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18화 한편 같은 시각. 키젠 합숙 숙소인 대궐에서는 의외의 만남이 일어나고 있었다. “천년향의 왕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부총장 제인과 취월봉의 태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헥토르가 감시하듯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왕이 그대들에게 죽음을 요구했다고 들었소만.” “네, 키젠의 모든 역량을 다해 죽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헛수고요.” 대뜸 그렇게 말한 취월봉의 태수가 수염을 쓸어넘겼다. “왕은 죽음을 원하지 않소.” “그렇다면…….” “황천(黃泉).” 그가 말했다. “왕이 원하는 것은 황천에 가는 것이오. 죽음으로는 결코 황천에 이를 수 없지.” * * * 이미 한차례 격전이 벌어진 듯한 피비린내 가득한 지하에서, 시몬과 카쟌은 돌파를 시작했다. 이를 저지하려는 듯, 불사의 경비병들 또한 어둠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시몬! 목적지는 어디지?” [앞으로 계속 가다가 계단을 찾으면 그쪽으로 내려가야 해요!] 카쟌이 다가오는 경비병을 걷어찬 뒤, 바닥의 흔적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확실하군, 경비들을 공격한 자 또한 이곳을 지났다.” [서두르죠.] 파앗! 탓! 시몬과 카쟌이 도약해서 경비병들을 베어 넘겼다. 곳곳에 핏줄기가 솟구쳤고, 경비병들은 수복이 진행되는 동안에 멈췄다. 바로 그 틈에 달려야 했다. 처억! 척! 처적! 그러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무리의 경비병들이 방패를 세워 들며 앞길을 막았다. 피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소년! 어차피 불사니 손속에 사정을 둘 것도 없다!] ‘네, 피어!’ 시몬이 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온 칠흑을 끌어모아 대검을 휘둘렀다. 산더미만 한 참격이 나아가 경비병들의 진형을 흩뜨리고, 그 위로 카쟌이 몸을 활시위처럼 뒤로 쭉 당겼다. <카쟌 오리지널 – 팽(Fang)> 그가 두 팔을 내리긋자, 열 갈래의 손톱자국이 허공을 갈랐다. 범위에 들어온 경비병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고, 몇몇은 즉사였는지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터엉! 카쟌이 만들어준 틈을 비집고 시몬이 앞으로 전진했다. [해체된 경비들이 인근에서 소생해서 다시 오고 있어요. 큰 힘으로 벨 게 아니라, 수복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처를 주는 게 낫겠어요.] 카쟌이 불사의 경비병 하나의 어깨에 올라타 눈에 손톱을 찔러 넣었다. 푹! 푹! 소리와 함께 경비병이 나동그라졌다. “그러지.” 두 사람은 속도를 더더욱 높였다. 무아지경으로 대검을 휘두르며 달리던 시몬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천년향의 왕실은 궁궐 입구보다 이런 지하에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한 거지?’ 그것이 유일한 의문이었으나, 지금은 눈앞에서 창칼이 오가고 있었으니 전투에만 집중할 때였다.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오랜만에 너희가 나설 차례야! 브루트!] 이런 상황이 올 줄 알고 미리 그늘성에 가 있던 브루트를 아공간에 옮겨두었다. 구부정한 자세를 취한 인간형 언데드, 무수히 분열하는 스워머 계열의 브루트가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요리사 브루트!] [나는 라이더 브루트!] 촤촤촤촤차촤촤! 각기 개성 넘치는 도구를 든 브루트들이 쏟아져 나와 불사의 경비병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시몬이 절대명령을 내렸다. [우리를 목적지까지 보호해! 최고 공헌자에게 본체 쟁탈전의 최우선권을 부여하겠어!] [브루트! 지시에 따른다!] [브루트! 본체가 되는 건 나다!] 요리사 브루트가 프라이팬을 휘두르고, 낚시꾼 브루트가 낚싯대에 칠흑을 담아 장창처럼 휘둘렀다. 경비병들이 쓰러지지만 동시에 브르투들도 곧 창칼에 찔려 쓰러진다. 쭈욱! 쭈우우욱! 그러나 쓰러진 브루트의 몸에서 두 마리의 브루트가 새롭게 분열했다. 확실히 치열한 전투 중이라 그런지, 조금 더 전투에 특화된 브루트들이 많이 등장했다. 활을 든 브루트, 단검을 입에 문 브루트, 지팡이를 든 브루트까지. 쐐애애액! 화르르르륵! 화살이 날아가고, 칠흑 화염계가 발사된다. 브루트들의 대활약으로 시몬과 카쟌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킁킁. 카쟌이 바닥에 고개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았다. “네가 말한 계단이 맞군. 침입자의 냄새가 이 아래에서 난다.” [바로 가죠.] 타앗! 탓! 두 사람이 얽히고설킨 좁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물론 계단 곳곳에서도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하나하나 처리하며 내려가야 했다. [!] 그때 시몬이 얼른 거리를 벌렸다. 허공에 노란빛이 번뜩이더니 시몬이 서 있던 자리에 맹렬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저게 천년향의 마법인 ‘도술’이구나.’ 