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16화 완벽하게 당했다. 오른쪽 날개가 절단된 제츠가 추락하고 있었다. 주위의 발 디딤대는 모조리 시몬에게 폭파당했고, 아래는 끝없는 절벽과 구름이다. 하늘 경기장에서 구름 너머로 떨어지면 '장외' 판정. 남은 배리어 게이지와는 상관없이 탈락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제츠가 두 날개를 움켜잡고 눈을 부릅떴다. '끝날 수는 없지!' 비행 마법진에 급속 수정을 시도했다. 두 날개를 소멸시키는 대신, 칠흑의 힘을 순간적으로 뿜어내 부스터의 원리로 날아갈 것이다. '앞으로!' 파아앙! 칠흑 날개가 제츠를 내던지듯 앞으로 날려 보냈다. 이내 그의 몸은 하늘 경기장의 가장 외곽에 붙어 있는 땅으로 떨어졌다. 우당탕탕-! 물론 안전한 착지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그의 몸이 바닥을 몇 번이고 구르다가 관중석의 펜스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근처의 관중들이 놀란 소리를 냈다. 해설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 제츠!" "괜찮아?" 제츠가 부들부들 떨며 상체를 일으켰다. '크으으, 배리어 덕분에 살긴 했지만.' [시몬 폴렌티아 : 79%] [제츠 시메라트 : 25%] 순식간에 20%대로 떨어지며, 배리어 게이지가 붉은색으로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다. 제츠가 고개를 들자, 공중에서 '친위대 비행수트'를 입은 채 유유히 날아오는 시몬의 모습이 보인다. "크크......!" 제츠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을 도약하는 스켈레톤, 거기에 그 스켈레톤으로 만든 비행갑주. 대단한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잖아. 시몬." 시몬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남을 칭찬할 여유가 있어?" "당연하지!" 제츠가 교복 셔츠를 붙잡아 찢었다. 그의 복부에 그려진 마법진이 드러났다. "큰 기술은 나도 준비하고 있었단 소리다!" 제츠의 마법진이 즉시 발동했다. <제츠 오리지널 - 이그니포텐스> 화르르르륵! 복부의 마법진에서 녹색의 화염폭풍이 전방위로 뻗어 나갔다. '이 기술의 사거리는 최대 1,800미터다! 완벽하게 포착했어!' 이에 맞서는 시몬이 손을 휘저었다. 근처의 '친위대'들의 몸에서 에메랄드빛이 빠져나가더니 시몬의 옆으로 모여들어 마법진의 형태를 구축했다. 시몬은 그 마법진 뒤로 아공간을 열었다. "나와라. 나이트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 블레이드 스톰> 슈콰아아아아아아악!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두 기의 스켈레톤 나이트가 청록빛으로 물들었다. 하얀 소용돌이는 훨씬 더 거대해진 에메랄드색 회오리로 변하며 화염의 폭풍을 창격처럼 뚫고 들어갔다. '뭐, 뭐뭐뭐 뭐야!' 제츠가 다급히 흑마법을 취소하고는 칠흑방패를 펼쳤다. 파창! 두 나이트들의 회오리가 칠흑방패를 박살 내며 회전을 멈췄다. 동시에 좌우에서 제츠의 양팔을 붙잡고 바닥에 눕혔다. "무슨!" 키이이이이잉-! 제츠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스켈레톤 나이트들과 입고 있는 비행수트까지, 이번에는 모든 친위대의 클라우드가 시몬의 중앙으로 모여들더니 새까만 십자가처럼 번쩍이며 화살의 형태로 변했다. "제기랄!!" 제츠가 발작하듯 두 팔을 흔들었지만 나이트들은 놔주지 않았다. <시몬 리메이크 - 블러드 에로우> 시몬의 몸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는 동시에, 검은 화살이 쏘아졌다. "......하."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비로소 두 팔을 떼어내며 물러났고 제츠는 다가오는 검은 화살을 응시하며 자포자기한 웃음을 흘렸다. "진짜. X나 세네."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앙-! 새까만 폭발이 제츠의 몸을 뒤덮으며, 탄착점으로부터 부채꼴의 형상으로 뻗어 나갔다. "꺄아아아아!" 거대한 후폭풍이 몰아치며 관중석의 학생들이 머리를 낮췄다. [시몬 폴렌티아 : 79%] [제츠 시메라트 : 0%] [승자!] 심판이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벤즈와 알란드의 편입생들이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터뜨렸다. 시에라 학생들은 체념한 얼굴로 늘어지며 아쉬움을 표했다. 좋은 경기에 박수를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쩝, 올해는 2학년 학생회장이라 비빌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키젠은 키젠이구나." 시에라 학생들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자리를 떴다. 