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7화 시몬의 고개가 뱃머리 위쪽으로 향했다. 쏴아아아아아아! 강물의 색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흙탕물처럼 혼탁해진 강을 따라 온갖 잔해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쪼개진 배의 파편들, 찢어진 그늘막, 그 밖에 부서진 온갖 요리 도구들까지. 이를 보는 시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수상시장이……!’ 파괴된 채 떠내려오고 있었다. 강 너머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배가 나아갈수록 강물의 유속이 빨라지고, 잔해들이 많아져서 선체에 계속 장애물이 부딪혀 쌓이기까지 했다. “잔해들을 옆으로 밀어내야 해!” “다들 도와!”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 시작했다. 시몬은 바로 아공간부터 열었다. “부탁해 라미아.” -삐융! 라미아가 폴짝 뛰어올랐고, 뒤이어 아공간에서 거대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바다뱀 언데드가 튀어나와 라미아를 덥석 삼키더니, 강물 속으로 잠수했다. 라미아의 새로운 형태, 수상전에 특화된 ‘메탈 라미아’였다. 촤아아아아! 메탈 라미아가 거구를 이용해 강에서 내려오는 잔해들을 해치며 전진했고, 다른 배들은 그 뒤로 바짝 붙어 이동했다. 메이린이 코를 막았다. “……냄새도 심해. 이게 다 뭐야?” “천년향의 수상시장 잔해야.” 시몬의 말에 메이린이 그를 돌아보았다. “여기 와본 적 있어?” “응, 천년향 사람들은 강을 따라 생활해서 수상시장이 발달했거든.” 떠내려오는 노점 잔해 중에는 낯익은 간판도 보였다. 꼬치구이를 하나 더 얹어주었던 그 친절한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르네랑 신혼으로 위장하고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설마 결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시몬은, 일순 옆에서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방금 뭐랬어? 신혼?” 메이린이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차갑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세르네랑?” 시몬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식은땀으로 뒤통수가 흥건해지며 본능적인 위기를 깨닫고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진짜 신혼인 게 아니야 그런 컨셉으로 잠깐 위장만 한 거야!” “왜 네가 걔랑 그런 걸 했는데?” 무서웠다. 메이린의 1학년 초 시절, 세르네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서 사방에 가시를 세우고 다니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게 말이야…….” 시몬이 빠르게 설명했다. 세르네가 임무에 동행하는 대신 세 가지 요청을 했고, 신혼부부 위장은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이 왕도에 도착했고, 임무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사실을 빠르고 정확하게 육하원칙에 따라 다다다 설명했다. 혹시 지금 콤펠로가 켜진 것은 아닐까? 그런 착각이 들 만큼, 말이 저절로 술술 나왔다. 그제야 메이린의 얼굴색이 약간 돌아왔다. “그냥 임무였으니까 그런 거지?” “다, 당연하지.” 식은땀을 흘린 시몬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말콤과 글렉 크로우가 픽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고생이군.” “천하의 제7군단장도 어쩔 수 없네.” 태연히 그렇게 중얼거리던 두 남자도, 메이린의 시선이 째릿하고 닿자 금방 꼬리를 내리고는 딴청을 피우며 다른 곳으로 갔다. “어어!” “배가 멈춘다!” 이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점점 강물이 얕아지나 싶더니, 급기야 배의 밑바닥이 강바닥에 닿고 말았다. 모두가 놀라며 갑판 위로 뛰어왔다. “강이……!” 강물이 거의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들은 더 나가지 못하고 멈춰 버렸다. [빼우우우우!] 늪에 익숙한 메탈 라미아는 신이 나서 강바닥을 휘젓고 다녔지만, 배로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시몬이 메이린이 수선해 준 탈을 쓴 뒤 나설 준비를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볼게.” “가, 같이 가!” 메이린이 얼른 따라붙었다. 시몬이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고는 메탈 라미아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다른 배에서도 아보 교수와 카미바레즈, 제이미, 신디, 샤텔이 각각 뛰어내렸다. 일행 모두를 태운 채 메탈 라미아가 얕아진 강바닥을 헤엄쳐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 강의 중심부에 산사태가 일어난 모습이 보였다. 산이 통째로 무너져 그 토사가 강을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이러면 건너갈 수 없겠네요.”