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2화 “나 사실 한번 죽었어.” 일순 주위가 정적으로 뒤덮였다. 카미바레즈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지자, 시몬이 황급히 손을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맥락 없이 말했지? 자세히 설명해 줄게! 음…….” 시몬이 고개를 돌려 혈류학과 교수 아보를 보았다. “아보 교수님, 단검 좀 빌려주시겠어요?” “음? 아, 그러마.” 갑자기 단검을 빌려달라는 학생에, 태연히 옷소매에서 불쑥 단검을 꺼내는 교수까지. 모두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시몬이 단검을 역수로 붙잡고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꺅!” “왜 그래?” 곳곳에서 놀란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시몬은 태연히 피가 줄줄 흐르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파아아아앗!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한 노란색 실이 일렁이는 효과가 일어나더니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기겁한 모두가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났다. “저.” 시몬이 미소 지었다. “천년향 사람들처럼 불로불사가 됐습니다.” &^*%@&!!!! 폭탄이 떨어진 듯 주위가 요란법석이 되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기에 시몬은 살짝 귀를 덮었다. “바, 방금 그거 수복(修復) 맞지? 진짜 진짜 진짜?” “그럼 소생(蘇生)도 가능한 거야?”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처음 천년향에 도착했던 그 강에서 소생되더라고.” 다시 한번 폭발적인 웅성거림이 쏟아졌고, 각가지 반응이 터져 나왔다. “시몬이 죽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어느덧 울보가 되어버린 카미바레즈가 시몬을 붙잡고 다시 엉엉 울었다. “자, 잠깐! 불로불사는 나이 들지도 않는 거지? 그럼 나만 할머니 되는 거야? 싫어!” 메이린이 억울하단 표정으로 외쳤다. “불사를 가진 타락의 구원자를 상대로 승산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학생회장도 불사자라면 가능성이 있겠군요.” “하지만 지몬이 부활하면 주요 전장인 천년향의 궁궐과 너무 멀리 떨어지는 게 문제네요.” 바로 앞으로의 계획부터 상의하는 제인과 홍펭. “일단 피를 좀 뽑읍시다.” 주사기를 들고 달려들려는 아보까지. 모두가 각가지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소환학과의 피에르 버클러가 고개를 돌려 헥토르를 보았다. “왜 혼자 그러고 있어? 헥토르.” 헥토르는 구석에 우두커니 선 채 좌절하고 있었다. “……이번엔 불사인가. 네놈은 혼자 어디까지 나아갈 셈이냐, 시몬 폴렌티아.” “하하.” 그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신디 비바체가 입을 열었다. “정리하자면, 콤펠로 상태에서 천년향의 심장을 본 뒤에 불사의 힘을 연결할 수 있었다는 거지?” “맞아, 신디.” “그럼 혹시 우리도 불사로 만들어줄 수 있어?” 신디가 팔을 펼쳤다. “상대는 불사의 군대니까. 우리도 죽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전투에서 도움이 될걸.” “미안하지만…….”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콤펠로 상태에서 본 것들은 현실로 돌아오면 기억나지 않아. 그때는 급해서 나 자신에게 흑마법을 걸고 죽을 생각만 했지. 기록으로 남기거나 할 여유는 없었어.” “음!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아쉽네.” “실례합니다.” 바로 그때 좌중을 울리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드디어 저주학 교수 바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을 막고 있던 학생들이 좌우로 물러나 비켜주었다. 홍펭이 불쑥 말했다. “안 온다고 하지 않으졌나요? 바힐 교주님.” “예, 그를 믿고 있어서 오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바힐이 시몬을 바라보았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시몬 학생.” “감사합니다! 전부 바힐 교수님 덕분이에요.” 싱긋 웃어보인 바힐이 뒤를 돌아 다른 교수들을 바라보았다. 홍펭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으며 제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 자리를 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힐이 선언했다. “불사의 건에 대해, 임페라투스 콤펠로의 제작자인 제가 시몬 학생과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학생들은 바로 물러났고, 교수들도 자리를 비켜주었다. 최고 공헌자들끼리 콤펠로에 관해 이야기하겠다는데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시몬과 바힐만 남게 되었다. 바힐은 주위로 흑마법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교수님 무슨 용무로…….” “조금 서두르도록 하죠.” 바힐이 말했다. “당신이 콤펠로 상태에서 천년향의 심장을 보고 얻은 정보 중에 필요한 것들을 추출할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잖아요. 콤펠로 상태의 지식은 기억해 낼 수 없어요. 