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31화 쿠구구구구구! 코랄 리치들의 일제사격 이후, 리치들이 액자 안으로 돌아갔다. 주위에 전개된 액자들도 빠르게 시몬이 쥐고 있는 하나의 액자로 모여들었다. “후흥! 훌륭한 공격이다!” 호란 장군이 감탄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걸로 확실히 진현왕을 무력화했을…… 음?” 액자를 어깨에 낀 시몬이 호란 장군의 팔을 잡아끌며 달리기 시작했다. 호란 장군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모처럼 공격을 성공시켜 놓고 어딜 가는 것이냐? 후흥!” “무력화는커녕 해체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시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죽음을 부여하지 않는 이상 어떤 공격도 무의미합니다. 천년향의 심장을 찾으러 가죠.” 시몬과 호란 장군이 바쁘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한바탕 코랄 섬광이 몰아친 뒤의 뿌연 연기 속에서. 터업. 팔 하나가 재생되어 바닥을 짚었다. 어느새 코랄 섬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퍼즐 모양의 구덩이가 생겨 있었고, 그 안에서 진현이 긴 머리를 흐느적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왜 이해를 못 하는 거야?]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그녀가 발을 들어 올렸다. [무슨 수를 써도 너희는 못 이긴다니까!] 쿠웅! 그녀의 발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지면이 타락의 힘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방금과는 위력도 속도도 달랐다. 타락의 영토가 가공할 만한 속도로 360도 전 방향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호란 장군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후흥! 뛰어야 한다 시몬!” “지금! 뛰어요!” 시몬과 호란 장군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이 도약하는 거리보다 타락의 영역이 퍼져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미 그들의 착지 지점까지 타락이 확산되어 있었다. 호란 장군의 다리가 지면에 닿기 직전, 시몬이 한 손으로 호란을 붙잡은 뒤 몸을 회전시키고 뒤쪽으로 지팡이를 내밀었다. ‘발사!’ 후콰아아아악! 코랄 섬광이 뒤쪽으로 발사됐고, 그 반동으로 두 사람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얼마나 도망치든 소용없어. 왕도 전체로 영역을 퍼뜨릴 생각이니까!] 진현이 광소했다. 그런데 무한히 퍼져 나갈 기세로 확장되던 타락의 영역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멈췄다. 주위가 알록달록한 장난감 마을처럼 변해 있었는데, 그 지점에는 타락이 더 이어지지 못했다. 시몬과 호란이 그쪽으로 가뿐히 착지했다.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웃었다. “나이스 타이밍, 메리다.” <메리다 오리지널 - 몽유도원도(夢遊挑源圖)> 제4군단장, 유령왕녀 메리다가 주위 반경을 모조리 꿈세계로 물들이며 타락의 확산을 저지하고 있었다. “방금 도착한 우리 애들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또각 또각. 유령왕녀를 상징하는 검은 고딕 드레스를 입은 메리다가 하품을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여긴 어떻게든 해볼게.” “부탁한다.” 촤아아아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진현이 퍼즐처럼 무너진 지면을 이끌고 날아왔다. [나랑 놀아줘야지 어딜 자꾸 가려는 거야? 결사 킬러.] 진현이 파편화된 지면을 날려 보냈고, 메리다는 주위에 솟아 있던 장난감 건물을 크게 늘려서 벽처럼 만들었다. 쩌정! 그러나 메리다의 장난감 건물들이 타락의 파편에 부딪히자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시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평소의 방어력이 아니야. 긴 싸움으로 메리다도 지친 건가?’ [왕도에서 그렇게 날 귀찮게 하던 네크로맨서가 너구나?] 진현이 팔을 번쩍 들었다. 그녀의 몸에서 수천, 수만 개의 부적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중심으로 모여 거대한 크기의 노란색 구체를 만들어냈다. [달콤한 꿈째로 날려줄게.] 지형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광범위 공격. 그러나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시몬이 아니었다. 손에 든 액자를 좌우로 10개씩 펼쳐놓고, 그 안에서 리치들이 고개를 내밀고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금이야, 신사들!” 주위가 보랏빛으로 일그러지며 코랄 섬광이 쏟아졌다. 들어 올린 진현의 팔이 찢어지고, 몸통에 구멍이 뚫렸지만 진현은 여전히 태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에이, 이제 그런 공격으로는……] 펄럭! 