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5화 “녹시에타스(Noxietas)!” 소년 소녀들의 수많은 손끝에서 흑마법이 발현되자, 세계가 준동하기 시작한다. 마치 하늘에서 은총을 내리듯, 천년향에 퍼져 있는 저주가 학생들의 마법진으로 모여들었다. 스스스스스-! 세계에 걸려 있는 저주를 받아들인 마법진의 색과 형태가 점점 변화한다. 학생들은 마법진의 방향을 불사의 군대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지금이야!” 메이린의 외침과 함께 마법진의 중심으로부터 수많은 저주들이 줄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녹시에타스 연계 – 아니마 빈클리스> 마치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전장을 뒤덮은 회색 저주가 불사의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그들의 몸에 칠흑이 일렁이며 그림자가 역류하듯이 위로 솟아올랐다. 이것이 저주가 제대로 적용된 상태임을 알려주었다. “후속 공격 시작해!” 메이린의 다음 지시에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장거리 공격과 폭격에 능한 칠흑역학과 학생들, 그중에서도 원소계 네크로맨서들이 제일 먼저 나섰다. <다크 플레어> <다크 프로미넌스> 그들의 손끝에서 검은 화염이 발사되고, 맹독학과 학생들이 그쪽으로 포션병을 던졌다. 마법에 포션병이 터지자 검은 화염은 기름에 불을 붙이듯 한층 더 맹렬하게 불타올랐고, 그것이 불사의 군대 밀집 지형에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쿠쿵! 콰콰콰콰콰쾅-! 불사의 병사들이 연쇄 폭발 속에 휘말렸다. 가히 압도적인 위력에 중심부에 있던 병사들은 즉시 ‘해체’되었고, 폭발 반경에 벗어나 단순 화상을 입은 병사들은 ‘수복’을 시도했지만, 불은 잘 꺼지지 않고 계속 붙어 있었기에 후속 해체로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의 눈이 빛났다. ‘먹힌다!’ 처적! 척! 예상치 못한 화력 공격에 불사의 병사들도 움직임을 바꾸었다. 활을 내리고 창과 방패를 앞세운 채 무서운 속도로 학생들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점점 재미있어지는데!] 두 주먹을 맞부딪힌 글렉 크로우가 우렁차게 포효했다. [마투학과 가보자!] “우오오오!” 최전방에 있던 마투학과 학생들이 본대에서 분리되어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군세 간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고, 금방이라도 선두끼리 격돌하려는 순간. <글레이셔 바인드(Glacier Bind)> 준비 중이던 메이린의 초광범위 흑마법이 발현되었다. 냉기가 한 차례 적진을 휩쓸며 선두에 있는 불사병들의 발이 얼어붙었다. 뒤따르던 병사들이 앞쪽의 아군과 부딪히며 대열이 흐트러졌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투학과 학생들이 칠흑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부웅! 부우우웅! 학생들이 중무장한 선두 병사들의 머리 위를 넘어가 경무장한 병사들 사이로 낙하할 준비를 마쳤다. <칠흑 체내 분화> 그들 모두가 시작부터 분화를 발동했고. <취타> <흑의> <천흉원기> 터어어엉! 퍼어어어어엉! 내부로 파고들어 적진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다들 알지?” 마투학과의 리강 초프라가 외쳤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당연하지!” 이어지는 난전. 마투학과 학생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적의 신체 내부를 폭발시키거나, 목을 날리거나, 침 같은 소도구를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글렉 크로우 같은 변신 계열의 학생들은 적을 문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머리와 몸통처럼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부위를 따로 분리해 방치하면, 불사의 병사들도 결국 수복하지 못하고 해체가 진행된다. “가자!” 다른 학과 학생들도 질세라 맹공을 퍼부어댔다. 맹독학과 학생들이 대량의 맹독을 쏟아내어 불사의 병사들의 몸을 뼈째로 녹여 버렸고, 혈류학과 학생들은 적의 출혈을 이용해 피를 변질시키는 방식으로 싸웠다. 지난 1주일간 학생들은 모두 죽음을 연구했다. 