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45화 제독과의 대화를 마친 시몬은, 어떻게든 이번 일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1군단에 군단전을 건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볼드윈 왕국을 거쳐야 육로로 주요 전력들을 1군단의 영역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볼드윈 왕국에서 뭔가를 숨기고 있어.’ 이 나라에 수상쩍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몬은 제독에게 도움을 구했다. -제독은 사가루인에 자주 와보셨죠? 이 도시에서 가장 믿을 만한 정보원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독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야 어렵지 않지. * * * 그렇게 시몬은 제독의 소개로, 오랫동안 사가루인에 뿌리를 내려온 정보길드의 일원과 접촉하게 되었다. 시몬은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알 방법을 원한다고 말했고, 정보원은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했다. -근래 사가루인에 비밀 집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습니다. 마침 두 시간 뒤에 그중 하나가 열린다고 하니, 직접 가서 살펴보시겠습니까? 생각보다 빨리 찬스가 찾아왔다. 동의 의사를 밝힌 시몬은 평범한 마을 청년으로 분장한 뒤, 단색 로브를 걸쳤다. 손에는 피처럼 빨간 촛대를 들었는데 이 빨간 촛대가 비밀 집회의 상징이라는 것 같았다. -이제 사람들이 출발할 겁니다! 서두르시죠! 워낙 현장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시몬은 상황에 대해 제대로 다 듣지도 못하고 일단 집회 장소로 향했다. 밖으로 나와 걸으니 저 멀리 시몬과 똑같은 로브 차림의 여자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인파에 섞여 그녀를 따라 걸었다. ‘음!’ 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으려니 어느새 골목길에 인파가 점점 많아졌다. 모두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소매 아래로는 빨간 촛불을 감추고 있었다. 피어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크흐흐! 이거 옛날 생각나는군!] ‘옛날 생각이요?’ 피어가 낄낄대며 답했다. [복장도 그렇고, 촛대를 숨기고 지하에 들어가는 것까지 똑같다! 기사의 시대에 네크로맨서들이 이렇게 지하에 숨어들어 계략을 꾸미곤 했지!] “!” [시대가 돌고 도는군! 크흐흐!] 피어로부터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듣는 사이 좁은 골목길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무리의 흐름은 곧 계단 아래로 이어졌다. 정말로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래로, 또 아래로. 어느샌가 사람들이 만든 목재 계단이 사라지고, 도시 지하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굴이 드러났다. 이제 사람들은 빨간 촛대에 불을 붙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프라슈마 마시아라.” “프라슈마 마시아라.” 낮고 차분한 음성이 입을 타고 번져 나갔다. 시몬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입을 열심히 뻐끔거렸고, 주위가 어두워서 다른 사람들의 로브 자락을 밟지 않도록 부단히 애를 써야 했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니, 멀리서 한 사람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지하 통로 너머, 광장을 연상케 하는 넓은 공간이 드러났고 그 중앙에 관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사람이 있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온화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수의 칼날이 내려올 것이다. 이를 피할 길은 오직 내 아들을 섬기는 것뿐이다.] “어머니.” “어머니.”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시몬은 인파를 헤치며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 애썼다. [처음 보는 아이들도 많이 왔구나. 그래, 그래.]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손을 맞잡았다. 아직 거리가 멀어 제대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복장만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미망인. 남편을 잃은 과부처럼 어두운 상복을 입고, 머리에는 어두운 베일을 드리운 채 검게 칠한 입술을 움직여 군중에게 말을 전하고 있었다. ‘신성이 감지되진 않아. 최소한 신성연방의 광신도는 아니네.’ 시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아이들아, 빈궁한 아이들아.]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엇이 너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느냐.] 그녀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일제히 말을 쏟아냈다. 먹고살기가 힘들다. 전쟁이 일어날까 봐 두렵다. 몸이 아파서 힘들다. 미래가 걱정이다. 