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9화 처음 보는 천년향의 군사들. 그리고 갑옷을 입은 거대한 호랑이가 강렬한 콧김을 내뿜으며 시몬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서운 살기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 사람, 강해.’ 시몬이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궁지에 몰린 결사의 일원이 갑자기 버럭 소리 질렀다. “이, 이봐!” 눈이 반쯤 돌아가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상태로, 그는 시몬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잔뜩 긴장했는지 입꼬리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내가 천년향 놈들 증원이 올 거라고 했지? 다 쓸어버리라고 대장!” ‘대장?’ 시몬의 인상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죽음을 눈앞에 두니까 이상한 기지를 발휘하네.’ 천년향 사람들의 시선에는 키젠 학생이든 결사든 똑같은 외부인. 어차피 죽을 거라면 시몬과 같은 편인 척하고 동반 자살을 유도하려는 것 같았다. 지독하다면 지독했다. “노, 놈들이 활을 겨누잖아! 대장!” 시몬에게 그렇게 말한 결사의 일원은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마법진을 펼쳤다. “우리가 먼저……!” 퍼억! 퍽!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적 붙은 화살들이 날아왔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고슴도치처럼 변해 바닥을 나뒹굴었다. 짧은 정적과 흙바람이 한 차례 피어올랐다. “…….” 그리고 호랑이 장군은 여전히 시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가 걸어온다. 갑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걸음걸이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내 말을 들어주기는 할까?’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시몬이 하는 수 없이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처억! 호랑이 장군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예를 취하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리 백성들을 구해준 것을 천년향을 대신해 감사한다. 후흥!” “!” 시몬이 눈을 크게 뜨며 비로소 지팡이를 늘어뜨렸다. “저들과 제가 같은 편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시는 겁니까?” “그렇다.” 그가 쓰윽 뒤를 돌아보았고, 그 방향을 따라 시몬도 시선을 돌렸다. “흐흐흐, 제가 말씀드렸죠?”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로운 모습의 소년이 숲의 그늘 속에서 나타났다. 팔로 뒷머리를 받친 채 능청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 제 말대로 흘러가지 않습니까 장군님. 잔머리 굴리는 걸 좋아하는 결사 놈들이라면, 당연히 제 친구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할 거라구요.” 호랑이 장군이 ‘후흥’ 하고 콧김을 뿜었다. “자네가 제시한 50개의 상황 중 겨우 하나 맞은 걸로 우쭐대다니.” “크읍! 50개라는 말은 좀 빼주셨으면…… 흠흠!” 그제야 시몬의 눈이 반가움으로 커졌다. “딕!” 천년향 군사들 틈에서 나타난 건 다름 아닌 딕이었다. 시몬이 뛰어나갔고 딕 역시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이내 재회한 두 소년이 얼싸안고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다 시몬!”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들의 재회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호랑이 장군이, 가볍게 손을 들어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후흥, 결사의 잔당을 찾아내 제압하고 마을 사람들을 구출해라. 이들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은 아군이니 혼동하지 마라.” “예!” 병사들이 신속한 동작으로 마을을 향해 흩어졌다. 시몬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딕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왕도의 선발대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 그거? 내게 아주아주 중요한 임무가 내려졌거든.” 딕이 코밑을 슥슥 쓸었다. “천년향 국경에서 내려오는 호란 장군의 병력과, 취월봉에서 올라오는 키젠의 본대를 합류시켜서 왕도까지 안내할 것! 마침 호란 장군 쪽부터 만났고.” 푸드득! 하늘에서 새 모양 장난감이 날아와 딕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그가 다른 손에 든 조종기를 조작하자 주변을 맴돌던 새 장난감들이 일제히 그의 발치로 모여들었다. “게다가 너희들의 위치도 미리 파악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쉽게 합류할 수 있었던 거야.” “역시 대단하네.” “딕!” 