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33화 18년 전. 검은 돌멩이가 굴러다니고, 모래바람이 불어닥치는 황량한 대지 위에, 한 여성이 단검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칼날에서 피를 완전히 닦아낸 그녀는 통신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끝까지 쫓아가 처리했어.” -수고하셨습니다. 보고를 마친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품에 넣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그저 둥둥 떠 있는 검고 황량한 대지와 모래뿐.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은빛 머리카락을 한 차례 쓸어넘긴 그녀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왜 이런 곳까지 도망쳐서 사람을 귀찮게 해.” 투덜거리며 복귀 지점으로 돌아가려던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아기 무덤. 수많은 아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제단 아래, 싸늘한 시체가 된 작은 살덩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직 손가락 하나 제대로 펴지 못하는 것들이 그 생명을 꽃피우지 못한 채 식어 있었다. “……알 만해.”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 그 참극을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계를 움직이는 힘인 ‘열쇠’. 그 적성에 맞는 아이가 누군지 모르니까, 일단 던져놓고 본 거지? 하나쯤 얻어걸리라고?” 헛웃음을 흘린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서둘러 돌아가지 않으면, 본래 세계로 돌아갈 입구가 닫힐 터였다. 그때. ―! 엄마는 그때, 미약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너무나 미약하고 하찮아서, 등을 돌려 한 발자국만 걸어도 휭휭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가볍게 묻힐 것 같아서. 그래서 돌아서지 못하고 그 울음소리가 난 곳으로 걸어갔다고 했다. 바로 그곳에서. 응애! 응애! 엄마는 ‘나’를 만났다고 했다. 비극의 무덤에 기적적으로 살아 있는 아기. 몸이 담긴 그 작은 바구니조차 넘지 못해 바둥거리는 팔다리. 하지만 엄마는 그때만 해도 큰 흥미를 두지 못했다고 했다. 스스로 모성애 같은 것은 없다고 늘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돌아서려고 하는데. 키이잉-! 평범한 인간의 이마에 자라난 작은 뿔. 빨갛고, 빛나고, 작디작아 뿔인지 피부에 난 종기인지 모를 그 작고 하찮은 그것. 그것을 본 엄마는 그제야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있지, 나 신기한 거 발견했어.” -그게 무엇입니까? 네프티스 님. 엄마는 나를 안아 들어 품에 안았다. 응애응애 울던 나는 뚝 울음을 그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고 했다. “결사 놈들의 막 던지기 작전이 성공했어. ‘열쇠’야.” -정말입니까? “이대로 열쇠를 우리가 데려가면…….” 엄마가 즐겁게 웃었다. “그 녀석들, 아주 분통이 터지겠지?” 그것이 엄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 * * 흥애 흥애- 로크섬으로 돌아온 엄마는 서류 더미 위에 깃펜을 든 채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기였으니 끝없이 울었고,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엄마는 참다못해 와악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만 좀 울어! 밥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줬잖아? 뭐가 문젠데! 원하는 게 있으면 말로 해! 말로!” 여러 번 말했지만 엄마는 스스로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일하다 말고 수백 살 먹은 마녀가 한 살짜리 아기와 싸울 정도였다. “또 시작이다. 뭘 하시는 거예요?” 소란을 들은 비서가 웃으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엄마가 의자에 털썩 앉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계속 울잖아! 밥도 주고 다 해줬는데!” “소화가 안 되어서 더부룩한 거예요.” 비서는 나를 안고 둥기둥기 하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러자 끅 하고 트림이 나왔다. “아기는 스스로 음식을 소화시키기 힘들거든요. 이렇게 트림을 시켜줘야 해요.” “에잇, 몰라.” 엄마가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홱 돌렸다. “아기 데려가기로 한 사람 언제 온대?” “갑작스럽게 문제가 생겨서 이틀 정도 늦을 것 같다고 해요.” “이-틀? 