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62화 연단 위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이 상황에도 어떻게든 왕위 계승식은 해야 한다며 억지를 부리는 삼왕자 헨릭, 사람들을 광장에 붙잡아 두기 위해 애쓰는 브리만티아, 그리고 중간에서 눈치를 보며 정신없이 왕국군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경비 책임자인 오드발까지. 혼란은 늘 미지에 근거했다. 적의 숫자와 습격 규모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니 이런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번 공격이 암흑연합 차원에서의 공세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노바렌에 와 있는 건 정말로 키젠 학생 여섯 명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말라디우스에게 문제가 생겼구나.] 대광장에서 ‘계획’이 실행되지 않자, 미망인 브리만티아는 뒤쪽의 부하들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다시 본래의 계획으로 돌아가자꾸나. 직접 피를 이어서 광장을 감싸는 마법진을 만들도록 하거라.] 부하들이 빠르게 흩어지고, 그녀도 직접 나설 채비를 하기 위해 연단을 내려가려는 그때. 스윽. 갑주를 입은 언데드 기사가 그녀를 지키듯 앞으로 나왔다. 의아함을 느낀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저 멀리, 연단에서 오른쪽 방향에. 구구구구구! 칠흑의 요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이내 그곳에서부터 일어난 산더미만 한 참격이 지면을 타고 연단을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왔다. 헨릭 왕자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이어지는 거대한 폭발. 폭발 연기가 연단을 집어삼키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저벅저벅. 그리고 이 참격의 장본인. 참격이 지나가고 남은 지면의 깊은 흉터 위로, 피어의 본 아머를 빈틈없이 착용한 채 무형의 망토를 그림자처럼 휘날리는 소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초면은 아니네.] 시몬의 입이 열리며, 피어 특유의 살벌하고 위압적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경비 책임자 오드발, 삼왕자 헨릭, 그리고 황제의 어머니 브리만티아.] 잠시 후 참격으로 인한 연기가 걷히며 연단 위의 상황이 드러났다. 시몬과 피어의 참격을 막아낸 건 역시나 1군단의 언데드 기사단이었다. 갑주에 청색 망토를 두른 기사들. 그들 모두가 번쩍이는 방패를 들고 있었다. [아이야, 슬프구나.] 브리만티아가 멀리서 다가오는 시몬을 보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이제는 아들에게 네 자비를 간청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단다. 내 손으로 네 목을 베어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구나.] [이번엔 본체 맞지? 브리만티아 벨 에슈트라.] 그녀의 실명을 정확히 부르자, 그녀의 눈이 꿈틀했다.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절대로 안 놓쳐.] 고오오오오! 시몬으로부터 압도적인 위압감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멀찍이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이를 지켜보던 삼왕자 헨릭은 공포에 질려 입술을 떨었다. ‘저, 정말로 룬 리그 때랑 같은 사람인가?’ 그사이에 또 강해졌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적’에게 진심을 다하는 시몬 폴렌티아를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건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를 막으렴, 방벽 기사단.] 처억! 척! 방패를 든 언데드 기사단이 일제히 다가왔다. 이들은 전신을 덮는 풀 플레이트 아머에, 큰 방패와 숏소드로 무장하고 있었다. 특히 가장 앞에 서 있는 기사는 다른 기사들보다 방패가 두 배는 더 컸고, 무엇보다 흘러나오는 칠흑이 남달랐다. [제5 방벽 기사단장 엔밀. 적을 섬멸합니다.] 길리와 같은 ‘기사단장급’ 언데드였다. 시몬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쪽도 기사가 나서야겠네. 라큄, 나설 시간이야.] 