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1화 첨벙 첨벙! 시몬은 천년향의 강에서 헤엄쳐 육지로 나왔다. 소생 직후라 헐벗은 상태였는데, 다행히 강가 주변에는 키젠 측이 내려둔 화물상자가 여럿 널려 있었다. 그중에 망토 하나를 꺼내 몸에 둘렀다. 그 뒤에 상태를 확인했다. 군단이 들어 있는,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초대형 아공간은 무사했지만 그 밖의 소지품은 모두 사당에 있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피어도 함께 오지 못했다. ‘피어를 되찾으러 가야 해.’ 피어를 되찾고, 궁궐로 돌아가서 타락의 구원자 진현에게 재도전.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 작정이었다. 다만 그 전에 필요한 게 있었다. ‘죽음.’ 그렇게 강한 타락의 구원자가, 심지어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라는 것까지 확인했다. 불사를 끊지 않으면 영원히 이길 수 없다. 반드시 그녀에게 제대로 된 죽음을 가해야만 했다. 시몬의 고개가 숙소인 대궐 쪽으로 향했다. ‘그동안 뭐라도 성과가 나왔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몬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척을 느꼈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뒤 고개만 내밀어 앞을 응시했다. ‘저 사람들은……!’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무수한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틀림없는 천년향의 병사들이었다. 거기에 감정과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까지. 전부 세월에 잠식된 듯 보였다. 심지어 그중에는 마을에서 끌려온 일반인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는데, 간단한 무장을 하고 무기를 든 모습. 이들 모두가 대궐로 향하고 있었다. ‘설마, 진현이 키젠에 공격 명령을 내린 건가? 하지만…….’ 세월 잠식자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 사고하기를 포기한 그들은 그저 같은 일상을 반복할 뿐. 하지만 지금, 눈앞의 잠식자들은 무장한 채 대궐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현이 또 타락의 권능으로 무슨 짓을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많은 일이 있었나 보네. 내가 소생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야?’ 시몬이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대궐의 대문 앞에서 온갖 검은 폭발이 일어나고, 투사체들과 저주들이 쏟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키젠 측이 숙소인 대궐을 요새화하고, 불사의 군대를 상대로 농성하고 있었다. ‘일단 돌아가서 확인해 보자.’ * * * “여러분! 모두 쏟아부으제요!” 대문 앞에서 버티고 있는 마투학 교수 홍펭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암벽으로 만든 성벽 위에 올라간 키젠 학생들이 손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온갖 칠흑원소계 마법과 저주들이 쏟아졌다. 무수한 불길과 저주의 포화 속에서 천년향의 병사들은 꾸역꾸역 공세를 몸으로 받으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들의 몸이 ‘수복’의 효과로 노란색 빛이 일렁이며 회복되고 있었다. “자잘한 공격은 무의미해요! 확질히 적을 ‘해체’지킬 만한 공격을 해야 해요!” 그때 대문을 지키고 있던 홍펭을 향해 누군가 달려들었다. 군마를 탄 기병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그녀를 노리고 부적 붙은 창을 내질렀으나, 홍펭은 그것을 경쾌한 움직임으로 피하고는 발차기를 날렸다. <홍펭 오리지널 - 월각> 퍼억! 기병대장의 머리가 투구째로 목에서 떨어지더니 한참을 멀리 날아갔다. 몸만 남은 본체의 목 부위에서 노란색 빛이 잠깐 일렁이더니, 결국 목을 찾지 못하고 완전히 ‘해체’되어 사라졌다. “저 남자, 열 번은 죽인 것 같네요.” 홍펭이 한껏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그때 주위가 검은 그늘로 뒤덮였다. 어느새 하늘에서 거대한 검은 용이 급강하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학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헥토르가 돌아왔다!” 날개에 커다란 창이 박힌 그는 부상을 당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강력했다. 순식간에 인간의 형태로 돌아와 두 팔을 앞세우며 흑마법을 발동했다. <임페일(Impale)> 용의 비늘이 붙어있는 말뚝들이 경비병들의 몸을 푹푹 관통한 채로 바닥에 박혔다. 경비병들은 괴로워하며 수복했지만, 수복만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결국 하나둘씩 해체되어 사라졌다. “홍펭 교수님.” 처억. 헥토르가 지면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산맥을 올라오는 병력을 전부 불태웠습니다.” “아주 잘했어요 헥토르 학쟁.” 홍펭이 또 하나의 불사병의 머리를 정확히 날려 버리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부장당한 날개는 괜찮나요?” “예.” “힘들겠지만 아직 여력이 있다면 좌문 쪽으로 가주제요.” 고개를 끄덕인 헥토르가 다시 악룡으로 변해 날아올랐다. 홍펭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미소를 흘렸다. “……헥토르 학쟁은 대활약을 했으니 휴직을 주고 싶지만, 여유가 없네요.” “홍펭 교수님!” 