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63화 근처의 강물이 증발할 정도의 대격전. 헥토르와 말라디우스의 전투는 바닥을 드러낸 강바닥 위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헥토르는 그야말로 전신을 내뿜듯이 맹공을 퍼부어댔다. 말라디우스의 몸이 거칠게 뒤틀리고 덜컹대며 주먹과 발차기를 받아내고 있었다. ‘둔중한 액체와도 같은 몸뚱이.’ 헥토르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데미지는 착실히 쌓이고 있다.’ 상대는 태연한 반응이었으나, 타격은 분명히 먹히고 있다는 확신이 헥토르에게는 있었다. 말라디우스의 몸이 점점 탄력을 잃어가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한바탕 주먹을 퍼부은 헥토르가 다시 한 손에 힘껏 칠흑을 모아 강공을 날리려는 순간. “!” 펄럭! 본능적으로 타격 직전에 동작을 멈췄다. 등 뒤의 용의 날개가 거칠게 움직이며 그를 순간적으로 뒤로 밀어냈다.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300미터가량 후방으로 물러났고. 스륵! 헥토르와 말라디우스가 있는 지면을 둘러싸던 붉은 원이 딱 타이밍 좋게 완성되며 흑마법이 발동했다. 원 안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런 방식이군.” 헥토르가 비릿하게 웃으며 원 밖에서 천천히 걸었다. 공격에 몰입했다면 그대로 당했겠지만, 그동안 갈고닦은 용의 감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타악! 그가 걸음을 멈추고 순식간에 악룡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거대해진 날개를 한 차례 크게 휘둘렀다. 콰콰콰콰! 지면이 폭발적으로 뒤집히고 모래 먼지가 솟구치며 주위 지형이 온통 갈려 나갔다. 바닥에 그린 붉은 원도 완전히 파괴되어 마법진의 효력이 사라졌다. [원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터업! 흙먼지를 뚫고 순식간에 돌진한 헥토르가 말라디우스의 머리를 붙잡고 지면에 거칠게 메다꽂았다. [효과도 없지!] 콰콰콰콰콰콰콰콰! 그대로 두 날개를 펼쳐 초고속으로 비행하며, 말라디우스의 머리를 바닥에 긁어나갔다. 주위 경관이 쌩쌩 바뀌며 다시 한참을 이동한 그가, 말라디우스를 끄집어내 허공에 띄운 뒤 발로 걷어찼다. 터어어어엉! 복부가 크게 꺾인 채 말라디우스가 하늘로 솟구치고, 헥토르 또한 무릎을 굽히며 뛰어올랐다. [전군 브레스 준비.] 고오오오오오오! 상공에는 천 마리에 달하는 데스 와이번들이 입을 벌린 채 대기하고 있었다. 강제로 하늘로 비상하던 말라디우스를 따라잡은 헥토르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후읍!” 그 상태로 인간폼으로 돌아온 그가 몸을 빙글 돌렸다. 전신의 근육이 펌핑이 되듯 불거지고, 그의 잇새에서 짧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홍펭 오리지널 – 전천쇄(轉天碎)> 말라디우스의 다리를 붙잡은 헥토르의 몸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그를 힘껏 내던졌다. 소닉붐과 함께 말라디우스의 몸이 지상을 향해 빠르게 추락했고, 강렬한 충돌과 함께 지면이 파헤쳐지며 흙 파편이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천 개의 브레스가 말라디우스의 몸에 쏟아졌다. <오두룡 폼> 헥토르 또한 용으로 변신해서 브레스를 퍼부어댔다. 가히 신화 속 용들의 심판을 연상케 하는 광경. 브레스가 평지를 연달아 불태우며 지면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쿠구구구구구구! 헥토르가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세상 전체를 불태울 것처럼 쏟아지는 불줄기가 멈췄다. 이게 바로 비행과 화력에 강점이 있는 6군단의 힘이었다. 헥토르는 일말의 방심도 없다는 듯 다시 날개를 펼치고, 지면에 처박힌 말라디우스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꾸우우우웅! 한쪽 무릎으로 말라디우스의 복부를 걷어차며 지면에 안착한 그가 주먹을 머리 위로 크게 뻗었다. <헥토르 오리지널 – 드라코그래프트(Dracograft)> 촤라라라락! 그의 팔 위로 온갖 시룡의 비늘과 파츠들이 뱀처럼 휘감겨 다닥다닥 달라붙더니, 이내 형형색색의 비늘과 보석, 날개 따위로 뒤덮인 강력한 키메라 팔이 완성되었다. 그 주먹에 칠흑이 휘몰아치며 대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생포는 생각지도 않는다. 끝이다.] 그가 주먹을 말라디우스의 몸통에 내리꽂으려는 순간. 키이이이이이이잉! 마법진이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헥토르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그가 당황하며 시선을 움직였다. ‘어째서?’ [이곳에서 수백만 걸음 떨어진 곳에서 마법진을 만들고 있었다, 인간.] 말라디우스가 태연히 말했다. [우리는 효과 범위 안에 있다.] 스스스스스! 