시몬의 등 뒤로 아공간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한 언데드가 날렵한 동작으로 튀어나왔다. 기사단장 엔밀의 투구 속 안광이 일순 커졌다. [당신은……!] 마찬가지로 제국 사양의 클래식 풀 플레이트 아머, 그러나 초록색 망토를 휘날리며 손에 장검을 쥔 그는 다름 아닌 수도 기사단장 길리였다. 그러나 느껴지는 칠흑은 전혀 달랐다. [나는 슬픔을 이해한다.] 마누스의 육체에서 태어난 새로운 언데드, 라큄. 그가 마검을 휘두르자 회색 연기가 퍼져 나왔고, 그 속에서 라큄을 따르는 수도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기사단이 연단 중앙에서 대치하며 서로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길리에게 무슨 짓을 했나요?] 엔밀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시대가 지나도 당신들 측은 여전히 사악하기 그지없군요.] [너는 엔밀이 아니다. 엔밀이라고 밝힌 자여.] 라큄이 검을 늘어뜨렸다. [너희는 그 존재 자체로 엔밀에 대한 모욕이다.] 이어서 라큄이 검을 허공에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이 지나간 궤적은 여전히 허공에 남은 채 유지되었다. 그가 검을 뻗는 것으로 수십 개의 검기가 동시에 날아갔다. [기사단 방진!] 엔밀과 기사단들이 일제히 방패를 앞세워 그 공격을 받아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기가 막히며 폭연이 터져 나왔고, 그사이에 라큄 기사단이 도약해 그들의 방패에 검을 휘둘렀다. 까앙! 채애애애앵! 1군단 제국의 기사단과, 7군단의 라큄 기사단 간의 난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시몬은 기사들을 지나 브리만티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군단장이라는 자들은 여전히 미지의 존재구나.] 브리만티아가 손을 치켜들었다. 황금실들이 그녀의 손안으로 모여들며 창의 형태로 바뀌었다. [엄밀히 말하면 너희도 그 군단의 힘으로 일어난 거야.] 시몬도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들었다. 이내 바닥을 박차고 달려가 그녀의 창에 대검을 맞부딪혔다. 채애애애애애애애앵! 청아한 울림이 노바렌 전체를 뒤흔들었다. * * * 꾸륵! 꾸르륵! 노바렌의 주거지 한쪽. 건물 벽면에 칠해진 붉은 핏물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반대편 벽면에도 붉은 핏물이 묻어 있었다. 이 두 벽면의 핏물을 잇기 위해, 1군단의 언데드 병사가 바리케이드를 들고 다가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했다. 스르르- 움직이던 한쪽 건물의 핏물이, 바리케이드에 묻은 핏물을 따라 다른 건물에 이어졌다. 이내 모든 핏물이 하나처럼 출렁였다. 이것으로 마법진의 원 일부가 또 하나 이어진 것이다. 1군단의 병사가 다음 작업을 위해 걸어가려는 순간. <별야 리메이크 - 맹독 채찍> 촤르르륵! 눈 깜짝할 사이에 맹독으로 이루어진 채찍이 그의 다리를 붙잡더니 붕 소리와 함께 날려 버렸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언데드 병사가 건물에 틀어박혔다. “에헤이, 안 되지 안 돼.” 손에서 맹독 채찍을 회수한 딕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로 바리케이드를 넘어뜨렸다. 그것만으로 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마법진의 완성이 좌절되었다. 딕은 건물에 처박힌 언데드 쪽으로 포션 병 두 개를 머리 뒤로 휙휙 던진 후, 성냥불에 불을 붙여 그쪽으로 날렸다. 요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내가 챙겨 간다.” 딕이 본인의 아공간을 연 뒤, 바리케이드를 낑낑거리며 밀어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수고했어, 딕.” 촤아아아아아악! 이번엔 저 멀리 하늘에서 로레인이 단검을 긋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섬광이 터져 나오며 언데드 병사들이 단숨에 쓰러져 갔다. 공중에서 가볍게 백덤블링한 그녀가 바닥을 미끄러뜨리며 착지했다. 딕이 ‘오오’ 하고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여윽시 멋지십니다 아가씨!” “혹시 모르니 이쪽도 치워둘게.” 로레인이 두 건물에 묻은 핏물을 마계의 이능으로 불태우며 말했다. 딕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고개를 들었다. 쿠웅-! 쿠우우우웅! 저 멀리 연단에서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시몬이 하이라이트를 갖고 가려나 보네. 믿는다!” 