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93화 차세대 유령왕녀를 뽑는 면접이 시작되었다. 시몬은 교내 방송을 통해 서류에 통과한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한 뒤, 테네리페가 있는 로체스트 디저트 가게로 집결하라고 지시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류에 합격한 여학생들이 앞다투어 가게 안으로 몰려들었다. “진짜 유령왕녀님이셔!” “어떡해!” 다들 가게에 앉아 있는 테네리페를 보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테이블에 앉은 테네리페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자 ‘꺄악!’ 하는 행복에 겨운 비명이 쏟아지기도 했다. 시몬이 힐긋 테네리페를 바라보았다. ‘역시 전설적인 군단장은 다르네.’ 그런데 그녀의 표정에는 묘한 괴리감이 있었다. 지원자가 많이 와줘서 웃고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웃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일단 시몬이 주도해서 후보 여학생들을 테이블에 다섯 명씩 앉혔다. 모두가 설렘 가득한 얼굴로 턱을 괴거나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있잖아, 시몬!” 반대편 테이블에서 엘리사가 숨죽인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유난히 신나 보였다. “테네리페 님이 내 이력서 보시고 뭐라고 하셨어? 깜짝 놀라셨겠지? 셀린 가문의 여식이 지원했다면서!” 시몬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크게 별말 안 하셨는데.” “에이! 그럴 리가 없…….” “아, 시작한다.” 잡담은 여기까지. 드디어 유령왕녀 테네리페가 모두의 앞으로 나왔다. “반가워 키젠 학생 여러부운!” 촤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테네리페를 중심으로 무수한 유령들이 튀어나오더니 디저트 가게 주위를 빙빙 부유했다. 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4군단의 유령군단!’ ‘빅 레이스에 오블 밴쉬도 있어! 하나하나가 강력한데?’ 자신이 군단장이 되면 이런 것들을 숫자의 한계 없이 다룰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이 설레고 들뜬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타압. 테네리페가 손을 모으는 시늉을 하자, 유령들이 모조리 한 방향으로 모여들더니 사라져 버렸다. “다들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이렇게 모여줘서 고마워! 하지만 나와 유령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여기서 딱 한 명이야.” 여학생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대륙에 여섯밖에 없는 군단장이 되기 위한 자리다. 과연 이 앞에 어떤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압박 면접? 암살 임무? 갑자기 여기서 ‘서로 싸워라’ 하는 난장판 서바이벌이 될 수도 있다. 다년간 키젠의 극단적인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어떤 상황이든 각오하고 있었다. “다들 내 털갈이 시즌에 유령궁을 맡아줄 ‘유령왕녀’의 대타를 지원하러 온 거 맞지? ……물론 군단장이라는 이름만 보고 왔겠지만 말야!” 유령왕녀의 말에 몇몇 학생이 움찔한 표정을 짓거나 슬쩍 웃어 보였다. “군단장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지만 그에 따른 의무가 있어! 지금부터 유령왕녀가 지켜야 하는 의무와 제약을 설명할 거야. 혹시 못 버티겠다거나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자리에 일어나서 돌아 나가면 돼.” 고작 그 정도? 다들 얼굴이 펴졌다. 어떤 시험이나 고난도 버틸 자신이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앉아서 설명만 들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설명 시작할게! 내가 머무는 유령궁은 매시 매분 매초마다 망령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야. 그곳의 망령들이 궁 밖으로 빠져나가 대륙을 위협하는 걸 막는 게 유령왕녀의 일이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걸 막으려면 왕녀가 직접 유령궁의 기운을 억누르고 억제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 왕녀가 반드시 유령궁 내부에 남아 있어야 한단 거야. 휴가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어. 죽을 때까지 유령궁이라는 끔찍한 지옥을 온몸으로 틀어막는 생체 결계가 되는 거지.” 그 말에, 처음으로 학생들의 웃는 얼굴에 하나둘 균열이 생겼다. “그럼 여기 있는 나는 뭐냐고? 이건 엄밀히 말하면 인공육체 ‘호문쿨루스’에 내 영혼을 옮긴 것뿐이야. 내 본체는 지금도 유령궁을 억제하고 있지! 만약 나를 잇게 된다면, 너희도 이렇게 해야 해. 물론 적응에 시간이 걸리니까 20년 정도는 인공육체도 쓰지 못한 채 그냥 유령궁에 박혀 있어야 할지두 몰라!” 몇몇 학생들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테네리페는 이 어린 학생들이 지금까지 살았던 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유령궁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알지? 영혼이랑 육체를 분리한 채 다른 몸에 옮기면 진짜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정신적 부작용들이 밀려온다는 거! 