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17화 샤헤드 왕국. 밀라위 호수. "크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샤헤드 왕국으로 넘어온 제인과 시몬 일행의 앞에, 드넓은 호수가 펼쳐졌다. 마치 바다처럼 큰 호수였다. 수평선도 보이고, 실제 바다처럼 파도와 조류도 있다. 호숫물이 쏴아아 바닥을 훑었다가 내려왔다. 호수의 주위는 온통 숲이었고 이곳에도 크고 작은 호수들이 많았다. 양동이 하나 내려놓고 여유롭게 낚싯대를 드리우던 노인들이, 학생들이 지나가자 귀여워하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뭔가 힐링되는 기분이네.' 드넓은 호수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시몬이 미소 지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여러분." 제인이 시몬과 편입생들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저기가 세 번째 네크로맨서 학교, '모이란'입니다." '아!' 놀랍게도, 호수 한복판에 학교부지가 있었다. 저게 바로 샤헤드 왕국과 모이란이 자랑하는 거대 수상도시. 지상과 수상도시는 하얀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저길 어떻게 다리로 이을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길었다. 다리를 건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곳이네요." 시몬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그 즉시 열등감에 똘똘 뭉친 벤즈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니, 시몬! 이런 물만 많은 곳이 뭐가 좋다고! 자연과 숲을 벗 삼은 알란드 캠퍼스가 훨씬 낫지 않아?" 시에라의 제츠도 지지 않았다. "해발 3천 미터 높이의 시에라 캠퍼스 조망을 보고 하는 소리지? 니들이 거기 일출을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시몬이 쓴웃음을 흘리며 돌아보았다. "너희도 이제 키젠 학생이잖아. 자꾸 이상한 걸로 경쟁하지 마." "그래도 뿌리는 알란드다!" 학생들이 시끌시끌하자, 제인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손바닥에 주먹을 톡 내리쳤다. 학생들이 바로 입을 다물며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자, 다리로 가면 시간이 걸리니 우리는 배를 타고 이동하겠습니다." 그녀가 학생들을 데리고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그때 시몬이 제인의 옆으로 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걸었다. "그, 그런데요 교수님." "네." "저랑 같이 싸울 다른 두 명은 언제쯤 만나나요?" 사실 조금 초조했다. 제인의 성격상, 시몬이 2학년 학생회장인 만큼 다른 멤버들도 2학년으로 맞췄을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했다. 평소라면 Top10이라도 동원했겠지만, 지금은 임무평가 기간이라서 올 수 있는 인원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200위권 안팎의 학생들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괜한 물음이군요." "그, 그런가요?" 제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가리켰다. 시몬의 고개도 그쪽으로 슥 돌아갔다. 나룻배 앞에서 키젠 교복 차림이 두 여학생이 보였다. 특히 어깨에 메고 있는 완장을 본 시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의 미소가 걸렸다. "시몬!" 소녀들도 시몬을 발견하고는 힘차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시몬도 반가움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메이린! 카미! 설마 너희들이 이번에......!" "맞아~" 부회장이자 전체 8위, 메이린이 스커트를 다소곳하게 감싸고 일어나 하늘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흥. 피곤한 거 무릅쓰고 특별히 와줬으니까, 고마운 줄 알아." "우리도 샤헤드 왕국에서 임무평가를 끝내고 대기하다가, 제인 교수님 제안을 받고 이쪽으로 넘어왔어요!" 학생회 서기이자 석차 95위, 카미바레즈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총총 뛰었다. 그때 제인이 시몬의 옆으로 다가왔다. "학생회 멤버들을 불렀습니다. 지원군은 마음에 듭니까?" "최고예요!" 시몬이 즉각 답했다. "이번 모이란에서의 편입평가전은 3전 2선승제. 두 번만 이기면 우리 키젠의 승리입니다." 제인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두 번만 이기면 되니까요." 무조건 이길 생각이었다면 제인은 3학년들을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큰 무대에서 재능 있는 학생들의 성장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메이린이 팔을 착! 들어 올렸다. "당연히 세 게임 다 이겨야죠!" "와아!" 카미바레즈가 환호했고 시몬도 손뼉을 쳤다. 열의에 찬 학생들을 보며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가짐이 좋습니다. 그럼, 모이란으로 이동하도록 하죠." * * * 총인원은 10명이고, 한 배에 다섯 명씩. 학생회 멤버인 시몬과 메이린, 카미바레즈, 그리고 제인이 첫 번째 배에 타고, 알란드와 시에라의 편입생들이 나란히 앉았다. 하지만 벤즈가 또 시에라 측과 시비가 붙어서 싸우려고 하자, 제인이 첫 번째 배에서 건너왔다. "제가 여길 감독하겠습니다. 두 명은 저쪽으로." 결국 벤즈와 제츠가 시몬 일행 쪽으로 넘어갔다. 이내 배가 출발했다. 시몬은 그냥 흔한 나룻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마나모터가 장착된 배였다. 운전하는 사람도 없이, 배가 알아서 마법진에 그려진 루트를 따라 목적지까지 나아가는 시스템이었다. 