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53화 시몬은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로크섬으로 돌아온 뒤, 혈류학 교수 아보를 만나러 왔다. “아보 교수님!” 혈류학관 건물 밖 회랑을 돌며 정신없이 조교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아보가 고개를 들었다. “아, 시몬 학생!” “급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시몬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빠르게 요약해서 설명한 뒤, 북부에서의 핏물을 담은 포션병을 그에게 건넸다. 예상대로 아보는 바로 관심을 보였다. 손에 쥔 포션병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으음! 흥미롭구나. 확실히 보통의 피와는 달라.” 그가 액체의 흔들림과, 유리병에 묻어 나오는 잔흔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실험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5분 정도 걸리니 잠시 기다려 주렴.” “5분이요?” 실험을 하려면 준비할 게 많지 않나?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아보가 곧장 포션병 뚜껑을 열고 제 입으로 들이켰다. 시몬은 납득했다. ‘별야 교수님과였지…….’ 아보의 목울대가 꿀떡 꿀떡 움직이는가 싶더니 곧 한 병을 깔끔하게 비웠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을 생각도 없이 음산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바로 이 피를 카피해 보마.” 그가 입고 있던 옷 상의를 확 벗어 던지고 마른 몸을 드러냈다. 지나가던 혈류학과 여학생들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가까이 왔다가, 그의 앙상하기만 한 몸을 보고는 계속 지나갔다. 이내 아보가 자기 몸에 새겨진 영속 마법진을 활성화한 뒤, 눈을 감고 집중했다. 꾸르륵! 꾸륵! 곧 그의 몸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피부의 혈관이 점점 도드라지더니, 얼굴까지 혈관이 팽팽하게 솟아올랐다. 급기야. 불룩 불룩! 전신의 피부가 물이 끓는 것처럼 마구 출렁거리며 반응했다. 그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잇새로 힘겨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아보 교수님?” 뭔가 잘못되어 가는 걸 느낀 시몬이 다가오자, 아보가 손바닥을 펼쳐 그를 제지했다. “시몬, 크읍! 너는 부디……!” 퍼어어어어어억!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보의 몸이 터져 버리며 사방으로 피가 비산했다. 시몬의 얼굴과 교복 곳곳에도 피가 묻고 말았다. 얼굴에 아보의 선혈이 튄 시몬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 끼이익. 그리고 혈류학관 뒷문이 열리며 잠옷 차림에 커피 잔을 든 아보가 피곤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 “너는 부디 옷을 더럽히지 않길 바란단다.” ‘이럴 거라곤 생각했지만……!’ 시몬이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잠옷 차림의 아보는 곤죽이 된 자신의 호문클루스와 주위에 튄 피를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건 사혈(死血)이구나.” “사혈이요?” “그래. 특정 언데드의 몸에서만 발견되는 망자의 피를 말한단다. 생명 활동과는 전혀 관계없는, 위험한 무기일 뿐이지.” 아보가 팔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더니,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호스 같은 것으로 어깨 아래의 팔을 칭칭 휘감기 시작했다. 거기에 아티팩트로 보이는 둥근 장비를 연결하는 것으로, 팔에서 전달되는 피의 흐름을 차단했다. ‘뭘 하시려는 거지?’ 이어서 새로운 주사기를 꺼낸 아보가 바닥의 피를 조금 채취하더니, 그것을 망설임 없이 제 팔에 푹 찔러 넣었다. “이번에도 호문쿨루스시죠?” 조금 더 뒤로 물러선 시몬이 걱정스럽게 물었고. “본체 맞단다.” 아보가 담백하게 말했다. 시몬이 말리기도 전에 그의 팔이 무섭게 부풀었다. “후읍!” 아보가 급히 여러 장의 마법진을 펼쳐 팔의 상태를 조율해 나갔다. 여기저기에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흘러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떻게든 됐구나.” 거의 귀신 들린 팔처럼 메마르고 앙상하게 변한 오른팔을 이리저리 흔들어보며 아보가 미소 지었다. “자.” 그가 오른팔을 뻗자, 바닥에 떨어진 피가 그의 손 앞으로 흘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시몬의 뺨에 묻은 것과 교복에 묻은 것까지 남김없이 빨려 들어갔다. 고오오오오오! 이 피들이 무서운 속도로 중앙에 모여들며 공처럼 변했다. 