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56화 “저쪽이다!” 이왕자의 저택에 거대한 화염 마법이 떨어진 이후, 삼왕자의 지시를 받은 왕국군 병사들이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택은 여전히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한 병사가 그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서둘러라! 이왕자의 시체를 찾을때까지…….” 그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부웅! 수풀이 한번 흔들리더니, 어두운 형체가 병사의 앞에 번쩍 나타났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자신의 머리가 누군가의 다리 사이에 꽉 끼어 있는 상태였다. “?!” 대뜸 시야가 하늘로 치솟는다.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그의 시야가 별이 촉촉하게 뜬 밤하늘을 빙 돌며 관람했다가, 결국 제 동료들의 갑옷에 부딪혀 충돌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병사들 진형이 무너져 내렸다. “적습이다!” 왕국군 병사들이 무기를 앞세우며 진형을 정돈하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검은 형체가 그들의 등 뒤로 돌아왔다. 퍽! 퍽! 둔탁하고 리드미컬한 타격음이 울리며 병사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어둠 속에서 당황한 병사들이 주위로 마구 검을 휘둘렀지만 아군에게 피해를 줄 뿐이었다. “비켜라!” 왕궁 네크로맨서들이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손끝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흑마법을 발사하는 것보다 빠르게, 습격자가 던진 아군 병사가 날아와 그들에게 부딪혔다. “크윽!” 한 차례 쓰러졌던 네크로맨서가 이 악물고 일어나 재차 마법진을 펼쳤다. 그 순간 마법진의 빛이 주위를 밝히며, 검은 후드를 눌러쓴 여성이 공중에서 급강하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퍼억! 그녀의 손등이 정확히 네크로맨서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뒤이어 그녀가 착지하는 동시에 몸을 빙글 돌리며 다리를 휘둘렀고, 병사들이 빗자루에 쓸린 먼지처럼 날아갔다. “저쪽이다!” 네크로맨서들이 저주를 발사했으나, 습격자는 병사들의 틈으로 유유히 도망쳤다. 애꿎은 아군 병사들이 저주에 맞아 석화되거나 엎드려 구토했다. “습격자는 마투계 네크로맨서 하나뿐이다!” “침착하고 주위를 살펴!” 왕국군 병사들이 들썩이는 사이, 그들을 습격한 여성은 다시 수풀 속으로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기서 이능을 쓸 수는 없어.’ 로레인이 마스크를 더더욱 깊게 올리며 불타는 저택을 응시했다. ‘시몬, 부디 이왕자 전하를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가길!’ 그녀가 손바닥에 준비한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미리 설치해 둔 지면의 마법진들이 연달아 폭발하며 주위가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 * * 한편, 리치의 본 아머를 입은 시몬은 이왕자를 업고 달리고 있었다. 처음 저택을 불태웠던 그 강력한 화염 마법을 막아낸 이후, 시몬은 도망치는 동안 어떤 공격도 받지 않고 있었다. ‘……너무 유능한 거 아냐? 로레인.’ 아무리 밤중이라지만, 마투와 간단한 도구만으로 이렇게 적군의 시선을 완벽히 끌어줄 줄은 몰랐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시몬의 등에 업힌 이왕자가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시몬은 조금 고민하다 답했다. “여기서 빠져나간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아버지는? 형님은 무사하신 겁니까?” 역시 왕족이라 그런지 정치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형이 건재한데 감히 자신을 노릴 수도 없고, 노릴 이유도 없을 테니까. 두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 짐작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시몬은 그렇게만 말했고, 이왕자는 모든 걸 깨닫고 눈물을 쏟아냈다. 시몬은 말을 아끼며 인기척이 드문 주거지역을 빠르게 지나갔다. 저 앞에 사가루인의 성벽이 보인다. 이제 성벽을 넘어 이 도시에서 빠져나가면 한숨 돌릴 수 있다. “……내려주십시오.” 그때 이왕자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예?” “저는 모든 걸 잃었습니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살아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멘탈이 완전히 무너진 듯한 음성이었다. 시몬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정말로 그를 등에서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똑바로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하는 다릅니다.” “…….” “당신은 이제 ‘왕’이 되셔야 합니다.” 