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8화 시몬 일행은 배를 타고 왕도로 향하는 걸 멈추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천년향답게 지형의 대부분이 산악 지대였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경사가 가팔랐다. 산행 처음에는 모두들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낙엽과 가을숲을 감상하며 씩씩하게 걸어갔지만. 몇 시간 지나니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고 몬스터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년향의 몬스터들은 보통 두 가지 성격 중 하나였는데, 모든 것에 의욕이 없이 한없이 늘어져 있거나, 아니면 극도로 공격적이거나였다. 시몬 일행을 공격한 건 극도로 공격적인 성향의 표범 같은 몬스터들이었다. 어둠을 틈타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와 학생들을 습격했기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에 이어 산행의 피로까지 쌓인 학생들은 바짝 신경이 곤두선 채로 산을 올라야 했다. 거기에 날이 어두워지니 피로는 더더욱 쌓여갔다. ‘……여기, 근처에 쉴 만한 곳이 있을까?’ 벌써 달려드는 몬스터를 100마리는 족히 상대한 것 같았다. 소생 시간을 늦추는 아니마 빈클리스를 걸고 잡아도 계속 몰려드는 걸 보니, 산 전체에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듯했다. “다들 힘내요!” 그나마 카미바레즈는 여전히 동기들의 기운을 북돋아줄 만큼 활기가 있었다. 그녀는 시몬의 앞에서 열심히 걷고 있었는데, 작은 키로 낑낑거리며 바위 위를 올라가려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힘들게 높은 곳으로 오를 필요는 없잖아, 카미. 옆으로 돌아가도 되는데.” “할 수 있어요!” 바위 위에 한쪽 발을 얹고 ‘하나, 둘’ 하고 숫자를 세던 그녀가 욧차! 하는 소리를 내며 바위 위로 척 올라갔다. 성공한 그녀가 박쥐 날개를 파닥거리며 몸을 빙글 돌렸다. “됐어요 시몬! 앗!” 그녀의 발이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었다. 시몬이 화들짝 놀라서 뛰어가 떨어지는 그녀를 안전하게 붙잡아주었다. “괜찮아?” “……괘, 괜찮아요. 죄송해요.” 그녀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끝이 파들파들 떨리는 걸 보니 다리 힘이 많이 빠진 모양이었다. “카미이!” 그때 과보호 경향이 있는 메이린이 후다닥 뛰어와 카미바레즈를 꼭 끌어안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놀랐잖아! 괜찮아? 안 다쳤어?” “저, 저는 괜찮아요 메이린!” 메이린이 잠시 카미바레즈의 뺨을 부빗거리다가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야영하자. 애들 체력도 그렇고, 더는 무리야.”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학생들 모두 벌게진 얼굴로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뒤처진 사람들을 업고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키이이이이이! 바로 근처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학생의 흑마법이 발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차례 소란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여기서 야영하면 온종일 산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지도 몰라.” “그래두! 결계를 펼쳐놓고 번갈아 불침번을 서면 1/3 정도는 잘 수 있잖아!” “으음.” 아보 교수의 의견을 묻고 싶었지만, 그 또한 뒤처졌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연구자 출신이라 체력이 떨어지는 모양. 시몬은 고심하며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어.” 그때 시몬의 눈이 커졌다. “저기 불빛이다.” “진짜?” 저 멀리 산맥 아래로 희미한 빛이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을인 것 같았다. “됐어! 저기까지만 가자!” 메이린이 활력이 생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위험한 산에 마을이 있을 정도니까, 저기엔 몬스터를 쫓는 방법이 있을 거야! 집에 들어가진 못해도 야영만 허락해 달라구 부탁드려 보자!” “…….” 시몬은 물끄러미 그 마을을 바라보았다. 한밤중에 마을 전체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게 뭔가 찜찜했다. “그것……! 허억! 참……! 후우! 허어억! 좋은 생각…… 이구나!” 시몬과 메이린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보 교수가 지면을 기다시피 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안경은 반쯤 흘러 내려가 있고, 온 머리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머리 위의 땜방이 다른 때보다 유난히 기름지고 도드라져 보인다. “어서……! 하악! 학! 마을로…… 가자꾸나! 흐윽!” 숨넘어갈 듯한 헐떡이는 소리에 메이린이 한심하단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교수님, 아무리 연구자 출신이라지만 체력 좀 키우셔야겠어요. 네크로맨서시잖아요.” “이거……! 허어어억! 면목 없……! 끄윽! 메이린 부회장도 내 나이가 돼보면……!” “얼마나 차이 난다고 그래요!”