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54화 웨에에에엥. 파리가 와서 앉았다. 벌써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살갗 위에 앉아 집요하게 다리를 비비적거린다. 뒤척여도 잠시 날아가는 시늉만 할 뿐, 금방 다시 몸에 내려와 다리를 비빈다. 다리 하나 뻗기 힘든 좁은 방. 누렇게 물든 침대, 뻗친 털이불. 그곳에 힘겹게 웅크리듯 누워 있는 건 왜소한 남자였다. 이제 파리들이 달라붙어도 포기한 건지, 남자는 뒤척이지도 않았다. 그저 좁은 창문 틈으로, 미미하게 비치는 햇살이 창살 모양으로 그의 몸을 밝힐 뿐이었다. 그렇게 웅크린 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르르르륵- 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남자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비로소 파리들이 날아가 벽면에 붙어 동태를 살핀다. 열린 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존재였다. 그는 남자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나오라는 듯 손짓했다. 스윽- 털이불 사이에 숨기고 있던 깡마른 육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피골이 상접하고, 갈비뼈가 훤히 드러났으며, 특히 팔은 뼈 위에 마른 가죽이 들러붙은 모양새였다. 볼이 움푹 들어간 얼굴, 그 아래로는 관리되지 않은 긴 수염이 덮고 있었다. 터벅 터벅. 남자가 절뚝이며 걸어갔다. 드디어 이 좁은 방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이었으나, 남자의 걸음에는 아무런 설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계단을 모두 내려와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눈부신 햇살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가려 막던 남자는 이내 천천히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오랜만에 맞은 햇빛에 피부가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것 같다. 남자는 절뚝거리며 길가를 걸었다. 마땅한 의복은 없었다. 아래 중요 부위를 가린 건지 걸친 건지 모를 헝겊만 덜렁거렸다. 길가의 좌우에는 터번을 뒤집어쓴 무수한 사람들이 숨죽인 얼굴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남자 또한 그들에게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그때. “헤일!” 길가의 인파 속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헤일!” 인파를 뚫고 나온 군중 한 명이 달려들어 남자의 몸을 붙잡았다. 약해진 남자의 몸은 그것만으로도 크게 한번 휘청였다. 스릉! 등 뒤에 로브를 걸친 존재가 칼날을 세워 군중을 막았다. 목 끝에 날붙이가 들어오자, 군중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파르르 떨었다. 이내 날붙이가 서서히 위로 올라가 군중의 머리를 찍으려는 순간. 우우웅-!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날붙이가 머리 앞에서 멈췄다. 어느새 걸을 힘도 없어 보이던 남자가, 눈에 옅은 불을 켠 채 그 존재를 응시하고 있었다. […….] 그 존재는 날붙이를 소매에 넣은 채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비로소 안전해진 군중이 다가와 남자를 붙잡았다. “헤일! 헤일! 자네 지금 이게 무슨 꼴인가? 응?” 그가 말라붙은 남자의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 그놈들이 한 짓인가?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왜 그놈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거냔 말일세!” 군중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자네는 ‘최강’이지 않나! 원한다면 이 세상마저 다 뒤집어엎을 수 있지 않나! 이 도시 또한 자네의 영역일세!” 힘없는 눈으로 오랜 친구를 바라보던 남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모든 목적을 이뤘다네. 여한이 없지.” “리모스! 리모스는 어디 있나! 자네의 관리자 말일세! 이 모든 게 리모스와는 이야기된 겐가?” 남자는 외면하듯 눈을 돌려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살펴가게. 무크.” “헤일!” 오랜 친구가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듯 울었다. 남자는 그저 묵묵히, 계속 앞을 향해 걸을 뿐이었다. 그렇게 남자가 구불구불한 주거지의 길을 모두 걸어서 빠져나온 순간. 휘이이이이잉-! 탁 트이고, 웅장한 공간이 드러났다. 두둥! 둥! 둥! 웅장한 북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금속과 벽돌로 쌓아 올린 붉은 저택들이 드높게 솟아 있고, 각 층마다 수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쥔 채 서 있었다. 붉은 깃발이 저택마다 드리워져 있는 광경. 이 공간 전체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병사들이 도열하고 있었다. 모두가 무기를 앞세운 채 헤일을 주시하고 있었다. 타박. 남자가 하얀 대리석 위를 올라와 고개를 들었다. 그 위로는 한 여성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헤일. 나의 사랑.] 남자는 절뚝거리며 다가가 그녀의 손에 입맞춤했다. 여성이 웃으며 물었다. [당신의 영광은 무엇인가요?] “나의 영광은 당신이오.” 