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72화 시몬과 메이린이 도착한 곳은 랭거스틴 중심가에 있는 3층 건물이었다. 겉보기에는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시몬과 메이린은 서로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인 뒤 계단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진다. 우아한 피아노곡 소리와 함께 바이올린 선율이 귓가를 가득 채운다. “이거 무슨 노래야?” 시몬이 불쑥 물었다. 하늘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던 메이린이 검지를 착 세웠다. “고전 클래식이네. 밍돌스의 <노을의 고백>. 1장은 슬픈 분위기지만, 2장부터 관현악 연주가 극적 서사를 강조하는 곡이야.” 그렇게 막힘없이 설명을 마친 메이린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시몬을 노려보았다. “근데 왜 당연하다는 듯이 나한테 묻는 건데!” “메이린도 노래 잘 부르잖아.” “그거랑 이거랑 다르거든!” 서로 티격태격하며 3층에 도착한 그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넓은 나무 바닥이었다. 공기 중에 퍼진 땀 냄새와 향수 냄새가 뒤섞여서 났다. 그리고. ‘깜짝이야.’ 바로 그 나무 바닥 위로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가볍고 유려했다. 팔을 부드럽게 굽히다가 이내 힘주어 확 펼치고, 다리를 머리까지 가볍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특히 발끝만으로 서서 회전하는 균형감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 무용수들 사이를 거닐고 있는 한 중년 여성. ‘응?’ 이 사람은 장르가 조금 달랐다. 주변에 더 젊고 우아한 무용수들도 있었지만, 오로지 이 사람밖에 안 보였다. 처억! 처적! 무대를 압도하는 파워풀함. 강렬한 눈빛과 역동적인 동작이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동작에 맞춰 다른 무용수들도 따라갔다. 그러다 곡이 클라이막스에 이르며 리듬이 빨라지자 춤 또한 격렬해졌다. 처억! 그녀가 두 팔을 쫙 벌리는 것으로 무용수들이 좌우로 촥 벌어지며 그녀를 만개한 꽃봉오리처럼 장식하듯 팔을 뻗는 피니시. 시몬과 메이린은 잠시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수 쳐야 할까?’ 시몬이 입 모양으로 물었고. ‘그런 분위기 아닌 것 같아!’ 메이린이 입 모양으로 말렸다. 이내 무용수들이 다시 바른 자세로 돌아와 깍듯이 중년 여성에게 인사하고 퇴장했다. 어떤 무용수는 그녀의 어깨에 밍크코트를 걸쳐주기도 했다. 이내 그 중앙의 여성이 코트를 흔들며 다가와, 앞에 뻘쭘하게 서 있는 시몬과 메이린을 발견했다. “왔군요.” 짙은 눈화장 너머로 강렬한 눈빛이 일렁인다. 시몬과 메이린이 깍듯이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학생회장 시몬입니다.” “부회장 메이린이에요.” 시몬은 눈동자만 굴려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 ‘스테이시 교수님이 현장을 지휘하시는 거구나. 제대로 이야기해 보는 건 처음이네.’ 3학년 사령학과 담당 교수, 스테이시 세잔. 가끔 학생회장으로서 말 몇 마디 왔다 갔다 하는 정도에 그쳤던 인물이다. 시몬은 사령학과와 그렇게 큰 접점이 없었으니까. “고개 들어요. 학교 밖에서는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 “넵.” 사령학과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테이시는 ‘까탈’, ‘변덕’, ‘예민’의 대명사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도 상당히 부유한 가문 출신이라 그런지 가끔 학과 전체에 비싼 간식들을 턱턱 쏴서 학과생들의 인식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전형적인 대귀족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취미도 당연히 고즈넉하고 우아한 독서나 음악 감상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강렬한 무용이라니. 조금 의외였다. ‘사령학과 교수들은 모두 춤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시몬이 1학년 시절 ‘스피릿’을 느껴야 한다며 췄던 오징어 춤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스테이시 교수가 앞서 걸어가며 말했다. “밖에서 계속 이야기할까요?” * * * 스테이시 교수를 따라 교습소 밖으로 나가고, 활기찬 랭거스틴 거리로 들어섰다. 스테이시는 대담하게도 밖에서 입기엔 다소 민망할 수 있는 무용수 복장에 코트만 걸친 채 당당히 걸어갔다.