그 순간 진현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녀가 말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검은 용이 긴 목을 비틀듯 내밀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군단기 - 일악(一惡)> 화아아아아아악! 검은 브레스가 쏟아졌고. 동시에 시몬도 본인이 가진 가장 큰 마정석을 공중으로 던지고 있었다. “부탁해! 미르미즈!” 아공간이 열리고 미르미즈가 마정석을 받아먹더니 검푸른 브레스를 토해냈다. 두 군단장의 최고 화력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불꽃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가라! 시몬 폴렌티아!] “서둘러, 시몬.” 헥토르와 메리다가 시몬을 돌아보며 외쳤다. 두 동료 군단장들이 도와주고 있다. 힘을 얻은 시몬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우린 계속 가죠. 호란 장군님.” “후흥! 아니다!” 꾸욱! 호란 장군이 손에 아대를 착용하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천년향의 장군이다. 나도 이들과 여기 남아 가장 위험한 진현을 상대하겠다. 너는 죽음을 만들어라. 후흥!” 호란의 말에 담긴 결심을 깨달은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맡기겠습니다.” 시몬이 학생회장 코트를 붙잡고 왕도를 향해 달려 나갔다. [……심장을 찾아낼 생각이겠지? 시몬 폴렌티아.] 브레스 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하며, 진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 * * 시몬은 쉬지 않고 달려서 왕도의 궁궐 앞까지 도착했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번졌다. ‘저게 다 뭐야?’ 예전에 봤던 그 고즈넉한 궁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타락의 힘으로 완전히 뒤틀린, 거의 마왕성처럼 변한 요새가 눈앞에 있었다. 인근에서는 키젠 학생들이 태수들이 이끄는 연합군에 합류하며 총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할 시간조차 없던 시몬은 곧장 요새의 성벽을 향해 달렸다. 처억. 척. 성벽 위 불사의 궁병들이 시몬을 발견하고 활을 겨누었다. 곧 하늘에서 화살비가 새까맣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벅! 달리는 길목마다 화살들이 빗발치며 지면에 박혔다. 시몬은 화살의 최대 사거리를 체크한 뒤, 그보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액자를 여러 개로 늘려서 순차적으로 바닥에 고정시켜 놓았다. ‘간다.’ 이제 냅다 성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화살들이 살벌하게 날아왔지만, 체내 칠흑 분화까지 켜고 달리는 시몬은 아슬아슬하게 화살 사이를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이내 성벽을 타고 단번에 위로 올라온 시몬이 마침내 성벽 위의 수많은 불사의 병사들과 맞닥뜨렸다. ‘타겟 체크.’ 시몬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가상의 과녁을 설정했다. 병사들이 몰려오자, 시몬이 손에 든 리치의 지팡이를 휘둘렀다. “자, 신사들. 실력을 보여줄 시간이야.” 명령이 떨어지자, 성벽 위로 올라온 보랏빛 섬광들이 수십 수백 갈래로 나뉘어 불사의 병사들을 꿰뚫었다. 퍼버버버벅! 병사들의 몸이 일제히 노란빛이 일어나며 수복을 진행하거나 해체되어 사라졌다. “잘하고 있어!” 시몬이 성벽을 따라 달리며 마치 포격 지휘관처럼 지팡이를 휘둘러 댔다. 그때마다 보랏빛 섬광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와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시몬은 때때로 지팡이로 광선을 쳐서 궤도를 바꾸거나, 몇 줄기의 코랄 광선을 모아 광범위 포격으로 맞바꾸어 병사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기도 했다. 자유자재의 전투. 코랄 리치의 진가는 긴 사거리와 후방 화력지원에 있었다. 시몬이 지팡이를 휘두르는 곳마다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 해체되어 갔다. “후읍!” 지팡이를 크게 한번 휘두른 시몬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불사의 병사들이 공격을 준비했지만, 시몬이 지팡이를 아래로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저 멀리서부터 무수한 보랏빛 섬광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파이널 살루트(Final Salute)> 쿠구구구구구구! 병사들의 몸에 구멍에 뚫려 해체되거나 무력화되고, 그사이 시몬이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했다. ‘마, 많네…….’ 성내를 가득 채운 병사.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거기에 방금 코랄 섬광으로 머리와 가슴을 잃은 무수한 병사들이 수복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들리나 시몬. 그때 품속의 통신 수정구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얼른 수정구를 들었다. “설마! 아론 교수님?” -그 자리에서 세 발짝 물러서라. 