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46화 시몬은 앞서 도시 팀이 수색한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유리테스파의 잔당이 숨어 있거나 텅 비어 있는 곳일 뿐, 비브론 본인을 찾아내진 못했다. ‘생각보다 도시가 넓어.’ 해안에 위치한 중립지대의 도시는 ‘오르자바’만 있는 게 아니다. 가장 번화한 중심 도시 오르자바를 기점으로, 해안선을 따라 여러 크고 작은 어촌 마을이 점처럼 배치되어 있다. 베히모스는 이런 해안가의 마을들에 동시다발적으로 출몰하고 있으니 비브론의 위치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웅! 그때 긴급 연락망인 통신 수정구가 반응했다. 시몬은 인적 없는 길거리를 걸으면서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즉시 여학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는 기네비어! 회장? 들리면 대답해! “들려, 기네비어. 무슨 일이야?” -상황 보고할게! 혈류계 마법으로 추적한 끝에 첸드라와 조원 3명을 무사히 구출했어! 나이스! 시몬은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짝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섰다. 계속 긴장하고 신경 쓰였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그 패거리가 진짜로 키젠 학생을 처형할 배짱이 있었을지 없었을지는 모르지만, 무사하다니 다행이었다. -다들 부상을 치료하고 있어. 그리고 첸드라가 결사의 대장과 싸운 뒤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냈는데……. 잠깐! 무리하지 마. 아, 네가 이야기하겠다고?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소리가 바뀌었다. -첸드라다. 힘겨운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면목 없다. 결사의 우두머리를 찾아내고도 못 잡아서. “아니야, 첸드라. 정말 수고 많았어.” 시몬이 달래듯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과의 실력 차는 절감했다. 그래도 간단히 당할 수는 없었으니 혈흔에 혈독, 저주까지 모든 부정한 것들을 녀석에게 뒤집어씌웠는데…… 정확히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흔적마저 깨끗이 사라졌다. “음?” 시몬은 첸드라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깨달았다. 저주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술들이 있다. 현대의 네크로맨서들은 저주에 칠흑을 실어 발사하는, 쉽고 빠르며 효과가 확실한 저주를 선호하지만 과거로 갈수록 주술이나 오컬트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첸드라는 이런 종류의 고전저주와 기물 소환수 통제에 능했다. -지나치게 깨끗해. 내가 걸어둔 그 어떤 종류의 힘도 반응하지 않아. 당장 프리스트의 정화마법을 몇 시간 동안 때려박아도 이 정도로 깨끗하게 흔적이 지워지진 않을 거야. “……으음.” -일단 녀석과 싸우면서 내가 본 것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할게. 시몬도 비브론과는 이미 한 번 싸워봤다. 그래도 이번엔 네 명의 키젠 학생이 싸우다가 당했으니 시몬이 미처 몰랐던 다양한 데이터가 남았다. 이내 첸드라가 그것을 종합하여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말했고, 시몬에게도 상당히 참고가 되었다. 결사는 미지의 적. 그들은 미지의 기술력과 특수한 이능으로 무장하고 있다. 아락무라드전에서처럼 정보 수집은 필수적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이 가네. 고마워, 첸드라.” -솔직히. 통신 수정구로부터 잠시 망설이는 듯한 정적이 이어진 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별로 널 좋게 보진 않았다. 아무리 대륙의 위기라지만 씻을 수 없는 배신의 죄를 가진 사람을 이렇게 중용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처럼 네가 우리 편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첸드라의 목소리에는 무력감과 분함의 감정이 물씬 배어 나와 있었다. -부디 꼭 결사를 잡아줘. “당연하지.”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뒤는 내게 맡기고 쉬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툭.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슈와 토토가 첸드라의 이름을 외치면서 시끌시끌해졌다. 시몬은 통신을 종료하고 고개를 들었다. ‘조각은 모두 갖춰졌다. 이제부터 싸우기만 하면 돼. 하지만…….’ 중요한 건 비브론의 위치. 그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으로서 가장 쉬운 방법은 베히모스가 향하는 곳을 따라나서는 것이다. 베히모스들은 결국 비브론이 들고 있는 환옥 쪽으로 다가갈 테니까. 하지만 극도로 난폭하고 예민한 베히모스는 중간에 거치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베히모스가 중립지대 사람들을 공격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군단장님!] 마침 에르제베트가 거미줄을 타고 불쑥 나타났다. [이 마을에는 없는 것 같사와요. 다른 쪽에도 거미들을 뿌려볼게요.] “응, 부탁해.” 쿠쿵-! 대화 중에 들리는 굉음에 시몬과 에르제베트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떠들썩한 충돌음과 함께 해안가의 사람들이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베히모스 한 마리가 해안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몬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에르제.” [네?] “만약 저 베히모스를 잡아서 언데드로 만든다고 치자. 그럼 언데드 베히모스도 환옥의 영향을 받아서 그쪽으로 움직일까?” [확정할 순 없지만…… 저 멀리 외해에 있는 몬스터를 끌어당길 정도라면 언데드가 되어도 환옥에 유도되는 성질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크흐흐! 하고 웃으며 가만히 듣고 있던 피어가 끼어들었다. [또 어떤 정신 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소년! 아직 그 아론이라는 교수로부터 완전한 언데드 전함 제작법을 전수받은 건 아닐 텐데!] [게다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요 군단장님. 저런 거체는 제작에 2~3주는 걸리지 않을까요?] “아니, 꼭 완성할 필요는 없어.” 시몬이 아공간을 열고 알라제를 불러들였다. “네 생각이 듣고 싶은데? 알라제.” 시몬이 자신의 계획을 말했고, 듣고 있던 알라제는 명확하게 답했다. [언데드에 불가능은 없음.] * * * 중립지대, 오르자바의 해안요새. “서둘러라! 