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바닥에 누워 있던 한 노숙자는 음흉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교, 교수니임. 아하하…….” 당황한 메이린이 애교 섞인 웃음을 흘리며 스테이시의 코트를 살짝 더 여며주려 하자, 스테이시 교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메이린 부회장. 신경 써주는 건 고맙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중요한 건 내 에고이지, 타인의 평가가 아니에요.” “아, 네에…….” 메이린이 뻘쭘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시몬에게 입 모양으로 ‘이 사람 이상해!’ 하고 말했다.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였다. ‘네크로맨서가 이상한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 타악. 그때 스테이시 교수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입니다.” “여기요?” 그녀가 멈춘 곳은 도심 한가운데 텅 비어 있는 넓은 집터였다. 살인적인 땅값을 자랑하는 랭거스틴은 일말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지면에 온통 빼곡하게 주거지들이 지어진 것으로 유명한데, 이렇게 넓은 공간이 비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놀랐나요? 내가 이 땅만 사들였답니다.” “그럼 집은요?” 여기서 천막이라도 치고 이야기를 나누나 생각했는데, 그녀는 팔에 끼고 있던 가방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구슬 속에는 성 모양의 구조체가 들어 있었다. 그녀가 구슬을 바닥에 떨어뜨린 뒤, 발끝으로 툭 하고 차자. 촤아아아아아아아! 강렬한 ‘스피릿’이 연기처럼 터져 나오며 구슬이 급격히 커지더니 그 안에서 성 한 채가 집터를 덮은 채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과 메이린이 입을 벌린 채 굳어 있는 사이, 스테이시 교수는 태연히 성문을 열어젖혔다. 그녀의 칠흑에 반응했는지 몇 중으로 잠겨 있던 철창이 빠르게 올라가며 통로가 나타났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세 사람은 계단을 따라 성을 올라갔다. 벽면은 이국적인 재료나 장식물들로 가득했다. 해산물을 말려놓거나, 심지어 마늘 대발 같은 걸 매어둔 것도 있었다. “사령학의 근원은 고대 부두술이에요.” 스테이시 교수가 말했다. “학문도 중요하지만, 사령의 세계에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혼계로 들어가기 위한 부두술의 연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영혼계야 말로 인류의 근원적인 부분까지 탐닉할 수 있는 수단이거든요.” “그, 그렇군요.” 계단을 모두 올라 방에 들어왔다. 집무실로 보이는 큰 방이었는데, 그곳에 도착한 시몬과 메이린의 눈이 부릅떠졌다. 바로 이 방에,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한 여성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어서 와요.” 바로 스테이시 교수 본인이었다. “그, 그럼 방금 우릴 안내해 준 건…….” 시몬과 메이린의 고개가 삐거덕거리며 옆으로 향했다. 분명히 스테이시 세잔이었을 인물이, 어느새 무용복 위에 코트를 걸친 ‘허수아비’로 변해 있었다. 그것의 허리가 뒤로 굽혀지자 코트가 흐느적거리며 벗겨졌다. “인지의 흑마법.” 스테이시 교수가 미소 지었다. “스테이시 세잔이라고 인식하는 대상이 스테이시 세잔인 법입니다.” “노, 놀랐잖아요! 교수니임!” 메이린이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때 뒤에 쓰러져 있던 허수아비가 삐그덕 일어나자 메이린이 ‘꺄악!’ 하고 외치며 폴짝 뛰었다. 바로 그 허수아비가 메이린의 머리를 스윽 하고 쓰다듬는 순간에는 스테이시 세잔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다시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니 허수아비로 돌아왔다. 메이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거기 앉아 계신 분은 진짜 맞으시죠?” 추욱-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스테이시 세잔이 옆으로 길게 누우며 허수아비로 변했다. 메이린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시몬의 등 뒤로 샥 숨었다. “괜찮아, 메이린.” 시몬이 놀란 메이린을 달랜 뒤 웃으며 앞을 보았다. “저는 소파에 앉아 계신 분만을 스테이시 세잔 교수님이라고 인지하겠습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허수아비가 아닌 스테이시 세잔이 다시 소파에 앉아 미소 짓고 있었다. “역시 동료 교수님들께 듣던 대로 총명하네요, 학생회장.” 