남자가 말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백만의 군대를 거느렸고, 가장 강인한 군단장이 될 운명이었소. 그런 내가 내 힘만으로 거머쥔 건 오로지 당신뿐이오.” [앞으로는 어떤 영광을 위해 걸어가실 건가요?] “모르겠소.” 남자가 고개를 떨구었다. “내 앞에 있는 건 허무뿐이오.” [그렇다면.] 그녀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이번에는 내가 바라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걸어주시겠어요?] “그리하겠소.” 남자는 그녀의 손을 놓고는, 다시 천천히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그녀는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모은 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걸어간 남자의 앞에 놓여 있는 건 거대한 왕좌였다. 수많은 검과 무기들을 붙여 만든 철혈의 왕좌. 남자는 숨이 차는지 그 앞에 무릎을 한쪽 꿇고 몇 차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쿠궁! 자신보다 몇 배는 거대하고 육중한 철혈의 왕좌를 어깨 위에 짊어졌다. 터벅. 터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메마른 다리가 격렬히 떨렸다. 왕좌를 이루고 있는 칼날이 그의 생살에 파고들어 피를 쏟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시선이 숨을 죽이고 그를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남자는 왕좌를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그가 넘어지고, 미끄러질 때마다, 왕좌의 칼날들은 그의 몸을 더 깊이 찢고 베었다. 하지만 누구도 돕지 않았다. 남자도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묵묵히 걸음을 옮겼고, 마침내. 휘이이이잉-! 가장 높은 곳에 섰다. 남자는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높은 단 위, 그곳에 왕좌를 텅! 소리와 함께 내려놓았다. 왕좌를 지고 걸어온 길이 피를 머금어 마치 붉은색 융단처럼 보였다. 하악! 후욱! 전신이 피범벅이 된 채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 그때. 쿵! 군홧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쿵!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망자들이, 발을 구르고 창과 방패, 무기를 바닥에 찍었다. 쿵! 쿵! 그야말로 세상이 울리는 듯한 굉음. 그들의 함성과 시선은 남자에게 무언가를 촉구하는 듯했다. 스으. 남자는 자신이 짊어지고 온 철혈의 왕자에 야윈 몸을 천천히 내려놓고 앉았다. [영광의 시련을 극복하셨습니다.] 그때 허공에 긴 황금실들이 얽히며 모여들더니 한 여성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녀는 손에 왕관을 들고 있었다. [이제, 세상을 다스리시지요.]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왕좌에서 왕관을 받아 들었다. 쿵! 쿵! 쿵! 쿵! 쿵! 발소리가 더 빨라지다가 급기야. 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 이제는 박자도 없이 규칙도 없이, 그저 진동과 소음이 터져 나왔다. 극도의 긴장감, 극도의 전율 속에서. 남자는- 스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왕관을 스스로 썼다. 그 순간 세계가 뒤틀린 듯한 일렁임이 터져 나았다. 맑은 하늘이 어둡게 바뀌고 천둥이 울리며 구름이 모여들어 주위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쿵!쿵! 모두의 발소리가 극한까지 도달한 그때. 왕관을 쓰고, 왕좌 아래로 힘없이 늘어져 있던 남자의 손이 서서히 올라왔다. 불끈! 그가 주먹을 움켜쥔 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숨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압도적인 침묵이 주위를 짓눌렀다. 터업. 핏줄이 선명히 드러난 두 팔이 왕좌의 팔걸이를 붙잡고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야위고 쇠약한 병자의 몸이었지만, 이전과는 뭔가가 달랐다. 스으. 남자가 팔을 뒤로 보냈다. 왕좌 뒤에 있던 호수가 거세게 요동치며 하늘에 닿을 듯 끓어 넘쳤고, 그 안에서 수십 층 건물처럼 거대한 푸른 검이 솟아 올랐다. 이번엔 남자가 팔을 옆으로 보냈다. 손끝이 향한 아주 멀리 떨어진 산이 우르릉! 소리와 통째로 무너져 내리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회색 검이 튀어나왔다. 남자가 두 손을 교차했고, 그 두 검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왕좌의 좌우에 텅! 텅! 하고 교차된 채로 박혔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충격과 진동이 주위로 흩뿌려졌다. [지금 이 세계에는-] 남자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영광’이 없다.] 그 음성은 웅장하고 거대해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병사조차 들을 수 있었다. [실익과 실리라는 명목 아래, 이기적인 욕망만이 팽배할 뿐.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으며, 인간들은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기 바쁘다. 가히 속물과도 같은 세태다.] 