그녀는 모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걱정은 한 가지에서 비롯되었노라.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논리가 무엇이냐?] 그녀가 안타까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바로 ‘이해득실’이다. 재물을 얻기 위해 무덤마저 파헤치는 자들의 사상이 이 세상에 뿌리내렸구나. 이제 사람들은 돈 한 푼에 이웃을 죽이고, 말 한마디에 타인을 질투하며, 급기야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있다.] “프라슈마 마시아라.” “프라슈마 마시아라.” 사람들의 경건한 음성이 뒤따랐다. [무엇이 너희들을 이렇게 이기적으로 만들었느냐. 누가 우리를 뿔뿔이 흩어지게 했느냐. 모두가 불행해진 이 시대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건 ‘영광’이다.] 시몬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 내 분신을 들어서 그 여자를 보여다오!] ‘네? 아, 알겠어요.’ 시몬이 가슴에 달아놓은 피어의 배지를 뽑고 있는 사이,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뜻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그것을 본받고 존경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때 진정으로 영광의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프라슈마 마시아라.” 그사이 시몬이 두 팔을 들어 피어의 배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관중들 머리 너머로 그녀를 본 피어가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확실하군!] ‘뭔가 알아냈어요 피어?’ [최근에 1군단이 드레스덴 왕궁을 공격했을 때, 레큘라와 뮤르가 궁전 지하에서 가져온 그 ‘관’을 기억하나?] ‘네, 레큘라가 관을 아티팩트에 넣어서 뮤르에게 건넸잖아요.’ 피어가 큰 소리로 웃었다. [바로 그 관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동일하다! 놈들이 관에서 꺼낸 시체가 지금 저 앞에 서 있는 여자다!] “!” 시몬이 그건 불가능하다며 반박하려는 그때. [오늘도 한 아이를 이 자리에 불러오마.] 그녀가 손을 뻗었다. [거기 있는 청년, 앞으로 나오거라.] 순식간에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서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시몬과 몇 명만 남게 되었다. 그중에서 청년이라고 할 법한 젊은 사람은 시몬뿐이었다. [그래, 아이야. 이리로 올라오렴.] 정체를 들킨 건가? 시몬은 애써 긴장한 기색을 감추고는 촛불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진짜 피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가까이 걸어가니 조금 더 명확해졌다. 그녀에게서 ‘망자’의 냄새가 난다. 척. 마침내 시몬과 미망인이 마주 보고 섰다. 절로 목구멍에 침이 넘어갔다. ‘……바로 이 사람이, 1군단장이 대륙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에이션트 언데드 레큘라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손에 넣으려고 했던 존재.’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계속 정보를 캐내야 하나? 시몬이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데, 베일 아래로 드리워진 검은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너는 암흑연합의 네크로맨서로구나 아이야.] 그 말에 갑자기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들썩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신자다! 물러가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우우우우우우! 고함과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멈추거라. 네크로맨서라고 모두가 내 아들의 적인 것은 아니란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결과일 수도 있지.] 그녀가 고개를 돌려 시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이야, 이름은?] 순간 여러 가명을 떠올리던 시몬은, 바다에서 사용했던 가짜 신분을 떠올리고는 답했다. “유리입니다.” [그렇구나 유리. 어떤 연유로 여기에 당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시몬이 정중히 말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좇아 왔습니다. 저는 네크로맨서들의 혀끝에 놀아나 혼란과 기만 속에 빠져 있습니다. 제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십시오.” [훌륭하구나. 그런 마음이라면 충분히 내 아들의 백성이 될 수 있단다.] 그녀가 미소 지으며 팔을 펼쳤다. [자, 이리로 오거라.] 그녀를 따라 걸어가니, 옆에 커다란 장신 거울 하나가 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그 앞에 섰고, 그녀가 옆에 섰다. 주변을 둘러싼 관중들도 가까이 모였다. [이것은 비밀을 밝히는 거울이란다.] 그녀가 말했다. [방금 기만에 빠져 있다고 했지? 이 거울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단다.] ‘……그렇게 나오는 건가.’ 