이틀이나?” 엄마가 콩 하고 머리를 책상에 박았다. 비서가 부드럽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동안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보는 건 어때요?” “관심 없어.” 엄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데, 비서가 다가와 나를 엄마에게 안겨주었다. “앗! 뭐야?” “딴짓 안 하고 제대로 서명했는지 검토해 보려구요. 그때까지만 안고 있어줘요.” “아이, 진짜아.” 엄마가 툴툴거리며 나를 안았다. 이제 울음을 뚝 그친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꾸욱. 나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엄마 뺨을 잡아당겼고, 엄마가 ‘아악’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이게 진짜아-!” 그때. “헤헤.” 엄마는 내가 웃었다고 했다. 엄마가 나를 마계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이마에 빨갛고 하찮은 뿔까지 띄우면서. 활짝 웃었다고 했다. “…….” 엄마는 모성애를 모른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이때는 처음으로 온기 비슷한 걸 느꼈다고 했다. * * *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자, 글씨 쓰기 시간이야! 네 이름부터 연습해 볼까? 로- 레- 인- 옳지! 아- 크- 볼- 드! 잘한다! -나 잘해써? 엄마는 직접 나를 키우기로 했다. 나는 암흑연합 총수의 딸로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러다 보니 투정도 부렸다. 보통 사람보다 많은 걸 배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공식 석상에 나갈 때 좋아하는 핑크색 옷이 아닌 검은 옷만 입어서 싫었다거나 하는 그런 하찮은 투정. 가끔은 엄마의 딸로서 특권의식에 젖어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네프티스의 딸’이라고만 불리는 것에 싫증 나서 특례입학이 아닌 스스로 시험을 쳐서 키젠에 입학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은연중에 내 몸에 아크볼드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언젠가 나는 엄마의 뒤를 이으리라고 확신해 왔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내가 미덥지 않은지, 어린 시절만큼 자주 공식 석상에 내보내지 않았다. 철저하게 날 세상에 숨겨왔다. 그래도 키젠 3학년이 되니, 기회가 왔다. “이번 룬 리그 사태에 암흑연합의 사령관으로서 눈부신 성과를 내셨습니다! 로레인 님!” 비서장이 손바닥을 비비며 미소 지었다. “이제 네프티스 님도 인정해 주시겠죠! 앞으로는 미래의 총장으로서 많은 것들을 배우실 거예요!” “고마워요.” 룬 리그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결사의 공격도 막아내고, 엄마와 원로들을 만나러 가는 길. 그런데 문 너머의 회의실에서 거친 고함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열쇠를 써야 하네! 이럴 때 쓰려고 마계에서 주워 온 게 아닌가? 키젠 원로들의 외침이었다. 저게 무슨 말일까 생각한 내가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 비서장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지금은 바쁜 것 같으니 나중에 다시 가시죠.”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늘 나를 보면 이런 표정을 짓는 자들이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건 ‘동정’에 가까웠다. 나는 너무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문득 그것이 소름 끼쳐서, 나는 그 손길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걸었다. -싫어! 절대 안 돼! 엄마의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렸다. -마계 강림은 막을 수 있다니까! 설사 마계 생물들이 넘어와도 내가 다 쓸어버리면 돼! -그렇게 억지를 부리실 일이 아닙니다 네프티스 님. -결사가 노리는 게 단순히 마계와 대륙을 잇는 것, 그 외에 뭔가가 더 있다면 어쩔 거요! 머리가 지끈거렸다. -모든 책임은 내가 져. 시야가 윙윙 돌았다. -그 아이 하나 희생하면 끝나는 것을! -원래 이런 일에 쓰려고 데리고 온 게 아니오! 이제 와서 진짜 어미 노릇이라도 하려는 게요! 목이 매스껍고, 속이 울렁거렸다. -물건에도 쓰임이 있듯 사람에도 쓰임이 있소! 지금이야말로 열쇠인 로레인 양을 사용할 적기의……! 터엉! 내가 문을 열어젖히고 회의실에 들어섰다. 당황한 엄마의 동공과, 마찬가지로 놀라거나 시선을 피하는 원로들의 모습이 보였다. 회의실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로, 로레인? 