육체에 새긴 기록도 수복되는 바람에 남아 있지 않구요.” “하지만 그 진리의 편린은 아직 무의식의 영역에 남아 있을 겁니다.” 바힐이 주변에 마법진을 연달아 완성해 나가며 말을 이었다. “그 부스러기라도 긁어모은다면 큰 진전이 있겠죠.” 바힐은 시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집중을 위한 각종 저주를 걸었다. 이내 바힐이 눈을 감으라 지시하고 시몬이 눈을 감는 순간. ‘!’ 갑자기 어둑한 무의식에 세계에 도착해 있었다. 콤펠로 상태는 확실히 아니지만 주위를 분간할 수 있었다. -제 말 들립니까? 시몬. “네, 들려요.” -지금부터 부스러기 모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웅― 머릿속에 두 개의 기이한 그림들이 떠올랐다. 각인의 룬처럼, 콤펠로 상태에서 본 룬어나 수식들을 연상케 하는 난해한 그림이었다. -이것들을 굳이 이해할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두 가지의 선택지를 계속 띄울 테니, 그 두 가지 중 ‘정답’ 혹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손으로 고르면 됩니다. 오로지 당신의 감으로요. “……그게 다인가요?” -그게 답니다. 자, 시작하죠. 시몬은 두 가지 그림 중에 조금 고민하다가, 감각적으로 조금 더 끌리는 쪽의 그림을 선택했다. 그러자 바힐이 ‘음’ 하고 감탄하는 소리를 흘렸다. -바로 그겁니다. 계속하죠. 바힐이 쉴 틈 없이 선택지를 띄웠고, 시몬도 계속 골라 나갔다. 그가 보여준 형상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느낌상 정답에 가까운 것을 바로 고를 수는 있었다. 묘하게 머리가 아파서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도 있었다. 선택지를 고를 때마다 바힐은 ‘음!’ 하고 추임새를 넣거나, ‘아주 흥미롭군요!’ 하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부스러기 모으기’가 끝났다. “윽!” 현실로 돌아오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바힐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 많았습니다. 숙소로 돌아가 푹 쉬도록 하십시오. 곧 결과를 보여주겠습니다.”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결과? 이걸로 된 거야?’ * * * 시몬이 바힐과 헤어진 뒤 숙소에 돌아가서 쉬고 있으려니, 이번엔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긴 장삼을 입은 노인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자신을 취월봉의 태수라고 밝혔다. 그는 진현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 제일 먼저 알아차렸으나, 결국 그 때문에 눈 밖에 나서 천도제에 참가하지 못한 인물이기도 했다. “미리 알리지 못해서 미안하오.” 태수가 말했다. “이미 한번 수백 년을 섬긴 왕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람이라, 조금 더 그대들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지켜보고 있었소. 그사이에 활동력 좋은 청년 한 명이 왕도로 직행할 줄은 몰랐소만.” “……하하. 아마 진현의 정체를 알았어도 왕도로 갔을 거예요.” 시몬이 민망한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기에 시몬은 방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금 그대의 동료인 세르네라는 여식이 모든 정보를 퍼뜨려서 태수들을 설득하고 있소. 아직 믿지 않는 태수들도 있으나, 흑사곡 태수를 중심으로 왕을 끌어내릴 전력이 모이고 있소.” “다행이네요.” “무엇보다 다행인 건 그대요! 진현과 싸우고도 무사히 돌아오다니. 그것도 불사를 얻어서 살아남다니! 정말로 대단하오.” 취월봉 태수가 감탄한 얼굴로 말을 이은 뒤,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들었다. 하얀 보자기에 쌓인 무언가였다. “그대들 네그롬안사들은 독특한 주머니에서 망자들을 계속 꺼낸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소생했다면 그 주머니를 잃어버렸을 테니, 대신할 물건을 가져왔소만.” 그가 손을 내리며 쓰게 웃었다. “다행히 소지품을 되찾았다니 크게 필요는 없겠군. 그래도 감사의 의미로 드리겠소.” “이게 뭔가요?” 시몬이 태수의 선물을 받아 들었다. 보자기를 풀자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액자 같은 물건에, 내부에는 여성의 그림이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의 여성이었는데, 이 액자의 틀도 그렇고 그림의 여성의 화풍도 그렇고, 천년향의 물건이라기보다는 대륙의 스타일에 가까웠다. “우왓!” 그때 그림이 움직여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이 깜짝 놀라 쿵쿵 울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태수가 손바닥을 펼쳤다. “우리 조상이 옛날에 나그네에게 받은 물건이오. 그대들의 망자 주머니처럼 안에 물건을 수납할 수 있지.” “정말인가요?” 시몬이 그림에 손을 대자 손가락이 쑥 하고 들어갔다. 이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자, 액자 안으로 흐릿하게나마 텅 빈 공간이 보이고 있었다. ‘아공간!’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것도 엄청 오래된 아공간이야! 이런 게 왜 여기 있는 거지?’ “흘흘.” 그가 수염을 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이계의 물건일지도 모르겠소. 사용법은 잘 모르지만 괜찮다면 가져가 주시오. 우리 가문의 보물이니.” “자, 잘 쓰겠습니다.” 