그녀의 눈에 흥미가 일렁였다. “1학년 때 뒷반을 담당하느라 학생회장과 연을 이어가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몬과 스테이시 교수가 악수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메이린은 이제 이 성의 모든 것들을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저 옆의 기둥이 스테이시 세잔이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도 보였고, 저 옆의 의자가 스테이시 세잔이 헐벗은 모습으로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끝도 없는 굴레였다. “그럼 바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펄럭! 스테이시 교수가 테이블을 가린 보라색 천을 걷어내자, 대도시 랭거스틴 전역의 모습이 기록된 지도가 나타났다. 이제야 메이린도 흠흠 헛기침을 하며 지도로 다가왔다. “신원 미상의 무리가 최근 도시 곳곳에 이상한 내용의 벽보를 붙이고 다니고 있어요.” 스테이시 교수가 벽보를 내밀었고 시몬과 메이린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일라이저 크로비스의 퇴학은 잘못됐다.>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여기서 갑자기 일라이저가 나온다고?’ <룬 리그에 참여한 키젠 3학년 일라이저는 기생 악마 라그콘드리아를 몸에 심었다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차디찬 지하에 감금당했다.> <이를 도운 프레스턴 혈류학과 교수까지 함께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라그콘드리아 님은 프리스트의 교황 혈족을 무너뜨린 진정한 영웅이다!> 이후에는 도저히 논리적이지도 않고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딱 봐도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 마구 휘갈긴 것 같은 내용이었다. “중요한 건 이 마지막이에요.” 그녀가 아래를 가리켰다. <우리는 키젠의 결정을 혐오하며,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들이 아닌, 그들이 다니는 학생들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개학식은 누군가의 장례식이 될 것이다.> 그 내용을 본 메이린이 격분했다. “기생 악마 라그콘드리아는 금지된 흑마법이잖아요! 금지된 흑마법의 힘으로 Top10이 된 것만으로도 퇴학당해 마땅한데 이게 무슨……! 그리고 죄 없는 학생들을 노린다뇨!” 시몬은 턱을 짚었다. “이 테러 예고는 누가 쓴 걸까? 왕국 내 반 키젠 파벌? 키젠 퇴학생? 일라이저 크로비스 본인은 갇혀 있을 테고.” “우리도 짐작 가는 바는 없어요. 아마 일라이저를 걸고넘어진 건 단순한 명목에 불과할 거예요.” 스테이시 교수가 말을 이었다. “누군가 학생에 대한 테러 예고를 한 이상, 경비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높였어요. 여러분을 이곳으로 부른 것도 그 이유예요. 하지만…….” 그녀의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테러를 방지하는 걸로는 부족해요. 나는 반드시 범인을 찾고 싶어요.” “!” “대륙이 혼란의 시기를 맞이한 지금, 키젠을 건드리는 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잊었다면 그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 앞으로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요.” 시몬과 메이린은 긴장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지금 나의 허수아비들이 키젠 교복을 입고 학생으로 분장해서 돌아다니고 있어요. 벌써 1학년을 대상으로 테러 미수가 1건 있다고 하더군요.” “테, 테러 미수까지……!” “1학년들은 전원 자택에 대기명령을 내렸고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통학시킬 생각입니다. 2학년들도 개학 루트를 바꾸도록 통보했죠. 그리고 지금 랭거스틴에 와 있는 건 대부분이 키젠 3학년들과 학생으로 분장한 하수인들.” 그녀가 시몬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목적은 테러 방지 이전에, 선제적으로 그 주동자를 유인해 찾아내서 체포하는 겁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학생회장.” 그녀의 강렬한 눈빛이 정면으로 향했고, 시몬도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을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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