시몬이 탄성을 흘렸다. “북부에서 현장의 영상을 찍었다고 했지? 지금 바로 보여줄 수 있겠니?” “네.” 시몬이 메모리얼 수정구를 켜서 북부에서 기록한 화이트 코볼트 부락의 전멸 현장을 보여주었다. 아보는 영상을 보면서 손끝을 휘젓거나 아주 빠른 말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오염된 오른손을 아래로 휘둘렀다. 촤아아아아-! 허공에 모인 피들이 흩어지며, 빈 바닥 위에 북부 현장과 똑같은 형태의 마법진을 재현해 냈다. ‘키젠 교수들은 정말 만능이네!’ 시몬이 탄성을 흘렸다. 단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꾸룩! 꾸룩! 재현 마법진이 완성되는 사이, 어느새 아보의 호문쿨루스 두 명이 금지된 숲에 서식하는 포레스트 코볼트 두 마리를 밧줄에 묶어 데려왔다. 코볼트들을 마법진으로 던져 넣은 뒤, 잠옷 차림의 아보가 오른손을 움직였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물러나렴.” 시몬이 군말 없이 더 멀리 떨어졌고, 아보가 피의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나 놀랍게도, 바닥에 쓰러져 있던 코볼트들의 몸에 변화가 시작됐다. -꾸르륵! -꾸룩! 코볼트들이 몸을 뒤틀며 일어나 눈을 회까닥 뒤집으며 고개를 젖히더니, 하늘을 향해 뭐라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꾸륵! 꾸르르! $^%@! -$%*^%#@! 꾸르륵! 단순한 코볼트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사람처럼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는 듯한 음성이었다. 시몬이 무슨 말인지 집중하고 있을 때, 피어가 말했다. [크흐흐! ‘ⴇⲜⴆ·’로군!] ‘뭐라고요, 피어? 그 말은…….’ 피어가 말을 이었다. [황제를 위하여. 1군단의 언데드들이 주로 외치던 그 구호다!] 평범하게 숲에 살던 코볼트가 갑자기 ‘황제를 위하여’를 외치며 일어났다. 그러다 시몬을 발견하고는 마법진을 벗어나 무섭게 달려들었으나. 퍼억! 곧장 아보의 호문쿨루스가 푸른 피를 칼날처럼 발사해 코볼트들을 단번에 베어냈다. 이 모든 광경을 본 시몬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북부에서 일어난 일 역시 1군단의 짓이었어! 모든 게 명확해졌어.’ 저 마법진의 정체는 생물을 1군단의 언데드처럼 바꾸는 힘이었다. 1군단의 그 두꺼운 갑옷을 입은 ‘철갑송장’도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게 틀림없었다. 시몬이 급히 아공간을 열고 가방을 연달아 꺼냈다. ‘어디 놔뒀더라?’ 가방을 마구 뒤지던 시몬이 그제야 기억을 떠올리고는 맹독학 키트를 꺼내 손수건을 들어 올렸다. “여기 묻은 피도 확인해 주세요!” 볼드윈 왕국의 왕궁 저택에 갔을 때, 액자의 피눈물에서 얻은 피였다. 아보가 그것을 받아 자신의 오른팔로 직접 분석해 보았고. “동일한 피가 맞구나.” 확인해 주었다.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국왕 전하를 위협하고, 북부에서 몰래 몬스터에게 실험을 하고 있던 건 모두 1군단이었어요! 이번엔 볼드윈 왕국의 사람들에게 같은 짓을 벌일 게 틀림없습니다.” 이 사실을 왕태자에게 전달해 국왕에게 보고된다면, 국왕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몰랐다. 시몬이 새 메모리얼 수정구를 꺼냈다. “아보 교수님, 방금 이 실험을 증거자료로 활용하고 싶은데, 한 번만 더 협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피로 마법진을 만들고, 몬스터들이 1군단의 언데드처럼 바뀌는 장면을 처음부터 담고 싶습니다!” “물론이지. 바로 준비하자꾸나.” 두 사람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고 있는데. “헤이, 시몬!” 저 멀리 언덕 너머로 헉헉 숨을 헐떡이며 누군가 뛰어오고 있었다. 딕 헤이워드였다. “네가 말한 볼드윈 왕국에서 발견한 피들! 헉 헉! 종류별로 전부 채취해 왔어!” * * * 시몬의 팀은 착실히 증거들을 수집해 갔다. 특히 딕이 볼드윈 왕국의 10개 도시에서 채취해 온 피들은 모두 암흑연합 측의 언데드를 몰아낸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믿고 벽이나 길바닥에 칠해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피들 모두 1군단이 실험으로 사용하던 정체불명의 ‘피’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정말로 북부의 몬스터에게나 몰래 하던 짓을 인간에게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 정보를 왕태자께 알리면 돼.’ 그리고 마침 딱 오늘이 중간 집합일이었다. 시몬과 딕은 대도시 랭거스틴의 아지트로 돌아왔고, 볼드윈 각지에서 활동하던 팀원들도 하나둘 아지트로 복귀해 자신이 알아낸 것을 이야기했다. “볼드윈 왕국에서 대규모 인구 이탈 행렬이 벌어지고 있다. 왕의 독립 결정에 반발하여 떠난 인구가 수백만이라더군.” 헥토르가 그렇게 보고했고, 뒤이어 로레인도 말했다. “볼드윈 내 여론은 반반 정도야. 볼드윈 국왕의 판단이 옳다는 의견이 반이고, 미친 짓이라는 의견이 나머지 반이네. 