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92화 시몬 학생회는 즉각 팜플랫과 전단지 제작을 시작했다. 디자인은 카미바레즈가 맡았고, 딕이 앞장서서 문구를 확정한 다음 교내 신문부가 이용하는 로체스트 인쇄소에 가서 전단지를 다량으로 뽑았다. 그리고 완성된 전단지를 본 시몬은 조금 당황했다. “……이건 너무 과장광고 아냐?” <차세대 유령왕녀는 누구? 제4군단장이자 유령궁의 주인인 테네리페 경이 키젠에서 다음 후계자를 뽑습니다!> <유령궁 파견 임무, 숙식 제공. 3학년의 경우 임무 점수 제공!> <테네리페 경 직접 면접! 조건은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세요.> “자, 시몬, 딱 하나만 묻을게.” 딕이 진중하게 표정을 굳혔다. “네 의뢰자인 왕녀님의 요구 사항이 뭐였지?” “……최대한 많은 인원을 데려오란 거?” “바로 그거야! 의뢰자의 요구 사항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게 가장 좋은 일 처리라구! 그리고 우리가 틀린 말을 쓴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살짝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털갈이 시기에 테네리페를 대신하는 유령궁 임무가 메인이고, 후계자 선정은 그에 따라오는 부차적인 부분인데 완전히 거꾸로 되어버렸다. “왕녀님이 직접 면접도 하신다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때 설명해 주시겠지.” “……그래, 그렇다면야.” 그렇게 학생회 멤버들 전원이 흩어져서 캠퍼스 곳곳이나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광장, 분수대, 로체스트 거리에 전단지를 붙였다. 시몬도 방금 제작된 뜨끈한 전단지를 몇 장 가지고 소환학과에 들어왔다. “어, 시몬 안녕!” “시몬 학생회장 선배님! 어서 오십시오!” 동기와 후배들의 인사를 받으며 시몬은 웃는 얼굴로 눈인사했다. 그러고는 곧장 학과 알림 게시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뭐야? 뭐 들고 왔어?” “학생회에서 또 뭔가 벌이려는 것 같은데.” 소문과 정보에 민감한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바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시몬은 전단지를 게시판 중앙에 깔끔하게 붙인 뒤 물러섰다. 와아아아아아아! 미친! 곳곳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시몬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쓰게 웃었다. “대박! 제4군단장이 될 기회라고?” “차기 유령왕녀를 뽑는대!”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은 이 놀라운 소식을 다른 동기들에게 전하러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렇게 소식통들이 올라간 지 1분 만에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수많은 학생들이 계단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차기 유령왕녀?” “무조건 가야지! 심장 떨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에슈를 비롯한 여학생 무리에게는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젊은 여성 네크로맨서들에게 유령왕녀는 로망이었다. 유령왕녀는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온 전설적인 존재인 건 물론, 유령왕녀와 타국 왕자의 구구절절한 로맨스는 지금도 회자되는 고전이었다. “회장! 이거 진짜야?” “유령왕녀님은 어디 계셔? 혹시 공고만 붙여놓고 한눈파시는 건 아니겠지?” 학생들의 물음이 온통 시몬에게 쏟아졌다. 시몬이 손바닥을 펼치며 웃어 보였다. “지금 로크섬에 와 계실걸? 일단 나도 만나보기는 했는데.” 꺄아아아아악! 폭발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좋아하는 학생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을 가리며 울먹이는 학생까지. 저벅 저벅. 그때 마침 헥토르가 목에 수건을 두른 채 기숙사 건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목에 땀방울이 흥건하게 맺혀 있는 걸 보니 밖에서 고된 훈련을 마치고 온 것 같았다. “헥토르! 지금 난리 났어!” “제4군단장 유령왕녀가 새로운 후계자를 뽑는대!” “……?” 이건 뭔 개소리냐는 듯 헥토르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내 그가 직접 다가가 게시물을 확인했다. <차세대 유령왕녀는 누구? 제4군단장이자 유령궁의 주인인 테네리페 경이 키젠에서 다음 후계자를 뽑습니다!> “내 말 맞지?” “잘하면 키젠 329기에서 군단장이 셋이나 나올 수 있겠는데.” “이 정도면 황금세대가 아니라 군단장 세대 아니냐.” 픽. 그때 게시물을 모두 읽은 헥토르가 냉랭한 비웃음을 흘리더니 수건을 어깨에 짊어지고 말했다. “헛꿈 꾸지들 마라.” “……?” “군단장이 그리 쉽게 자신의 군단을 양도할 거라고 생각하나? 이용당한 뒤 버려질 게 뻔하다.” 저벅 저벅. 그는 김이 샜다는 표정으로 위층 계단으로 걸어갔다. 파벌 학생들이 바로 따라붙었다. 그중 여자 파벌 학생이 말했다. “헤, 헥토르! 나 지원할 건데 괜찮지? 응?” “마음대로 해라. 개인 선택이다.” 헥토르와 파벌들이 떠나고, 그를 싫어하는 몇몇 학생들이 숨죽인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자기는 죽을 둥 말 둥 별짓 다 해서 군단장 됐는데, 남은 정식적인 절차로 날로 먹으려니까 샘난 거겠지.” “맞아. 6군단은 정식 위임이 아니었으니까 에이션트 언데드도 없잖아.” 