마침 카미바레즈와 메이린도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달려왔다. 카미바레즈가 손을 방방 흔들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딕!” “네가 왜 여기 있어 멍충아!” 메이린은 바로 잔소리부터 했다. 딕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콧대를 세웠다. “선발대의 전황이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을 때, 별야 교수님으로부터 아주아주 중요한 임무를 받았지! 위기에 빠진 선발대를 구하기 위해 지원군을 데려오라는…….” “보나 마나 또 전장에서 재료 다 떨어져서 빌빌대다가 쫓겨났겠지!” 딕의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고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 호란이라 불린 호랑이 장군이 걸어와 말했다. “후흥! 회포를 푸는 것도 좋지만 그쪽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으면 한다.” “네.” 시몬이 손을 뻗었다. “그 전에,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호랑이 장군이 자세를 낮추고 손을 내려 시몬의 손을 맞잡았다. “나야말로, 우리 천년향의 일에 조력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두 사람이 웃으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 * * 키젠과 천년향 국경 수비대의 협력으로 상황이 모두 정리되고, 마을 사람들은 풀려났다. 사람들은 아직 갇혀 있던 충격에 멍해 있었지만,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키젠 학생들도 산에서 야영을 할 필요 없이 마을에 들어와 호란 장군 군대의 천막을 잠시 빌리기로 했다. “쿠울.” “으으음-”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서로 껴안은 채 자고 있고, 그 옆에 딕이나 다른 학생들도 엎어져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바로 그 뒤로, 시몬과 호란 장군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높으신 분이었네.’ 호란 장군은 천년향의 북쪽 국경을 책임지는 대장군이었다. 천년향의 몬스터를 중에서는 자신이 불사라는 사실을 이용하여 치열하고 악독하게 싸우는 개체들이 있었다. 이들을 막기 위해 큰 요새가 세워졌고, 호란 장군은 자신이 이끄는 불사의 군대와 함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천년향의 북부대공 같은 느낌인가.’ 무한히 일어나는 전쟁을 담당하는 특수성 때문에 이들은 세월에 잠식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고, 정치계에서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러나 흑사곡 태수의 연락으로 왕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전해 들은 호란이, 군을 이끌고 왕도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사실상 현재 천년향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호란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몬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실례지만 혹시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후흥! 얼마든지.” “……혹시 아종족이신 건가요? 얼굴이…….” 호란 장군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미소를 띠곤 한마디 했다. “어디 가서 말하진 말아다오. 고관대작 중에서도 모르는 이들이 있으니.” 그리고 갑옷 안에 손을 넣어 몸에 붙은 부적을 떼어내자. “아!” 분명한 호랑이의 얼굴이 떡하니 튀어나왔다. “천년향에는 사람과 금수의 피가 섞인 자들이 있다. 보통 인간과 다름없지만…… 겉보기에 오해하는 자들이 있다.” “이해합니다. 저희 세계도 흔히 있는 일인걸요.” “어느 세계든 다 사정은 비슷하지 않겠나. 후흥!” 흑사곡의 도마뱀 태수도 같은 이유로 부적의 힘을 통해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시몬은 이제야 의문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란 장군이 팔짱을 꼈다. “오늘은 쉬어가고, 우리는 날이 밝는 대로 왕도로 향해 진현왕을 몰아낼 것이다. 조력해 줄 수 있겠나? 후흥!” “물론입니다.” 시몬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소생을 늦추는 아니마 빈클리스 저주와, 죽음을 만드는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호란 장군도 이를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 “후흥! 우리는 불사의 적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나, 그 저주란 게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진현왕이다.” “네.” 시몬이 고개를 힘주어 끄덕였다. “진현 쪽은 제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스륵- 그때 천막을 걷으며 한 거구의 남자가 쿵쿵 안으로 들어왔다. 전체 6위이자 거인혼혈 샤텔이었다. “시몬. 불침번 중. 이상 없다.” “아, 수고했어 샤텔.” 