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46화 같은 시각. 사가루인 왕궁 저택. “나도 최선을 다해 설득해 보겠소, 제독.” 3군단장 제독은 대신들과의 회의 이후, 볼드윈의 왕태자와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왕태자만 티타임이었고, 제독은 새로운 수통을 꺼내 그 안에 든 술을 홀짝이는 중이었다. “설득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버지도 아주 말이 안 통하는 분은 아니오. 어떻게든…….” “제독!” 벌컥! 그때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뛰쳐 들어왔다. 제독이 시몬에게 추천했던 바로 그 정보원이었다. “크, 큰일 났습…… 허어억!” 뒤늦게 왕태자를 발견한 정보원이 놀라 입을 쩍 벌리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무, 무례를 범했습니다! 왕태자 저하!” 왕태자는 점잖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괜찮소. 어서 일어나시오.” 왕족 특유의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반면 제독은 의자 등받이에 삐딱하게 팔을 올리며 물었다. “뭐가 큰일이란 거지?” “제독께서 소개해 주신 시몬 군단장이 직접 비밀 집회장에 잠입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답니다!” “전투라고? 또 시끄러운 짓을…….” 제독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우당탕탕! 갑자기 왕태자가 의자를 밀쳐내며 일어나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바, 방금! 방금 누구라고 했소?” “……예?” * * * 데스나이트는 리치, 본 드래곤과 함께 고위 언데드의 상징이었다. 기사의 시대 시절에는 제국의 네크로맨서 혐오가 절정에 달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지금, 황제의 귀환을 선전하는 1군단에 소속되어 싸우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했다. 처억! 이에 맞서 시몬의 마누스가 손에 든 ‘마검’을 세워 들었다. 흉악한 절삭력을 가진 데스 오러 블레이드가 이에 부딪히지만. 카앙! 마누스는 침착하게 마검의 각도를 틀어 이를 밀어냈다. 이어지는 후속 공격 역시 능숙하게 대처했다. 간결한 동작으로 오러 블레이드의 검면을 쳐서 궤적을 비껴낸 뒤, 손목을 돌려 부드럽게 검을 휘둘렀다. 간단해 보이는 검격의 교환에도 정밀한 수싸움이 오가고 있었다. <제국 검술 – 우화> <제국 검술 – 준천> 카앙! 캉! 마누스는 세기말 소드마스터답게, 1군단의 정예 데스나이트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ⴟ·ᨉᛥⴀ?] [ⴟ·ⴀ!] 데스나이트들이 처음 듣는 언어들을 쏟아내며 소통하려 했으나, 마누스는 단호히 말했다. [그대들에게 진실된 안식을.] <제국 검술 – 회천(回天)> 데스나이트들의 공격을 한 번에 쳐낸 마누스가 마검으로 매끈한 선을 그어냈다. 간신히 방어 자세를 취한 데스나이트의 몸 위로 아릿한 불꽃이 튀며 그들이 튕겨 나갔다. ‘마누스가 제대로 싸워주고 있어.’ 데스나이트들은 그에게 맡겨도 될 것 같았다. 이 틈에 시몬은 피어를 꺼내 입고, ‘어머니’라 불리던 브리만티아를 쫓아 이동했다. [크하하! 저쪽이다!] 한번 감지한 뒤라 그런지 피어가 빠르게 브리만티아의 위치를 파악하고 길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동굴의 끝에 도달했을 때. […….] 브리만티아는 동굴 벽면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검은 상복 차림의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시몬을 돌아보았다. [어서 오거라, 아이야.] 처억. 시몬이 대검을 세우며 경계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제7군단장, 그리고 관리자 피어. 말로만 들었던 우리의 숙적이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 그녀가 마법진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때 한 로브를 뒤집어쓴 집회 참가자가 다가와 그녀에게 마정석을 건넸다. “어머니, 말씀하신 물건입니다!” [고맙구나.] 그녀가 마법진의 중심에 마정석을 올려놓자, 마정식이 마치 액체처럼 녹아들며 마법진이 발동했다. [이 동굴은 이제 곧 무너질 거란다.] “……뭐?” [아이야, 네 섣부르고 무모한 행동으로 죄 없는 주민들이 희생되겠구나. 대륙의 관료들은 네 행동을 비난하겠지.] “어, 어머니?” 마정석을 가져다준 남자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어느덧 마법진을 작동시킨 브리만티아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용서하거라 내 아이들아.] 쿠르르르르르! 마법진이 전개되며 칠흑이 동굴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동굴이 들썩이며 지반이 약화되는 게 느껴졌다. 시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만둬.” [그만두길 원한다면 막아보거라.] 브리만티아가 두 팔을 벌렸다. [너를 멸시하던 자들을 온 힘을 다해 지켜보아라.] [크흐흐! 저 언데드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소년!] 피어의 말대로였다. 