어쨌거나 소문을 들은 학생들이 계속 내려와서 게시판 앞은 발 디딜 틈 없었다. 반응이 이 정도로 뜨거울 줄은 몰랐다. 소환학과가 이 정도인데, 아마 사령학과 쪽은 거의 기숙사가 발칵 뒤집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떻게 본다면 유령왕녀는 수많은 사령학과 전공생들의 롤 모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럼 기다려 볼까.’ * * * 드디어 서류 접수 당일이 되었다. 서류 접수는 학생회에서 직접 맡기로 했다. 여기서 서류평가 후에 결격자들을 걸러내고 남은 인원만 4군단장 테네리페에게 데려갈 생각이었다. “이쪽이야. 아서!” “예! 선배님!” 용병왕 아서가 양어깨에 책상을 하나씩 짊어진 채 걸어오고 있었다. 꽤 크고 무거운 책상이었는데 조금도 힘들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앞에는 카미바레즈와 치엘라가 열심히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10분 전이네. 서두르자.” 메이린은 앞에 팻말을 붙여놓은 뒤 딕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기서 여기까지, 선 일자로 쭉 그으면 돼.” “맡겨주셔!” 딕이 방금 막 제작한 붉은색 용액으로 학생들이 줄을 설 수 있도록 선을 쭉 그었다. 처억. 척. 그리고 줄 끝에는 책상과 의자가 세팅되었다. 오른쪽에는 시몬이, 왼쪽에는 카미바레즈가 앉았다. “1분 전!” “다들 준비됐지?” 메이린이 묻자 멤버들 전원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연다!” 그녀가 학생회관 건물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밖에서 사람들이 홍수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힘에 밀려서 벽에 부딪힌 메이린이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여기 후보 서류 넣는 곳 맞지?” “나! 나! 신청하러 왔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다들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신청자들 중에서는 시몬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특히 제일 먼저 온 한 소녀. “시몬 학생회 다들 안녕!” 1학년 A반 출신 동기인 신디 비바체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나 왔어! 어떻게 이런 기회가 나한테 올 수가 있지? 히히!” “진정해.” 역시 신디 비바체는 무조건 올 줄 알았다. 입학 전부터 사령학을 선행학습 했을 만큼 사령학에 진심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다소 의외의 인물이 있었는데, 무안한 듯 빼꼼 고개를 내민 여학생이 있었다. “반장!” “다, 다들 안녕.” 키젠 3학년인데도 여전히 반장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제이미 빅토리아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난 저주학과긴 하지만…… 군단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반장! 어깨 펴! 네크로맨서가 강해지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지! 뭘 그리 눈치를 봐?” 신디가 제이미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제일 먼저 서명을 했다. “다 비켜! 비켜!” 갑자기 멀리서 소란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유명인이 온 모양이었다. ‘아하.’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한 한 사람. 멀리서 뛰어왔는지 숨을 헥헥 헐떡이며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오는 한 여학생이 보였다. “왔구나, 엘리사.” 전체 7위, 유령함대의 엘리사 셀린이었다. 인파를 헤치고 넘어온 그녀가 꺄하하하! 웃었다. “시몬 폴렌티아! 네게 잘 보이려 빵을 가져다 바치는 것도 오늘로써 끝이다! 나는 군단장이 될 거야! 유령군단을 가질 거야!” “응, 기대할게. 그리고 빵은 안 사 와도 된다니까.” 최대의 적수 등장에, 뒤에 있던 학생들이 경계하듯 웅성거렸다. “유령함대에 셀린 가문까지 있으면서 4군단까지 가지려 한다고?” “욕심 많네.” “다 들리거든!” 엘리사가 벌게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삿대질했다. “유령궁은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거점이야! 암흑연합에서 거두어진 거액의 분담금이 매달 유령궁으로 전달되지! 가만히 있어도 돈이 썩어날 만큼 불어난다는 건데, 셀린 가문과 합쳐지면 어떤 시너지가 나겠어?” 요란한 목소리로 일갈한 그녀가 제 뺨을 감싸며 헤실헤실 웃었다. “거기에 이번 보상으로 받는 건 다름 아닌 그 유명한 유령군단 전체야! 거기 포함된 에이션트 언데드도 셋이나……! 함대 정도야 얼마든지 버릴 수 있어!” “야.” 1학년 시절부터 엘리사의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린이 다가와 뒤를 가리켰다. “새치기하지 말고 제일 뒤로 가서 줄 서.” “뭐? 내가 왜? 나는 이제……!” “뒤로 가라고.” 메이린이 싸늘하게 중얼거리자 엘리사가 입술을 삐쭉인 채 투덜투덜거리며 뒤로 걸어갔다. ‘쟤는 맨날 나한테만 그래’ 하고 소심하게 중얼거렸지만 메이린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지가 벌써 유령왕녀인 줄 알아.” 