그가 손을 들어 피로 굳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소름 끼치는, 피에 젖고 혈관이 가득한 분노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통탄할 따름이니라.] 쿠웅! 거대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류에게는 더 위대한 사명이 필요하다. 통일된 하나의 영광을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바치고, 그것이 미덕이 되는 시대. 격, 품위, 사상, 모든 것을 짐승의 수준에서 끌어올려 모두가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시대를 만들 것이다.] 남자가 천천히 주먹을 펼쳤다. 철혈의 왕좌를 이루고 있던 검 하나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뽑히더니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손에 쥔 예리한 검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검은 두들겨 단조될수록 날카로워지듯, 악한 자들에게 억압당했던 흘려보낸 우리의 300년 또한 그러하다. 우리의 영광에는 결점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성에 영광을 기대했다는 점이다.] 검신에 충혈된 눈동자가 그대로 비쳤다. [이제는, 개인의 자유의지로 영광을 좇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영광이 먼저고, 개인이 그 뒤다. 결점 없는 영광, 결점 없는 국가. 그것이-] 그가 미소 지었다. [제국이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사방에서 거대한 고음의 진동과 외침이 들끓었다. 붉은 깃발들이 광기에 휩싸인 듯 미친 듯이 펄럭거렸다. [이 어미가 귀환을 감축드리옵니다.] 브리만티아가 다가와 황제의 어깨에 긴 코트를 걸쳐주었다. 황제가 고개를 돌렸다. [볼드윈의 일을 마무리하도록.] [그리하겠나이다.] 브리만티아가 실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황제는 등을 돌려 뚜벅뚜벅 걸어가 왕좌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팔을 얹은 채,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 모든 이들을 관조했다. 바로 그때. [폐하, 송구하오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한 기사가 다가와 말하려 했지만, 황제는 손을 들어 그 말을 막았다. [느껴지는구나.]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결계와 수 겹의 장벽을 모조리 뚫어버리며 한 검은 형체가 총탄처럼 황제의 왕좌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고 있었다. 두 팔과 다리에 끊어진 사슬을 매단 에이션트 언데드였다. [황제에에에에에!] 언데드의 칼끝이 왕좌에 앉은 황제의 턱끝에 닿으려는 순간. 파팟! 그 칼끝은 그대로 꺾여 아래로 밀려났다. 어느새 돌진해 온 언데드의 주위에는 아홉 기사들이 그를 덮쳐 눌러 버렸다. 팔다리에 아홉 자루의 검을 교차시켜 그를 강제로 고정시켰다. 황제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용케도 그 봉인에서 빠져나왔구나. 1군단의 관리자, 리모스.] [헤일을 어떻게 했나!] 관리자 리모스가 어마어마한 칠흑을 뿜어내며 저항했지만, 아홉 기사들의 봉쇄를 풀 수는 없었다. [헤일은 여기 있다. 짐과 함께 영광에 속해 있지.] 황제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헤일은 짐이며, 짐 또한 헤일이니라. 우리는 숱한 갈등 끝에 비로소 서로를 인정했고, 이해했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자, 바닥에 박혀 있던 두 개의 검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른 1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처럼, 너도 영광에 합류했으면 좋았을 것을.] 리모스가 으르렁댔다. [집어치워라! 이딴 건 군단이 아니다!] [군단.] 황제가 픽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이름은 내게 너무 좁구나.] 푸우우우우욱! 아아아아아아아악! 관리자 리모스의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절컥. 로브를 입은 전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뮤르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서서히 종적을 감췄다. * * * ‘생각보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어.’ 한편 시몬은 사가루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는 더 이상 볼드윈의 영토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국경 끝에 내려서 직접 유령마를 타고 사가루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통신 수정구도 먹통이었고, 외부와의 연락이 되지도 않았다. “그보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 로레인.” 시몬은 로레인과 함께였다. 유령마 뒷자리에 탄 그녀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넌 내 목숨을 구해줬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시몬이 씩 웃은 뒤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사가루인의 도심지가 보이고 있었다. 위에는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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