그 말에 시몬이 즉시 옆으로 비켜섰고, 다음 순간 귀가 터질 것 같은 폭발음과 함께 성벽이 박살 나며 커다란 뭔가가 튀어나왔다. 다름 아닌 아론의 언데드 전함이었다.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붉은 언데드 전함이 성벽을 뚫고 나타나 병사들을 쓸어버리며 전진했다. 시몬이 재빨리 뛰어서 전함 위에 올라탔다. 콰콰콰콰콰콰! 세월에 잠식된 천년향의 도사들이 부적을 던져 막으려 했으나, 즉시 언데드 전함에서 아론 특유의 새빨간 스켈레톤들이 사출되었다. 촤아아악! 촤악! 도사들과 지면에 장애물을 깔려는 병사들을 제거하며 전함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사이 한숨 돌리고 있던 시몬의 좌우로, 붉은 스켈레톤 두 기가 다가와 시몬의 양팔을 붙들었다. -꽉 잡아라. 터어어어어엉! 두 스켈레톤이 시몬을 붙잡은 채 공중으로 힘껏 날아올랐다. 단번에 병사들이 가득한 지역을 한참 지나쳐 성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비행 전용 언데드도 아닌데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시몬.” 스윽. 그때 오른쪽에서 시몬을 붙잡고 있는 스켈레톤의 두개골 투구가 열리며, 아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사히 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 “아, 아론 교수님!” “심장을 부탁하마.” 그가 시몬을 공중에서 떨어뜨렸고, 이내 다른 스켈레톤들과 함께 검을 들고 전장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가거라!”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붉은 선이 한없이 그어지며 불사의 군대를 쓰러뜨려 갔다. “감사합니다!” 시몬이 그렇게 외치며 달렸다. 덕분에 생각보다 힘을 아끼며 성 내부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때 이번엔 또 한 명의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귀염둥이! 네 얼굴 옆으로 날아가는 거 잡아! “별야 교수님?” 달리던 시몬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침 자그마한 알약 하나가 날아오고 있었다. 얼굴에 부딪히기 전에 시몬이 얼른 그것을 붙잡았다. -해독제야! 먹어! 시몬이 망설임 없이 알약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왜 해독제를 먹으라는 건지는 바로 뒤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콸콸콸콸콸콸! 뒤쪽에서 오색찬란한 페인트 같은 맹독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시몬이 씩 웃으며 그 위로 점프해서 올라탔다. 별야의 맹독 파도가 내성벽과 장애물을 모조리 녹여 버리며 전진했다. 시몬은 격렬한 맞바람에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계속 가! “넵!” 마침내 흑마법의 힘이 다하며 맹독 파도가 잦아들었다. 시몬은 거의 힘 소모 없이 병사들의 밀집 지역을 통과했다. 이내 다시 달리고 있던 시몬의 시야 끝에. 스윽. 천년향의 궁궐에서 일하는 시종 하나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통신 수정구에서 새로운 음성이 들렸다. -학생회장이 스테이시 세잔으로 인식하는 자가 스테이시 세잔입니다. “!” 그 말을 들은 시몬이 눈을 한 차례 감았다가 떴다. 방금까지 시종의 모습이었던 스테이시의 허수아비 하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스테이시 교수님! 왕도에까지 허수아비를 심어두셨구나!’ 시몬은 허수아비들을 따라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는 지점마다 허수아비들이 손을 흔들며 길을 안내했다. 불사의 병사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허수아비들이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가니 조금의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허수아비가 건물 꼭대기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시몬이 빠르게 두 다리에 칠흑을 모으고는 훌쩍 뛰어올라 그곳까지 도달했다. 이내 허수아비가 역할을 다한 듯 흩어져 사라지고, 시몬은 그 자리에 있던 외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왔다. ‘여기는……!’ 시몬의 눈앞에 천년향 왕의 ‘용상’이 보이고 있었다. [딱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으세요.] 어느새 또 다른 허수아비 하나가 시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시몬이 고개를 돌아보자, 허수아비는 스테이시 세잔의 모습으로 변해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반적인 길로 가면 느려요. 하지만 천년향의 심장이 있는 곳으로 바로 직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죽음’을 만드는 것.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두가 조력하고 있었다. 시몬이 벅찬 마음을 갖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 주세요.”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