허공에 둥둥 뜬 긴 의복 차림의 남자들이 부적 같은 것을 든 모습이 보였다. [계속 온다 소년!] 이번엔 바람을 타고 불붙은 부적들이 날아왔다. 시몬이 급히 두 팔을 교차하는 방어 자세를 취했고.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시몬의 몸이 계단에서 떨어져 내렸다. “크윽!” 피어의 본아머로 피해는 흡수했지만 아릿한 충격이 남았다. 시몬이 몸을 빙글 회전하며 대검을 절벽에 꽂았다. 카가가각! 절벽에 긴 궤적을 남기며 멈춰 선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냥 이대로 뛰어내릴까? 하지만 무작정 내려갔다가 낭떠러지에 빠지면 곤란한데…….’ 타닥. 탁. 타닥.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끔, 시몬을 태연히 지나쳐 절벽을 내려가는 누군가가 있었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가파른 절벽을 산책하듯 가볍게 내려가는 언데드. 녹색 의상에 베레모를 쓴 브루트였다. 한 손에는 나침반을 들고 있었다. [나는 모험가 브루트! 최단 거리로 간다!] ‘오!’ 이 브루트는 쓸 만했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절벽에서 뽑아내며 뒤따랐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지?] [그렇다! 힘이 파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향해 간다! 역시 브루트의 능력이 본체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가?] [당연하지! 내가 밀어줄게!] 본체가 될 수 있다는 그 말에 용기백배한 모험가 브루트가 나침반을 보며 거침없이 절벽을 내려갔다. [카쟌! 이쪽이에요!] 터엉! 어디선가 잘 싸우고 있던 카쟌이 시몬의 그 한마디를 듣고는 망설임 없이 계단에서 뛰어내려 시몬과 브루트가 있는 절벽에 도착했다. 역시 카쟌은 어떤 전투든 걱정이 없어서 든든했다. 촤아악! 발끝으로 절벽을 미끄러져 내려온 카쟌이,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는 브루트를 보았다. “이 녀석이 길을 아는 건가?” [아마도요!] 계단 위에서 불사의 경비병들이 카쟌을 따라 하듯 절벽을 내려오려 했으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경비병들이 절벽에 데굴데굴 구르며 나가떨어지는 광경은 진풍경이었다. 가끔 부적 붙은 화살이 날아왔으나, 시몬과 카쟌은 대검과 손톱을 휘둘러 모험가 브루트를 보호하며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왔다. 마침내. 투욱. 발이 바닥에 닿았다. 시몬이 피어의 투구를 벗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궁전에서 얼마나 깊이 내려온 거야?’ 시몬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이, 모험가 브루트가 나침반을 확인하며 앞을 가리켰다. [본체 후보 1위 모험가 브루트! 이쪽이다!] “자, 잠깐만!” 의욕 넘치는 브루트가 혼자 앞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퍽! 소리와 함께 부적이 휘감긴 화살에 맞아 머리가 날아가고 말았다. 시몬이 이마를 텁 하고 덮었다. 잠시 후 축 늘어진 모험가 브루트에게서 두 마리의 브루트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보물 감정사 브루트!] [나는 청소부 브루트다!] “…….” 이번엔 둘 다 꽝이었다. 시몬이 한숨을 쉬고 있는데, 카쟌이 킁킁 바닥의 냄새를 맡다가 앞을 가리켰다. “모험가 브루트는 제대로 찾아왔군. 이쪽이다, 냄새가 이어져 있다.” “역시 카쟌!” 시몬은 밥값 못 하는 브루트들을 아공간에 쑤셔 넣고 카쟌과 함께 전속력으로 달렸다. 곳곳에서 부적과 화살이 날아오고, 불사의 경비병들도 끊임없이 뒤따라왔지만 두 사람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기억이 나!’ 눈앞에 세르네의 기억으로부터 본 풍경이 보인다. ‘저기!’ 눈앞에 드디어 낡은 우물이 있었다. 다만 우물로 가는 길목 앞에도 불사의 경비병들이 서 있었다. 카쟌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시선을 끌겠다. 그 틈에 먼저 가라.” 쿠웅! 카쟌이 지면을 거칠게 짓밟자 흙먼지가 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이후 마투의 풍압으로 그것을 밀어내 경비병들의 시야를 가렸다. 경비병들이 방패를 앞세우며 가려진 시야에서 몸을 지키고 있을 때. 터어어엉! 먼지를 뚫고, 하늘에서 내려온 카쟌이 함성을 내질렀다. <카쟌 오리지널 - 팽> 촤아아아아아아아! 수십 갈래의 발톱이 그어지며 경비병들이 피를 뿌렸다. 함성, 굉음, 섬광까지. 모든 시선이 카쟌에게 집중되었다. 타닷! 그리고 그 틈을 타 시몬은 우물에 도착했다. 그사이 시몬을 본 경비병 하나가 그를 쫓아 들어오려 했으나. 텁. 걸음을 멈추고 시몬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등을 돌려 카쟌을 상대하러 돌아갔다. ‘우물 가까이 오지 못하는 것 같네.’ 가볍게 숨을 몰아쉰 시몬은 잠시 우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벽화?’ 암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둠이 가득한 세계, 이마에 뿔이 달린 괴물들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그림이었다. 