파멸의 대검을 앞세운 시몬이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시간 끌 것 없이 단숨에 양단한다!’ 카각! 그러나 내려친 파멸의 대검이 중간에서 멈췄다. 시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실?’ 금빛의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팽팽히 당겨져 대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에르제베트의 거미줄 같으면서도 근본적인 뭔가가 달랐다. 대검으로 밀고 나가려던 시몬이 순간적으로 피어의 본 아머에서 빠져나와 맨몸으로 저주를 만들었다. ‘코랄 리치의 포격이나, 공간 베기 같은 강공은 동굴 붕괴를 촉진시킬 거야.’ 기술의 사용이 제한된 좁은 전장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게 네크로맨서의 진가. 시몬이 몸을 빙글 돌리며 손끝을 뻗었다. <커스 매트> 손끝에서 발사된 저주들이 동굴 벽 곳곳으로 날아가 마법진의 형상을 이루었고, 시몬이 반대쪽 손으로 추가 저주를 발사했다. <뮤트> <페이드> <월트> 각각 발사된 저주들이 <커스 매트>에 튕겨 나가며, 예측할 수 없는 각도로 브리만티아를 향해 쏟아졌다. 카오스 스피어에 영감을 받아 만든, 궤적을 읽을 수 없는 저주 전개였다. 저주가 연달아 브리만티아의 몸에 닿으며 스택이 쌓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했다. [미안하다, 내 아이들아.] 그녀가 팔을 잡아당겼고. 스르르르륵-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그녀의 금빛 실에 다리가 묶인 채 사람들이 끌려오고 있었다. “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시몬이 짧게 혀를 찼다. ‘제국을 자처하면서 더러운 짓은 다 하네.’ 시몬은 즉시 스켈레톤을 꺼내 친위대 효과를 부여했다. 에메랄드빛 망토를 몸에 두른 스켈레톤들이 본 아머 형태로 흩어져 사람들의 몸에 입혀졌다. 달칵! 달칵! 친위대 본 아머가 장착된 사람들이 실에 끌려가지 않고 힘으로 버텼다. 몇몇은 청록색 검을 땅에 박으며 버티기까지 했다. “저희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어머니!” 본 아머를 입은 한 시민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브리만티아가 눈을 감았다. [조금 이르지만, 너희 모두를 제국민으로 인정하마. 언젠가 내 뜻을 이해할 날이 올 거란다.] “헛소리 집어치워.” 시몬이 벼락같이 뛰어나갔다. 동시에 전면에서 브리만티아를 잡아두고 있던 피어가 오른팔을 분리해 시몬에게 보냈다. 철컥 철컥! 순식간에 오른팔만 피어의 본 아머로 무장한 시몬이 날아온 파멸의 대검까지 잡아채 그녀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카각!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의 이마 앞에서 칼날이 멈췄다. 황금 실이 대검을 견고하게 막고 있었다. ‘어째서 벨 수 없지? 힘이 부족한 건 아닐 텐데!’ [아이야.] 푸슉! 푹! 시몬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나며 피가 튀었다. 놀란 시몬이 시선을 돌렸다. 금빛 실들이 친위대의 육체를 압박해 상처를 냈고, 친위대와 피해를 공유하는 시몬의 몸에도 상처가 생긴 것이다. [그 기술, 명확한 약점이 있구나. 풀지 않으면 네가 계속 아플 거란다.] 카가각! 시몬의 몸 곳곳에 핏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시몬도 위험했지만, 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지 뭐.” 동시에 대검을 쥔 손의 검지를 펴 그녀를 정확히 겨누었다. <블러> 지근거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네 번째 저주가 그녀의 몸에 정확히 적중했다. 동시에 기존에 걸려 있던 세 개의 저주가 일제히 활성화되었다. 각자의 효과는 미미하지만, 네 개의 저주가 한 대상에 모였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는 저주. <바힐 오리지널 – 더 페일 시즌(The Pale Seasons)> 절컹! 마치 거대한 자물쇠가 닫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칠흑 연동이 순간적으로 끊겼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의 힘이 순간적으로 풀리자, 시몬이 놓치지 않고 대검으로 실을 걷어내며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복부에 왼 손바닥을 올렸다. <홍펭 오리지널 – 창파(滄波)> 터어어어어어엉! 신체 내부에서부터 적을 무너뜨리는 파동계 마투기가 그대로 작렬했다. 하지만. 스륵- 파동을 맞은 그녀의 몸이 마치 실타래처럼 풀려 버렸다. 마치 실로 이루어진 존재처럼 브리만티아의 형태가 흐트러졌다. ‘?!’ 시몬이 당황한 사이, 풀어진 실들이 빠르게 옆으로 끌려가 다시 뭉쳐졌다. 순식간에 브리만티아는 다시 원래의 형상으로 재구성되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인상적인 공격이구나.] 다만 이마에 코랄 섬광이 태우고 간 구멍은 그대로였고, 아직 제대로 복구가 안 됐는지 그녀의 목소리도 흔들렸다. 상처를 재생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은 없단다.] 그녀가 팔을 펼치자 금빛 실들이 그녀의 앞을 벽처럼 둘러쳤다. “그래, 다음은 없지.” 