체 두 구를 가져다주었다. 몇몇 비위가 약한 학생들은 코를 잡기도 했다. 상태가 딱 봐도 최악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재료로도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게 행운이었다. "그럼, 시작하지." 아론이 작업용 장갑을 끼며 말을 이었다. 학생들도 따라 하듯 장갑을 끼며 눈을 빛냈다. * * * 주말 특강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으어어어어어." 소환학과 건물에서 학생들이 하나같이 지친 얼굴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 엄청 빡세!" "이래서 다른 과목 중간고사 공부는 언제 하냐." 다들 진이 빠져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나 먼저 갈게!" 시몬만큼은 에너지가 넘쳤다.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빠르게 가방을 챙겨서 뛰어가고 있었다. 토토가 팔을 뻗었다. "시, 시몬? 기숙사에 안 들어가?" "응! 조금 늦을 것 같아. 먼저 들어가서 쉬어!" 후다닥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에슈가 고개를 갸웃했다. "뛸 힘이 남아 있다니 대단하긴 한데, 어딜 저렇게 바쁘게 가는 거지? 수업 늦어져서 약속 깨진 여친이라도 달래주러 가나?" 로레인이 빙긋 웃었다. "아마도 듀라한 만들러 가는 걸 거야." "또?" 에슈가 펄쩍 뛰었다. "오늘 온종일 듀라한만 만들었는데?" "시몬은 그런 아이니까." 시몬의 성격을 아는 토토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슈는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흐으, 키젠 수석은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저렇게 독하게 해야 수석이 될 수 있다면 그냥 맘 편히 포기할래!" "......독하게 해도 힘들걸." 그러는 사이 시몬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서 듀라한을 직접 만들어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시몬은 칠흑을 밟고 달리면서 웃었다. '빨리 만들어보고 싶다!' 순식간에 긴 거리를 주파한 시몬은 돌연변이 동아리 방 안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당연히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지하실로 뛰어 내려가, 벤야가 가르쳐 준 대로 봉인을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잘 있네.' 지하실 중앙. 진열대에 똑바로 놓여 있는 마누스의 두개골이 보인다. 벽면에는 저번 사태로 생긴 커다란 할퀸 흉터들이 보인다. 시몬은 주섬주섬 아공간부터 열었다. '좋아! 바로 시작해 보자.' 시몬은 망설임 없이 아공간을 열었다. '오늘 밤 안에, 널 새로운 육체에 깨워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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