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75화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어서 오십시오, 성녀님.” 레테가 준비한 조력자를 본 시몬은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신인 예배회에서 수호학을 가르치러 들어온 교수, 브로데릭이었다. 레테도 스커트 끝을 붙잡으며 예를 취했다. “못된 제자가 신세를 집니다. 조력에 감사드려요, 교수님.” “무슨 말씀을, 성녀님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자네도 왔군!” 브로데릭이 시몬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반사적으로 한 차례 몸을 떤 시몬이 레테에게 다가가 슬쩍 귓속말을 했다. “네가 말한 조력자가 브로데릭 교수님이야?” “네, 우리 계획에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지 않슴까?” 레테가 방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늘섬 내에 ‘요새’를 가지고 있고, 당신도 알다시피 방어력만큼은 신성연방 최고의 인물 중 하나임다. 군대가 쳐들어와도 버틸 수 있어요.” 시몬이 목소리를 더더욱 낮췄다. “그런데 어떻게 현역 에프넬 교수를 섭외했…….” “저번 신인 예배회의 무단 침입 건을 들먹였죠.” “아하.” 결국 협박했다는 뜻이었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 모르는 브로데릭은 멀뚱히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말씀하신 새로운 성녀님은…….” “아, 이쪽이에요.” 레테와 시몬이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두 사람 뒤에 숨어 있던 리사라의 모습이 드러났다. 브로데릭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리사라 자매님이군요. 최근 악마 토벌전으로 수배됐다고 들었는데.” 브로데릭과 시선을 마주하자 리사라는 겁부터 집어먹었는지 딸꾹질을 했다. 레테가 웃으며 얼른 부연 설명했다. “위대한 어머니의 뜻을 왜곡하고, ‘성녀 살해’를 공모하는 반역자들의 농간이에요. 리사라는 악마가 아니라 진짜 성녀가 맞아요.” “이 브로데릭.” 순간 브로데릭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정쟁에 휘말리는 건 사양하고 싶습니다만.” “제자가 위험에 빠졌을 때 모른 척하는 사람을-” 레테 또한 지지 않고 리사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진짜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 “…….” 레테와 브로데릭의 눈빛이 중간에서 맹렬히 부딪혔다. 옆에 서 있던 시몬은 괜찮을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았다. “허허!” 결국 브로데릭의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습니다! 예배회 기간에 멋대로 끼어들어 스승과 제자의 연을 이은 건 틀림없이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요.” “다만.” 브로데릭이 저벅저벅 걸어와 리사라 앞에 섰다. “그대가 진정 성녀라면, 제게 ‘믿음’을 주십시오.” “……?!” 리사라가 극도로 당황하며 시몬과 레테를 휙휙 번갈아 바라보았다. 레테도 이런 전개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닌 듯, 작게 한숨을 쉬고는 리사라를 바라보았다. “리사라. 지금부터는 당신이 보여줄 차례임다.” “네, 네?” “성녀의 권능을 사용하십쇼.” 낯빛이 까맣게 변한 그녀가 고개를 붕붕붕 가로저었다. “어, 어떻게 그런……! 또 사람들을 공격하게 될 거예요!” “괜찮아. 이번엔 우리가 적당한 때에 끼어들어서 통제할게.” 시몬이 안심하라는 듯 나긋한 어조로 설명했다. “결계 전문가인 브로데릭 교수님 앞이면 다른 사람에게 들킬 일도 없고, 주변에 피해를 입힐 우려도 없으니 마음껏 해도 좋아.” “그, 그렇지만……!” 리사라가 제 머리를 붙잡았다. “역시 그런 모습이 되는 건…….” 리사라는 그 모습으로 변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 뒤, 원래대로 돌아올 즈음에는 기억이 남아 있다. 겁에 질린 사람. 혐오하는 사람.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 그녀와 마주친 사람들의 두려움과 증오가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여기 앞에 있는 브로데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모습은 혐오를 불러일으킬 뿐이니까. 리사라는 강박과 자기방어 기재로 똘똘 뭉쳐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 네 역할이 중요해. 리사라.” 시몬은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득했다. “성녀의 권능으로 ‘그 모습’이 됐을 때 공격성을 통제해야 해. 그래야 사람들 앞에 나서서 네가 악마가 아니라 성녀임을 증명할 수 있을테니까.” “…….” 리사라는 이미 잔뜩 겁에 질린 듯 뭐라 말이 없었다. 시몬이 다시 말문을 떼려는 그때. “이런 말 하기에는 가혹하지만.” 레테가 앞으로 불쑥 걸어 나왔다. “지금은 어리광 부릴 때가 아님다.” “!” “지금까지 당신이 저지른 일들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한 거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임다. 살아남기 위해서.” 당근 다음은 채찍. 레테는 꽤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작 한 사람에 앞에 자신을 증명하는 걸 두려워하는 인간이, 수많은 신도들 앞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 리 없잖슴까.” “…….” “힘을 내, 리사라. 통제 못 할 힘이 아냐. 네 상태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어. 내가 장담해.” 레테와 시몬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하자, 결국 결심이 선 리사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우선 감정을 격변시켜야 한다. 흔들리고 두려운 감정들. ‘나라고 성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야.’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유클리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일. 