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4화 ‘어떡하지 어떡하지?’ 카미바레즈는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하게 동굴 입구를 오갔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어떻게 할지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데, 무너진 동굴 입구에서 하얀 뭔가가 쏘옥 튀어나온 게 보였다. “아?” 그 하얀 가죽 같은 것에서 시몬의 칠흑을 느낀 그녀는, 곧바로 달려가 양손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쭈욱! 쭉! 하지만 뒤로 쭉 늘어나기만 할 뿐, 바위에 깔려 완전히 뽑히진 않았다. “금방 꺼내줄게!” 카미바레즈가 손바닥을 펼치고 칠흑을 끌어모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동굴 벽을 터치했다. <홍펭 오리지널 – 박서> 단단한 동굴 암벽이 일순 모래처럼 부드럽게 변하더니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바로 이 틈에 카미바레즈가 하얀 가죽을 붙잡아 힘껏 당겼다. 쑤욱-! 그것이 당근처럼 뽑히고, 균형을 이기지 못한 카미바레즈가 콩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재빨리 자신이 뽑은 것을 확인했다. “알라제!” 말라비틀어진 하얀 고블린의 거죽. 그것은 다름 아닌 시몬의 에이션트 언데드 알라제였다. 카미바레즈가 그것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알라제 맞지? 어떻게 된 거니? 시몬은 어디 있어?” [연구 성공…… 하지만 군단장…… 무너지는 암벽…….] “아, 안 돼!”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카미바레즈가 동굴 벽을 향해 외쳤다. “시몬―!” “좋은 아침이야 카미.” 그녀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시몬이 세상 평온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눈 밑에 연한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고, 옷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카미바레즈가 쪼르르 달려갔다. “무,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시몬! 낙석에 깔린 줄 알았어요!” “사실 깔린 거 맞아.” 시몬이 태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시몬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동굴에서 리치들과 훈련을 하다가 코랄 섬광의 화력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동굴이 무너졌고, 그대로 암벽에 짓눌리고 말았다. 하지만 시몬은 이제 불사의 존재. 팔다리가 부러지든 뼈가 가루가 되든 그의 몸은 즉시 수복되었고, 이어서 무너진 암벽을 박살내며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불사의 몸이라 아무 걱정 없어서 좋네.” 시몬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알라제에게 칠흑을 부여했다. 알라제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다시 원래의 하얀 고블린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때.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카미바레즈가 빼앵 외쳤다. “으, 응?” “좀 더 본인의 목숨과 몸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아무리 불사가 됐다고 해도 그런 생각은 안 돼요!” “그, 그렇지. 미안해.” 결국 혼나고 말았다. 시몬이 머쓱하게 옆머리를 긁적였다. 불사의 존재가 된 지 불과 며칠이었지만, 시몬은 자신의 정신과 사고도 불사의 육체에 맞춰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지 않는다. 그 사실 때문에 마음이 편해진 건지, 감각이 둔해졌다. 불사를 얻기 이전이었다면 산이 무너지는 순간에 분명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암벽이 무너지면서도, 몸이 산산조각 나면서도, 그저 태연하게 있었다. ‘불사를 얻은 지 며칠 만에 이런 기분인데, 이런 상태로 100년, 1,000년이 지난다면…….’ 시몬이 자신의 주먹을 꾹 쥐었다. ‘세월에 잠식되는 게 당연해. 서두르자.’ * * * 드디어 ‘왕도 원정’이 시작되었다. 상황이 급박했기에 출정식 같은 형식적인 절차는 모두 생략되었다. 혈류학 교수 아보 벨스만이 인솔하는 키젠 학생 90명. 그들이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대궐에서 출발했다. 그 구성은 학생회장 시몬을 위시하여, 현재 대궐에 남아 있던 Top10 중에 5위 메이린, 6위 샤텔, 9위 클라우디아, 10위 카미바레즈가 참가했다. 그 밖에 피츠제럴드, 말콤, 신디, 제이미 등등 네임드급 학생들도 대거 합류했다. 원래는 헥토르 또한 참가하려고 했으나, 전투 중 날개의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비행이 불가능했기에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개별적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헥토르의 비행 속도라면 왕도에서 하루 이틀 만에 합류할 수 있으리라. ‘든든하네.’ 시몬이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 많은 동기들과 함께하는 대규모 원정은 또 처음이었다. 각자 언데드, 골렘, 유령마 등 네크로맨서다운 다양한 이동수단을 탄 채 이동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 원정에서 다소 우려스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덜덜! 