영혼 우울증, 신체 이탈 증후군, 분리성 정체성 장애같이 겪어야 할 정신적 문제들이 300가지가 넘어! 자해나 자살 시도 같은 건 일상인걸! 그리구 특히…….” 테네리페가 떠벌떠벌 설명을 이어가는 도중. 드르륵. 모두가 눈치를 보는 가운데 제일 먼저 한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랑은 안 맞는 일이네.” 1학년 A반 동기 중 하나인 신디 비바체였다. 조용히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갔다. 드르륵. 드륵. 처음 신디가 스타트를 끊으니 곳곳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 유령왕녀는 예상했다는 듯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흥.” 엘리사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콧방귀를 뀌고는, 시몬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쟁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건 늘 보기 좋네. 이 한 몸 얼마든지 혹사당해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권력이야.” 테네리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리구 이 호물쿨루스도 부품 갈아끼우둣 계속해서 신체 기관 바꿔야 한다? 눈 같은 거 자주 고장 나서 불편해!” “영혼은 결국 육체를 닮아가. 나 스스도 이제 내가 사람이라기보다는 기계나 유령 같은 거라고 생각되더라? 가끔 본체로 돌아가면 진짜 몸이 무겁고 인체가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 수 있어. 숨 쉬는 것도 까먹어서 안 쉬었다가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지!” 드륵. 드르륵. 질린 듯한 표정을 지은 학생들이 점점 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기 시작한다. “음식? 먹을 수 있긴 한데, 후각은 없고 미각이 목구멍에 조금 분포되어 있어서 거의 맛 못 느껴! 그래도 그 정도라도 있어서 먹는 낙으로 지내긴 해! 아, 소화기관이 간소화되어 있으니까 디저트 먹고 화장실 가면 먹은 그대로 뭉쳐진 채 나오거든? 그거 가끔 맛보면 똑같은 맛 나서 맛있어!” 인류애를 상실하는 이야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부서지는 이야기. “특히 털갈이 시즌에는 진짜 볼꼴 못 볼꼴 다 보는데, 특히 냄새가……!” 학생들은 모두 군단장의 힘과 위용이나 권력과도 같은 것들만 보아왔다. 특히 학교에서 시몬이나 헥토르 같은 현역 군단장들이 활약하는 걸 봐왔으니,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좋은 면만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시몬은 배신의 군단장으로서 2년간 지독히 정체를 숨겨왔고, 헥토르 또한 던전에서 여러 복잡한 일을 겪은 뒤에야 반쪽짜리 군단장이 됐다. 유령왕녀의 자리 또한 마찬가지, 아무리 군단장이 좋다지만 유령왕녀의 자리는 너무 리스크와 제약이 많았다. 스스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라는 이야기였다. “막 내 몸에서 피가 쏟아지는데 기분 좋더라구! 아, 빨리 내 몸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나구! 아, 이거 폐문 증후군이다! 무서워 무서워! 아무튼 세상의 법칙과 어긋난 채로 살면, 세상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이건 또 무슨 병이더라? 까먹었다.” 그녀가 머리를 벅벅 긁적이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그럼 이제 걸러질 만큼 걸러졌지?” 휘이잉- 어느새 이곳에는 단 네 명만 남아 있었다. “인간은 정치와 권력 인간은 정치와 권력 인간은 정치와 권력.” 기도문처럼 문장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는 엘리사 셀린. “…….”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가 보이는 표정의 에슈 아르젤. 그리고 나머지 2학년 둘이었다. “좋아! 이야기는 여기 끝. 혹시 질문 있니?” “에슈 아르젤입니다.” 에슈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테네리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왕녀가 되면 돈은…… 많이 벌 수 있겠죠? 저희 가족이 사정이 안 좋아서…….” 헤헷. 유령왕녀가 웃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니 눈물겹네! 하지만 돈을 벌어도 영영 가족을 제대로 못 볼 텐데, 그런 게 네 부모님에겐 더 큰 아픔이 아닐까?” “…….” 결국 에슈도 울먹거리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남은 건 세 명이다. “더 질문 없니?” “엘리사 셀린입니다.” 엘리사가 애써 웃으며 손을 든 뒤, 반쯤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신 것들 다 과장된 거겠죠? 지원자들을 압박해서 떨어뜨리고 진정으로 강한 멘탈의 소유자만 남기시려는 큰 그림! 맞죠?” 테네리페가 훗 하고 웃었다. “과장? 솔직히 말하면 다들 겁부터 집어먹을까 봐 쬐끔 약하게 말하긴 했는데.” “…….” “어쨌건, 그럼 이제 마지막 시험이야!”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테네리페가 스피릿을 일으켰다. 주위로 살벌한 기운이 퍼져 나가자 시몬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강렬한 스피릿은 처음 봐!’ 그녀가 두 손바닥을 펼쳤다. “잠깐 유령궁에서 겪어야 할 것들 맛이나 보게 해줄게! 이걸 버티면 합격이야!” 촤아아아아아!