비행수트가 풀려서 떨어지던 시몬은 사뿐히 제츠가 있던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어질러진 본인의 스켈레톤들을 회수한 그가 관중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단하다.' '나도 내년에는 저 학교에......!' 특히 시에라 1학년 학생들의 선망 어린 시선이 시몬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럼." 그리고 VIP실. 제인이 등을 돌려 걸어가며 말했다. "청소일 잘 부탁드립니다, 총장님. 다음 달에 출근하시면 하수인 팀장이 해야 할 일을 알려줄 겁니다." "......크윽!" 시뻘게진 얼굴의 시에라 총장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살 것 같다아." 시몬은 시에라 교내의 온천을 홀로 쓰는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뜨근뜨근한 열탕에 몸을 녹이고 있으려니 피로가 사르르 풀렸다. '시에라가 온천이 유명하다더니. 사실이었네.' 시몬이 몸을 기울였다. 멍하니 방울 맺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다른 학생회 멤버들이 생각났다. '다들 임무평가 잘하고 있으려나.' 모처럼 감성적인 시간을 가지려 했는데, 온천이 너무 뜨거워서 한 시간 이상은 있기 힘들었다. 욕탕에서 벗어난 시몬은 시에라 측에서 미리 준비해 둔 외출용 가운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쭈욱 켰다. 간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타라도스에 이어서 3대 네크로맨서 학교 순회공연. 너무 강행군이긴 했지.' 오늘은 시에라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아침에 마지막 3대 네크로맨서 학교인 '모이란'으로 떠나는 일정이다. 시에라는 온천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손님 접대용 건물을 통째로 숙소로 쓰라고 내어주었다. 시몬은 숙소를 향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한바탕 싸우고 나니 이제는 높은 해발고도의 고산증도 익숙해졌다. "키젠의 학생회장이지?" "?" 시몬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쪽 동공이 검게 물든 남자가 나무 뒤에서 등을 기대고 있었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그는 교복 위에 빨간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시몬의 학생회장 코트와 비슷한 디자인이다. '이 사람 혹시.......' "나는 시에라의 학생회장, 3학년 로베르토라고 해." 그가 손을 내밀었다. 시몬도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그 손을 맞잡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두 남자가 가볍게 악수했다. 로베르토가 손짓했다. "여기선 이야기하긴 그렇고, 잠깐 장소를 옮기자." "......아, 네. 그러시죠." 로베르트는 바로 근처의 학교 건물로 시몬을 데려갔다. 지금 차림도 그렇고 밤의 날씨도 추워서 시몬은 팔을 슥슥 쓸었다. 다행히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실내는 따듯했다. "여기다." 로베르트가 문을 열어주었고 시몬은 별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 시에라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교복차림도 있었고, 시몬처럼 막 씻고 왔는지 편한 옷차림으로 퍼질러져 있는 학생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시몬이 오늘 상대한 '제츠'도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 그가 이를 갈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성큼성큼 다가와 검지를 척 뻗었다. "그렇게 날 이겨놓고 가려고? 이대로는 절대 못 보내지!"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음표를 띄웠다. * * * "아, 뭐냐고!" "우리가 왜 시에라 말을 들어야 하는데!" 숙소에서 자고 있던 알란드의 편입생들도 시에라 학생들에게 끌려오는 중이었다. 그들을 데리고 온 여학생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겸사겸사 좋잖아. 여기 키젠 학생회장도 있어." "시몬이?!" 벤즈가 헐레벌떡 뛰어가 방문을 열었다. "야, 시몬! 너 보복 같은 거 안 당했......!" 와하하하하! 그러나 벤즈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시끌벅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학생들은 바닥이나 의자에 퍼질러 앉아 웃고 떠들며 샴페인을 마셨다. 책상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가득했다. 