사령관이자 인솔 교수인 아보 벨스만이 다소 못 미더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담감 때문인지, 유령마에 올라탄 그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창백해진 얼굴로 나아가고 있었다. “괜찮을 거예요, 교수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동용인 커다란 전갈 언데드 위에 올라탄 시몬이 한마디 하자, 아보가 다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잠시 후. 우웨엑! 속이 안 좋아졌는지 급히 유령마에 내려서 근처 풀숲에 몸을 숙였다. “결국 토하시네.” “……아무리 생각해도 홍펭 교수님이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리더가 다소 못 미더우니 지켜보는 학생들도 수군거렸다. 이제 동기들은 모두 시몬만 보고 있었고, 사실상 이 군대의 리더는 시몬이 되었다. ‘곤란하네.’ 시몬이 머리를 긁적이며 쓰게 웃었다. 뒤에 탄 카미바레즈는 시몬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그 뒤쪽인 세 번째 자리에 올라타 있는 메이린은 혼자서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짠! 다 됐다!” 메이린이 환하게 웃으며 손에 쥔 것을 들어 보였다. 시몬이 물었다. “그게 뭐야?” “천년향의 전통 탈인가 봐! 대궐 방에 걸려 있는 걸 내가 수선했어!” 그 탈은 천년향 전설 속 괴물, 뿔 달린 도깨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메이린이 그것을 시몬의 얼굴에 씌워주었다. 카미바레즈가 감탄하며 짝짝짝 손뼉을 쳤다. “멋있어요! 그리고 귀여워요!” 시몬이 탈을 쓴 채 메이린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탈은 왜?” “아직 타락의 구원자는 네가 어떻게 됐는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잖아.” 메이린이 콧대를 세우며 검지를 좌우로 휙휙 흔들었다. “그러니까 계속 모르게 하려고. 우리의 가장 강력한 카드를 숨겨두는 건 전술의 기본이야.” “그,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나도 동의한단다.” 앞에서 사령마를 몰고 가고 있던 아보가 여전히 속이 안 좋은지 힘겨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 사령관으로서 정체를 숨기도록 명령을…… 아니, 부탁하마. 숨겨다오.” 시몬이 쓰게 웃었다. “평범하게 명령하셔도 괜찮습니다.” “시몬! 나 왔어!” 이번엔 위에서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더니, 스피릿 형태의 귀와 꼬리를 매단 신디 비바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찰 담당인 그녀는 두 다리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거꾸로 내려와 보고했다.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어.” “수고했어, 신디. 그럼 좋은 소식부터 들어볼까.” 신디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한쪽 팔을 펼쳤다. “조금만 더 가면 네가 말했던 그 강이 보여.” “다행이네. 강만 도착하면 왕도까지는 금방일 거야.” “하지만 나쁜 소식은-” 신디가 표정을 굳혔다. “전방에 대규모 불사의 군대 발견. 강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있어. 숫자는 2천쯤?”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보고를 들은 시몬이 생각에 잠겼다. “……어쩐지 대궐에 대한 공성을 멈춘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시몬이 산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병력을 강 앞에 집중시키고 있었네.” 이건 분명히 전술적인 움직임이다. 놀랍게도 진현은 세월에 잠식된 사람들을 군사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재에만 안주하고 같은 일상만 반복한다. 단순히 그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무장한다고 해서 불사의 군대가 되는 게 아니었다. 타락의 구원자 진현은 이들을 모종의 방법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교수님.” 시몬의 물음에 아보가 흠칫하더니, ‘나?’ 하고 되물었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와 신디, 그리고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그게…… 어어, 음-” 식은땀까지 흘리며 한참을 고민하던 아보가 슬쩍 시몬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위에서 신디가 자그맣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말을 이었다. “이건 시간 싸움입니다. 타락의 구원자가 점점 더 많은 세월 잠식자들을 불사의 군대로 만들기 전에, 천년향의 심장이 있는 왕도로 올라가야 합니다. 선발대를 구해야죠.” 그의 고개가 산 너머로 향했다. “그러니 강을 확보해야 합니다. 빙 둘러 돌아가도 적은 계속 쫓아올 테니 강을 지키고 있는 적을 직접 무너뜨리고 돌파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소생’에 대응할 수단도 있으니까요.” 시몬의 단호한 목소리에, 주변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그,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보도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그렇게 작전이 결정되었다. “시몬.” “응?” “이번 전투는 우리에게 맡겨.” 메이린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네가 나서면 바로 정체가 발각될 테니까. 