딕이 짝짝 손뼉을 차례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나저나 황제의 어머니에, 기사단에, 에이션트 언데드까지. 1군단이 이번 노바렌 건에는 제대로 공을 들였나 본데.” “응.” 스릉! 그사이 로레인은 또 하나의 꿈틀거리는 핏물을 발견하고, 검기를 날려 잘라냈다. “우리도 마법진이 완성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움직이자. 모든 사람이 노바렌에서 떠날 때까지는 방심할 수 없어.” “어어, 당연하지!” 딕이 바닥에 꿈틀거리는 핏물 위로 용액을 부으며 말을 이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핏물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도 아보 교수님이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면 진짜 난리 날 뻔했네. 광장에 있던 우리도 마법진에 휘말릴 수도 있었…….” 그렇게 중얼거리던 딕이 멈칫하다가, 턱을 쓸었다. “왜 그래? 딕.” “아니, 아니.” 딕이 수상쩍은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직접 오신 건 맞겠지?” * * * […….] 1군단의 인간형 에이션트 언데드, 말라디우스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아보를 응시했다. 아보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예상보다 싱거운 싸움이라고 생각한 그가 다시금 팔을 들어 도시의 피를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뿌려둔 피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아보라는 인간의 방해 때문인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일일이 마법진을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나간다.] 말라디우스가 천장을 향해 두 팔을 세웠다. 천장에 핏물이 스며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하 수로의 천장이 열리며 광장의 하늘이 드러났다. 그가 직접 대광장으로 올라가려는 그때. 쩌저어어어엉! 난데없이 하수도 벽면이 박살 나며 거대한 아가리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말라디우스를 덥석 물었다. [네놈이군. 이 계획의 핵심이.] [!] 그 정체는 새까만 악룡이었다. 말라디우스가 팔을 뻗어 그를 막으려 했으나. 촤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그의 몸이 격렬한 맞바람과 함께 열린 천장으로 날아갔다. 말라디우스가 눈을 뜨자, 어느새 그의 몸은 검은 용에 물린 채 하늘 높이 도달해 있었다. 펄럭! 고공에서 용의 날개가 한 차례 크게 펼쳐지는 듯하더니. 쐐애애애애애애액! 소닉붐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검은 용이 지면으로 향해 급강하했다. 말라디우스의 몸이 빠르게 지상으로 끌려 내려갔다. 터업! 말라디우스가 검은 용의 비늘 속으로 손을 넣어, 내부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자신의 핏물을 주입했지만. [!] 용의 피가 그것을 틀어막으며 견디고 있었다. 혈류 대처가 완벽하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혈류학에도 능숙한 상대였다. 쿠구구구구궁! 그사이 악룡은 수 킬로미터를 날아, 언덕과 언덕 사이에 설치된 돌다리에 말라디우스를 충돌시키고는, 그대로 돌다리를 무너뜨리며 함께 강으로 입수했다. 꾸르르르르륵! 강물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말라디우스는 자신이 가진 핏물에 대한 통제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자신의 몸을 물고 있던 악력이 사라졌고. [!] 어느새 한 남자가 눈을 부릅뜬 채 주먹을 내뻗는 모습이 보였다. <헥토르 오리지널 – 열파> 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말라디우스의 몸이 거대한 압력으로 뒤로 밀려났다. 주변의 강도 좌우로 갈라지며 압도적인 충격파가 퍼져 나왔다. ‘이 힘은……!’ [네 주인이 그러더군.] 펄럭! 말라디우스가 급격히 멀어지는 사이, 악룡의 형태로 변한 헥토르가 순식간에 날개를 펄럭이며 그를 따라잡아 입을 벌렸다. [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용감해지는 법이라고.] 제로 거리에서. 검은 브레스가 쏟아져 나와 말라디우스의 몸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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