메이린의 일침에 곳곳에서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어쨌거나 서류 접수는 계속되었다. 대부분 열정 넘치거나 진지한 태도로 유령왕녀가 되려고 온 여학생들이 많았지만, 애초에 자격이 미달되는 학생들도 있었다. “있잖아 회장, 사실 내가 1학년 1학기에 사령학 듣고 3학년 1학기에 다시 듣고 있거든. 이러면 서류 접수 가능한 거 아냐?” “미안해. 사령학 수업 1년 이상 수료가 왕녀님이 밝히신 조건이라서.” “어떻게 안 될까? 응?” 일단 떼를 쓰고 보는 사람. “내가 유령왕녀님을 만나서 설득해 볼게!” 조건이 충족되진 않았지만 면접만 보게 해달라며 절실한 마음에 일단 와본 사람도 있었다. 시몬은 잘 타일러 보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뒤에서 서슬 퍼런 눈으로 대기하고 있는 얼음여왕이 있었다. “설득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가!” 메이린의 일갈을 들은 여학생이 입술을 삐쭉이며 돌아갔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건. “……아, 안녕하세요오.” 낯을 가리듯 꾸벅 고개를 숙인 두 여학생이 시몬과 카미바레즈 앞에 섰다. 시몬이 옷깃을 가리켰다. “안녕. 배지 착용 안 하고 왔어?” “저, 저희 사실은…… 1학년들인데요.” “응?”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시몬을 비롯한 학생회 멤버 전원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저어, 그게……! 건방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1학년이라는 이유로 군단장이 될 기회를 포기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실력을 보일 기회를 주셨으면 해요! 저희 사령학과 지망생이고……!” 아직 철들지 않은 1학년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때는 천하의 메이린도 조금 난감해하고 있었다. 시몬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제인 교수님이 정하신 부분이라 학생회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사이. “이 미친 것들!” 소문을 들은 같은 1학년인 치엘라가 발끈하며 뛰쳐나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니들 몇 반이야!” “치, 치엘라!” “선배들 앞에서 1학년 망신이야 진짜! 교수님들 허락도 안 맡았지?” 바로 동기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학생회관 밖으로 질질 끌고 가는 치엘라였다.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던 딕이 배를 잡고 끅끅 웃어댔다. “오늘의…… 끅끅! 명대사 나왔네! ‘니들 몇 반이야!’ 올해 일학년들은 진짜 전설이다…….” 메이린은 나름 귀엽게 봐주는 듯 미소 지었다. “그래도 저런 승부욕 강한 애들이 키젠에서 끝까지 살아남긴 해.” 혼낼 수도 있었지만 이제 막 보호기간 끝난 애들이 뭘 알겠는가. 3학년들은 귀엽다며 넘어갔다. 2학년들은 개념 없다는 둥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3학년 선배들이 웃어넘기니 마찬가지로 넘기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든 서류 접수가 끝났다. * * * 학생도시 로체스트.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느니라.” 자리에서 앉아 한숨을 쉬며 차를 마시는 여성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제2군단장, 진 아르스칼트였다. “후계자를 만들라고 연합에서 그렇게 요청했을 때는 내정간섭이라며 무시하더니.” “히히히!” 그 옆에 마주 앉은 건 유령왕녀, 테네리페였다. 그녀는 당근 케이크를 작게 한 스푼 떠서 입에 넣더니 ‘음!’ 하고 온몸으로 맛있음을 표현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뭐 어때? 원래 좀 내가 대책이 없잖아?” “……왕녀!” “그리구, 나 후계자 있긴 했거든? 털갈이 기간에 팍 죽어버려서 그렇지.” 그녀가 한숨을 쉬며 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이번 키젠 애들은 엘리트니까 기대가 커! 잘 버텨줬으면 좋겠다! 헤헤!” 벌컥!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걸어왔다. 진과 테네리페 모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시몬은 두 군단장 선배에게 묵례로 인사한 뒤 앞에 섰다. “여기.” 시몬이 서류를 내밀었다. “신청자 목록입니다.” “와아! 많다! 너무 고마워!” 유령왕녀가 팔랑팔랑 프로필을 넘겼다. 시몬이 태연히 말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유령궁에서 하는 임무가 어떤 거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정확히 전달해 주셔야 합니다.” 테네리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촤라라락! 모든 프로필을 가볍게 훑어본 왕녀가 몸을 일으켰다. “폴렌티아 후배가 알아서 잘 골라 왔겠지! 그럼 한 시간 뒤에 바로 면접 시작해 볼까?”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서 바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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