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57화 스스스스스-! 마검에 베여 쓰러졌던 언데드 기사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1군단과의 연동이 끊기고, 이성이 사라지며 비로소 온전한 형태의 언데드로서 회색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검의 힘으로 일으킨 거야?’ 시몬이 놀라며 그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1군단의 칠흑은 이제 없고 오로지 라큄의 기운만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나의 창조자를 도와라.] 처적. 척. 라큄의 기사들이 일제히 시몬과 이왕자의 앞으로 나서며 1군단의 기사들을 견제했다. 갑자기 아군이 적으로 돌아서자 1군단의 기사들도 혼란에 빠진 듯했다. ‘군단형 언데드도, 소환형 언데드도, 그렇다고 자연형도 아냐.’ 시몬이 진땀을 흘리며 라큄의 등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탄생한 거지?’ [기이한 사술을 쓰는구만, 마누스. 아니, 라큄이라 했던가?] 기사단장, 길리가 제 손에 든 검을 빙빙 돌리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아까 계속 슬픔을 이해한다고 했지? 되살아난 우리를 가엾게 여기나 본데,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기껏 베어서 무력화시킨 기사들을 다시 일으켜 네 수족으로 부리다니.] 낄낄낄. 칠흑음 특유의 귀를 파고드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가 말하는 신념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스릉! 라큄이 마검을 들어 올리며 낮게 말했다. [제국은, 이제 없다.] [……뭐?] [제국은 멸망해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 누구도, 어떤 방식으로도 제국을 자처할 수 없다.] 마누스 때와는 달리, 라큄은 놀라울 정도로 명료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희는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싸우다 죽은 내 동료를 일으켜 육체와 정신을 모독하고, 자신의 이득에 따라 그들을 움직이고 있다.] 라큄이 검을 앞세우자 그의 편이 된 기사들도 검을 앞세웠다. [정말로 제국이라면,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동료들에게 안식을 주고, 시체로 돌려보낼 것이다.] 시몬은 놀란 표정으로 라큄을 보았다. 설마 그가 제국 자체를 부정할 줄이야. 길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투구를 긁더니 자세를 낮췄다. [그 유명한 소드마스터 마누스에게서 태어난 게 이런 변종이라니, 납득하기 어려운걸.] 키잉! 길리가 든 검 끝에 은빛이 일렁이며 맺혔다. [직접 상대해 주마.] 주르륵- 그의 검 끝에 수은 같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길리가 쾌활한 기합을 내뱉으며 그대로 검을 난무하듯 휘둘렀다. 허공에 그어진 궤적들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공중에 남았다. 그 상태로- 쐐애애애애애애액! 라큄에게 날아왔다. 라큄이 마검을 들어 그 복잡한 검기 다발을 받아냈지만, 검기들은 사방으로 갈라져 라큄의 어깨와 다리 일부를 베고 지나갔다. [이게 영광의 힘으로 수여받은 내 새로운 힘이다!] 길리가 옆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칼자국이 남았고, 그것이 순차적으로 라큄을 향해 날아들었다. 카앙! 카앙! 캉! 라큄은 연달아 마검을 휘둘러 검기를 쳐내며 길리와의 거리를 좁혔다. 길리 역시 물러서지 않으며 라큄에게 직접 검을 휘둘러왔다. 굉음과 함께 두 칠흑의 충돌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힘은 거의 대등해.’ 이때 시몬은 전투를 지켜보면서 액자를 주위로 전개하고, 코랄 리치들과 함께 보랏빛 섬광을 쏘아대며 다가오는 언데드 기사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라큄이 자신의 편으로 만든 기사들이 앞에 호위하듯 버텨주고 있어 여유가 있었다. [크흐흐! 이거 피가 끓는군! 나를 입고 전투에 합류해라 소년!] ‘그건 안 돼요.’ 퍼억! 시몬이 멋들어진 동작으로 기사 하나의 몸통을 걷어찬 뒤, 그쪽으로 코랄 섬광을 발사하며 설명을 이었다. ‘제국의 기사를 자처하는 언데드와 싸우는 중이잖아요. 라큄에게는 이번 전투가 무엇보다 중요할 거예요.’ [크흐흐! 마누스. 아니, 라큄의 데뷔전이란 건가.] 카앙! 