그의 말대로 이 벌판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말라디우스가 손짓하자 마법진이 서서히 좁혀오는 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헥토르가 저항하려고 했지만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말을 듣지 않았다. 오른팔의 키메라화도 풀려 버렸고, 군단장의 사념에 문제가 생기니 하늘에 있던 데스 와이번들도 하나둘 추락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인간 전부를 물들이는 마법진이라면 몰라도, 한 인간만을 물들이는 마법진이라면 넓게 펼치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지.] “무슨 개짓거리를 한 거냐!” 헥토르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저 도시의 인간들에게 하려 했던 일이다. 영광에 접촉할 기회를-] 말라디우스의 눈빛이 섬뜩하게 변했다. [네게 선사해 주마.] 화아아아아아아악! 헥토르는 일순 정신이 각성하며 머릿속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뇌와 이성, 그 외의 모든 의식이 거대한 총체를 향해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 어느새 헥토르의 정신은 알 수 없는 낯선 허공 위에 떠 있었다. 그 앞에 보이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방대하고 압도적인 정보 덩어리였다. [묻겠노라.] 그 압도적인 정보의 총체가 물음을 던졌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헥토르의 정신이 서서히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물리적인 저항은 불가능했다. 헥토르가 빠져나가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그나마 머릿속으로 저 질문을 외면하고 다른 생각을 떠올리면 끌려가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자극적이고 강렬한 생각을 떠올려야 했다. ‘시몬 폴렌티아!’ 그리고 그 생각은 당연히 시몬에 대해서였다. 그에 대해 떠올리자 끌려가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다. ‘네게 도전하겠다! 너를 꺾을 때까지 나 또한 단련을 멈추지 않겠다!’ 온갖 감정들이 들끓으며 정보의 총체로 끌려가는 속도를 늦췄지만, 그 순간 정보의 총체로부터 무수한 이미지들이 밀려들어 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었다. -엄마, 나 왜 저 아저씨랑 같이 가야 해요? -약이 없으면 고칠 수도 없소! -얼마나 죽여야 이 비극이 끝나는 걸까. 수천수만 명의 삶이 헥토르의 정신에 주름을 남기기 시작했다. 헥토르가 다시 정보의 총체로 빨려들어 갔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시몬과의 투쟁심을 떠올리며 버텼다. [보이느냐.]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전쟁과 비극, 죽음들이 헥토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굶주림 끝에 사람을 잡아먹고, 부모가 자식의 목을 조르는 차마 말하기도 힘든 비극들. 몸이 떨리고 구역질이 날 만한 끔찍한 비극들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그런 비극들의 시작은 언제나 코웃음이 쳐질 정도로 사소한 일들이었다. 순간적인 충동, 작은 불쾌함, 남의 것에 대한 욕심. 고작 인간의 솜털만 한 욕망으로 시작된 비극이 너무나도 커져갔다.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세계의 존속을 인간성에 기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점차 헥토르가 정보의 총체에 끌려 들어갔다.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생존’이 아닌, ‘영광’으로 설정하는 것. 이는 이기심을 거세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도려낼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되, 단 하나의 영광을 위해서만 분투하는 세계.] 헥토르의 몸이 마침내 정보의 총체 속에 파묻혔다. [그곳엔 오롯이 영광만이 있을 것이다.] * * * 말라디우스는 헥토르를 가만히 응시했다. 주먹을 들어 올린 채 파르르 몸을 떨며 저항하던 헥토르는 결국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였다. 이제 끝이다. 말라디우스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영광의 신자.] 스륵. 헥토르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 흐릿한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노바렌으로 돌아가 방해자들을 제거하고, 영광을 위해 분투하라.] 저벅, 저벅. 헥토르가 멍한 눈으로 노바렌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끝이다. 말라디우스는 다음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마법진을 해체한 뒤, 주변의 흩어진 피를 끌어모았다. 터업! 