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38화 천년향 궁궐 밖. “계속 가야 해요!” 메이린과 딕, 그리고 카미바레즈는 키젠 학생들과 함께 천년향 궁궐 앞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메이린이 빙결 마법으로 불사의 병사들을 얼리고, 딕이 새로 제조한 끈적이 포션으로 병사들을 묶어두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지면이 격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딕이 휘청거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카미바레즈가 걸음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시몬이 싸우고 있어요!” 쿠웅―! 쿠웅―! 쿠웅―! 지하에서의 울림. 얼마나 격렬한 전투인지 그 진동이 지상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딕이 훗 하고 웃으며 콧등을 쓸었다. “역시 내 베프야! 구원자랑 제대로 붙었나 본데!” “걱정돼요. 우리도 빨리 가요!” 그때 주변을 살피던 메이린이 손을 뻗어 하늘을 가리켰다. “잠깐만, 얘들아. 저기!” 터엉! 어느새 하늘에서 날아와 지붕 위에 착지한 호란 장군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적의를 드러내는 방향은 키젠 학생들 쪽이었다. “호란 장군이……!” 거기에 본래의 모습과는 뭔가 달랐다. 인간이 아닌 거의 야수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런색의 털 대신 청색의 털이었고, 네 발로 땅을 딛고 있었다. 메이린이 굳은 얼굴로 분석했다. “아무래도 진현과 싸우다가 타락에 당했나 봐. 네크로맨서들이라면 모를까, 불사를 가진 천년향 사람들은 타락에 취약하니까.” “…….” 특히 호란 장군과 친밀했던 딕이 입술을 덜덜 떨었지만, 카미바레즈가 두 주먹을 꼭 쥐며 외쳤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죠! 타락한 호란 장군이 시몬에게 가지 못하도록 막는 거예요!”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딕과 메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타락한 호란 장군이 입을 벌리며 맹렬한 포효를 뿜어냈다. * * * 쩌엉! 쩌엉! 쩌어어어어어어엉! 굉음이 터져 나온다. 지상의 천년향 건축물과 산천초목이 전부 떨릴 정도의 힘의 충돌이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타닷! 시몬은 눈을 부릅뜬 채 잔상을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다. 등 뒤로 휘날리는 무형의 망토가 한 줄기 섬전처럼 따라왔다. 그 뒤로는 진현의 등 뒤에 나 있는 열 개의 손이 시몬을 쫓고 있었다. 손들이 허공을 두드리자, 허공이 퍼즐 모양으로 갈라져 시몬에게 발사됐다. 시몬은 압축공기들을 테크니컬한 발놀림으로 피해내며 지하 벽면을 두 발로 딛고 재차 날아올랐다. ‘좋아.’ 시몬의 눈빛이 반짝였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내 상태가 최상이라는 게 느껴져.’ 피어와 헤어졌다가 재회한 덕분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어와의 사념 연결 상태는 최고조였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굳게 쥐고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진현과의 거리를 체크했다. ‘공간째로-’ 시몬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시에, 진현의 팔들도 손날을 세워 내리그었다. 시몬이 지지 않고 끝까지 팔을 휘둘렀다. ‘벤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엉! 시몬의 공간 베기와, 진현의 절공이 충돌하며 세상이 뒤흔들린다. 공간이 꼬이는 듯한 굉음과 함께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났다. “크윽!” 충격파에 휘말려 날아간 시몬이 낙법을 하듯 바닥을 한 바퀴 구르다가 바로 일어났다. <절공(絶空)> 다시 한번 검은 선이 확 그어지며 시몬의 무릎이 공간째로 떨어져 나갔다. 그가 휘청하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고 진현의 팔들이 손바닥을 쫙 벌린 채 다가왔다. 위기의 순간. 후웅!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흑발의 소녀가 시몬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플레고르> 터어어어어어어어어엉! 