배가 호수 위를 나아가는 길에, 시몬은 벤즈와 제츠를 학생회 멤버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이쪽은 학생회 서기인 카미바레즈라고 해." "아, 안녕하세요!" 카미바레즈가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수줍게 웃었다. '귀엽다......!' 벤즈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귓가에 샬랄라 하는 하프연주 소리가 들리며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시몬 시몬! 이거 봐요~ 백조예요!" "응. 가까이 와도 사람을 안 무서워하네." 그 이후로 벤즈의 시선은 줄곧 카미바레즈에게 꽂혀 있었다. 제츠가 실실 웃으며 그의 발을 툭 찼다. "꿈 깨라. 알란드." "뭘." 벤즈가 왜 시비냐는 듯 노려보자, 제츠는 고개를 돌려 휘파람을 불었다. "저기 봐! 돌고래야!" 이 호수는 1,700여 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다. 백조와 물새, 오리들이 물가를 헤엄치고 있고 바위에는 바다표범이 늘어져 일광욕하고 있었다. 멀리서는 분홍색 돌고래들이 총총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호수의 어딜 봐도 생물들이 가득하다. 메이린의 말에 따르면, 모이란에서는 이 호수를 관리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쏟아붓는데, 무려 몬스터가 살지 않는 호수라고 한다. 그런 상징성 때문에 이 호수는 샤헤드 왕국 전체에서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배를 타고 어디를 다녀도 공격받을 위험이 없다. "-라고 주장하긴 하는데, 사실 몬스터가 아예 없을 순 없겠지." 메이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명색이 네크로맨서 학교가 근처에 있으니까 말야. 사실은 레비아탄 같은 고위험도의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지점도 있대." "조, 조금 무서워지네요." 카미바레즈가 갑자기 주위를 휙휙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초록빛 호수 밑바닥이 뭔가 커다란 게 지나간 것 같았다. 시몬과 메이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런데 딕이 없어서 조금 아쉽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자, 메이린은 어림도 없다는 듯 웃었다. "평민은 뭐, 중립지대 갔다던데? 임무평가 시즌마다 돈에 눈멀어서 휙휙 떠나는 총무 따윈 난 몰라." "아, 이제 도착했어요!" 배는 신기하게도 학교의 선착장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시몬이 먼저 뛰어 올라가서 친절하게 여학생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벤즈는 폼을 잡아보려고 스스로 뛰어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디고 호수에 떨어져 교복바지가 다 젖고 말았다.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알란드 쟤 오늘 왜 저러냐." 제츠도 시몬의 손을 붙잡고 올라오며 킥킥댔다. 얼굴이 시뻘게진 벤즈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선착장에 기어 올라왔다. "괜찮으세요?" 그때 카미바레즈가 뽀얗고 하얀 수건을 벤즈의 앞에 내밀었다. "저기 선착장에 근무하시는 분께 빌려왔어요." "아...... 음!" 다시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며 하프연주가 들린다.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였지만, 얼른 수건을 받아들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고, 고맙다! 카미바...... 카미바이제?" "카미바레즈예요! 이름이 어려우면 그냥 카미라고 불러주세요!" 벤즈의 가슴이 들뜨기 시작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애칭을 허용한다고? 설마 이 애도 날......? "거, 꿈 좀 깨라니까. 물에 빠진 메뚜기." "시에라는 입 좀 다물어!" 잠시 후, 두 번째 배도 도착해서 다 함께 도시로 걸어갔다. 모이란은 보안 문제로 민간인들에게 폐쇄적인 다른 네 학교와는 달리, 캠퍼스 전체를 민간에 개방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살기 좋은 이곳에 몰려들어 도시가 커지고, 이제는 학교 캠퍼스와 도심지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졌다. 물론 일반인은 학교건물 안이나 보안부지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학교건물 바로 앞에 아기자기한 쇼핑거리들이 쭉 들어찬 모습은 모이란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예뻐요!" "지붕이 다 하얀색이야." 도시의 경관 자체도 상당히 예뻤다. 곳곳에 수로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교복을 입은 모이란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수로에서 수상택시라는 배에 올라타면 도시 어디든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 같았다. 제인과 학생들은 길거리를 쭉 걸어서 중앙광장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모이란의 입구입니다." 그녀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편입평가전은 오후에 있고, 일찍 와서 오전에는 일정이 비는군요. 지금부터는-" 눈을 반짝이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며, 제인이 옅은 미소를 흘렸다. "자유시간입니다." 와아아! 학생들이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슥 보다가 다시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흩어져서 자유롭게 놀다가 오후 1시까지 이곳 중앙광장으로 집합하겠습니다. 