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50화 시몬이 첫 번째로 임무 주제를 선택한 뒤, 다른 상위권 학생들도 차례차례 강단으로 올라와 칠판에 붙어 있는 주제를 골라갔다. 그 와중에 헥토르와 메리다는 다른 주제를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 시몬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당연히 전교생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이제 모두가 그 셋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군단장 세 명이 한 팀이면, 기여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 하는 거지?” “나는 그냥 감이 안 와.”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사이, 대강당에서의 주제 선정이 모두 끝이 났다. 제인은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팀을 구성하고 논의할 시간을 주었다. 시몬은 근처 건물의 빈 강의실에 헥토르, 메리다와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자, 잠깐만 시몬!” 딕 헤이워드도 함께였다. 쭈뼛쭈뼛 강의실에 들어온 딕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내가 진짜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종류의 사람이거든? 그런 내가 생각해도 이 팀에 낄 급은 아닌 것 같은데…….” “미안, 딕. 최소 인원수인 4명은 채워야 해서.” 시몬의 그 말을 들은 딕이 상처받은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어졌다. 시몬이 그제야 웃어 보이며 얼른 손을 휘저었다. “농담, 농담이야. 사실 전투 이상으로 정보 수집이 중요한 일이거든. 키젠 최고의 정보통인 네 도움이 필요해.” “……병 주고 약 주고냐. 뭐어 그래도 으으- 흠! 정보 수집이라면 내가 키젠 최고긴 하지!” 10대 소년은 인정의 동물이라던가. 딕이 바로 콧대를 높이며 으스댔다. “말 나온 김에 묻지, 시몬 폴렌티아.” 벽에 기대선 헥토르가 담담하게 말했다. “전교생 앞에서 우릴 지목한 걸 보면, 앞으로의 계획은 있겠지?” 소파에 이불 깔고 누운 메리다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하아암- 나도 궁금해.” “너희 둘에게 같은 팀을 제안한 이유는 간단해.” 시몬도 편안히 빈 강의실 의자에 앉아 말했다. “우리가 그때 드레스덴 왕국에서 기자들과 시민들 앞에 했던 약속을 마무리 짓자는 거야.”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헥토르가 벽에서 등을 뗐다. “목표는 1군단인가.” “맞아. 주제로 ‘불안’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야. 지금 암흑연합 사람들의 가장 큰 불안은 바로 1군단과 제국의 출현이니까.” 비로소 헥토르가 미소를 보인 채 두 주먹을 쾅 하고 맞부딪혔다. “처음으로 생각이 통하는군, 시몬 폴렌티아!” 메리다가 나른한 목소리로 ‘찬성’이라고 답하며 이불 안에 쏙 들어갔다.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우, 1군단을 칠 거면 주제는 잘 골랐네. 결사의 침공은 익숙해졌는데, 솔직히 주민들 입장에선 제국의 부활이 훨씬 불안하게 느껴지긴 하잖아. 로크섬 밖에만 나가도 이상한 전단 같은 게 잔뜩 붙어 있고.” “응, 그리고.” 시몬이 손끝을 세웠다. “사실 그 불안을 직접적으로 부풀리는 자가 있어.” 시몬은 사가루인에서 봤던 바로 그 ‘브리만티아’에 대해 설명했다. 누워서 설명을 듣고 있던 메리다가 눈을 비비적거렸다. “사람들을 선동한 방법은 일종의 최면이야?” “단순 최면이라기엔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게 경직되진 않았어.”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동굴이 무너진 직후에 사람들은 바로 상황을 깨닫고 브리만티아를 원망했을 정도니까.” 헥토르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브리만티아라는 자를 잡아도 주민들의 불안이 직접적으로 사라지진 않을 텐데.” “맞아.” 시몬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확실히 말해둘게. 이번 일의 최종 목표는 불안의 근원인 ‘제국’과 1군단의 몰락이야. 브리만티아를 쫓는 건 그 전에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고.” 헥토르가 너무나 만족스러워하는 반면 딕의 표정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너무 큰 스케일에 껴버린 것 같은데.” 시몬이 빙긋 웃었다. “브리만티아의 위치 조사, 잘 부탁해 딕.” * * *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팀원이 더 충원되었다. “이야기 들었어, 시몬. 