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42화 시몬과 키젠 학생들은 무사히 로크섬으로 돌아왔다. 천년향에서의 10일이 대륙의 하루였기에, 대륙에서는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로크섬에 머물던 2학년들이 ‘선배님들 벌써 돌아오셨어요?’ 하고 놀라기까지 했다. 그렇게 학교에 복귀했지만 아직 ‘단체 합숙’이 끝난 건 아니었다. 중간에 커리큘럼을 중단하고 구원자 진현과의 전투를 벌였으니 합숙 과정이 남아 있었고, 이 잔여 과정은 로크섬에서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키젠 캠퍼스와 조금 떨어진 벌판에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잔여 합숙이 시작됐다. 다행스럽게도, 제인은 천년향에서의 공을 인정해서 가장 난이도가 어려웠을 마지막 전공과목 과제를 전원 패스시켜 주기로 했다. 대신 그 외의 다른 4개 과목 커리큘럼은 얄짤없이 수료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엔 일주일이라는 시간제한이 추가됐다. 그 안에 모든 커리큘럼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퇴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진도를 빼둔 시몬은 무사히 이론 기반인 칠흑역학 과제를 마치고, 제인의 마지막 시험까지 통과해 단 이틀 만에 합격을 따낼 수 있었다. 남은 5일 동안은 완전한 자유시간. 합격자들은 합숙 지역을 벗어나 기숙사로 돌아가는 게 허용되었기에, 시몬은 비로소 푹 쉬면서 동기들을 응원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힘내! 에슈!” “네에! 로레인 님도요!” 저 멀리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는 로레인과 에슈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로레인은 이제 막 복학했으니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 합숙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더 빨리 달려!” 키젠으로 돌아온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마음가짐부터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마계에서 희생할 각오를 했다가 일상으로 되돌아온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 같았다. -하루하루 모든 게 새로워. 고마워 시몬.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게 되었다. 마인드가 정립되고 실력까지 따라주니 가히 모든 분야에서 일취월장했다. 이틀 만에 두 과목을 패스, 남은 두 과목도 순조로웠다. 덩달아 에슈도 이에 자극받았는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과제에 조금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시몬이 그렇게 언덕에 앉아 과제를 수행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그때. “학생회장님.” 새까만 슈트를 차려입은 키젠 본부 직원이 나타나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네프티스 님과의 면담 신청이 수리되었습니다. 네프티스 님을 만나 뵈러 가시죠.” “아.” 천년향 사태가 무사히 끝이 난 만큼, 마계를 막고 있던 네프티스도 무사히 임무 지역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시몬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본부 직원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장소는 미정입니다. 기숙사에 귀가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따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 * * 시몬은 본부 직원의 말대로 일단 기숙사에 돌아가기로 했다. 천년향에서 콤펠로 상태에 너무 자주 들어간 반동인지 머리가 쿡쿡 쑤셨기에, 어차피 한동안은 휴식을 많이 취해둬야 했다. 그렇게 시몬이 소환학과 기숙사에 복귀하고, 자신의 방인 트리하우스에 올라와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안뇽…….”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프티스 님!”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턱밑까지 덮고 있는 네프티스는 색색 힘겨운 숨소리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물수건을 적셔서 이마에 올려둔 모습이었다. “괘, 괜찮으세요?” “응응, 와줘서 고마워.” 와줘서 고맙다니. 시몬은 자신의 방 침대에 드러누운 그녀를 보며 당혹스러운 미소를 짓다가, 침대 앞 의자에 앉았다. 이렇게 있으니 정말로 병문안 온 기분이었다. “헤헤, 못난 꼴을 보였네!” 그녀는 온도계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시몬은 그것을 그녀의 입에서 빼서 온도를 확인하려 했지만, 온도가 아닌 복잡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결국 다시 그것을 그녀의 입에 물리고, 어느새 따뜻해진 수건을 찬물에 적신 뒤 그녀의 이마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으헤엥-” 그녀가 녹아내리는 소리를 냈다. 시몬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 나이에 너무 무리했더니이-” 그녀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다섯 달 정도는 안 자도 멀쩡했는데에! 이게 뭐야! 서러워서 살 수가 읍써!”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 할지 모르겠네.’ 시몬이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마계의 접근을 시간의 이능으로 막아내느라 상당히 고생한 모양. 그때 그녀가 고사리같이 작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내 딸을 구해줘서.” 시몬이 두 손으로 그 작은 손을 맞잡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네프티스 님.” 그녀가 콜록콜록 하고 마른기침을 하자, 시몬은 따뜻한 물을 준비해서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목이 말랐던 시몬도 가볍게 물을 마시고 있는데. “보상으로 내 딸을 줄게.” 푸후웁! 시몬이 물을 벽에 대고 뿜어내고는 콜록콜록 소리를 내며 몸을 수그렸다. 네프티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당사자의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어른들의 독단적인 결정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네프티스가 볼을 부풀렸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똑같다니까아. 우리 로레인도 얼굴이 빨개져서 비슷한 소리를 하던데.” “……당연히 그렇겠죠.” “치이, 좋은 게 좋은 건데.” 네프티스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뒤, 특유의 헤프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참, 천년향에서는 뭘 느꼈어?” 시몬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답했다. “죽음이 없는 세계, 즉 불사와 불로장생이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배웠습니다.” 시몬이 두 손바닥을 들어 올려 저울처럼 왔다 갔다 움직였다. “생과 사, 양쪽이 균형을 이룬 게 긍정적인 순환을 만드는 것 같아요. 