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사이, 시몬은 가만히 그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주 미세하게 보이는 점 하나가 도움을 구하듯 팔을 흔들다가 뭔가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저랑 몇 명만 먼저 내려가서 마을 상황을 확인해 보죠.” 시몬이 아보를 돌아보았다. “교수님은 학생들을 데리고 천천히 내려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자꾸나!” * * * 같은 시각. “……으음.” 특징 없는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임무를 위해 이곳에 온 결사의 일원은 마을 돌담에 몸을 기대어 가만히 매뉴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군.” “뭐가?” 옆의 동료가 무심하게 물었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불사의 병사가 이렇게 쉽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말이야.” -아아아악! -꺼, 꺼내줘! 여기서 나가게 해줘! 쿵쿵! 쿵쿵! 천년향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 마을 곳곳에는 이질적이고 거대한 목제 감옥이 우뚝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 천년향 주민들이 빽빽하게 갇혀 있었다. “자, 여기 한 명 더 넣으면 이쪽 감옥도 딱 40명.” 결사의 일원 하나가 중년 남자의 등을 걷어차 감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촘촘하게 들어차 있는 사람들 틈으로 남자가 쓰러졌고, 그 틈에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바로 감옥 문이 닫혔다. 쿵쿵쿵쿵쿵! “열어! 열어!” “이거 열라고!” 거의 발작하는 듯한 찢어진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졌다. 결사의 일원들은 태연히 감옥에 검은 천을 덮어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매뉴얼대로 완료.” 결사의 일원 중 한 명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세월에 잠식된 인간들을 한 곳에 가둬놓기만 하면 불사의 군사가 된다는 거지?” “어어, 이대로 하루쯤 푸욱 잘 익혀야지.” 사람을 가둬놓고 마치 요리를 하는 것처럼 태연한 반응이었다. 감옥 안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발작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울먹임, 비명, 고함까지. 단순히 그냥 가둬뒀을 뿐이지만 그 소리가 너무나 참담했다. “어디 어디, 복습해 볼까. 제작 원리는 다음과 같다.” 결사의 일원이 매뉴얼을 들여다보며 읽기 시작했다. “세월에 잠식된 자는 더 이상 시간을 견딜 힘이 없기에, 생각을 멈추고 습관처럼 현재만을 살아간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유를 빼앗긴 채 갇혀 있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 며칠만 가둬놔도, 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미치게 되고, 결국 뇌는 스스로 자아를 놓게 된다.” 그가 매뉴얼에 눈을 떼며 씩 웃었다. “멋지군.” 마을 곳곳에 이런 목제 감옥들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방금 막 감옥을 채운 곳과는 달리,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감옥도 있었다. “이봐, 여기 담당 누구지?” 그때 상급자로 보이는 남자가 걸어왔다. 결사의 일원이 손을 들었다. “접니다.” “중요한 걸 빠뜨렸군.” 달칵. 상급자는 작게 고개를 젓더니, 품에서 아티팩트를 꺼냈다. 그가 손을 대자 아티팩트에서 잔잔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응, 흥, 흐음- 흐으음-] 바로 진현의 음성이었다. 그것을 감옥 앞에 놓아두자, 갇혀서 발작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깜빡했습니다.” “다음부터는 매뉴얼대로 정확히 하도록.” 상급자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저 녀석인가? 이 마을의 유일하게 제정신인 인간이.” 크윽! 마을의 나무에 묶인 채 몸을 들썩이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그는 감옥에 갇힌 마을 사람을 보고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전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가만두지 않을 거요!” “전하?” 그 말을 들은 상급자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자세를 낮춰 청년과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품에서 서신을 꺼내 펼쳐 보였다. “이건 엄연히 너희 왕의 지시다. ‘어명’이지.” “!” “너희들을 모두 개조해서 불사의 군사로 만들라는 명이다.” “저, 전하께서 그럴 리가! 거짓말하지 마시오!” 청년이 울먹이며 발버둥 쳤다. 그의 입에서 튄 침방울이 상급자의 얼굴에 묻자, 그가 쓱 하고 그것을 닦아낸 뒤 뒤쪽에 있던 결사의 일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 줘봐.” “어차피 이놈들 죽지 않습니다.” “상관없어.” 결사의 일원이 창을 건넸고, 상급자는 나무에 묶인 채 들썩이고 있는 청년의 복부에 창을 찔러 넣었다. 푸욱! “끄아아아아악!” 청년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해내며 몸을 비틀었다. 퍽! 상급자가 창을 뽑아 들었다. 