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메이린이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할 거야, 시몬?” “으음.” 시몬이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늪의 일부를 조종하며 지형을 점검하던 샤텔이 입을 열었다. “내 영역장악. 산을 치울 수는 있다. 하루 내내 일하면 충분히.” 그러자 제이미가 신중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잠깐, 급한 상황이니까 굳이 산을 다 치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배를 들고 산을 넘어서 다시 반대편에 내려놓으면 되잖아.” “근데 저 토사 뒤로도 강물이 없다시피 한데?” 학생들이 여러 의견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 시몬은 그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바로 아까 전에 꿨던, 현실처럼 생생했던 꿈. -대궐에서 왕도로 올라오고 있는 키젠의 움직임도 지체시켰다. 결사의 바스테리온이 분명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그 꿈이 사실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우연히 상황이 맞아떨어진 것뿐일까. 당장은 알 수 없었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얘들아!” 이때, 먼저 정찰을 다녀온 신디 비바체가 손을 흔들며 돌아왔다. “저-어기 멀리까지 싹 토사로 막혀 있어! 강물도 엉뚱한 곳으로 역류하는 바람에 주변 숲까지 범람하고 난리도 아냐!” “그럼 이쪽 강으로는 더 들어갈 수 없겠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인 뒤, 아보 교수를 향해 정중히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보 교수님.”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아보가 흠칫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으음- 하고 멋쩍은 얼굴로 옆머리를 긁적였다. “어어, 음! 그게 말이지. 나, 나는 학생회장의 의견이 더 궁금한걸.” “알겠습니다.” 시몬은 바로 배에서 챙겨두었던 천년향의 지도를 꺼내 펼쳤다. “제가 처음 왕도에 올라갔을 때 길을 안내해 주신 분이 한 말이 있습니다. 천년향에서는 모든 길이 강으로 통한다.” 시몬이 지도의 한 곳을 짚었다. “아무래도 결사가 우리가 접근하는 걸 막으려 이 강을 봉쇄한 모양인데, 천년향의 모든 강을 막지는 못했을 겁니다. 왕도로 향할 수 있는 다른 강줄기를 찾죠.” “그게 어딘데?” 메이린의 물음에 시몬이 손가락으로 지도 위의 한 산맥을 가리켰다. “여기 산 보이지? 이 산맥을 하나 넘으면 새로운 강줄기가 이어져 있어. 우리가 지금 탄 강줄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왕도에 갈 수 있지.” 시몬이 지도의 강을 짚고는 손가락으로 쭉 선을 그으며 올라갔다. “배를 아공간에 넣고 산을 넘어서, 저쪽 강줄기를 타고 이동하자.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야.” “여, 역시 학생회장이군! 나도 같은 생각이란다!” 아보 교수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손뼉을 치고 나섰다. 메이린과 다른 학생들이 미묘한 눈빛을 보냈지만, 아보는 개의치 않고 팔을 뻗었다. “흠흠! 자, 이동하자꾸나.” * * * 한편. 천년향 왕도. 쿠쿠쿠쿵! 콰콰콰콰콰쾅! 왕도 앞 거리는 온통 불길과 연기,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무수한 불사의 군대가 장비를 갖춘 채 저벅 저벅 전진하고 있었고, 곳곳에 도망치는 주민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허억! 헉!” 그리고 철제 바리케이드 뒤에 몸을 숨긴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키젠 남학생이 있었다. “헉……! 헉! 미치겠네! 내가 왜 여길 자원했지?” 다름 아닌 딕 헤이워드였다. 맹독 가스가 든 포션병을 불사의 군사들을 향해 던진 그가, 이제는 텅 비어버린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가져온 모든 맹독 포션과 발명품들이 다 떨어져 버렸다. “시몬이 위험하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손을 들긴 했는데…… 하아아아.” 선발대에 지원한 건 무슨 자신감이었던 걸까. 아마 취업평가 때 최전선에서 장교로 활약했던 경험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겠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머리를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천년향의 불사의 군대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도술과 부적을 이용한 공격 때문에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적들은 불사의 힘 때문에 죽지 않고 계속 소생하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이쪽의 전력이 갉아먹히고 있었다. 진작에 패배해 왕도에서 물러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버티는 건 저 사람들 덕분인가.” 딕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붉은 언데드 전함. 