그때 한 학생이 통신 수정구를 들고 외쳤다. “지금 좌문 쪽보다 더 급한 곳이 있습니다!” * * * “제인 교수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대궐 내부. 방어 인력이 부족해서 직접 후문으로 걸어가는 제인을 향해, 메이린이 울먹이며 말하고 있었다. “카쟌한테서 온 보고는 교수님도 들으셨잖아요! 시몬이 구원자에게 붙잡혀 있을지도 몰라요! 구하러 가야 해요!” 제인은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했다. “왕도에는 이미 세 교수님들이 이끄는 선발대 전력이 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믿고 기다리죠. 지금 대궐에서 또 전력을 차출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합니다.” “시몬이! 붙잡혀 있다구요!” 그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카미는 앓아누웠고, 다른 애들도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제발! 다른 애들을 못 보내시겠다면 저 혼자라도 가겠어요!” “허가할 수 없습니다. 죽음 연구에는 엘리멘탈 마스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저히 걱정돼서 연구를 할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 아녜요!” 3년 가까이 제인에게 대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던 메이린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버럭버럭 외치고 있었다. “만약 시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뒷말을 이어 말하려던 그녀가, 이내 말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렸다. 제인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콰르르르르르릉! 방향은 위기에 빠졌다는 후문 쪽. 자줏빛 섬광이 맹렬하게 번뜩이며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혼돈마법! 설마……!” 메이린이 달리기 시작했다. 칠흑바람계 마법을 자신에게 걸고는 단번에 성벽을 넘어서 후문의 성문 앞에 착 하고 내려왔다. 촤르르르륵! 쓰러져 해체되어 가는 경비병들 사이로, 에메랄드빛 섬광이 번쩍이는 스컬윙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개로 목을 가르고, 그것을 멀리 내던지기를 반복했다. 주위의 공간이 에메랄드빛 섬광으로 가득 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을 등지고 걸어오는 푸른머리의 소년. 메이린의 눈망울에 커다란 눈물이 맺혔다. “시몬!” 그녀가 한걸음에 뛰어들어가 시몬의 품에 박치기를 하듯 안겼다. 시몬이 ‘아’ 하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메이린?” “이 바보야!!” 그녀가 눈물을 쏟아냈다. “죽은 줄 알았잖아아아!” 흐어어어어엉! 통곡을 하며 마구 두 팔로 시몬의 가슴을 때리다가 얼굴을 묻는 그녀였다. 망토의 가슴 부근이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낯선 메이린의 모습에 시몬은 놀라면서도, 이내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성벽을 지키던 학생들도 비로소 그 모습을 발견하고 외쳤다. “회, 회장이다!” “시몬이 돌아왔어!” 거대한 함성이 대궐에 가득 울려 퍼졌다. 메이린이 시몬을 붙잡고 목놓아 울고 있는 사이, 제인이 소리 없이 시몬의 옆으로 다가왔다. “잘 돌아왔습니다, 학생회장.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안에서 이야기하죠.” “예.” 제인은 그 말만 남기고는 다시 등을 돌렸고, 시몬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상황을 파악하고 결사를 방해하는 것까지가 제 임무였는데, 그 이상으로 섣불리 구원자와 싸우다가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람 마음을 이렇게 찢어놓지 마세요.” ‘……제인 교수님.’ “자, 들어가죠.” * * * 숙소에서 제인으로부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시몬은 해체된 지 5일이 지나 이곳에 소생했다. 그리고 다행히 카쟌은 무사했다. 바스테리온과의 전투 도중, 세르네가 진현에 반하는 천년향 태수와 군사들을 데리고 사당에 나타나 그곳에서 커다란 교전이 벌어졌다고. 그 와중에 카쟌이 사당에 놓고 온 시몬의 교복과 소지품도 수거해서 대궐로 보내주었기에, 시몬은 바로 장비를 수령할 수 있었다. 다만 카쟌의 말에 따르면 피어는 사당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카쟌이 보낸 서신과, 취월봉 태수의 증언을 통해 키젠 측도 상황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천년향에 펼쳐진 불로불사는 결코 신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타락의 구원자 진현의 ‘구원’ 그 자체였죠.” 제인의 말에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확실시됐네요.” 진현이 사용하는 타락의 진가는 대상의 성질을 변질시키는 데 있다. 그녀는 본래 환생의 세계라고 불렸던 천년향의 심장을 타락시켜 ‘환생’이 아닌 ‘불사’의 힘을 부여했다. 그런 진현의 노림수는 한 가지. “바로 불사의 군대를 손에 넣는 겁니다.” 제인이 손을 펼쳐보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불사는 필멸자로 태어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진현은 백성들이 소생 지역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률을 만들고, 일상의 변화를 차단해 사람들이 세월에 잠식되도록 부추겼죠.” 시몬이 말을 받았다. “……그렇게 한 달 뒤에 열릴 천도제에서 세월에 잠식된 인간들을 모조리 ‘불사의 군대’로 변환할 계획이었던 거네요.”