샤텔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한 발소리로 다가와 불침번 기록판에 서명했다. 그때 샤텔의 시선이 호랑이 얼굴을 드러낸 호란 장군에게로 향했다. 호란 장군이 흠칫하며 얼굴을 다시 가리려는 듯 투구를 쓰려 했지만. “가릴 필요. 없습니다.” 샤텔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아름답습니다.” 샤텔은 그 말을 남기고 천막 밖으로 사라졌다. 시몬도 샤텔에게 인사한 뒤 다시 고개를 되돌렸다. “죄송합니다. 그럼 하던 이야기 계속…… 응?” 이 눈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호란 장군의 얼굴에 살짝 붉은 기가 감돌고 있었다. “후흥! 저 우람한 덩치의 사내는 누구인가? 사내에게 관심이 생긴 적은 처음이다!” ‘……여성분이셨냐고.’ 시몬이 쓰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 * * 다음 날 아침, 왕도로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아보 교수가 이끄는 키젠 학생 85명과, 호란 장군이 이끄는 불사의 국경 수비대 2,000명이 함께했다.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가 아군인 적은 처음이었기에 시몬을 비롯한 모두가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렇게 산맥을 따라 내려가자 새로운 강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또 강이 막히지는 않을까요?” “후흥! 걱정할 필요 없다!” 누구보다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딕의 조언을 받은 호란 장군이 미리 척후병을 보냈고, 산에 마정석 폭탄을 설치하던 결사의 잔당을 소탕해 놓았기에 방해받을 일은 없었다. 이후 모두가 새로운 배에 올라타 왕도를 향해 최단 거리를 향해 이동했다. 강줄기는 점점 넓어졌고, 이제 멀리서 왕도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즈음 호란 장군은 배를 인근에 대자고 제안했다. “후흥! 어차피 왕도로 들어가는 수로는 수문에 막혀 있을 터. 여기서는 육로로 가는 게 낫다.” “그러죠.” 역시 천년향의 장군이다 보니 지리를 정확히 꿰차고 있었다. 그렇게 호란 군대는 군마를, 네크로맨서 학생들은 언데드나 유령마 같은 각자의 이동 수단을 타고 왕도를 향해 진군했다. ‘아.’ 시몬의 표정이 흐려졌다. 왕도는 이미 짙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하늘은 새까만 먹구름 같은 것으로 덮여 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건물 곳곳에 결계가 펼쳐져 있었고 내부에는 불길로 인해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전투가 한창인 모양이었다. “서두르죠.” 모두가 속도를 높였다. 그러는 사이 뒤따라오는 아보가 또 뭔가 잘못했는지 메이린에게 한 소리 듣고 있었다. “후흥, 저 남자.” “?” “조심해라.” 호란 장군이 시몬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나와 네가 처음 대면했을 때, 멀리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이 놀라며 눈을 깜빡였다. “아보 교수님이요? 전혀 몰랐습니다.” “후흥! 시선을 받고 있는 나 외에는 아무도 몰랐을 거다. 만약 네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갔다면, 바로 찢어 죽일 듯한 눈이었지.” 시몬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머리에 커다란 땜방이 나 있는 아보를 바라보았다. 이러나저러나 키젠 교수. 먼저 간 학생들이 걱정되어서 와본 모양이었다. ‘감동이네.’ “후흥…….” 잠시 시몬이 생각에 잠긴 사이, 호란 장군은 저 멀리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샤텔을 촉촉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몬은 그저 난감한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이제 다 왔어!” 메이린의 외침에 학생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숲을 지나 좁은 오솔길을 통과하면 드디어 성벽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모두가 속도를 박차고 나아가는 그때. “…….” 시몬의 시선이 예리하게 변했다. 호란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래 시몬?” “저 앞에.” 메이린의 물음에 시몬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군가 있어.” 좁은 오솔길 앞. 그곳의 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로브 차림에 작은 체구의 소녀가 보인다. 시몬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시몬이 즉각 정지 사인을 냈고, 호란 장군도 손을 들어 병력을 진군을 멈추었다. 한 무리의 군대를 단신으로 막아선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안녕? 마중 나왔어.] ‘진현……!’ 시몬이 이를 악물었다. 궁궐 지하에 숨어서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가장 먼저, 모두의 앞에 제 발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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