그녀가 주먹을 내지른 방향으로 마계의 힘이 담긴 붉은 압력이 퍼져 나갔다. 정면으로 충격파를 받은 진현의 팔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형태도 제대로 남지 않고 조각났다. “찬스네요!” 기회를 엿보던 세르네가 손을 교차했다. 그녀가 날린 깃털들이 진현의 손가락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빠져나가 진현의 정면에서 뭉쳐 마법진을 형성했다. 준비한 것은 결정적인 파괴력을 가진 용암 마법. 그러나 한발 빠르게. 샤아아아-! 진현의 손 하나가 급히 허공을 휘저었고, 마치 촛불이 꺼지듯 마법진이 퍼즐 모양으로 해체되어 산산조각 났다. 지켜보던 세르네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손을 내렸다. “둘 다 고마워.” 두 사람이 시간을 벌어준 사이, 잘려 나간 시몬의 무릎에도 노란색 실이 일렁이며 수복이 완료되었다. 멀쩡히 몸을 일으킨 그가 대검을 다시 단단히 고쳐 쥐었다. 물론 진현의 팔들도 상처와 찢어진 부분이 빠르게 수복되어 가고 있었다. 다만 저 팔들이 완전히 수복되지 않은 지금. 터엉! 먼저 수복된 시몬이 한 박자 빠르게 하늘로 솟구쳤다. “시몬! 내 힘을 써!” “날개를 달아드릴게요!” <인퍼널 인챈트> <은총의 날개> 시몬의 파멸의 대검이 붉게 물들고, 등 뒤로는 세르네의 깃털로 이루어진 날개가 펼쳐졌다. [날파리 같은 게!] 수복 중인 진현의 팔들이 억지로 움직여 시몬을 붙잡으려 했으나, 세르네의 날개를 빌린 시몬의 비행 속도가 팔들이 뻗어오는 속도를 상회했다. 비행과 동시에 시몬이 로레인의 마계의 힘이 깃든 대검을 휘둘러 댔다. 무아지경. 시몬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른 뒤 빠져나오자, 수수깡 부러지듯 여덟 개의 팔이 단면을 보인 채 잘려 나갔다. ‘남은 팔은 이제 진현 본연의 팔뿐이야!’ 시몬이 허공을 박차고 진현을 향해 다이렉트로 전진했다. [이제 좀 이해하는 게 어때?] 진현이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해도 승산이 없다는 걸!] 팔들이 잘려 나가고 드러난 진현의 변화한 모습.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그 묘한 불쾌감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시몬이 그녀에게 대검을 내리그으려는 순간. ‘!’ 그녀 본연의 손안에서 타락의 힘이 들끓어 올랐다. <진현 오리지널 – 탈성파도(脫性破道)> 마치 수억 개의 미세한 퍼즐 조각이 흩뿌려지듯 그녀의 손안에서 뻗어 나갔다. 결코 막거나 피할 수 없는 종류의 공격. 하지만 시몬도 다음 수가 있었다. <시몬 오리지널 – 왜곡(歪曲), 소용돌이> 휘오오오오오오오 시몬의 앞에 창백한 검푸른 점,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쏟아지는 퍼즐 조각들이 모조리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때 시몬은 깨달았다. ‘타락을 진현에게 반사하는 건 의미가 없어.’ 시몬은 왜곡의 힘으로 퍼즐 조각들을 반대편으로 흘려내며, 직접 진현을 향해 돌진했다. “닿아라!” 촤아아아아아아아아! 파멸의 대검이 그어지며 진현의 몸을 깔끔하게 횡으로 절단했다. [너희는.]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갈라진 부위에 빠르게 노란색 실이 일렁이더니 수복이 진행되었다. [죽어도 날 죽일 수 없어!] 그녀가 팔을 휘둘러 시몬의 오른팔을 공간째 날려 버렸다. 손에서 놓친 파멸의 대검이 떨어지기 무섭게 악에 받친 시몬이 왼손으로 그것을 붙잡고 다시 그녀를 힘껏 베었다. 촤아아아아아악! 횡절단 이후에 종절단. 몸이 십자 모양으로 갈라진 그녀를 뒤로하며 시몬이 바닥에 내려왔다. [이제 다 필요 없어. 내 눈앞에 사라져! 시몬 폴렌티아!] 하지만 진현은 그마저 견뎌냈고, 동시에 수복이 완료된 열 개의 팔들이 그를 향해 내려왔다. 이에 시몬도 잘려 나간 오른손을 수복하며, 공중에 떠 있는 소용돌이를 잡아당겨 자신의 몸에 망토처럼 둘렀다. <시몬 오리지널 - 왜곡(歪曲), 다크 후드> [그깟 방향을 트는 정도의 힘 따위!] 그녀의 손이 눈앞까지 다가온 순간, 시몬이 씩 웃으며 옆을 보았다. “지금이야, 로레인!” <인퍼널 프레임> 로레인이 손끝에서 일으킨 마계의 화염이 쏟아져 다크후드에 직격했다. 다크후드가 그 힘을 빨아들여 불꽃처럼 넘실거렸고, 순식간에 새빨간 마계의 망토로 변모했다. 지옥불을 휘감은 망토를 붙잡고, 시몬이 지면을 박차며 높이 날아올랐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다가오는 손들은 마계의 힘으로 무장한 다크후드에 손을 대지 못하고, 그사이 시몬이 파멸의 대검으로 진현의 팔들을 모조리 썰어내고는 무방비가 된 진현에게 쏘아져 나갔다. [크윽!] “흐읍!” 이때 다크후드의 지속 시간이 끝나 사라졌고, 진현의 팔들 또한 수복되려면 시간이 걸렸다. 시몬과 진현, 두 사람의 온전한 격돌. 