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47화 정말로 507명 전원을 구해냈다. 숫자를 확인한 왕국군 병사들이 시몬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역시 명성대로 대단하십니다.” “별말씀을, 부상자부터 옮겨주세요.” 동굴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기절한 사람들도 하나둘 깨어났다. 왕국군들이 탈출한 사람들을 부축하고, 부상자를 들것에 싣고 있는 그때. “이게 다 무슨 일이지?” 한 무리의 왕국군을 이끌고 부티 나는 남자가 나타났다. 시몬의 입장을 막았던 사가루인의 방위 책임자, 네크로맨서 오드발이었다. “또 자네인가?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 시몬은 시몬이 툭툭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는 태연히 미소 지었다. 그사이 왕국군 병사의 보고를 들은 오드발이 한껏 표정을 굳혔다. “지하동굴에서 사람들을 구했다고? 동굴이 그냥 무너진 건 아닐 텐데.”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오드발 경.” “시치미 뗄 필요 없네. 그 동굴에 불법 집회 신고가 들어온 건 나도 알고 있었으니.” 오드발이 콧대를 매만졌다. “명예에 눈이 먼 자네는 무리하게 잠입수사를 강행했고, 그곳의 부랑배들과 충돌했겠지. 그 과정에 동굴이 무너져 수백 명이 참사당하는 참극이 벌어질 뻔했다. 내 말 틀린가?” “배경을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 불법 집회가 열리는 걸 알면서도 왜 조처하지 않으셨죠?” 흠. 시몬의 반격에 오드발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지만, 금방 목소리를 다듬고는 말했다. “우리도 방치한 건 아니었다. 위험 지반에서 집회가 열리는 걸 알고 신중하게 접근해 문제 되는 자들만 일거에 체포할 생각이었지. 무리하게 침투한 너와는 다르게 말이다.” ‘말은 잘하네.’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런 여유만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오드발이 살짝 눈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나갔다. “제7군단장! 자네는 왕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사가루인에 출입했고, 그곳에서 사람들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은 무리한 전투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가 손을 세우자 왕국군들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구속구를 가지고 왔다. “설령 사상자가 없었다 해도, 모든 죄를 피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 사가루인 수비 지휘관으로서 긴급 체포하겠…….” “자, 잘못 알고 계시오! 오드발 경!” 불쑥 튀어나온 말에 오드발이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다. 아까 브리만티아의 명령으로 마정석을 들고 왔던, 나이 지긋한 집회 참가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을 무너뜨린 건 어머니…… 아니, 1군단의 언데드였소. 군단장님은 우리를 구하려 하신 거요!” “입 다물어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끼어드는 것이냐!” “그 여자가 분명히 말했소.” 남자가 시몬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동굴이 무너지면 7군단장이 죄를 뒤집어쓸 거라고. 그녀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동굴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렸고, 군단장님은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한 잘못밖에 없소!” 그의 외침에 몇몇 사람들도 손을 들며 힘을 보태주었다. “저, 저도 군단장께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그 여자가 전투에 저를 끌어들여 방패로 삼으려는 걸 막아주기까지 했죠.” “나도 그랬어요! 그런 여자에게 속아서 집회에 나가다니!”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오드발의 표정이 점점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짝. 짝. 낮고 단조로운 박수 소리가 울렸다. “훌륭하군.” 갑자기 등장한 남자의 모습에 오드발의 표정이 더더욱 얼어붙었고, 시몬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제독!’ 제3군단장, 남부제독 라즌 맥밀런이 걸어오고 있었다. “사가루인의 불법 집회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지하에 숨은 1군단의 침입자들을 저지하고, 심지어 동굴을 무너뜨리는 간악한 흉계를 정면으로 뚫고 507명 전원을 구해냈다.