시몬은 그녀를 공격하지 않고, 돌연 대검을 바닥에 꽂더니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채 짓는 순간. <제국 검술 - 창천(漲天)>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동굴 한가운데를 가르는 깨끗한 검선. 파멸의 대검으로도 베이지 않던 그녀의 금빛 실들이 끊어지고, 그 뒤에 있는 그녀의 몸통까지 마치 잘 드는 가위로 자른 것처럼 양단되었다. 어느덧 데스나이트를 모두 물리친 마누스가 전장에 나타나 있었다. [나는, 슬픔을 이해한다.] 브리만티아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와 함께해야 할 자가 그쪽에 있었구나. 마누스 장군.] 그 말과 함께. 스르르르르르! 그녀의 몸이 완전히 실처럼 풀어져 추욱 늘어졌다. 그제야 시몬도 몸 곳곳에 나던 핏물이 멈추었고, 사람들을 조이던 금빛 실의 압박도 사라지는 걸 느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사, 살았나?” 쿠쿵!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동굴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천장부터 통째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몬이 급히 파멸의 대검을 휘둘러 큰 잔해 하나를 쳐내며 외쳤다. “다들 탈출할 준비 해!” [어떻게 할 셈이냐 소년! 동굴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시몬이 손가락을 튕겼다. “마침 방법이 있죠.” 우우우우웅! 시몬의 등 뒤로 에브하임 초대형 아공간이 벌어지고, 언데드들을 향해 시몬이 절대명령을 내렸다. [인간을 구해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막혀 있던 물이 댐을 뚫고 터지듯, 무수한 언데드의 파도가 아공간에서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국경에서 데려온 수천 마리의 데스랜드 좀비들이었다. 콰콰콰콰콰콰! [계속 전진해!] 언데드의 파도가 빠르게 동굴 전체를 채우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동굴을 피해 도망치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언데드 떼에 비명을 질렀다. “조, 좀비다!” [괜찮습니다! 군단에 소속된 언데드예요!] 파도 꼭대기에 올라탄 시몬이 그렇게 외치며 안심시켰다.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가 주위를 휩쓸며 사람들을 계속해서 집어삼켰다. 계속해서 천장이 무너지고 거대한 암벽이 떨어졌지만, 그때마다 언데드들이 대신 몸으로 피해를 흡수해 주었다. 사람들은 언데드의 파도 속에서 다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계속 밀고 나가!] 이번에 새롭게 네프티스로부터 배운 절대명령의 물리적 운용. 파도처럼 흐르는 언데드들이 사람들을 계속 해일 내부에서 밀어내며 무너지는 동굴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시켰다. 언데드들은 낙석에 제 몸이 부서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지키는 희생정신까지 보였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 도시의 지하 동굴이 무너지자 이제 사가루인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동굴 밖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웅성거렸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지진입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이때 몇몇 왕국 네크로맨서들은 빠르게 상황을 진단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지진이 아니오! 진원지로 갑시다!” 이내 네크로맨서와 왕국군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지하 동굴로 향하는 계단 입구로 모여들었고, 바로 이때. 콰콰콰콰콰콰! 끊임없이 밀려 나오는 언데드의 파도가 그 입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마치 검은 홍수가 터진 듯한 광경에 사람들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언데드다!” 몇몇 이들이 공격할 태세를 갖췄으나. “잠깐! 잠깐만요!” 시커먼 언데드의 파도 사이에서 사람들의 팔이 삐쭉 튀어나왔다. 그러다 잠시 후 언데드들이 빠르게 좌우로 흩어지자, 그 사이에 지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툭툭 떨어져 나왔다. “주, 죽는 줄 알았어.” “으어어.” 언데드들이 계속해서 꿀렁거리며 사람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왕국군과 지켜보는 이들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저벅 저벅. 이내 그 사이에서, 무형의 망토를 두른 푸른 머리의 소년이 언데드들 사이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시,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 “1군단의 언데드를 처치했습니다. 동시에 무너지는 지하로부터 위기에 빠진 시민 507명.” 시몬이 옷을 가볍게 털고는 말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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