그때, 그의 뒤통수를 붙잡는 강렬한 손길이 느껴졌다. [설마……!] 꾸우우우우우웅! 헥토르가 거칠게 말라디우스의 안면을 지면에 내리꽂았다. 주위가 들썩이며 지반이 한 차례 크게 내려앉았다. “지랄 났군.” 퉷! 이글거리는 눈빛의 헥토르가 침을 바닥에 뱉었다. “1군단 놈들이 그동안 뭘 준비하나 싶었는데, 이 따위 수작이었나.” [어떻게 인간이 ‘영광’에 저항을……!] 꾸웅! 헥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말라디우스의 뒤통수를 짓밟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이 싫어하는 게 타인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거다. 세상을 위한 합의? 영광을 위한 희생? 지랄도 염병이지.” 짓밟는 힘이 점점 강해졌다. 그의 몸이 서서히 커지며 이전보다 더 거대한 용의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말라디우스의 몸이 지면에 점점 깊게 파묻히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곳에 왔나……!] 크르르르르! 헥토르의 입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몬 폴렌티아를 따라잡기 전에 세상이 먼저 멸망하는 걸 막을 뿐이다. 나는 온전한 조건과 환경에서 그와 싸우기를 원한다!] 꾸우우우우웅! 말라디우스의 한 차례 더 몸이 깊게 파고들며, 그의 육체에 쩌저적 금이 갔다. 승부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 * * 같은 시각. 대도시 노바렌 중앙 광장. 촤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아아아아! 무형의 망토를 휘날리며, 시몬이 건물 지붕을 박차고 맹렬한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주위를 에메랄드빛 친위대 스켈레톤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시몬이 건물 지붕 끝에 사뿐히 착지해 귀를 한 차례 후볐다. [크흐흐! 왜 그러지 소년?]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싶어서요.’ [여유가 넘치는군. 눈앞의 적에 집중해라!]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브리만티아가 손을 뻗었다. 주위가 온통 황금빛 실로 가득했다. [내 아들의 패도를 막으려는 자는 전부!] 펼쳐진 황금빛 실들에서, 마치 열매가 맺히듯 창들이 생겨나 그 끝을 시몬을 향해 세웠다. [이 어미가 치우겠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수천 자루의 황금 창이 날아왔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붙잡고 쏟아지는 황금 장대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촤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아악! 시몬의 움직임이 격렬하게 이어졌다. 집중력 가득한 눈을 번뜩이며, 그의 손가락 하나, 발끝 하나가 모두 정교하게 기동한다. 쏟아지는 창 사이의 빈 공간을 파고들고, 대검으로 창들을 하나하나 쳐내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간다. 사각지대에서 오는 공격은 친위대들이 대신 쳐내주었다. 그녀와의 거리가 바로 앞까지 좁혀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그녀가 손끝을 세워 들자, 어느덧 황금실에 묶인 친위대 스켈레톤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리석구나, 아이야.] 그녀가 주먹을 꾹 쥐는 순간, 황금빛 실이 친위대 스켈레톤을 조각내며 무너뜨렸다. 브리만티아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나. 터어어어어어어엉! 시몬은 전혀 흔들림 없이 멀쩡히 날아가고 있었다. 단지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살덩이 두 개가 펑펑 소리와 함께 터질 뿐이었다. “그야 당연히 대비했지.” 그녀의 방심을 비집고 온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머리 위로 세워 들었다. 그녀는 다급히 자신의 앞에 황금실을 쳤다. ‘검이란 무.’ 시몬이 눈을 감았다. 라큄과 함께 ‘검’에 집중하기 시작한 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벤다는 것은 움직임이 아니라 일종의 확정. 검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가르는 게 아니라- 이미 잘린 세계에 검이 도달하는 것. 시몬의 숨이 고요해졌다. 자르려는 의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따라가듯 대검이 조용히 검로를 따라 움직였고 마침내. 스릉! 시몬의 대검이 황금빛 실을 부드럽게 베어냈다. 그녀의 놀란 표정이 드러났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브리만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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