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지.” 그가 걸음을 멈추고 오드발을 보았다. “이 대륙에, 시몬 폴렌티아 외의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나.” “……라즌 맥밀런!” “이 대륙에 저런 젊은이가 한 놈이라도 더 있었다면 세상이 바뀌었겠지. 벌이 아니라 상을 줘도 모자라다.” 제독이 시몬을 향해 손짓했다. “가지.” “네.” 아공간을 열고 좀비들을 회수한 시몬이 제독의 옆으로 걸어갔고, 제독은 왕국 병사들에게 죄는 죄이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모두 데려가서 조사해 보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현장에서 벗어나려는 때에. “라즌!” 격분한 표정의 오드발이 전신에 칠흑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시몬 폴렌티아는 놓고 가라! 비허가 침입자가 왕도에서 전투를 벌인 것 자체가 이미 불법이다!” “뭔가 오해가 있군.” 라즌이 오드발을 돌아보며 차분히 답했다. “이 녀석의 신분은 확실하다. 왕태자 저하의 손님이니.” 그 말에 오드발의 표정이 해괴하게 변했다. “……뭐?” “저하께서 이 녀석의 신분과 활동 허가를 보장해 주셨다. 그보다 자네야말로 비밀 집회를 알면서 방치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군.” 그가 손을 휘저었다. “잠시 뒤에 총사령관이 이 일을 심문하기 위해 자네를 부를 걸세.” 털썩 하고. 오드발이 허망한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 * 시몬은 제독이 왕태자 운운한 건 임기응변으로 둘러댄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서 오시오,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 진짜였다. 왕궁 저택으로 돌아오니, 윤기가 도는 갈색 머리, 말끔하고 잘생긴 얼굴, 치렁치렁한 제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와 시몬의 손을 붙잡고 눈을 빛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이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미래의 볼드윈을 다스릴 왕. 볼드윈의 1왕자이자 왕태자였다. “정말 뵙고 싶었소! 그 유명한 제7군단장이 몸소 나타났는데, 아바마마도 뵙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식에 얼른 그대를 이렇게 불러들인 거요!” 그가 팔을 벌리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대의 오랜 팬이오! 키젠 1학년 결투평가 데뷔전부터 그대의 활약을 지켜보며 흠모해 왔소!”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몰리 공주가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여, 영광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오 편하게! 하하!” 활짝 웃고 있는 왕태자는 20대 중반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시몬보다 5~6세 정도 많아 보이는 듯했다. “이쪽은 우리 둘째 동생이오! 인사 나누시오.” 한쪽에는 받침대를 놓고 유유자적하게 그림을 그리는 2왕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왕태자보다는 조용한 인상에, 체구가 작았다. 이내 왕태자가 콧김을 뿜고 두 팔을 척척 흔들며 자리에 앉아 시몬에게도 착석을 요구했다. 시몬도 공손히 자리에 앉았다. 제독은 멀리 창가에 앉아 끔뻑끔뻑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역시 왕족 앞이고 뭐고 인외권력은 달랐다. 이어서 왕태자의 팬심 가득한 환영 인사가 시작되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시몬의 팬인 것 같았다. 언론에서 발표된 키젠의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 3학년 1학기 시몬의 졸업논문 발표회 때 직접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다고, 물론 너무 인파가 많아서 시몬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가루인에서 큰 공을 세워주셨소.” 왕태자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나라가 뒤숭숭해서 당장 그대를 칭송하는 연회를 열지 못하는 점 사과하오. 아바마마의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라가 안정을 찾는 대로 내 보상을 내리리다.” “마, 말씀은 감사하지만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몬이 난감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가운데, 그가 갑자기 고개를 쭉 내밀며 말했다. “그리고 볼드윈 왕국 출신이라 하지 않았소!” “아, 네.” “역시 역시! 