뭐든 과하면 좋은 게 없네요.” “응응, 과해서 좋은 건 없지.” 그녀가 손을 들어 천장을 가렸다. 그러나 주먹을 꾹 쥐자 빛이 한 차례 일렁였다. “시간도 마찬가지구.” “네프티스 님…….” 워낙 활발하고 장난기가 많은 네프티스라, 몸 상태가 정말 안 좋은지 아니면 엄살을 부리는 건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진짜 보상을 주러 가볼까?” 폴짝! 그녀가 갑자기 이불을 걷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말했다. “모, 몸은 괜찮으세요?” “완전 멀쩡!” 그녀가 건강을 과시하려는 듯 두 팔을 세워 들어 힘을 주며 알통을 보였다. 물론 알통 비슷한 것도 솟아오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자!” “네?” * * * 그렇게 네프티스를 따라 간 곳은 키젠 본부 소유의 한 연구실이었다. “군단의 수가 많이 늘었지?” 네프티스가 연구실 내부를 촐랑촐랑 앞서 걸어가며 말을 걸었다. “이제 내가 옛날에 준 초대형 아공간으로는 많이 비좁을 거야.” “아, 그렇긴 하죠…….” “자아!”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한쪽 연구실 격벽이 처적 열리며 그 너머로 거대한 공간이 열렸다. “시몬을 위한 새로운 아공간이야!”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분명히 이곳은 실내인데, 연구실의 한쪽 벽면이 뻥 뚫려 있고 바깥의 광경을 보이고 있었다. “이건……!” 광활한 대지였다. 하늘에는 검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지면에는 무수한 뼈들이 가득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산 같은 게 우뚝 솟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또한 해골이었다. 해골 산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에브하임.” 네프티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공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선,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세계야.”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계요?” “응, 조금 설명이 어려웠나? 간단히 말하면 던전을 아공간처럼 쓰는 거야. 네 부하인 헤르세바의 힘과 비슷한 느낌이지!” 그녀가 두 팔을 뻗었다. “공간이 넓은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이 던전에서 언데드를 방출하는 속도도 기존 아공간의 5배 이상!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칠흑 재생 기능이야!” “재생 기능도 있어요?” “응응.” 네프티스가 검지를 휙휙 흔들었다. “이 안에 있는 언데드들의 칠흑 재생 속도는 일반적인 지역의 3배야. 단순히 여기 보관하는 것만으로도 빠른 칠흑 보급이 가능하지.” “대, 대단하네요.” 시몬이 감탄하며 해골이 가득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네프티스 님은 어떻게 이 에브하임에 대해 잘하시는 거예요?” “그야.” 네프티스가 생글생글 웃었다. “원래 내 거니까.” “네?”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헤헤 웃었다. “이젠 네게 물려주려고.” “하지만 이걸 제게 물려주시면 네프티스 님은…….” “에이이, 걱정 마, 걱정 마! 나는 군단장이 아니라 어차피 대규모 언데드 운용을 자주 하진 않거든! 들고 있어도 안 쓰니까 주는 거야.” 나이가 들다 보니 소환수 다루는 것도 힘들구.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뒷말을 붙인 뒤, 제 어깨를 한 차례 콩콩 두들겼다. 그러다 생긋 웃으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만약 대륙에 큰 위기가 온다면, 세상을 구하는 건 틀림없이 너일 거야.” 시몬이 무안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고평가세요. 네프티스 님이 있는데 제가 어떻게…….” “나는 그저 시간을 왔다 갔다 돌리며 애쓰는 사람일 뿐이구.”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훨씬 내 컨디션이 좋았던 예전에도, 결국 세계를 직접적으로 구한 건 네 부모님인 리처드와 안나였다구?” 그렇게 말한 그녀가 시몬의 손에 제 손을 올려두었다. “내가 모든 일을 대처하진 못해. 그런데 신기하게두, 늘 위기가 찾아오면 그걸 이겨내는 젊은이들이 툭툭 튀어나오더라구.” “……네프티스 님.” “자! 그럼 한번 들어가 볼래?”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사실 이번 선물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거든.” “?” 시몬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네프티스의 뜻이니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아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던전 형태라서 그런지, 아공간처럼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숨을 쉬지 못해 죽는 일은 없었다. 시몬은 해골을 헤치며 천천히 걸어갔다. ‘굳이 여길 들어가 보라고 하셨으니까. 가볼 곳은…….’ 산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해골이 눈앞에 보였다. 시몬은 빠르게 걸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넓다.’ 똑. 똑. 내부는 동굴과도 같은 곳이었다. 해골이 풍화가 되다 못해 자연환경과 엮이며 돌처럼 변한 곳도 있었다. 시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고 있는 그때. “!” 그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그것은 ‘고치’였다. 한쪽은 분홍색. 다른 한쪽은 푸른색의 고치가 흔들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고치 모두에 칠흑이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시몬의 눈이 커졌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칠흑이었다.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하! 그때 머릿속에서 피어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더니! 죽음의 마녀! 제정신이 아니군!] ‘?’ 시몬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치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액체가 있고, 투명해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안에- 꿀렁. 머리카락에 가려진 작은 여자아이의 몸이 보였다. 시몬이 기겁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거 설마!” 그때 두 개의 고치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이야 시몬 학생!] [에이,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시몬의 귀가 번쩍 뜨였다. “린 교수님! 룬 교수님!” 군단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네프티스가 보유한 유일한 ‘에이션트 언데드’. 한때는 키젠 학생들에게 장송학 수업을 가르치기도 했던 린, 그리고 룬이 이 안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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