지휘를 부탁해.” “……음, 그러네.” 시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고는 어깨에 걸치고 다니던 검은색 학생회장 코트를 꺼내 그녀의 어깨에 살며시 둘러주었다. “어?” 메이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속일 거면 확실히 해야지.” 시몬이 그녀의 목 부분 단추를 직접 채우며 말을 이었다. “내가 없다면, 부회장인 네가 학생회장 직을 맡는 게 맞지 않을까?” “아, 으, 응. 그러네!” 메이린은 코트에 배인 시몬의 냄새 때문인지,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신디가 ‘워어’ 하고 외쳤다. “믿습니다! 메이린 회장 만세!” “놀리지 마!” 지켜보던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한층 긴장이 풀렸다. * * * 이제 메이린이 학생회장 코트를 휘날리며 앞으로 걸어왔다. 남학생 용이라 사이즈가 다소 크긴 했지만, 교복 위로 멋들어지게 두른 코트가 퍽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90명의 키젠 전력이 숲에서 빠져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강 하류 앞은 개활지였다. 그리고 강 앞을 지키고 있는 불사의 군대는 무기를 든 채 멍하니 자리에 멈춰 있었다. “자, 모두 계획했던 대로 움직이는 거야.” 전투를 결심한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메이린이 팔을 뻗으며 외쳤다. “돌격 개시!” “가자아아아아아!” 학생들이 함성을 쏟아냈다. 모두가 불사의 군대를 향해 비탈길을 따라 강 하류로 내려갔다. 그런데. “저 사람들…….” “안 움직이는데?” 불사의 군대는 그대로 멍하니 멈춰 있을 뿐, 여전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찬스다!] 부대 선두에 선 마투학과 학생들 중 가장 앞에 있는 글렉 크로우가 늑대인간으로 변한 채 외쳤다. [이대로 한번에 쓸어버리자고!] 선두를 맡은 마투학과 학생들이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엘리멘탈 마스터’를 발동하고 하늘에서 오로라 빗자루를 탄 채 날아가던 메이린이 눈가를 좁혔다. ‘뭔가 이상해.’ 바로 이때. 투둑! 하늘의 일부가 퍼즐처럼 툭, 두둑, 깨져 나가더니, 그 안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으음- 음- 으으음- 으으음- 타락의 구원자, 진현의 음성. 노래가 시작되자 정지해 있던 불사의 병사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마치 지면에 쓰러져 있던 꼭두각시 인형에 실이 붙는 것처럼 무기를 부여잡기 시작했다. “다들 서두릅시다!” 유령마에 올라탄 채 최선두에 선 아보 교수가 벌벌 떨며 외쳤다. “아직 전부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퍼억! 그때 정면으로 날아온 화살이 아보의 얼굴이 꿰뚫었다. “교수님!” 곳곳에 비명이 터져 나오고, 아보의 몸통이 유령마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주인을 잃은 유령마가 앞다리를 들며 ‘히히힝!’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다들 진정해!” 주위가 어수선해지자 메이린이 확성 수정구를 켠 채 단호하게 외쳤다. 전장을 주시하는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나며 한쪽으로 향했다. 불사의 군대 무리 안에서, 한 남자가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활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탈을 쓰고 사자갈기 같은 주황색 머리털이 길게 자라나 있는 걸 보니 천년향의 정예병인 ‘금군’이었다. ‘금군도 한두 명 섞여 있구나.’ 메이린이 이를 악물었다. 당황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계획대로 저주를 사용할 수 있는 거리까지 들어갈 거야! 계속 움직이자!” 그녀의 지시에 맞춰, 학생들은 전열을 유지한 채 전진했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액! 그사이 불사의 군대가 일제히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메이린은 즉시 지팡이를 들어 새로운 흑마법을 발동했다. 머리 위에 쓴 오로라를 엮어 만든 듯한 마녀모자가 웅웅 빛나기 시작했다. <엘리멘탈 배리어> 오색찬란한 원소들이 모이며 키젠 모두의 머리를 덮는 결계가 펼쳐졌다. 날아온 화살들이 배리어를 통과한 순간, 그대로 불타서 잿더미가 되거나, 꽁꽁 얼어붙어 힘을 잃고 떨어지거나,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모두가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며 달렸다. 메이린이 통신 수정구를 들고 외쳤다. “아보 교수님도 엄살 그만 부리시고 선두로 와주세요! 어른이시잖아요!” -……그, 그러마. 어느새 또 다른 아보가 나타나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유령마에 올라타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나 선두로 내세운 건 호문쿨루스였던 모양. 이내 화살 세례를 지나 저주의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키젠 학생들이 팔을 뻗었다. 모두가 사용하는 저주. 개인적으로 발현하는 듯 크기가 작은 저주 마법진도 있었고 여럿이 힘을 합쳐 큰 크기의 저주 마법진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저주 마법진은 저주학과의 제이미 빅토리아를 위시하여 클라우디아, 신디가 함께 만드는 마법진이었다. 이내 모두가 각자의 박자와 타이밍으로 외쳤다. “녹시에타스(Noxietas)!” 소년 소녀들의 수많은 손끝에서 흑마법이 발현되자, 세계가 준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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