나도 돕고 싶어.” 미래의 암흑연합의 총수인 로레인 아크볼드가 팀에 합류했다. “어쩔 수 없네요. 왕재수가 여기 와서 온 건 아니지만요.” 거기에 원래 메이린의 팀에 들어갔던 세르네가 로레인이 여기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리로 넘어왔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도 자신들의 팀을 포기하고 이쪽으로 넘어오고 싶다며 밝혔지만 시몬이 적극 만류했다. “샤헤드 왕국에 생겨난 이상현상 제거도 상당히 중요해. 너희가 안 가면 북쪽의 문제에 나설 사람이 없어.” 이상현상으로 식량이 바닥나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이니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 했다. 게다가 그 이상현상 과제 자체도 던전이 엮여서 위험부담이 상당히 크기에, 리더는 에이젤이 맡았고 거인혼혈 샤텔과 마검사용자 쥴, 유령선 엘리사까지 포함된 초호화 팀이었다. 여기서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를 빼오면 그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 외에는 딕이 혼자 정보 수집을 감당하기 벅차다며 추가 인원을 요청했고, 도둑길드 소속의 카쟌이 팀에 합류하는 것으로 총 7명 정원이 맞춰졌다. 이로써 3명의 군단장과 2명의 키젠 및 상아탑 후계자라는 것으로 필요한 기여의 수준이 확 높아졌다. 이렇게 된 이상 시몬은 정말로 1군단을 몰락시킬 작정이었다. 다만 볼드윈 왕국이 길을 열어주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쪽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딕과 카쟌이 사전 정보 조사를 마친 뒤 이틀 뒤에 다시 이 자리에서 발표하기로 했고, 그렇게 이틀 뒤. “자! 브리핑 들어갑니다!” 키젠 캠퍼스 빈 강의실에서 대륙의 운명을 뒤바꿀 회의가 시작됐다. “바로 이 녀석이 시몬이 말한 ‘브리만티아’야!” 딕이 칠판에 사진을 붙였다. 검게 물든 옷, 자애로운 얼굴, 고즈넉한 몸짓까지. 수만 관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미망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시몬도 그녀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스스로 ‘황제의 어머니’를 자처하고 있대! 자기 아들이 모든 배신자들을 죽이고 다시금 제국을 건설할 거라며 떠들고 있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로레인이 말했다. “그다지 근거 있는 이야기로 들리진 않네.” “맞아, 로레인! 그런데 또 몇몇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브리만티아에게 신뢰를 얻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특별한 의식을 치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미래’를 보게 된대.” 미래. 시몬과 로레인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들은 정보로는 엄청나게 암울한 미래라던데? 그게 정말로 앞으로의 미래라고 신념처럼 믿게 되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제국과 브리만티아를 따른다. 뭐, 아직은 정보가 부족해서 논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긴 한데, 대충 이런 느낌이야.” 로레인과 시몬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엄마 외에 시간을 다루는 능력자가 있는 걸까?” “그게 아니면 암흑연합의 혈묘족이나 신성연방의 계시의 수녀처럼 미래를 미리 보는 ‘계시’와 관련된 능력일 수도 있고.” 이번엔 세르네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머, 저걸 그렇게 거창하게 받아들일 필요 있을까요? 그냥 결사의 약물 따위로 절여놓고 헛것을 보게 하는 것 같은데.”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딕이 ‘자, 자’ 하고 다시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그런 문제는 둘째 치고, 가장 중요한 건 브리만티아의 위치 정보를 알아냈느냐겠지? 그 답은……!” 모두가 딕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그때, 그가 손바닥을 쫙 펼쳤다. “알지만 너무 많다입니다!” 모두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헥토르가 으르렁댔다. “말을 빙빙 돌리는 건 네놈의 나쁜 습관이지, 딕 헤이워드.” “하하! 진짜 말 그대로의 의미야! 브리만티아가 발견된 위치는 모두 총 8군데!” 그가 칠판에 붙어 있는 왕국의 지도에, 깃펜으로 X자 표시를 쓱쓱 해두었다. “동일 시간에 그녀가 비밀집회를 벌인 장소가 이 여덟 곳이야. 