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스피릿 덩어리가 유령의 형태로 바뀌더니,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세 학생의 몸에 꽂혔다. 그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더니, 털썩 털썩 책상에 엎어졌다. 시몬이 당황하며 다가갔다. “진정해, 폴렌티아 후배. 그냥 유체이탈을 시킨 것뿐이야.” 테네리페가 뭔가 손을 써보았는지, 갑자기 쓰러진 여학생들의 몸 위로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통으로 보이는 희미한 무언가였다. 그것의 형태가 마구 뒤죽박죽 움직였는데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워 보였다. 시몬은 초조하게 기다렸고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수고했어!” 그녀가 팔을 휘젓자, 영혼이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엘리사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아, 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제 팔을 움직여 보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왕녀가 손을 들었다. “앞으로 수십 년 내내 겪어야 할 걸 한 시간 정도만 맛보게 한 거야. 그래도 대단한데? 혹시 너희들 중에…….” “죄송해요. 못 하겠어요.” 엘리사가 눈물 콧물을 펑펑 쏟으며 도망치듯 떠났다. 각자 필사적인 사연이 있어 보이던 다른 2학년 두 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이곳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 단 한 명의 후보자도 이곳에 남지 않았다. 유령궁에 갈 사람은 없었다. “으음- 예상은 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테네리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많은 지원자들을 보고 웃었을 때부터,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싶었다. “어쩔 수 없네. 요즘 애들은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니까. 아, 나두 그렇긴 하지!” “괜찮으신가요? 왕녀님.” “응?” “그런 일들을 겪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단 뜻이잖아요.” 그녀가 자신을 가리켰다. “나?” “네.” “아! 혹시 날 생각해 준 거야? 정말 기뻐!” 그녀가 꺄르르륵 웃었다. 웃을 때마다 스피릿에 얽힌 기운이 강하게 퍼져 나가 무섭게 들리긴 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나야 태어날 때부터 유령궁에 있을 운명이었으니까 그러려니 생각했어. 그래도-” 그녀가 척 손을 세웠다.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 아닐까?” “…….” 그 말을 들은 시몬은 테네리페가 유령왕녀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소 괴짜에 비틀린 성격이라도, 그녀가 대륙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는 건 엄연히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털갈이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죠?” “그럼 평소 하던 대로 해야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구 아직 내 임무 안 끝난 거 알지?” “물론입니다.” 그녀를 도와 성공적인 털갈이를 하도록 돕는 것. 그게 바로 시몬의 임무였다. “대체할 사람을 못 찾았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같이 유령궁으로 와줘야겠어, 폴렌티아 후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털갈이를 마지막까지 도와줘.” “임무니까요. 알겠습니다. 대신 임무가 길어지니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시몬은 마누스와 마검에 대해 이야기했다. 꽤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후훗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검을 쓰는 언데드라! 나한테도 도전적인 일이 될 것 같은데? 어렵겠지만 임무만 완수한다면 책임지고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시몬은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최강의 사령술사를 구하라는 조건. 일이 풀리려니 또 이렇게 풀린다. “아,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키젠에 온 김에 한 명 더 지원군을 요청했어!” 그 말을 들은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유령궁에 같이 갈 사람이 생기다니, 좋은 소식이었다. “누구죠?” 그녀가 흐흐 웃었다. “시몬 폴렌티아 못지않은 강자, 라던데?” * * * 하아아아암. 오늘도 눈을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주위에는 쌩쌩 찬바람이 불어왔다. “피곤해.” 민트색 머리카락의 그녀는 바닥에 드러누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새근새근 졸기 시작한 그녀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퍼질러지듯 누워 있었다. 고요함. 강력한 슬립 저주가 도시에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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