모두가 불사의 적을 상대로 어떻게 수복을 뚫고 ‘해체’에 이르게 하는지 완벽히 학습한 뒤였기에,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었다. <샤텔 오리지널 – 영역반전> 새로운 세계에서의 전투였지만, 역시나 가장 활약을 하는 학생들은 Top10이었다. 샤텔이 다량의 흙을 일으켜 병사들을 생매장시켰고. <메이린 오리지널 - 글레이시아(Glacia)> 메이린은 거대한 얼음의 질량으로 상대를 흔적도 없이 짓이겼다. <카미바레즈 리메이크 - 콜 템페스트> 카미바레즈는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어 자신을 중심으로 피의 회오리를 일으켰다. 병사들이 회오리에 빨려들어 가자 미리 말을 맞춰둔 학생들이 회오리에 저주를 덧씌웠다. 이내 카미바레즈가 흑마법을 해제하자, 휘말린 모든 불사의 병사들이 저만치 튕겨 나가 지면에 낙하했다. 저주의 중력 효과로 전신이 박살 나며 강제 ‘해체’되기도 했다. “우리도 가자!” “여기서 전부 꺼내!” 거기에 소수정예로 본대에서 빠져나와 적진의 후방으로 급습해 들어간 소환학과 학생들이 언데드들을 모조리 소환했다. 수십 명 남짓한 인원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으로 바뀌며, 적진의 후방을 강타하는 것으로 시선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압도적인 공세로 전투가 시작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불사의 군대 전체 병력의 절반 가까이가 빠르게 무력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는 틀림없이 놀라운 성과였다. 그러나. “허억! 헉!” “이, 입에서 신물이 날 것 같아!” 이 작전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지나치게 많은 체력과 칠흑을 소모한다는 것. 불사의 병사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힘이나 질량으로 한 방에 확실히 끝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여력을 과소모할 수 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메타모포시스에 칠흑 체내 격화까지 운용하느라 늑대인간 변신이 반쯤 해제된 글렉 그로우가 숨을 몰아쉬며 불사의 병사의 머리를 뜯어내 날렸다. 그가 바로 다음 적을 공격하려 했지만, 상대 병사의 ‘저주’가 풀린 걸 알고는 급히 방어 자세를 취해 내질러지는 창을 막아냈다. “저주학과 뭐 해! 녹시에타스 제대로 안 쓰냐!” “이 녀석들도 소생 지연 효과가 안 걸렸어!” 처음에는 모두가 함께 녹시에타스를 사용한 뒤에 돌진했지만, 현재는 저주학과 학생들만이 녹시에타스를 전담하고 있었기에 모든 병사들에게 골고루 저주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녹시에타스의 숙련도와 칠흑 투여량이 각기 달라, 저주가 풀리는 시간도 제각각이라 계산이 틀어졌다. 녹시에타스를 이용한 ‘아니마 빈클리스’ 상태가 아니라면 불사의 병사를 해체시켜도 사실상 의미가 없기에, 최대한 저주가 걸린 상태로 잡는 게 이번 전투의 지침이었다. “미안! 우리도 한계야!” 저주학과를 이끄는 반장 제이미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저주를 조금씩 걸어서 도와줘!” “지금 안에 들어가 싸우는 것도 한계인데 무슨 저주까지…… 커헉!” 한 남학생이 부적이 붙어 있는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다른 학생들이 뛰어와 재빨리 그를 부축해 전장에서 물러났다. 부상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강력한 ‘엘리멘탈 버스터’를 쏟아내던 메이린이 외쳤다. “다들 긴장 늦추지 마! 조금만 더 버텨!” 촤아악! 말하기 무섭게 또 한 명의 학생이 칼에 베이며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모습을 본 메이린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와 얼음의 벽을 일으켜 불사의 군대 진입을 차단했다. “소환학과 애들이 시간을 좀 끌어줘! 부상자부터 빼내!” 그녀가 학생회장 코트를 휘날리며 달려가 소리쳤다. “그리고 꼭 아니마 빈클리스 상태가 아니더라도 일단 당장 적 숫자를 줄이는 게 중요해! 공격을 멈추지 마!” 이탈자가 생기자 머릿수가 부족해졌다. 소환학과가 아닌 다른 학과의 학생들도 좀비나 언데드 등 본인의 언데드를 꺼내 버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텨!” “우리가 이기고 있어!” 그래도 키젠 3학년은 3학년. 