그 말에, 이왕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내가 책 속에서나 보던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이야.’ 시몬이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맘을 다잡고 말했다. “반란을 일으킨 건 헨릭 삼왕자입니다. 이제 이 나라에 왕위를 이을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기둥이 될 왕가마저 없다면 볼드윈은 정말로 1군단의 손에 넘어가고 말 겁니다.”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이래도 더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이왕자는 가슴 깊은 데서 끓는 소리를 내며 겨우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고, 시몬은 ‘계속 가겠습니다’ 하고 말한 뒤 다시 그를 등에 업고 달렸다. 추적은 없다. 주위의 시선도 없다. 자신의 정체도 들키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 로레인이 일으킨 소란을 틈타 사가루인에서 빠져나간다면 완벽했다. 그녀가 조금 걱정이었지만, 로레인이라면 최악의 상황에도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성벽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그때. [크흐흐!] 머릿속에서 피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피어가 왜 웃는지 알고는 입을 열었다. “왕자님, 고개를 제 등에 딱 붙여주세요!” 그렇게 말한 시몬이 두 다리로 계속 달리면서 몸의 균형을 아래로 낮추었다. 마치 타조처럼 몸을 숙이고 턱이 지면에 닿을 듯이 내렸다. 그리고 바로 위로. 쐐액! 섬찟한 게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왕자도 느꼈는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이런.’ 시몬이 이번엔 살짝 혀를 차며 걸음을 급히 멈추고는, 이왕자를 업은 채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이번에도 섬찟한 예기가 일직선으로 지나갔다. ‘빨라!’ 목덜미가 땀으로 젖었다. 다음 공격의 기척을 감지한 시몬이 그대로 허리를 펴며 이왕자를 업은 팔을 풀었다. 이왕자가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고, 시몬은 그대로 아공간에서 꺼낸 리치의 지팡이를 앞세우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까아아아아아앙! 그 즉시 검이 부딪혀 온다. 맹렬한 충격음이 터져 나오며 아릿한 불똥이 퍼져 나갔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 카가각! 투구 틈새로 번뜩이는 안광과 함께, 빈틈없는 풀 플레이트 아머 속 존재가 말하고 있었다. 발음은 비교적 명확했지만, 인간의 음성이라기에는 이질적이었다. [왕자는 두고 가지?] ‘1군단의 기사형 언데드!’ 시몬이 리치의 지팡이로 상대의 검을 쳐내는 동시에 투구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발이 닿기도 전에 상대는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지더니, 이왕자의 바로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죽어라.] 그의 검이 이왕자를 베려는 순간. 시몬이 지팡이 끝에서 ‘코랄 섬광’을 뿜어내는 것으로 몸을 뒤로 밀어내며, 그 추진력을 이용해 강렬한 뒷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이번에야말로 발차기를 투구에 먹이는 데 성공했다. 언데드가 뒤로 주르륵 밀려나고 시몬이 사뿐히 지면에 내려섰다. ‘이것까지 막아냈어?’ 시몬의 눈빛이 예리하게 변했다. 한 손을 투구 앞에 세운 기사 언데드가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나는 황제의 충신이자 제국의 다섯 번째 검.] 그가 손짓하자, 어둠 속에서 마찬가지로 기사 갑주로 무장한 언데드들이 몰려들어 전투 자세를 취했다. [수도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 ‘길리’다.] ‘……네크로맨서의 시대에 클래식 기사단이라.’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눈을 굴리며 리치의 지팡이를 겨누었다. ‘피어, 방금 저 길리라는 녀석도 이성이 있는 것 같은데, 에이션트 언데드인가요?’ [크흐흐! 그럴 리가 없지!] 옷깃에 붙어 있는 피어의 분신이 말했다. [헤일이 망자의 머릿속에 뿌연 걸 심어뒀군.] ‘뿌연 거라뇨?’ [어떤 수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데드에게 인위적으로 이성을 부여한 것 같다. 그게 바로 1군단 특유의 말을 하고 감정이 있는 언데드의 정체겠지! 근래 본 1군단 언데드 놈들은 일개 좀비까지 말을 하니까 말이다!] 처억! 척! 언데드 기사들이 자세를 낮추고 돌진할 준비를 마쳤다. 추격자들의 등장에 이왕자의 표정은 이미 절망에 빠져 있었다. 시몬도 아공간을 열고 미리 준비한 마법진을 전개했다. 최대한 대륙에 공개되지 않은 코랄 리치로 싸우고 싶었지만, 상대가 너무 많았다. 그렇다면 그나마 흔적이 덜 남으면서도 강력한 카드를 꺼내야 했다. “네가 나설 차례야.” 쿠웅! 