고향 사람이 최고지! 아무리 요즘 암흑연합에 국경이 없고 애국심이 없다고 해도 고향 사람만 하겠소! 오- 강철의 왕국이여-!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말라!” 갑자기 붕붕 팔을 휘두르며 국가를 부르던 그가 눈을 빛내며 입맛을 다셨다. “내 기억력이 좋아 영지가도 300개쯤 꿰차고 있소! 참! 어디 영지 출신이라고 하셨소?” “레스힐입니다.” “레! 레스힐! 오호! 너무나도 좋은 곳에서 오셨구려!” 순간 막힘없던 왕태자의 목소리가 잠시 버벅이는 것을 시몬은 바로 캐치했다. ‘당연히 모르시겠지. 원래는 없다시피 한 영지니까.’ 시몬이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호브 영지 인근입니다.” “호브!” 드디어 아는 게 나온 왕태자의 입이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려는듯 정신없이 움직였다. 호브의 영지가를 부르며 호브의 특산물을 좔좔 읊고, 어린 시절에 국왕과 같이 그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수를 봤던 기억을 마구 쏟아냈다. 다소 정신은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환대였다. “그럼!” 그가 손뼉을 짝 쳤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내 개인적으로 하나 약속드려도 되겠소?”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자, 자! 일단 들어보시오.” 스읍. 후우- 가볍게 한 차례 숨을 쉰 그가 이내 한결 진중해진 얼굴로 눈을 떴다. 시몬도 조금 놀라며 표정을 다잡았다. 경망스러워 보여도 역시 왕가의 핏줄이었다. “무게를 잡고 사과부터 하는 게 모양 빠지지만, 지금 당장은 건네줄 수 없는 보상이오. 하지만 이건 피의 약속이오.” 그가 손에 깍지를 깠다. “그대는 머지않아 키젠을 졸업할 것이오. 나도 늦어도 3년 뒤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겠지. 내가 왕이 되면……!” 방 안에 긴장감이 내려앉은 그때, 그가 두 팔을 벌렸다. “그대에게 볼드윈의 대영지 ‘카르델’을 하사할 것이오!” 푸웁! 콜록! 저 멀리 수통에서 몰래 럼주를 꺼내 마시던 제독이 창밖으로 술을 뿜으며 콜록댔다. 그가 입가를 대충 닦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자각은 있으신 겁니까.” “나는 100% 멀쩡히 제정신이오, 라즌 제독.” 카르델은 볼드윈의 2개뿐인 대영지 중 하나였다. 즉 나라의 양대 기둥 중 하나를 떼서 시몬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특히 카르델은 땅이 기름지고, 농작물이 잘 자라는 왕국 최대의 곡창지대였다. 왕태자가 척 하고 손을 뻗었다. “그곳을 그대의 본거지로 삼으시오! 그리고 카르델과 인근 94개 영지를 한데 묶어 ‘폴렌티아령’으로 삼고, 그곳의 세금 징수권과 군사권을 부여하겠소!” “잠깐, 잠깐만요!” 시몬이 안색이 창백해졌다. 동네 꼬마가 해도 허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말을 지금 왕태자가 ‘피의 약속’을 한 뒤에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몬이 말렸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카르델은 안전한 곳이지만 그 외의 주변 영지들은 풍족한 평야 곡창지대인 만큼 몬스터가 들끓고 있소. 7군단이라면, 그대가 비명의 정글을 평정한 것처럼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많은 땅을 인간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오!”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대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겠지! 사람들은 북부대공, 남부제독에 이어 그대를 이리 부를 것이오.” 확신에 담은 왕태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부도독.” 두근! 시몬의 심장이 자신도 모르게 뛰었다. “어떻소? 마침 카르델의 위치도 대륙 중부쯤 되니, 그대는 자연히 ‘중부도독’이 되는 것이오! 나와 함께 이 나라를 다스립시다!” 시몬은 너무 대단한 이야기를 들어서 멍해져 있었고, 이왕자는 진정하라는 듯 맏형의 팔을 붙잡았다. 제독은 저 멀리서 수통에 든 럼주를 모두 비우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저 새파란 나이에 도독이라. 내가 몇 살 처먹고 제독직에 올랐었지?” “질투심은 좋지 않소, 라즌 제독.” 왕태자가 쾌활하게 웃으며 제독에게 한마디 한 뒤 다시 시몬을 바라보았다. “자, 어떠시오!” 잠시 생각하던 시몬이 입을 열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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