라큄과 길리가 치열하게 검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길리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격이 허공이 남았고, 그것이 그대로 라큄의 듀라한 육체에 상처를 입혔다. 점점 라큄의 육체가 너덜너덜해지고 있다. 지켜보는 시몬은 살짝 속이 쓰렸다. ‘저기 다시 만들기 힘들 텐데.’ 라큄은 몸을 막 쓰고 있지만, 저 듀라한의 몸통은 막대한 출력을 감당할 수 있는 바닐라 브랜드 특제였다. 큰 피해는 복원이 힘들었다. <제국검술 - 우화> 촤아아아아아아악! 그러는 사이 라큄이 첫 유효타를 먹였다. 어깨의 갑주에 상처가 난 길리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예리하네. 전성기였다면 그걸로 내 몸을 절단했을 텐데. 역시 그 몸은 제국 검술을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나 봐?] 전체적으로 검술 실력 자체는 라큄이 우위였으나, 길리가 능력을 이용해 너무나 잘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잔상처가 많아지며 라큄이 불리해졌다. 그렇게 격렬하게 검격을 나누고 있는 한순간,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카각! 라큄이 휘두른 마검이 허공에 남은 궤적에 순간적으로 막혔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길리가 그대로 그의 품으로 돌진했다. 서겅! 길리가 검을 휘둘렀고, 라큄의 머리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잘 가라고. 배신자는 영광을 섬길 가치도 없지.] 툭. 데루르르- 높이 떨어졌던 라큄의 두개골이 바닥을 굴렀다. 비로소 길리가 만족한 듯 낄낄대며 원래 목표였던 이왕자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덥석! 목이 없는 라큄의 몸통이 달려들어 길리를 거칠게 붙잡았다. 길리의 음성에 당혹감이 스쳤다. [무슨!] “네크로맨서와의 대립 초창기에 활약하던 기사분이신가 봐.” 시몬이 태연하게 웃으며 팔을 휘둘렀다. “듀라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걸 보니 말야!” 시몬이 아공간에서 막 꺼낸 새로운 스켈레톤의 몸통을 라큄에게 보냈고, 라큄은 즉시 그것을 지배하며 머리를 갈아 끼웠다. 처억! 스켈레톤이 된 라큄이 팔을 뻗자 바닥에 떨어진 마검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아, 안 돼!] 길리가 전신에서 칠흑을 뿜어내며 발버둥 쳤다. 그의 완력에 듀라한의 관절이 나가며 억누르던 힘이 풀리려는 찰나. 푸우우우우욱! 라큄이 마검을 길리의 등에 꽂았다. 칼끝이 길리를 뚫고 지나가 듀라한의 등에서 솟아올랐다. 제대로 갑주 속 코어를 찌른 건지, 덜덜 떨던 길리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어갔다. [비, 빌어먹을……!] 스릉! 라큄이 마검을 회수하자, 길리의 몸이 툭 하고 지면에 떨어졌다. [편히 쉬어라, 형제여.] 라큄이 제국의 방식대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명복을 빌었다. 샤아아아아아아- 마검에 당한 길리의 몸에서 흐릿한 회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잠시 후. 철컥. 철컥. 길리의 몸이 삐그덕대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 놀랍게도, 라큄은 길리처럼 강한 언데드도 마검의 힘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이때 라큄은 길리의 투구를 벗기고 그 안의 두개골을 뽑아내 바닥에 버린 뒤 자신의 두개골을 그 자리에 꽂았다. 그리고 다시 투구를 쓰고 뒤를 돌아본 순간. 후와아아아아아아아악!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백이 쏟아졌다. ‘세상에.’ 시몬이 탄성을 흘렸다. 라큄이 바로 길리의 몸을 차지한 것이다. [&^!] [&%@!] 제국의 기사들이 복수를 위해 라큄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라큄이 마검을 세워 들고는 자세를 잡았다. ‘안정적이야.’ 아직 ‘검’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었지만, 시몬은 라큄이 듀라한의 몸을 사용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움직임이 안정적이라고 느꼈다. 이내 라큄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제국 검술 – 준천> 촤아아아아아아아아! 라큄이 기사 열댓 명 사이를 지나며 검을 크게 아래로 내리긋는 시늉을 하자, 허공에 번쩍인 검격이 기사들을 그대로 베어냈다. 거기에 놀랍게도. 스스스스스! 허공에 그 검의 궤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라큄이 검을 세우자, 그 궤적이 다시 쏘아져 나가 기사들을 연달아 베어버렸다. 