헥토르의 말대로 국왕의 결정에 반발한 많은 사람들이 볼드윈을 떠나고 있으니, 도시에는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만 남고 있어.” “그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암흑연합의 형평성 문제가 많았어요.” 세르네가 귀밑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을 받았다. “매년 연합에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적고, 결사 사태에서도 키젠과 암흑연합은 볼드윈 왕국을 가장 적게 지원했다. 우리가 연합에 있어서 좋을 게 없다라는 주장이네요.” “……그 주장에 대해선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로레인이 조용히 반박했다. “우선 우리 키젠은 피해가 크거나, 인구가 많아 위험도가 높은 현장 위주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그 과정에 중소국가 볼드윈이 소홀했다고 느낀 부분은 반성하지만, 우리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냐.” “그렇지! 그게 팩트인데, 문제는 사람들이 온갖 이유로 선동되고 있단 게 중요하지!” 중간에 끼어든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볼드윈 왕국이 지금 고립전선을 택하고 있고, 암흑연합의 도움과 군사적 조력을 거절하며 통신까지 끊고 있다는 게 현실이야.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흘러 정말로 시몬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피의 흑마법을 사용하는 상황까지 이른다면…….” 딕의 표정이 흐려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날지도 몰라.” 모두가 들썩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시몬도 가만히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불과 며칠 뒤에 독립식이 열릴 예정이다. 귀족들은 벌써 타국으로 향하는 망명을 고려하고 있으며, 왕가가 이들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설명을 듣던 시몬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런데 카쟌이랑 왕태자님은? 오늘 오시기로 했는데.” “왕태자님은 사가루인에 가 계시다.” 달칵. 마침 카쟌이 아지트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다소 급하게 일정이 잡혔다. 접경지의 백작이 드레스덴 왕국으로 망명을 선언하자, 볼드윈 왕실에서는 귀족들에게 독립 결정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귀족 회의를 열었다더군. 왕태자님도 그쪽으로 가셨다.” 벌떡. 시몬이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우리도 가야 해요.” “시몬?” 시몬이 얼른 재킷을 어깨에 두르며 나갈 채비를 마쳤다. “지금 바로 사가루인으로 가겠습니다. 왕태자님은 어떻게든 암흑연합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겠죠. 많은 인원이 모여 있는 그 자리라면 우리 정보가 도움이 될 거예요.” 카쟌이 눈 밑의 흉터를 긁었다. “하지만 모든 국경이 막혀 있을 텐데?” “괜찮습니다.” 시몬이 재킷을 가볍게 붙잡아 흔든 뒤 미소 지었다. “늘 하던 방식으로 뚫으면 되니까요.” * * * 같은 시각. 로크섬. “…….” 부총장 제인의 야근은 길어지고 있었다. 네프티스가 앓아눕는 바람에 총장 대리로서 그녀의 일을 도맡아 하는 사이. 볼드윈 독립 사태에, 결사의 공세 재개까지 터진 것이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그리고 이 바쁜 때에. <키젠 휴학 안내서> 볼드윈 출신의 학생들, 그중에서도 1학년들이 자국에서 일어난 일로 키젠에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휴학계를 내고 왕국으로 돌아오라며 강요하는 부모들도 있어서, 부모들에게 일일이 학사 규칙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내야 했다. “제인 부총장님!” 그런데 이번엔 키젠 본부 직원이 그녀의 집무실로 들이닥쳤다. 제인이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본부 쪽 일은 당분간 까마귀 측에 일임한다고 했을 텐데요.” “아셔야 하는 일입니다.” 본부 직원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4군단장, 유령왕녀님의 도움으로 파악하고 있던 1군단장 헤일의 기척이 사라졌습니다.” “…….” 보고를 들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라졌다구요?” “예.” 본부 직원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1군단의 영역 본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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