곧 베히모스의 공세가 시작된다!” 오르자바의 경비병들이 해안가에 설치된 요새 위로 서둘러 올라왔다. 성벽에 직접 설치된 초대형 석궁들이 발사 준비를 마치고, 이음쇠마다 기름을 먹였다. “저기 옵니다!” 병사 하나가 외쳤다. 이제는 수평선을 뒤덮은 베히모스 떼가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푸른 바다를 기점으로 시커멓게 밀려드는 거체들은 마치 하늘이 종말이 맞이하듯 검게 물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키젠이 말한 정보가 사실이었나.” 오르자바 수비 사령관이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저 거대한 몬스터들은 초승섬을 지나쳐 오르자바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비하지 않았다면 오르자바의 수많은 주민들이 먹잇감이 됐으리라. “준비하라!” 철컥! 철컥! 성벽에 설치된 대형 석궁이 베히모스가 있는 방향으로 겨누어졌지만, 그것을 다루는 병사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다들 얼굴에 짙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눈치를 보며 도망치는 탈영병도 속출했다. 오르자바의 수비 사령관 또한 사기가 최악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 베히모스 떼와 싸우는 건 자살행위. 이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의 재해다. 하지만 싸우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주민들이 도망칠 시간은 벌어야 했다. 그렇게 확정된 죽음을 앞두고, 수비 사령관이 잠시 초연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그때. “실례합니다.” “지나갈게요.” 로브를 입은 앳된 얼굴의 사람들이 성벽 위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당당히 대형 석궁을 지나쳐 앞으로 왔다. “이보시오! 여긴 위험하오!” 수비 사령관이 말했지만, 그들은 웃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인 뒤 통신 수정구를 들었다. “준비 완료.” “시작할게.” 촤락! 촥! 그들의 말이 끝나는 순간, 하늘에서 새로운 지원군이 도착했다. 각기 다른 자세로 성벽에 내려온 지원군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벽에 저주를 걸고, 생체 언데드로 뒤덮고, 각종 언데드 병기들을 설치하고, 먼 하늘에 독성 구름을 깔거나 혈류마법을 바르기도 했다. 요새의 병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 누구길래 우리를 돕는 거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켈레톤을 갑주처럼 입은 자들, 머리 없는 듀라한을 질질 끌고 오는 자들, 자신의 언데드 소대나 중대를 보유한 자들까지. 크르르르릉! 심지어 하늘 위 구름에는 거대한 검은 용이 울부짖고 있었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오르자바의 병사들이 환호했다. “저 마크는 키젠! 키젠이 우리를 도우러 왔다!” “전원이 네크로맨서야!” 드문드문 비어 있는 느낌이 가득했던 성벽이 어느새 망자의 군대가 가득 차 있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하늘에서 울부짖고 있던 검은 용이 일순 한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가 확성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우리는 지금 심각한 위험성의 재해를 상대한다. 베히모스 확보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뒤에 할 일이다. 지금은 베히모스를 막는 데 집중해라. 키젠의 이름으로 단 한 마리도 통과시키지 마라.” 그럼! 당연하지! 네크로맨서들이 떠들썩하게 웃었다. 그들이 다루는 망자들도 고양된 듯 함성을 질러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암흑연합을 이끄는 키젠의 모습인가.’ 수비 사령관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끼며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 중립지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도망칠 타이밍만 찾고 있던 병사들도 눈빛부터가 바뀌었다. 다시 한번 대형 석궁을 점검하고 무기를 배치했다. 고오오오오! 이내 안개를 뚫고 베히모스들이 하나둘 속도를 내며 돌진해 왔다. 다시 용으로 변한 헥토르가 공중으로 떠올라 외쳤다. [지시는 없다. 상황에 맞춰 알아서 행동해라.] * * * 쿠쿠쿠쿠쿵! 콰콰콰콰콰콰콰쾅! 베히모스들이 몰려들며 해안 요새가 전투가 시작됐다. 저 거구들은 요새를 성벽째로 밀어버리며 그대로 도시 내로 들어와야 했지만, 막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이 저력이 있는지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 영주성 옥상 위에서 손을 깍지 낀 채 지켜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결사의 소속이자 초승섬 원주민들의 족장, 비브론이었다. “힘껏 발버둥 쳐봐라.” 그가 팔꿈치를 붙이고 턱을 괴었다. “베히모스 떼는 움직이는 자연재해. 누구도 대자연을 막을 수는 없지.”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천천히 도시 아래를 눈으로 훑었다. 넘어지고 비명을 지르며 주민들이 도망치고 있었지만, 좁은 골목 사이로 인원이 막히며 모든 구간이 정체를 빚고 있었다. 그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구원은 필요 없다. 고통만이 구원일 뿐.” 도망치는 주민들을 바라보던 비브론은, 갑자기 대기의 흐름의 변동을 감지했다. 그 변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들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거대한 베히모스 하나가 해안선을 넘지 않고 도시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주위의 바글거리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돌진해 왔다. 그 방향은 다름 아닌. ‘내가 있는 쪽인가.’ -끄그그그그그그그그그! 온통 흉지고 부패한 베히모스. 그것은 몬스터가 아닌 언데드 상태였다. 그리고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울부짖는 베히모스의 위에 올라타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찾았다.” 시몬 폴렌티아. 키젠의 학생회장이자 제7군단장이 파멸의 대검을 어깨에 올려두며 말했다. “두 번은 안 놓쳐. 비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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