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그 불사의 군대를 선봉에 세워서 대륙을 공격할 계획이었을 겁니다.” 시몬이 침음을 흘리며 고민하다가 말을 받았다. “그런데 군사들이 천년향을 벗어나더라도 불사가 계속될까요?” “아마 그렇진 않을 겁니다. 이렇게 광범위하고 인위적인 불사는 어디까지나 천년향에서만 발견된 현상이니.” 팔짱을 낀 제인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하지만 정보에 따르면, 벌써 결사 측은 불사의 근원으로 보이는 그 ‘거대한 심장’을 다른 세계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합니다.” “……철저하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진현이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 우리가 여기 와 있으니까요.” 제인이 눈이 번뜩였다. “아직 진현은 모든 백성들을 불사의 군대로 만든 게 아닙니다. 몇몇 인원들만을 선제적으로 불사의 군대로 만든 뒤 대궐로 보내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죠. 대륙이 천년향의 전 불사의 백성들을 상대하게 되기 전에, 우리가 여기서 막아야 합니다.” “네!” 이어지는 제인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진현 쪽에서도 승부수를 던진 것 같았다. 천도제를 앞당기고, 자신의 직권으로 결사의 모든 포탈 사용을 중지했다는 모양. 포탈은 결사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했기에, 결사가 사용해야만이 대륙측도 사용할 수 있다. 즉, 결사의 지원군도 키젠의 지원군도 없이 여기서 끝장을 내자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결말은 두 가지뿐이야.’ 키젠 측이 진현을 쓰러뜨리고 천년향을 정상으로 되돌려, 대륙에 닥칠 최악의 재해를 사전에 차단할 것인가. 아니면 진현이 시몬을 포함한 대륙의 엘리트 전력인 키젠 3학년들을 제거하고 불사의 군대 계획을 성공시켜 대륙 정벌을 앞당길 것인가. 예상치 못했지만, 정말로 중요한 전쟁이 이곳 천년향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그럼 이제 학생회장에게 더 물어볼 내용이…….”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남아 있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달려드는 소녀. “시-몬!” 카미바레즈가 두 팔을 벌린 채 울먹이며 뛰어오고 있었다. * * * 시몬이 무사하다는 소식에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다. 샤텔, 쥴, 제이미, 신디, 클라우디아, 헥토르 등의 동기들. 전투를 담당하고 있던 홍펭, 연구를 맡고 있던 아보, 거기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조교들과 하수인들까지. 어느새 제인의 연구실이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꽉 찼다. “…….” 그리고 화제의 중심에 있는 시몬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왼쪽에서 카미바레즈가 꼭 안겨 있었고, 메이린도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오른팔에 꽉 들러붙어 있었다. 곳곳에서 남학생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잠시 어렸지만, 오늘은 그러려니 한다는 분위기였다. “의외네요.” 시몬의 몸상태를 꼼꼼히 살펴본 홍펭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바힐 교주님도 연구고 뭐고 바로 오질 줄 알았는데요.” “안 그래도 시몬 학생이 돌아왔으니 같이 가보자고 하니, 한마디 하셨습니다.” 말을 받은 건 저주학과 수석조교 체헤클이었다. 그녀가 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시몬 학생이 무사히 돌아오는 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 당연한 이치이니, 처음부터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고.” “말은 잘한니까요.”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가 터져 나오며 어수선해지자, 제인이 손뼉을 짝짝 치며 주위를 환기했다. “개인적인 회포는 나중에 풀도록 하고, 지금은 천년향의 궁궐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학생회장에게 듣고 싶군요.” “아, 지금 말해도 괜찮을까요?”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 있는 모두가 최전선에서 싸우는 관계자들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의 세월 잠식자들, 왕궁 지하에 배치된 수많은 경비병들. 그리고 지하의 우물을 통해 들어간 사당에서 본 거대한 심장. 그것을 지키는 결사의 바스테리온과, 천년향의 왕이자 타락의 구원자인 진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침음을 흘렸다. “……생각도 못 했어.” 반장 제이미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천년향의 왕이 그 악명 높은 타락의 구원자였다니!” “한번 죽이기도 힘든 괴물인데, 불사까지 가지고 있으면 대체 어떻게 이기란 거야?” 모두가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시몬은 그런 진현을 상대로 어떻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거예요?” “아.” 시몬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나 사실 한번 죽었어.” 일순 주위가 정적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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