복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며 청년이 힘겹게 숨을 헐떡였지만, 얼마 안 가 금방 노란색 실이 번쩍이며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몇 번을 봐도 소름 끼친다니까.” 상급자가 청년을 바라보는 눈에는 혐오와 멸시가 가득했다. “너희 천년향 놈들은 병에 걸리면 그냥 절벽에 떨어져 죽고 다시 소생한다지? 언데드만도 못한 새끼들.” 푸욱! “끄으으읍!” “너희는 그냥 재료일 뿐이야. 병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 감정이니 생각이니 하는 건 필요 없고, 빨리 그 뒈지지 않는 몸뚱이만 남기란 말이다.” 푸욱! 푹! 그 뒤로 상급자는 몇 번이고 창을 찌르며 청년을 가지고 놀았지만, 청년의 몸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상급자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창을 뒤로 던져 버린 뒤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관에 가둔 놈들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하나 열어볼까요?” “그래.” 마을 중심에는 관 여러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여전히 안에서 누군가 몸부림치는 듯 움직이고 있었지만, 일부는 잠잠했다. 세월에 잠식된 정도가 옅어 아직 정신이 남아 있는 자들은 관에 가둬놓고 관리하고 있었다. 달칵! 잠잠한 관 하나를 열자, 한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쓰윽 상체를 일으켰다. 결사의 일원은 그 앞에서 랜턴불을 비추며 상태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익었습니다.” “바로 갑옷 입히고 무기 들려서 왕도로 보내.” 상급자가 말했다. “그쪽에 키젠이 와서 싸우고 있다니까 말이야.” “그렇지.” 그 순간 옆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급자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탈을 쓴 한 소년이 떡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도 막 도착한 참이야.” “너, 너는-!” 상급자는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날아온 주먹에 안면을 정통으로 맞았다. 턱뼈가 망가지고 얼굴이 함몰되듯 찌그러지며, 그대로 공중에서 몇 바퀴 회전하다가 바닥에 충돌해 쿵! 쿵!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스으. 주먹을 내지른 시몬이 자세를 풀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짓을 벌여놓고 멀쩡히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 <본 스피어> <본 프리즌> 시몬이 손끝을 움직이자, 사방에서 에메랄드빛 섬광이 번쩍이며 뼈들이 날아와 결사의 일원들을 꿰뚫거나 돌담에 단단히 고정했다. “적습이다! 전부 나와!” 결사의 일원들이 무기를 꺼내고 마법진을 펼치며 대항하려고 했으나. <피어스 오브 블리자드> 하늘에서 얼음 조각들이 휘몰아치며 그들을 덮쳤다. 일원들이 얼음에 박혀 쓰러지고, 몇몇은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메이린이 외쳤다. “당신들! 절대 용서 못 해!” 촤르르르르르르! 그리고 다른 쪽에서 접근하던 인원들은 카미바레즈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그녀가 목에 두른 빨간 머플러를 풀어 휘두르니 결사의 일원들이 모두 굴비처럼 엮여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어서 난전이 벌어졌다. 시몬은 자유자재로 뼈를 움직이며 결사의 일원들을 쓰러뜨리다가, 이내 숲속으로 도망치는 한 명을 발견했다. 그를 쫓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낮췄다. “한 명도 안 놓쳐.” 터어어어어엉! 시몬이 빠르게 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결사의 일원이 식겁하며 등 뒤로 마법진을 펼치고 마법을 쏟아냈으나 시몬은 발의 움직임만으로 피해냈다. “괴물 같은 자식!” 그가 숲으로 뛰어 들어가려던 순간, 갑자기 우뚝 하고 걸음을 멈췄다. 바로 뒤쫓던 시몬도 그가 왜 멈췄는지 느낄 수 있었다. ‘뭐지?’ 전방에 거대한 존재감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곧이어 숲 언덕에서부터 한 무리의 군마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사의 일원의 눈이 급격히 커졌고,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천년향의 군대인가? 아니, 보통 병사들과는 달라.’ 분명 천년향의 군복을 입은 자들이었으나 표정에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내 군마가 그들 앞에 멈추고, 그 사이로 저벅 저벅 두 다리로 걸어오고 있는, 키가 2미터가 훌쩍 넘는 거구의 장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은 그가 이 군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이 마을에-”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장군. “무슨 짓을 한 거냐.” 불사의 군대는 아닌 것 같았다. 진짜 천년향의 토착 군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시몬은 다른 부분에서 살짝 당황했다. ‘……도마뱀에 이어, 이번엔 호랑이야?’ 흐릿하게 사람 얼굴이 지직거리긴 했지만, 갑옷 위로 보이는 건 틀림없는 호랑이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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