시몬은 대검을 들어 올리고, 진현은 팔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명멸절공> 진현이 팔을 크게 휘둘러 일으킨 공간을 베어내는 참격을, 시몬은 몸으로 받아내며 전진했다. 다리 한쪽과 허리 일부가 날아갔지만 시몬이 그대로 회전력까지 담아 그녀의 목을 향해 대검을 내려쳤다. 퍽! “!” 그런데 한번에 목이 잘리지 않았다. 목의 중간에 무언가 걸리듯 막혔고, 그 틈에 진현이 접근해 시몬의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불사의 몸이니 뭘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콰아아아아아! 시몬은 타락의 힘이 자신의 몸 안으로 쏟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괜찮아. 타락하기 전에 내가 목뼈를 부러뜨리는 게 먼저……!’ 그때 시몬의 몸이 맹렬한 변화를 일으키며 뒤로 튕겨 나갔다. 목이 반쯤 베어진 진현이 끼히히힉! 광소를 터뜨렸다. [내가 굳이 네 몸에 타락을 걸었을 것 같아? 이번엔 네가 가진 ‘칠흑’ 그 자체를 타락시켰어! 칠흑이 타락해 역전되면 뭐가 된다고 생각해?] 시몬의 몸에 빛무리가 일어나자 그녀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나의 승리야! 정화되어 죽어라!] 화아아아아아아악! 그런데. 눈부신 빛의 폭사와 함께 온몸이 증발하리라 생각했던 시몬이, 빛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뭐 하냐.” [!!]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칠흑을 많이 소진해서, 나도 언제 이 힘을 쓸까 싶었는데 수고를 덜었네.” 시몬은 멀쩡했고, 심지어 진현이 칠흑을 전환시켜 만든 신성의 힘을 다루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에이션트 언데드인 피어마저도 신성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시몬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어가며, 눈동자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타의에 의해 ‘성자 모드’로 들어선 그가 씩 웃으며 팔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신성으로 휘감긴 파멸의 대검이 다시 한번 진현의 목을 후려쳐, 몸통에서 목을 분리시켰다. [이건 말도 안 되잖아아아아아아아!] 목만 남은 진현이 처절한 외침을 토해냈다. 불가능한 일. 하지만 동시에 지금 벌어진 일이었다. 수복된 진현의 팔들이 급히 날아가는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 [대체 너 정체가 뭐야! 뭐길래 내 타락의 근간부터 부정하는 건데!] 팔들이 떨어지는 몸통도 붙잡아서 그녀의 머리와 몸통을 이으며 수복을 시도했으나, 그마저도 쏜살같이 날아온 파멸의 대검이 그녀의 몸통에 박히는 것으로 방해했다. 그녀가 크헉 하고 피를 토했다. [이 꽉 악물어.] <종언(終焉)> 시몬의 손에 하얀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이 들렸다. 진현이 버둥거리며 도망치려 했지만. 휘이이이이잉! 어느새 세르네와 로레인이 그녀의 뒤로 돌아와 있었다. “어머나, 시몬의 프리스트 변신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요.” “시몬이 신성을 쓰다니,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두 팔을 동시에 세웠다. 세르네가 마법진을 만들었고, 로레인이 칠흑을 그녀에게 보내 보조했다. 마침내 펼쳐진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바힐 오리지널 – 아니마 빈클리스> 그녀의 몸에 소생 지연의 저주가 새겨지고. [이 꽉 물어.] 시몬이 백염으로 불타는 신성의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아악! 종언의 검이 타락의 구원자를 찢어발겼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그녀가 처절한 괴성을 질러댔다. ‘……지금까지 먹인 참격과 타격들.’ 시몬이 다시금 <종언>의 검을 세워 들었다. ‘한 가지는 확실해. 계속 피해를 누적시키면-’ 수복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종언의 검을 내리그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검이 지나간 자리에 정화의 불꽃이 불타오르며, 타락의 몸뚱이를 정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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