시몬이 얼떨떨한 얼굴로 액자를 쓰다듬었다. * * *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대궐 외부에서는 몰려드는 불사의 군대를 막느라 분주한 가운데, 바힐은 연구팀의 제인과 아보 교수. 그리고 여러 학생들과 조교들을 초대했다. 이때 시몬도 합류했다. “아, 여기는……!” 시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잊겠는가. 저주학 합숙 과제가 있었던 바로 그 하루앓이의 늪이었다. 대부분의 하루앓이들이 늪에서 벗어났지만, 극소수의 하루앓이들은 여전히 늪에 남아 알을 낳으며 해체되고, 소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서 뭘 보여주시겠다는 거죠? 바힐 교수님.” 제인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바힐은 태연히 검지 끝을 세웠다. 그의 손끝에 미리 준비된 흑마법진 하나가 펼쳐졌다. 시몬은 마법진의 중앙에 ‘각인의 룬’이 있는 걸 눈치챘다. “이런저런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키이이이이잉! 갑작스레 눈앞에서 마법쇼가 펼쳐졌다. 바힐은 여러 개의 마법진들을 펼치고, 그 안의 여러 요소들을 쏙쏙 뽑아내어 중앙의 마법진에 결합시키기를 반복하며 하나의 커다란 마법진을 완성하고 있었다.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한 기법이었기에 모두가 탄성을 흘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의 수십분이 지난 뒤에야 바힐이 저주를 완성했다. <바힐 오리지널 – 아니마 빈클리스> 마법진의 중앙에서 흘러나간 저주가 하루앓이 한 마리에 깃들었다. 그러자 하루앓이의 몸이 어둡게 물들며, 마치 그림자가 위로 늘어지는 듯한 효과가 일어났다. 바힐이 옆을 돌아보았다. “자, 메이린 학생.” 바힐이 손을 내리고 메이린을 보았다. “방금 제가 저주를 건 하루앓이와, 그 옆에 조금 떨어진 하루앓이를 동시에 ‘해체’시킬 수 있을까요?” “아, 네! 해볼게요.” 메이린이 양팔을 펼치고 두 개의 칠흑빙결계 마법진을 펼친 다음 발사했다. 커다란 얼음 조각이 날아가 두 하루앓이를 완벽한 타이밍에 동시에 가격했고, 그대로 산산이 흩어졌다. 바힐이 설명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하루앓이의 소생 장소는 이 늪이고, 소생에는 약 1분 정도 걸립니다.” 잠시 후 1분 뒤, 메이린에게 해체된 하루앓이 하나가 노란색 빛이 번쩍이며 되돌아왔다. 그런데. “저주에 걸린 다른 한 마리가 없어요!” 메이린이 그렇게 소리치자 바힐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건 저주의 이름은 ‘아니마 빈클리스’. 천년향 생물의 소생에 간섭하여, 소생되는 시간을 강제를 늘리는 저주입니다. 아마 저주가 걸린 하루앓이는 30일 뒤에나 나타나겠군요.” 놀랍게도 그 효과는 소생 간섭이었다. 바힐은 개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 저주에 걸린 몬스터들은 개체에 따라 적게는 10일에서 많게는 자그마치 50일이나 지난 뒤에 소생한다고 밝혔다. “각 개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 저주에 걸린 적은 더 이상 무한히 우리 앞에 서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 불사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할 힘이 되겠죠.” “여, 역시!” “대단하세요!”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는 시몬 학생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의 무의식에 남아 있던 부스러기 지식들을 활용했죠.” 바힐이 시몬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시몬이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대단하셔.’ 비록 이 저주로도 완전한 죽음을 선사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는 정말로 거의 죽음에 다다랐다는 걸 시몬도 알 수 있었다. “……10일에서 50일이라.” 제인이 고심하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전투가 시작되고, 소생이 지현된 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걸 해결해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제인 교수님. 결국 천년향에서 죽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시몬 학생을 심장에 데려다 놓아야 합니다. 아니마 빈클리스는 그 시간을 벌어주기에 충분하죠.” 특히 진현에게 이 저주를 걸고 쓰러뜨리면, 승기를 단번에 잡을 수 있었다. 모두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메이린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저주의 구성이 꽤 복잡해 보였어요. 바힐 교수님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실전에서 학생들이 이 어려운 저주를 일일이 대상에게 걸고, 그 저주의 지속 시간 내에 쓰러뜨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사실 모두의 의구심이었다. 그가 너무나 천재라서, 이곳의 모두가 저 어려운 저주를 익혀서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보편성이 결여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바힐은 다 계획이 있다는 듯 태연히 웃었다. “바로 그 부분도,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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