커다란 박쥐 날개를 단 자들이나,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개들도 있었다. 모두 머리에 뿔이 달려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네. 대륙으로 치면 지옥을 그린 건가.’ 불사의 천년향에 사후세계는 다소 뜬금없었지만, 1,000년 전 왕이 소원을 빌기 전에는 죽음도 있었으니, 딱히 사후세계가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시몬이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우물을 확인했다. ‘여기가 확실해.’ 세르네의 기억 속에서 본 그 우물이 맞았다. 그 안에서는 새벽녘 같은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시몬은 과감하게 우물을 짚고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 * * “!” 시몬이 눈을 떴다. 분명히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는데, 어느새 그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 와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잉-!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이곳. 하늘은 새벽녘으로 물들어 있었고 주위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온통 하얗게 눈이 쌓인 이곳은 겨울숲 한복판이었다. ‘……여기가 우물 안이라고?’ 시몬이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공중에 퍼졌다. 그리고 바로 옆에, 시몬이 통과한 것으로 보이는 우물이 떡하니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벽화에서 본 지옥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이번엔 시몬이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눈 내리는 설원의 중심. 그곳에 거대한 사당(祠堂)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릿하게 울리는 종소리.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에 사로잡힌 시몬이 정신을 차리고 사당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 그렇게 발을 옮기는 찰나의 순간, 전신의 솜털이 쭈뼛 선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앙! 시뻘건 불똥이 거칠게 튀었다. 강력한 위력에 시몬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 충돌만으로 주변 바닥이 깊게 팼고, 대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강자다.’ [크흐흐! 강자로군!]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스르륵- 이내 시몬을 공격한 그 칼날이 허공에서 번쩍이더니, 연결된 사슬에 의해 겨울 숲속으로 끌려갔다. 저벅 저벅. 이내 숲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나를 쫓아왔나. 시몬 폴렌티아.” 시몬의 이를 빠득 갈았다. “……바스테리온.” 긴 재킷을 입은 결사의 일원, 천년향의 왕과 거래를 시도했던 바로 그 바스테리온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양팔에는 사슬이 휘감겨 있었고, 두 손에 들린 건 시몬을 공격했던 바로 그 칼날이었다. 얼굴에 살아 흔들리는 마름모꼴 문신이 새겨진 그가 검은 입술을 움직여 입꼬리를 올렸다. “두 번째 만남이구나. 같이 있던 그 백금발 여자를 왕도에 남겨뒀었지? 내가 손봐줬는데 아마 살아남기 힘들 거다.” “…….” 꽈악. 일순 파멸의 대검을 붙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시몬이었으나 간신히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를 바라보았다. ‘세르네가 그렇게 쉽게 당할 리 없어.’ 평정을 되찾은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앞세웠다. “결사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뭐지?” “뻔한 것 아니겠나.” 바스테리온이 양손의 사슬검을 붙들고 자신의 몸 앞에서 부딪히게 했다. 티잉-! 일순 검이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투명한 파장이 퍼져 나갔다. “저 사당 안에 있는 건 천년향의 심장이다. 먼저 차지하는 쪽이-” 촤르르르르르르! 그가 두 팔을 떨치자 사슬검이 순식간에 멀어지며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천년향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거다.” 그가 두 팔을 모으자 좌우에서 빛살처럼 사슬검이 시몬을 향해 쏟아졌다. 시몬이 몸을 빙글 회전하며 파멸의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아앙! 사슬검이 튕겨 나가고 시몬이 돌진 자세를 취했다. “그거 명료해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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