특히 학생회의 세 사람은 오후 경기를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하세요." "네! 교수님!" "그럼 해산하겠습니다." 제인은 학생들을 보내놓고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시몬!" 메이린이 덥석! 시몬의 손목을 붙잡고 달렸다. "뭐 해? 달려! 모이란의 명물인 물 미끄럼틀 타러 가자!" "맞아요!" "자, 잠깐만! 가깝......!" 얼굴이 붉어진 시몬이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벤즈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먹만 부르르 떨었다. '크흑! 카미에게 데이트 제안하려고 했는데!' 그 모습을 보던 제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같이 온 시에라의 여학생들이랑 함께 사탕가게로 걸어갔다. * * * 모처럼 받은 자유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시몬은 메이린, 카미바레즈와 함께 모이란의 명물이라는 물 미끄럼틀도 타고(한 번 타는 데 500실버라니. 시몬이 투덜거렸다.) 나란히 쇼핑센터를 걷다가 크림 파스타를 먹으니 시간은 끝나 있었다. 그렇게 1시에 중앙광장에 전원 집합했다. 모이란의 총장과 교직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인 부총장님." "예. 오랜만입니다." 모이란의 총장은 여성이었다. 본래 알란드, 시에라보다 역량이 떨어지던 모이란을, 혁신적인 경영을 통해 쇄신하고 학생들의 실력과 학교의 명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평가받는 여걸이었다. 제인과의 사이도 양호해 보였다. 다른 총장들이나 교수들이 보여준 학교 간 신경전은 이번에는 일절 없었다. 그렇게 총장과 교직원들을 따라 편입평가전이 펼쳐질 모이란의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 봤던 것 이상으로, 가장 많은 인파가 이 경기장에 들어차 있었다. 1층에는 모이란의 하늘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가득 차 있었고, 2층에는 일반인들도 구경하러 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수로 경기장'. 모이란의 수로도시를 기반으로 디자인한 듯, 경기장 곳곳에 깨끗한 호숫물이 흐르는 미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췄다. "여기도 홈 어드밴티지 덕지덕지겠네." 학생회장 코트를 휘날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시몬이 중얼거렸다. 메이린도 팔짱을 꼈다. "당연하지! 모이란 애들은 대부분 물을 다루는 기술로 싸울 거야. 칠흑역학과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생들도 마찬가지! 물을 봉쇄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 메이린이 전략적인 견해를 중얼중얼 늘어놓았다. 반면 카미바레즈는 엄청난 인파에 굳었는지 안색이 나빠 보였다. "괜찮아? 카미." "......시몬." 그녀가 눈썹 끝을 내리며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시, 시몬은 이런 곳에서 벌써 두 번이나 싸운 거예요?" 시몬은 빙긋 웃었다. "처음엔 나도 떨렸는데, 하다 보니까 괜찮아졌어." "아, 네! 저도 두 분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카미바레즈가 떨고 있다. 시몬은 기왕이면 자신이나 메이린이 첫 차례에 나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학생 여러분! 그리고 발걸음 해주신 내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수로 경기장 중앙으로 모이란의 총장이 걸어왔다. 우레와 같은 외침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올해도 키젠과의 교류로 이렇게 큰 행사가 열리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저희 모이란은-" 시몬은 능수능란한 모이란 총장의 연설을 들으며, 선수 대기장소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반대편 대기장소에는 모이란의 학생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시몬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지?' 마찬가지로 편입생으로 추정되는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년. 멍하니, 죽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시선이 갔다. 그는 하늘을 응시한 채 손끝을 슬슬 휘젓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소년이 손가락질하자, 새는 날기가 불편한 듯 흔들리더니 끝내 경기장 뒤편으로 추락했다. 시몬이 인상을 찡그리는 그 순간. "......!" 그 하얀 소년이 죽은 눈으로 시몬을 응시했다. 시몬은 전신의 솜털이 삐쭉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이상입니다." 마침 총장의 연설이 끝나며 다시 한번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이란의 총장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럼 첫 번째 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녀가 상자를 뒤적거리다가 두 개의 구슬을 꺼냈다. 심판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한 명씩 읽었다. "모이란의 알리자린 자크 학생! 그리고." 모두가 숨죽여 기다리는 그때, 심판의 입이 열렸다.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학생! 경기장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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