그 아래로 무수한 스켈레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 선두에서 붉은 스켈레톤을 입은 채 적진을 휩쓸고 있는 남자. 소환학 교수 아론 데이아였다. 스켈레톤을 바꿔 끼며 싸우니 수일 밤낮으로 싸워도 멀쩡했다. “꺄하하하하하!” 지상에서는 맹독학 교수 별야가 ‘천변만화’를 사용한 채 알록달록한 독극물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적진을 돌파하는 것만으로도 다수의 천년향 병사들이 해체되어 쓰러져 가고 있었다. -끼리릭! 끼릭! -뾰옹! 뾰옹! 그 주위로는 수많은 장난감 병정과 인형들이 앞으로 나아가며 방어선을 사수하고 있었다. 4군단장 유령왕녀 메리다도 여기에 있었다. 뾰옹. 뾰옹. 딕이 멍하니 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장난감 곰돌이 인형 하나가 다가와 장난감 무기를 건네주었다. “어? 어어, 이거라도 쓰라고? 고, 고맙다.” 뾰옹! 곰돌이 인형이 기운차게 통통 튀어서 전장으로 복귀했다. “어쩔 수 없지!” 딕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리케이드 위로 장난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트 모양 화살이 발사되어 불사의 병사에게 명중하자 펑! 소리와 함께 폭발하며 저 멀리 날아갔다. 딕이 다시 몸을 숨긴 채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이제 진짜 한계라고. 으으…….” 터업! 그때 딕이 숨어 있는 바리케이드 너머로 알록달록한 페인트가 묻은 손이 나타났다. “어이! 뺀질이!” “우왁!” 딕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다가온 별야가 삐쭉삐쭉한 상어 이빨을 내밀며 히죽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맹독에 바리케이드가 녹고 있었다. “교수님! 독! 독!” 딕이 독극물이 튀어서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떨어지자 식겁하며 소리쳤다. 별야가 ‘응?’ 하는 표정을 짓더니 ‘아’ 하고 웃었다. “꺄하하! 미안 미안! 싸우는 중이라 몰랐네!” 그녀가 힘을 갈무리했다. 그 와중에 별야를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들은 그녀의 몸에 닿자마자 모조리 녹아내리고 있었다. 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키젠 교수.’ “그보다 뺀질이! 대궐에서 온 따끈따끈한 소식이야.” 그녀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우리 귀염둥이 시몬, 살아 있다더라.” “진짜요?” 딕이 우오오! 하고 두 팔을 파르르 떨며 한 차례 탄성을 토해냈다. 이내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역시! 역시!’ 하고 기뻐했다. “제가 뭐랬어요! 살아 있다니까요!” “그래, 어쨌든 반격의 기회가 왔어. 네게 새로운 임무를 주마!” 새로운 임무란 말에 딕이 두 팔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 “저 이제 정말 칠흑이 바닥이라……!” “대궐에서 시몬이 이끄는 키젠의 주력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하네! 그 녀석들 안내해서 후딱 이리로 데려와!” 비로소 딕의 눈에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 맡겨주십쇼 교수님! 어떤 하드한 미션이라도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전투만 아니면요!” “나도 할 이야기가 있소.”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딕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피가 흥건한 갑옷을 입은 남자. 모두에게는 보통 얼굴로 보이지만, 시몬에게는 도마뱀으로 보였던 바로 그 흑사곡 태수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만 지원군이 있는 게 아니오. 우리 천년향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소. 사악한 진현왕을 함께 몰아낼 수 있을 것이오.” “지원군이요?” 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군대는 싹 다 진현이 장악한 거 아니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세월에 잠식됐거나.” “국경 수비대가 있소.” 흑사곡 태수의 눈빛이 단호하게 빛났다. “천년향 최강의 군대지. 그들이 온다면 이 전세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르오.” “어허, 전세를 바꾸는 건 내 베프죠.” 딕이 으스대며 어깨 펴고 말했다. “시몬 폴렌티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모든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남자! 그 녀석만 돌아오면 우리는 그야말로……!” “시끄럽고!” 별야가 냅다 뭔가를 딕의 입에 넣었다. 자랑스럽게 친구 자랑을 늘어놓던 딕이 입에 뭔가가 들어가자 웁웁 소리를 내며 휘청거렸다. “뭐, 뭡니까 갑자기!” “해독제!” 별야의 발끝에 맹독이 꿀렁이며 모이기 시작했다. “잘 다녀와라!” “자, 잠깐만요! 우와아아아악!” 딕의 몸이 알록달록한 페인트색 물살에 휘말려 저만치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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