아하하……! 언제 왔어?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할까?” “말씀해 주세요, 엄마. 그리고 여러분.” 내가 말했다. “내가 누군지.” * * * 그렇게 모든 걸 알게 됐다. 사실 짐작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능,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빠,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 이능의 정체. 무엇보다 나와 닮지 않은 엄마까지. 나는 네프티스 아크볼드의 딸이 아니다. 그러니 꿈을 접었다. 나는 마계에서 데려온 열쇠다. 그러니 열쇠로서, 마계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세상을 지킬 것이다. -그냥 저 하나 희생하면 되는 거잖아요!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에요! -안 된다고 했지? 그건 절대 안 돼! 엄마는 반대했다. 하지만 당연히 늘 그랬듯, 엄마는 억지 생떼를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엄마도 사실 마계를 이용한 결사의 공격에 대해서는 뾰족한 방책이 없었고, 시간을 움직여 마계의 접근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게 전부였다. 이대로는 대륙이 위험해진다. 북부지역의 하늘에서는 벌써 ‘타계’가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결국 나는 엄마 몰래 내 이능으로 마계로 넘어갔다. 마계는 척박하고 어둡고 숨도 쉬기 어렵다고 들었지만, 나는 이곳이 내 고향임을 느끼듯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원로들이 말하던 ‘열쇠’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도 알아냈다. 그것은 마계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 마계는 사실 떠도는 거대 부유물의 집합체이고, 끊임없이 무작위 항로를 따라 항행한다고 한다. 그러다 다른 세계의 중력에 휘말려 이끌리면, 마계에 살던 생물들이 해당 세계를 공격하고 그 세계를 멸망시킨다. 그 후에 멸망한 세계의 중력이 사라지면, 마계 생물들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그런 마계의 행로를 정하는 존재가 바로 ‘열쇠’. 마계의 피를 가진 생물 중 하나가 그 권리를 갖게 된다. 나는 마계에 들어가, 제일 먼저 결사가 심어둔 ‘또 다른 열쇠’를 죽이고 그 힘을 흡수해 계약을 갖췄다. 이제 내가 열쇠가 되었고, 마계를 대륙이 아닌 다른 궤도로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공간좌표는 아주 약간만 계산이 틀어져도 그 위치를 잃게 된다. 결사는 이제 영영 포탈을 통해 마계로 진입할 수 없게 됐다. 이제 모든 게 안전해졌다. 다만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 -마계로 넘어갈 수 있는, 고정된 차원의 통로를 가진 세계가 한 곳 있소. 그래서 기다렸다. 언젠가 결사가 그 세계를 통해 마계로 진입하려 할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그 교활한 적들은 내 눈앞에 나타났다. * * * “크윽!” 결사의 바스테리온이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몸에 거대한 붉은 검상을 입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저벅 저벅. 이마에 붉은 뿔을 세우고, 등 뒤에 악마의 날개를 펼친 로레인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익! -게게게게겍! 그 뒤로는 수많은 뿔 달린 마계의 생물들이 금군들을 일방적으로 농락하고 있었다. 새처럼 생긴 괴물이 금군을 집어삼키고, 뿔 달린 악마가 금군을 붙잡아 마계의 지면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천년향 사람들이 이곳을 지옥이라 부를 만하군.” 스윽. 입가에 흐른 피를 닦은 바스테리온이 로레인을 노려보았다. 로레인으로부터 당한 가슴의 검상이 시뻘겋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강했다. “이런다고 대륙민들이 널 알아줄 것 같으냐? 로레인 아크볼드! 아니, 기록도 뭣도 없는 실험의 생존자!” “…….”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꿈을 꿨어.” “?”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웃고 울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끄는 꿈을.” 그녀의 눈이 이내 떠졌다. “하지만 그건 내 숙명이 아니었어. 이게 내 숙명이야.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내 방식대로 지킬 거야.” “……괴물이.” 호흡이 쉽지 않았다. 