모두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끝까지 싸우고 있었다. 위기에 순간에 빛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장기전에도 뛰어난 거인혼혈 샤텔 마에르가 지형을 계속해서 바꾸며 적을 생매장하고 있었고, 아보 교수도 최대한 자신의 푸른 피 마법으로 적을 막고, 호문쿨루스들을 보내 부상자 학생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구출해 내고 있었다. 이제 적의 수가 거의 다 줄어들어 간다고 생각할 즈음. 투둑, 툭. 허공이 다시 한번 퍼즐 조각처럼 쪼개지며, 그 틈으로부터 심연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아- 아아아아- 아아아-! 타락의 구원자, 진현의 목소리. 마치 지옥의 아리아와도 같은 그 노랫소리에, 상황이 급변했다. 꾸드드득! 꾸득! 불사의 군사들이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리거나 머리가 먼 곳까지 날아가는 등 ‘해체’의 조건이 성립된 병사들이, 갑자기 해체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에이 씨, 이게 뭐야!” 머리가 사라진 채 일어나는 몸. 피부가 벗겨지고 뼈는 덜렁인 채 근육만 남아 움직이는 몸까지. 움직일 수 있든, 움직이지 못하든, 불사의 군사가 거의 언데드처럼 변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모두 물러서!” 그들은 연결된 신체 부위가 없어도 움직였다. 절단되어 떨어져 나간 팔이 무기를 들고 휘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메이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심하잖아!’ 그래도 이쪽은 상대가 아무리 이성이 없다고 해도 사람이니,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려고 노력했다. 반면 타락의 구원자는 자신의 백성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메이린! 등 뒤 조심해!” 퍼어어억! 한 동기의 외침에 메이린이 뒤를 돌아보며 커다란 빙하를 보내 병사의 몸을 꿰뚫었다. 그러나 몸통에 크게 날아가 해체되어야 할 병사가 그대로 팔을 휘둘러 메이린의 얼굴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녀가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창끝이 그녀의 눈을 향해 날아왔다. ‘이건 못 피하는……!’ 그 순간. 번쩍 하고 무언가 지나가며 주위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허공에 일직선으로 금이 그어진 듯한 잔상이 남았고, 그녀를 노리던 창끝이 반쪽 나서 날아가고 있었다. 털썩. 메이린이 엉덩방아를 찧은 채 덜덜 떨리는 눈으로 병사를 바라보았다. 몸통이 날아간 병사가 제 부러진 창을 보더니 내던지고 그녀에게 다가왔으나, 이어지는 보랏빛 섬광이 그의 머리까지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설마……!” 메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고오오오오오오! 저 멀리 후방에서, 여전히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커다란 액자를 들고 있었다. 피온을 연상케 하는 멋들어진 모습에 메이린의 심장이 쿵쿵 뛰었으나, 얼른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자, 잠깐만! 네가 나서면 안…… 응?” 하지만 알고 보니, 시몬은 본래의 지침대로 후방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메이린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렇게 먼 거리에서 어떻게……!’ 거기에 그의 주위에는 액자들이 펼쳐져 있고 무수한 지팡이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후우우우.] 시몬의 몸에 리치의 본아머가 철컥거리며 입혀지고, 그 위로 칠흑이 일렁이며 의복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것은 지금의 암흑연합에서도 클래식해 보이는 고전 정장이었다. 그가 긴 숨결을 내뱉으며 지팡이을 세워 들고 새로운 흑마법을 발현했다. “다들 가자.” <더 젠틀맨스 어코드(The Gentleman's Accord) - 신사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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