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70화 중립지대 국경에 위치한 ‘신성의 문’. 방비 강도는 여전히 높았지만, 다행히 이번엔 연방 감독관이 칼로 물건을 찌르며 검사를 하는 등의 과도한 행동은 없었다. 거기에 시몬의 국경 이동을 중개하는 단골 브로커도 이번만큼은 만반의 준비를 해뒀는지, 시몬이 탄 짐마차는 세부 검사도 무사히 통과했다. 다른 상인들의 화물이 탈탈 털리는 동안에도 시몬의 짐마차는 무사했다. 그렇게 신성의 문을 지나 무사히 중립지대로 들어섰다. 시몬이 짐마차에서 내리는 사이 브로커가 말했다. -연방으로 넘어오실 때 손님을 위험에 빠뜨린 건 제 실책입니다. 이번 건은 값을 받지 않겠습니다. 역시 브로커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직업의식은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시몬도 이 사람과 앞으로도 쭉 거래하고 싶었기에, 비용을 다 지불하진 않더라도 금화 몇 개를 쥐여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후 여정은 익숙한 루트를 따라 진행됐다. 중립지대에 들어와 비공식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대도시 호브에 이동. 호브에서 마차를 잡아타고 레스힐로 향했다. 다행히 성장기를 지난 피루도 신성을 더 달라고 보채지 않고 하양이 까망이처럼 가끔 신성을 주는 것으로도 충분했기에 여러 문제를 덜 수 있었다. 시몬은 이동 기간 내내 부족했던 잠을 몰아 잤다. ‘……자도 자도 피곤하네. 하긴 신성연방에서 고생 많이 했지.’ 양측 영토를 모두 여행해 봤지만, 시몬은 암흑연합이 확실히 더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행복 농장을 꾸리는 성녀에, 현역 성녀의 힘을 빼앗아 기계 성녀를 만드는 시장이라니. 신성연방에서의 경험은 대단히 다이나믹했다. 일 때문에 마지막 방학이 짧아져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곧 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 자연스럽게 학생회 동기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고 있던 시몬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방학 끝나기 전에 같이 모여서 놀러 가기로 했는데!’ 졸업 전 여행을 계획해 뒀건만, 신성연방에서의 일정이 워낙 타이트했던 탓에 개학까지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시몬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슥슥 쓸었다. ‘학교에서 만나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겠다.’ 그렇게 고개를 넘어 고향 레스힐에 도착했다. 산 능선을 따라 논밭이 펼쳐진 익숙한 풍경과 소박하고 밝은 영지민들이 보인다. 그들이 마차를 탄 시몬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시몬도 영지민들과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긴 이동 끝에 집 앞에 도착하니, 집 안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엄마가 식사 준비 중이신가 보네.’ 시몬이 노크를 하려 손을 들었지만. “…….” 문 앞에서 우뚝 잠시 멈췄다. 최근 우리 집 문을 여는 게 긴장됐다. 문을 열자마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불쑥불쑥 벌어져서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설마, 이번엔 아니겠지.’ 집 안에서 뭔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영지민들이 놀러 온 것이라고 생각한 시몬이 힘주어 문을 열었다. “여기 파이가 너무 맛있어요! 제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예요!” “어머머, 그러니? 고맙구나! 맛있게 먹으렴.” “어머니 저도 한 그릇 더 주십쇼! 하하하!” 왁자지껄한 식탁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요리를 준비하는 안나,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떠드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어?” 문이 열리자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기쁨과 반가움이 폭발할 것 같은 연보라색 눈동자, 즉시 입가에 묻은 걸 닦아내며 기뻐하지만 기뻐하는 내색하지 않으려는 척 노력하는 푸른 눈동자,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웃는 황색 눈동자까지. “시몬!” 키젠에서도 가장 친한 학생회 멤버 세 사람이, 시몬의 고향 레스힐에 방문했다. * * * “어서 오세요 시몬!”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바보야! 무슨 일 있었어?” “컴온 컴온 마이 베프!” 귀가 터질 것 같은 폭포수 같은 질문의 향연 속에서, 시몬은 식탁 중앙으로 끌려갔다. 친구들의 환영에 시몬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끼며 답했다. “……군단 관련해서 일이 좀 있어서 바빴어. 너흰 어떻게 온 거야?” “으흐흐, 개학 전에 우리 다 같이 놀러 가기로 한 거 잊지 않았겠지? 마이 베프.” 딕이 포크를 척 하고 세워 들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연락이 안 되니까 이렇게 집에 직접 찾아온 거야! 특히 레스힐은 언젠가 꼭 와보고 싶기도 했고. 두근거리는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미지의 산골 마을!” ‘미스테리 포인트가 아니거든.’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수프를 한 입 먹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께 허락은 받고 와야지…….” 딕이 포크로 테이블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편지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제야 시몬은 자신이 답장을 제대로 안 한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 “실은 내가 와도 좋다고 했단다.” 안나가 손뼉을 치며 부드럽게 말했다. “시몬을 이렇게 생각해 주는 친구들이지 않니. 꼭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어! 용무가 있으면 와서 기다리는 게 어떠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단다.” ‘……역시 우리 엄마.’ 안나가 가슴에 손을 얹고 친구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리 아들과 친하게 지내줘서, 진심으로 고맙구나.”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잠깐 멍해졌다가, 이내 상기된 얼굴로 벌떡 일어나서 마주 고개를 숙였다. “저희야말로 고맙습니다!” “사실 시몬이 우리랑 놀아주는 쪽입니다! 