팔라딘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일들. 공포에 질린 선발생 동기, 도망치는 주민들, 악마라고 단언하는 외침까지. ‘싫어. 정말 싫어.’ 그녀의 몸이 일순 거인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이내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등가죽과 몸에 들러붙으며 전신이 시뻘건 혈관처럼 변했다. [끄극! 끼기기기기기긱!] 순식간에 괴물의 모습이 된 리사라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주위에 괴이한 노이즈 같은 것이 일렁였다. 그것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악몽에 나올 정도로 끔찍했다. ‘음.’ 시몬이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난 몇 번 봐서 익숙하지만, 정말로 저 모습으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걱정되긴 하네.’ 그때 리사라가 변신을 중단한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이 다시 줄어들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안 돼요! 더는 무리예요!” 그녀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저는 정말……!” “확실하군요.” 쿵! 갑자기 브로데릭이 리사라를 향해 경건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 울먹거리던 그녀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사옵니다.” “교, 교수님……?” “당신의 몸에서 나온 그 신성, 누가 뭐라고 해도 성녀의 권능입니다. 이 브로데릭!” 쿵! 브로데릭이 주먹 쥔 손을 제 가슴에 부딪혔다. “당신이 여신께서 허락한 일곱 번째 딸임을 믿습니다. 내 신앙을 걸고 당신을 지킬 것입니다.” 리사라의 눈가가 벌게졌다. 시몬과 레테가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로데릭이 리사라가 성녀임을 믿었다. 어떤 프리스트도 신성 슬럼프를 겪는 건 원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리사라를 지킬 것이다. “밤바람이 춥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브로데릭이 자신의 저택 쪽으로 걸어가 두 팔을 벌렸다. 우웅-! 저택의 허공이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결계가 벗겨졌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본 시몬과 리사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높은 성벽이 있는 커다란 성채였다. 브로데릭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수호의 성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브로데릭의 성채는 대단했다. 높고 가파른 성벽이 입구를 완전히 차단했고, 하늘에 펼쳐지는 결계는 공중에서의 침입까지 원천봉쇄했다. 성벽을 넘으면 미로를 방불케 하는 드넓은 정원이 펼쳐졌다. 당연히 보통 정원은 아니었다. 여러 방어 장치나 함정들이 가득했다. 이 모든것들을 전부 넘어서야 브로데릭이 사는 요새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도 내부는 평범한 저택이네.’ 요새의 저택에는 공간도 넓고 씻을 만한 곳도 있었다. 레테와 리사라가 가볍게 씻고 오는 사이, 시몬과 브로데릭은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이어서 그녀들이 돌아오자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맛있다! 이게 밥이지!’ 시몬은 식사를 음미했다. 숙소에서 간이 밍밍한 음식들만 맛보다가, 고기가 듬뿍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먹으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밝은 조명과 모닥불 타들어 가는 소리까지. 내부의 안락함이 잠시나마 긴박한 상황을 잊게 해주었다. “식사 중에 실례지만 브로데릭 교수님, 총무주교가 우리를 찾아내는 데 얼마나 걸릴 거라고 예상하심까.” 레테의 물음에 브로데릭은 큰 고민없이 답했다. “반나절이면 발각당할 겁니다. 어디로 도망쳐도 결국은 하늘섬 내부, 그들의 추적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요.” “그럼 이 요새가 버텨줄 수 있는 시간은요?” “마찬가지로 반나절 봅니다.” 그 말을 들은 레테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아니, 연방 최고의 수호학 전공자람서요! 군대가 와도 버틸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슴까?” “허허허! 군대만 온다면 이 몸 혼자서도 한 달은 거뜬하지요.” 브로데릭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하늘섬입니다. 악마 토벌 명령이 떨어진 만큼, 틀림없이 군대를 넘어선 비대칭 전력이 참여하겠지요. 최악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시몬도 동의의 뜻을 밝힌 뒤 레테를 바라보았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식사가 끝나는 대로, 저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리사라의 각성을 위한 백마법을 준비하겠슴다.” 레테가 리사라 쪽을 보았다. “예전에 이스라필 님이 저한테 가르쳐 준, ‘권능’을 통제하는 마법임다. 도움이 될 거예요.” 시몬도 활짝 웃으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잘됐네, 리사라. 이번엔 공격성도 없었고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잖아! 이제 곧 사람들에게 네가 악마가 아니라 성녀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거야.” “네…….” 리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로데릭은 잠시 남은 수프를 가지고 오겠다며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만약…….” 그때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던 리사라가 입을 열었다. “계획대로 제가 성녀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시몬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레테가 툭 내뱉었다. “당신은 악마로서 처형되어 최악의 괴물로 역사에 남을 거고, 수사관과 브로데릭 교수님은 악마에 씌어 여신을 배신한 이단으로 참수당할 검다. 