지켜보던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길리의 능력까지 쓸 수 있는 거야?’ 1군단의 수도 기사단이 계속해서 몰려들었으나- 촤악! 촤아아아악! 길리의 몸을 차지한 라큄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 * * 세 시간 뒤. 사가루인 성벽 밖. “하아, 하아, 시몬!” 시몬이 이왕자를 사가루인 밖으로 대피시킬 때까지 시간을 끌어준 로레인이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로레인! 여기야!” “시몬!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로레인이, 잠시 멈춰서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몰아쉬었다. 어깨나 허벅지 곳곳에 상처가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숨을 고른 그녀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왕자 저하는?” “저기.” 혹시나 또 적이 나타났을까 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이왕자가 겁먹은 표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로레인을 후드를 걷고 얼굴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였다. “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로레인 아크볼드라고 해요.” “고, 고개를 드시오!” 왕의 핏줄도 네프티스의 딸 앞에서는 극도로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인사를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고 다시 시몬을 보았다. “1군단 병력들이 쓰러진 흔적을 봤어. 어떻게 빠져나온 거니?” “그게…….” 시몬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화들짝 놀란 로레인이 급히 시몬의 앞으로 뛰쳐나오며 단검을 뽑았다. “1군단이 여기까지……!” 고오오오오오! 날렵하고 빈틈없는 기사 갑주에, 녹색 망토를 두른 1군단의 기사 언데드가 눈앞에 있었다. 시몬이 웃으며 해명했다. “걱정 마, 우리 편이니까.” “으, 응?” 처억. 척. 뒤이어 이와 비슷한 갑주 차림의 언데드 기사들이 야영 준비용 목재를 들고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로레인의 표정이 아연실색하게 변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 * * 타닥 타닥! 시몬은 숲에서 야영을 하며 사가루인에서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로레인은 이야기를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누스의 몸에서 새로운 언데드가 탄생했다고?” “응.” 라큄이 척 하고 가슴에 손을 올렸다. [라큄이라고 한다, 레이디.] “반가…… 워요?” 그녀가 난처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준 뒤 시몬을 보았다. “기사님 맞네.” “그런 모양이야.” “무엇보다 놀란 건…….”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불침번을 서는 기사들. 그 숫자는 100명에 다다르고 있었다. “1군단의 기사단을 통째로 훔쳐온 거니?” 시몬이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 점점 늘어날 예정이야.” 현재 시몬이 보유하고 있는 전 성녀 데스나이트에게도, 그녀의 무장인 깃발을 이용해 언데드를 일으키는 비슷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술이 단순히 강력한 힘을 시체에 불어넣어 언데드를 일시적으로 움직이는 정도라면, 라큄이 마검으로 벤 뒤에 일어난 기사들은 영구적으로 작동하며 라큄의 편이 되는 것 같았다. 군단형 언데드는 아니라 시몬이 직접 컨트롤하지 못하지만, 그건 오히려 늘 군단 운용에 대한 사념의 부담을 느끼고 있던 시몬에게는 큰 장점이었다. 거기에 본체인 라큄이 시몬의 군단형 언데드이기에 배신당할 우려도 없었다. 군단 안에, 새로운 군단이 들어선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잘 부탁해, 라큄.” 라큄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도 그대의 검이 되겠다. 나의 창조주.] 시몬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일의 1군단과 싸울수록, 7군단은 더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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