육중한 울림과 함께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체구의 언데드. [나는 슬픔을 이해한다.] 위장용 의상을 뒤집어쓰고, 등 뒤에서 마검을 뽑아 세운 그는 다름 아닌 마누스였다. [음, 뭐지? 어디서 그리운 느낌이 드는데.] 길리가 고민스러운 동작으로 투구를 쓸었지만, 누구인지 생각은 나지 않는지 곧 고개를 들었다. [됐어. 왕자를 데려오고 방해되는 건 전부 베어라.] 촤아아아아아! 수도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흑을 두르며 사방에서 돌진해 오는 기사들은 정말로 기사 시대의 합격진을 연상케 했다. “시작해.” 이에 정자세를 취하고 있던 마누스도 앞으로 한 걸음 나가며 마검을 휘둘렀다. <제국 검술 – 준천(濬川)> 마누스의 마검이 번뜩이며 허공에 무수한 선을 그어냈다. 돌진해 오던 기사들의 갑주가 속절없이 찢어발겨졌다. [$@%!] 기사들은 마누스가 제국 검술을 사용하는 모습에 놀란 반응이었지만, 곧 모든 공격을 마누스에게 집중시켰다. 캉! 카가각! 마누스는 쇄도해 오는 적의 검을 자유자재로 피하며 반격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여유가 있었다. 언데드 기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힘으로 눌러보려 했지만, 마누스는 견고한 방어 자세로 받아내더니 강한 완력으로 떨쳐내 역으로 튕겨냈다. ‘좋아, 듀라한의 육체를 최대한 잘 이용하고 있어!’ 시몬이 이왕자를 호위하며 이를 지켜보는 사이, 그에게도 기사 하나가 달려왔다. 시몬이 지팡이를 겨누며 대응하려는 찰나. 촤아아악! 마누스로부터 검격이 뻗어 나와 그 기사의 목을 날려 버렸다. 시몬이 무안하게 웃으며 지팡이를 어깨에 툭 걸쳤다. ‘나는 상대하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마누스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나가 역으로 기사단의 중심으로 돌파했다. [재로 돌아가라.] 이리 떼에 달려든 사자처럼, 우악스러운 완력과 우월한 검술로 다수의 기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던 기사단장 길리가 조용히 말했다. [합격진.] 촤촤촤! 기사들의 진의 형태가 바뀌었다. 마치 먹잇감 앞에서 입을 벌리는 듯한 진형이 되었고, 폭주한 마누스는 진형이고 뭐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강적 앞에서 명예는 잠시 감추어라. 합공.] 터엉! 텅! 기사단들이 사방에서 포위해 검을 휘둘러 대며 합격기를 가했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검들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여러 검이 모여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흩어지는 등 화려하기 짝이 없는 합공이었다. 절묘한 합격기에 마누스의 몸 곳곳이 베이기 시작했다. 쿠웅! 결국 다리에 검이 파고들자 마누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고. 촤악! 촥! 등 뒤와 어깨가 연달아 베이고 말았다. ‘위험해! 너무 깊게 파고들었어!’ 보다 못한 시몬이 코랄 리치들을 전부 꺼내 끼어드려는 순간. 우우우우우우웅-! 마누스가 든 마검이 크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인간도 아니고 망자를 인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만!]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마검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좋다. 나 마검 메리스가 네 진가를 이끌어내 주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검에 침울한 회색빛이 요동쳤다. 마누스가 이 회색빛 힘을 이끌고 몰려드는 기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이번엔 방어 자세를 취한 기사들의 방어와 갑주마저 뚫고 크게 갈라냈다. 지켜보던 길리가 흠칫했고, 시몬은 눈을 크게 떴다. 스스스- 스스스스스스스- 상황이 격변했다. 마검에 직접 베인 기사들의 몸에서도 그 회색빛이 일렁이더니 마검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마검의 새로운 능력인가?’ 마누스가 마검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의 몸에도 회색빛이 일렁이며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픔을 이해한다.] 불안정하던 목소리의 음정이 달라졌다. 마치 사람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음성으로 변해갔다. [그렇기에 행동한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드디어 긴 시간을 거쳐 마누스가 완전히 각성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기사단장 길리가 말했다. [그래, 그래! 이제야 기억나! 네가 그 소드마스터 마누스지? 우리 쪽 인물이었잖아!] [나는 마누스가 아니다.] 처억. 그가 천천히 검례를 취했다. [마누스의 몸에서 새롭게 태어난 ‘이성’, ⴆœⴃ.] 그의 입이 열렸다. [라큄(진혼곡)이다.] 마침내 마누스의 유골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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