마침 제츠의 개인기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어대는 중이었다. "늦었네! 알란드!" 제츠가 목소리를 높이며 팔을 뻗었다. 벤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중앙에 앉아서 즐겁게 옆자리의 시에라 학생회장과 샴페인 잔을 부딪치고 있는 시몬을 발견했다. "시몬! 여기서 뭐 해?" "응?" 시몬이 샴페인을 홀짝거렸다. "시에라의 마지막 날 밤이니까 같이 놀자고 해서." 벤즈가 헛웃음을 흘렸다. "......놀래라.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따라왔냐?" "여기엔 제인 교수님도 계시고, 여차하면 나 혼자 힘으로도 벗어날 수 있으니까." "오우, 자신감 넘치는데! 아우님!" 샴페인을 마시고 얼굴이 벌게진 학생회장 로베르토가 시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친근하게 말했다. 시몬이 '아하하' 무안하게 웃었다. "어벙하게 있지 말고 즐겨. 알란드." 제츠가 다가와 벤즈에게 새 샴페인을 건네주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님 뭐, 아직도 작년 '시알전' 패배의 여파가 남아 있는 거야?" 발작버튼이 눌린 벤즈가 울컥하며 소리쳤다. "시알전이 아니라 알시전이다! 그리고 그건 니네가 심판을 매수해서!" "에휴, 작년 거 구질구질하게 또 시작이다. 패자가 혓바닥이 길다~" "니가 먼저 꺼냈잖아!" 벤즈가 분노의 시선을 시몬 쪽으로 돌렸다. "시몬! 지금 여기서 딱 말해! 평가전 해보니 어때? 내가 더 강했지? 아님 저 시에라 놈이 더 강했냐?"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정적이 사방을 뒤덮었다.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간 모두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시몬에게 향했다. 시몬이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손목을 저었다. "지형이나 조건이 완전히 달라서 한 번 싸운 걸로 강함을 평가하기엔 좀......." "그럼 그거 있잖아. 아우님." 로베르토가 시몬의 샴페인 잔에 자신의 잔을 맞부딪히며 다가왔다.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더' 까다로웠는지?" "으음."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역시 제츠 쪽이 조금 더......."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시에라 학생들이 큰 소리로 환호하며 과자와 주전부리를 폭죽처럼 집어 던졌다. "비공식 시알전 시에라의 승리!" "말도 안 돼!" 벤즈가 절규했다. "시몬 이 배신자! 내가 저 날아다니는 녀석보다 쉬웠다고? 얘들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 "어휴, 역시 평가전에 네가 가는 게 아니었어 벤즈." 다른 두 알란드의 편입생도 깔끔하게 인정하고는, 샴페인을 들고 시에라 학생들과 어울렸다. 벤즈가 '야!'하고 삿대질을 했다. "추하다! 메뚜기 교복!" "하하하하하!" 그렇게 좀처럼 모이기 힘든 세 학교 학생들 모여서 파티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청춘의 밤은 깊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제인이 텔레포트 마법진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준비됐나요?" "예!" 시에라를 거쳐 이번에도 새로운 동료들이 합류했다. 제츠와 다른 두 명의 여학생들이 더해지며 총 6명의 편입생들이 키젠에 들어왔다. "마지막 행선지는 모이란입니다." "......모이란." 벤즈와 제츠의 표정이 동시에 못마땅한 듯 굳어졌다. 학생회장 코트를 입은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좀." "모이란 놈들은 뭔가 정이 안 가서." 제인이 허리에 손을 올렸다. "조용히." "넵! 죄송함다!" "모이란과의 편입평가전은 조금 특별합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3:3 팀 매치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지, 그놈들은 꼭 튀어보려 한다니까. 하는 벤즈의 속닥거림이 들렸다. 시몬이 제인을 보았다. "교수님. 3:3 매치라면 머릿수를 맞춰야 하지 않나요?" "그 점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인이 무심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자격 있는 학생들을 대기시켰습니다. 지금쯤 도착했을 테니 우리가 모이란에 가면 볼 수 있겠군요. 자, 가죠." "?" 오늘이 임무평가 마지막 날일 텐데 누가 올 수 있다는 거지? 시몬은 그런 의문을 품고 마지막 네크로맨서 학교, 모이란으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겼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