나도 성녀직 내려놓은 뒤엔 같은 운명일 테고.” 꾸욱. 리사라가 주먹 쥔 손에 힘을 주더니 입을 열었다. “해, 해볼게요. 여러분께 너무 큰 은혜를 받았고, 이제는 저 하나만의 목숨도 아니니까요.” 다행히 결심이 선 것 같았다. 시몬은 속으로 안도했다. ‘처음엔 엄청 주눅 들어 있었는데, 의외로 멘탈이 좋아 보여. 다행이다.’ “애초에 리사라. 당신이 독한 성격이란 건 잘 알고 있었슴다.” 턱을 괸 레테가 포크를 휙휙 움직이며 말했다. “예배회 첫날, 이 녀석이 유클리드로 분장한 다른 사람이란 건 짐작했죠?” “……아, 네.”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이 녀석에게 접근해서 경계를 풀었고, 심지어 내게도 우수성사를 걸어서 유클리드의 이름을 언급해 떠보려고 했죠.” 리사라가 흠칫한 표정을 지었고, 시몬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에 눈을 깜빡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땐 정말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그런 기본적인 연기도 못하니까 이렇게 들켜서 죽는 거야. 다음에는 조금 더 조심해라? 아, 다음은 없겠지 참. 유클리드에게 죽을 뻔했던 일이, 리사라의 성향을 180도로 바꿔놓은 계기였다. 들키면 죽는다. 그러니 내가 먼저 움직인다. 모든 상황에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범하게 행동했다고. 이쪽 화제가 나온 김에, 이번엔 시몬이 질문을 던졌다. “리사라. 하나 더 묻겠는데, 8번 에이툴라를 상처 입히고 협박한 건…….” “아, 아니에요! 그건 제 의도가 아니었어요!” 리사라의 해명에 따르면, 8번 에이툴라가 시몬에게 우수성사를 요청하던 그때 멀리서 그녀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리사라는 지레 겁먹었다. 혹시 자신이 마리첼로로 변한 걸 본 게 아닐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게 아닐까. 너무 신경 쓰여서 그녀는 축제도 다 즐기지 못하고 일찍 돌아왔다. 복도에 귀를 기울이며 에이툴라가 언제 시몬에게 말할지 벌벌 떨며 초조해졌다. 이내 그 초조함과 두려움이 지금까지 쌓여 있던 병적인 정신적 부담으로 터져 나왔고 결국. “방 안에서 떨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제가 그 괴물로 변해 에이툴라 자매님을 붙든 채 애원하고 있었죠. 정말로 다치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시몬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엔 레테가 말했다. “뭐, 그럼 3번 마리첼로 자매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한 혐의는 인정하는 검까?” “아…….” 리사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네, 그건 제 잘못이 맞아요. 마리첼로 자매님이 유클리드 님을 죽인다기에…… 수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욕심에 눈이 멀었어요. 하, 하지만!”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수사관님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그렇겠지.’ 진짜로 시몬의 목숨을 노렸다면 새끼의 냄새가 밴 쿠션 정도가 아니라, 새끼를 죽인 시체를 성지에 방치했을 것이다. 리사라의 목적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 그렇게 하면 자신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튼 성녀가 되면 모든 죄에서 자유로워진다지만 잘못은 잘못.” 레테가 팔짱을 꼈다. “두 사람에게 평생을 거쳐 속죄하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슴까. 지금은 이 일에 집중하죠.” “……네, 죄송합니다.” “허허! 실례합니다!” 그사이 마침 브로데릭이 남은 빵을 가지고 왔다. 세 사람은 결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영양을 보충했다. “참, 리사라.” 시몬이 웃는 얼굴로 리사라를 보았다. “이제는 여담이지만, 그럼 그때 나한테 우수성사를 건 뒤에 들려준 고향 이야기는 뭐야?” “그, 그 이야기는 진짜예요!” 리사라가 다급히 말했다. “물론 의도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느새 마음이 편해져서…….” “……잠깐만.” 이번엔 레테가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리사라를 노려보았다. “그럼 나한테 우수성사를 걸었을 때 유클리드가 자꾸 생각난다고 한 건 뭠까? 그것도 연기임까?” “아, 그……!” 리사라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시뻘게졌다. 이내 우물쭈물하더니 눈만 굴려 웃고 있는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되돌리더니 푹 익은 얼굴이 되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에. 여, 여여여, 연기였습니다아…….” 레테의 두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타오르더니 시몬에게 꿀밤을 먹였다. “왜 때려! ……요.” 항의하려던 시몬이 마지막에 브로데릭의 눈치를 보며 존대했다. “그냥!” 레테가 팔짱을 낀 채 새침하게 등을 돌려 버렸다. 리사라는 안절부절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그리고 두 성녀 사이에 낀 시몬을 바라보던 브로데릭은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감았다. “내 딸아, 쉽지 않은 시련이겠지만 이겨내야 한다!” “……이 아저씨는 뭐라는 거야. 식은 수프나 데워 오십쇼.” *** 같은 시간. 쏴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빗속을 걷고 있는 남자가 브로데릭의 저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머리에 쓰고 있는 검은 우산이 기울어지며 짧은 상아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여기로군.” 손에 든 쪽지를 정장 안으로 숨긴 그가 천천히 팔을 뻗어 결계에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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