특수한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역으로 이쪽의 정보를 캐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사근거리며 울려 퍼졌다. [네 진짜 이름은 무엇이냐?] “…….” 이에 시몬이 가볍게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게슴츠레 떠진 눈으로 거울을 보고 말했다.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그 말에 관중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깐만! 시, 시몬 폴렌티아라면 설마…….” “에, 에이. 이름만 같은 사람이겠지.” 그녀가 입꼬리를 쭉 올렸다. [비로소 솔직해졌구나, 아이야. 말해보거라.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지?] “당신을 조사하기 위함입니다.” 시몬이 태연히 답했다. “불과 한 달 전 드레스덴 왕궁이 불타는 그날, 저는 분명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1군단의 언데드들은 그곳에서 관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주위가 갑자기 싸한 정적이 흘렀다. 분위기가 묘해지고 있다. “그 관 안에는 당신이 시체로서 잠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움직이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동이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란다.] “그럼 말씀해 주시죠.” 시몬이 그녀를 보았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에 그녀는 ‘내 아들의 어머니’라고 답했다. 아니, 그렇게 답했다고 생각했다. [브리만티아 벨 에슈트라.] 입이 움직여 절로 그런 말이 나왔고,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시몬이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거울을 잡고, 다른 한 손은 그녀를 향해 펼쳐 보이고 있었다. “저주저항이 그렇게 높지는 않으십니다, 어머니.” <바힐 리메이크 - 녹시에타스> [네놈……!] 그녀가 격분하며 시몬을 공격하려 했으나. 촤아아아아아아악! 뒤에서 날아온 보랏빛 섬광이 그녀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그녀의 뒤통수부터 이마까지 구멍이 뚫리며 사람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도, 도망쳐!” “군단장이 왔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하며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시몬은 주먹을 꾹 쥐었다. ‘직접 오길 잘했네.’ 그녀의 이름을 알았다. 그녀가 왕궁의 지하 묘지에 매장될 만큼 유명한 인물이고, 모종의 방법으로 언데드가 됐다면, 역사서를 뒤지면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몬이 주먹에 칠흑을 모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그때. [아아, 슬프구나.] 어느샌가 이마에 뚫린 구멍이 한층 좁아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코랄 광선에 불탄 흔적과 구멍은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려 했을 뿐이거늘.] 후우우우웅! 그녀의 몸에서 정체불명의 칠흑이 뿜어져 나왔다. 시몬은 공격을 중단하고 그것을 피하려 했으나, 뒤에 도망치는 주민들이 있었다. “큭!” 터엉! 어쩔 수 없이 전신에 칠흑을 일으키며 그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 그가 뒤로 밀려나고, 그녀가 손짓했다. [나의 검들아. 저자를 잡거라.] 저벅! 저벅! 동굴 끝에서 두 명의 존재가 걸어 나왔다. 전신 갑주 차림, 그것도 상당히 클래식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그들이 검을 들었다. 시몬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데스나이트?’ 스릉! 스릉! 그들의 검이 일렁이며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데스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강적이 나타났으나, 광범위 흑마법 공격을 하기에는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잠시 고민하던 시몬이 이내 아공간을 열고 준비한 마법진을 펼쳤다. “네가 나설 시간이야.” 후우우우웅! 이내 한 언데드가 아공간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바닥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등장한 갑주 차림의 언데드가 흉흉한 눈을 빛냈고, 동시에 데스나이트 두 기가 달려들었다. 스스스스스! 그들이 다가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려는 순간, 갑주 차림의 언데드도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후와아아아아아악! 검과 데스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혔다. 그런데 검이 데스 오러의 절삭력을 무시하며 동시에 밀어냈다. 쿠우우웅! 데스나이트들이 힘에 밀려 뒤로 밀려났다. 곳곳에서 놀란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이내 듀라한의 몸통에 놓여 있는 해골 머리가 검푸른 안광을 일으켰다. [슬픔을 이해한다.] 시몬이 가진 대 1군단전 비장의 무기. 마검을 든 마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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