그냥 빨리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정확히 같은 시간대에 존재한 거지! 카쟌의 정보와 내 정보를 합쳐서 크로스체크 했어.”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의심가는 게 있네.” 시몬이 손을 들고 부연설명했다. “내가 브리만티아를 상대했을 때도 정상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 타격하니 온몸이 실처럼 변해서 흩어졌지.” “타이밍 좋고! 정리하자면-” 딕이 칠판을 탕탕 쳤다. “브리만티아는 모종의 방법을 써서 동일한 시간,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해 집회를 진행한단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그 여러 곳을 동시에 치면 그중 한 명은 본체에 닿거나 핵심 단서를 얻을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 일단 이게 기본 계획인데 어때?”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좋아. 다음 집회 일정도 알 수 있을까?” “그건 내가 조사해 왔다.” 카쟌이 자리에 앉은 채 답했다. “내일 정오에 지하 회관에서 동시다발적인 집회가 열린다더군.” “고생했어요, 카쟌. 자, 그럼 모두 준비하자. 이번 일은 중요해.” 시몬이 앞으로 나와 모두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브리만티아를 붙잡아 정보를 캐낸 뒤에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거야. 그렇게 볼드윈에 뿌리내린 불안을 씻어내야 해. 그 뒤에 볼드윈 국왕 전하께 말해서 국경을 열도록 설득하고 지원을 받는다면-”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앞으로의 일들은 훨씬 수월해질 거야.” * * * 바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시몬 일행은 모두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볼드윈 왕국 곳곳으로 흩어져 준비했다. 그중에서 시몬이 이번에 간 곳은 볼드윈 왕국의 도시 카르델. 넓은 곡창지대 중심에 자리 잡은 도시였다. ‘왕태자님이 내게 주시려는 곳이기도 했지.’ 도시 전체가 자연에 휘감긴 듯한 아름다운 영지였다. 시몬이 주변 경관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피어가 크흐흐 웃으며 장난을 쳤다. [중부도독이 되지 못한 게 아쉽나? 소년!]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제안을 받은 직후에는 맘이 살짝 흔들리긴 했어요.’ 그 말을 들은 피어가 ‘크하하하하!’ 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남작가 아들에게 도독직 제의가 떨어졌는데 흔들릴 만하지! 인간적이라서 좋군!] 시몬이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거나 바로 딕이 말한 장소로 이동했다. 주위에 터번이나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시몬도 얼른 로브를 뒤집어썼다. ‘한번 해본 거니까 익숙하네.’ 그렇게 사람들을 따라 향한 곳은 이 도시 아래의 지하수로. 그곳에서 미망인의 옷을 입고 있는 브리만티아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의 아이들아.] 브리만티아가 인자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드디어 우리가 예견된 끔찍한 미래에서 한 발짝 벗어나 영광에 조금 더 나아간 날이지.] 곳곳에서 탄성과 환호가 들리고 있었다. 사가루인에서 봤던 그 숨 쉬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정적이 가득 찬 현장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무슨 일 있나?’ 웅- 웅- 그렇게 시끄러운 가운데 통신구에서 딕의 목소리가 들렸다. -헤이, 시몬! 큰일 났어! 얼른 뒤로 물러나 사람들과 떨어진 시몬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딕?” -오늘 칼로스 왕궁에서 암흑연합 왕국회의가 있었거든? 돌발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무슨 사태인데?” -아, 이거 너무 충격적이라 확실한 정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들리는 소문으로는……. 딕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볼드윈 국왕이…… 암흑연합에서 탈퇴하고 볼드윈의 완전 독립을 선언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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