하핫!” 금방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안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이 더 가져다줄까?” “넵!” 안나가 부엌으로 간 사이, 메이린이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다른 한 손으로 시몬의 소매를 톡톡 두들겼다. “우와, 너희 엄마 진짜 품격 넘치신다. 어느 귀족 집안 출신이셔?” “하하…….” 시몬이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순간, 이번엔 뒷문이 벌컥 열리며 리처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막 땔감을 넣고 왔는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가볍게 목 주변을 닦은 그가 시몬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시몬, 돌아왔느냐.” “네! 아버지. 방금 왔어요. 같이 안 드세요?” “나는 방금 먹어서 별생각이 없구나.” 리처드가 후우 하고 짧은 숨을 흘린 뒤 친구들을 보았다. 딕은 편안해 보였지만, 어쩐지 잔뜩 긴장한 채 어깨를 꼿꼿이 펴고 있는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의 모습이 보였다. “학기 말 로크섬에서 종종 보던 얼굴들이구나.” 리처드가 수건으로 머리끝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미소 지었다. “잘 놀다 가려무나.” 메이린과 카미바레즈, 두 소녀의 얼굴이 퐁 하고 붉어졌다. “네, 네에!” “감사합니다……! 아버님!” “로드님과 상아탑주 대리님께 안부 전해 드리거라.” 그렇게 리처드는 다시금 영지 일을 하러 장갑을 끼고 뒷문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딕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이 집안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어쨌거나 학생의 멤버들끼리의 식사는 무사히 끝났다. 메이린이 냅킨으로 입가를 우아하게 닦으며 말했다. “크흠! 차, 착각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우리도 놀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거든? 학생회 건이 본론이야.” “무슨 일 있어?” 시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메이린이 휴지를 정성껏 접어서 테이블에 올려둔 뒤 고개를 끄덕였다. “키젠에서 개학 전에 학생회를 긴급 소집했어. 내일 아침 바로 랭거스틴으로 출발해야 해.” “바로 내일?” 시몬의 표정도 덩달아 진지하게 변했다. 붕 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키젠의 학생회장으로서 물었다. “용무는 뭐야?” “저희도 정확한 소집 용무는 못 들었어요, 시몬.” 이번엔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설명했다. “하지만 개학 전에 급히 학생회를 소집한 걸 보니 ‘학생의 안위’에 관련된 문제 같아요.” “안 그래도 키젠에서 1학년들 개학 루트를 변경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이번엔 딕이 품에서 쪽지 하나를 쓱 들어 올린 뒤 테이블에 툭 떨어뜨렸다. “뭐 매년 있는 신입생 발 붙잡아두기라고 생각했는데, 2학기라 그럴 일도 없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해. 모든 학생들은 교복을 입지 말고 사복으로 로크섬에 들어오라고 했다네. 우리뿐만 아니라 카쟌도 움직이고 있어.” “카쟌까지…….” 시몬이 턱을 쓸었다. 키젠의 정보망이 뭔가 학생에 대한 위험성을 감지했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메이린이 팔짱을 꼈다. “흥, 감히 암흑연합에서 키젠 학생을 건드릴 미친놈들이 있을까 싶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학교에서도 조심하는 것 같아.” “그래. 내일 바로 출발하자.”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딕이 바로 어깨를 쭉 늘어뜨리며 몸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럼 이제 진지한 이야기는 다 끝 거지? 놀러 가자! 레스힐에서 모험이다 모험!” “놀러 온 거 아니라고! 븅딱아!” 메이린이 핀잔을 주었고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웃음을 터뜨렸다. 딕이 배에 손을 올리며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은 일이고 놀 때는 놀아야지. 이게 우리들의 마지막 방학이잖아? 혹시 여기 빈 산장 같은 거 없어? 시몬.” “산장? 있긴 한데…….” “저도 가보고 싶어요!”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메이린은 입맛을 다시며 위층을 바라보았다. “나는 시몬 방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안 돼.” 시몬이 얼른 거절했다. 방에 여자애들을 들이는 게 민망한 건 둘째 치고, 뭔가 민감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성연방 측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라든가. “자, 시간 없어! 움직여!” 딕이 벌떡 일어났다. “여기 물 깨끗하던데 계곡이라도 뛰어들자고!” “야! 무슨 수영이야! 나 수영복 안 들고 왔거든!” “그냥 빤스만 입고 뛰어들어!” 마지막 방학의 반나절. 모두가 레스힐에서 무엇을 하고 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도 어느새 피곤한 것도 깨끗하게 잊고 어디로 데려가야 친구들이 좋아할지 생각하고 있었고, 카미바레즈도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어머, 큰일이네요 여보.” 그때 부엌에서 도란도란 폴렌티아 부부의 말소리가 들렸다. 네 사람이 즉시 목소리를 줄이고는 귀를 기울였다. “오늘 다 수확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인력이 부족한 때니까.” 사정을 듣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들어버렸다. 모두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청춘의 마지막 추억과, 농사일 돕기 가운데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철면피인 딕이 슬쩍 일어나 말했다. “그럼 놀러 가볼…….” “농사를 망치면 1년 동안은 그 땅도 못 쓴다구요? 곤란하네요.” 그 말을 들은 딕이 크읍 하고 눈을 질끈 감더니,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어머니! 혹시 저희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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