숨을 한 차례 헐떡이던 바스테리온이 희끄무레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가 사슬을 자신이 들어온 균열로 던졌고, 이내 그의 몸이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아아아아악! 그렇게 바스테리온이 순식간에 그림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천년향의 눈 덮인 겨울숲에 돌아왔다. 주위에서 기다리던 금군들이 놀라며 다가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바스테리온 님.] [그 상처는…….] 쿨럭 쿨럭! 한 차례 피를 토한 그가 입가를 닦으며 그림을 노려보았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진현을 이리로 불러라.” [예.] 금군 하나가 자세를 낮추고 겨울숲 밖으로 나가려고 준비하려는 그때. 촤아아아아악! 붉은 참격이 일어나 그 금군의 등에 피분수가 솟구쳤다. 금군이 쓰러지고, 이내 그림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마계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녀가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놓치지 않아.” “로레인 아크볼드……!” 사슬검을 앞세우며 한 차례 이를 갈던 바스테리온이 이내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몸 곳곳이 잿더미처럼 변하며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이미 마계에 속한 존재가 됐군.”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힘을 흡수해 열쇠로서 계약을 한 건가. 그 몸으로 마계 밖으로 오랫동안 나와 있으면 위험하지. 안 그런가?” “상관없어.” 그녀가 손을 들자 붉은빛이 번쩍이며 단검의 형태로 응축되었다. “그 전에 너희들을 전부 제거하면 그만이야.” “글쎄.” 바스테리온이 손끝으로 신호를 보내자. 으음- 음- 으으음- 으음- 녹음된 진현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천에 달하는 불사의 군대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무기를 치켜들었다. “아무리 마계의 힘을 가졌어도, 이 숫자의 죽지 않는 군대를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득의양양하게 말하던 그의 말이 일순 뚝 끊겼다. 쿠구구구구- 지면에 강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하나둘 뒤를 돌아보았다. 콰콰콰콰콰콰! 거대한 검은 해일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검은 파도 속에는 무수히 많은 눈들이 번뜩이고 있었다. [언데드다!] 검은 깃발이 높게 드리워진다. 일명 ‘악의 무리’로 악명 높은 7군단의 망자들이 살벌하게 쏟아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언데드들이 그대로 불사의 군대의 후방을 강타했다. “제기랄!” 바스테리온과 금군들이 이를 막기 위해 뛰어나갔다. “시몬……!” 로레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은 대륙을 지키기 위해 숙명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정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자꾸만, 마지막까지 떠오르는 얼굴. -고마워 로레인. 그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시몬이라면 이길 수 있어.’ 여긴 자신의 무대가 아니다. 결심이 더 흔들리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그녀가 뒷걸음질 치더니 천천히 등을 돌려 다시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우우웅-! 그림을 통과해 마계로 되돌아왔다. 시커먼 어둠. 먼지가 휘날리는 황량한 벌판. “…….” 내가 있을 곳은 여기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가 단검을 들고 천년향과 통하는 균열을 베었다. 촤아아아아악! 두 세계를 잇는 틈이 서서히 닫히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계단에 앉았다. “힘내 시몬.” 그녀가 힘없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촤아아아아아아! 갑자기 균열이 아닌, 또 다른 공간이 찢어지며 그 속에서 한 팔이 튀어나왔다. <군단기 – 비월> 덥석! 그녀의 손이 붙잡혔다. 그리고 뭔가 말할 새도 없이, 그 억지로 벌어진 공간의 틈으로 끌려갔고. 촤아아아아-! 다시 천년향의 겨울숲으로 돌아왔다. 어어서 ‘덥석’ 하는 소리와 함께- 따듯한 품이 느껴졌다. “로레인.” 군단이 몰아치며 불사의 군대와 싸우는 겨울숲에서. 푸른 머리의 소년이 그녀를 안은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번엔 안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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